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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와 로마 지중해의 라이벌

시리즈 : 큰글자 살림지식총서 [103]

김덕수 저 | 살림 | 201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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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2231413 / 96쪽 163 x 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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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 『큰글자 살림지식총서』 소개 최근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전개되면서 더불어 노년층 독서인구가 증가하고, 다양한 지적ㆍ문화적 욕구 또한 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노안이나 약시ㆍ저시력 등의? 이유로 독서에 어려움을 겪는 독자들 또한 늘고 있다. 이에 살림출판사의 대표 브랜드인 살림지식총서가 문고판 최초로 『큰글자 살림지식총서(대활자본)』 제작 및 보급에 나섰다. 『큰글자 살림지식총서』는 노안으로 독서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과 시각 장애인들이 책을 읽기 쉽도록 글자 크기를 키운 도서로, 선진국에서는 ‘라지 프린트 에디션’이라는 ... ▶ 『큰글자 살림지식총서』 소개 최근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전개되면서 더불어 노년층 독서인구가 증가하고, 다양한 지적ㆍ문화적 욕구 또한 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노안이나 약시ㆍ저시력 등의 이유로 독서에 어려움을 겪는 독자들 또한 늘고 있다. 이에 살림출판사의 대표 브랜드인 살림지식총서가 문고판 최초로 『큰글자 살림지식총서(대활자본)』 제작 및 보급에 나섰다. 『큰글자 살림지식총서』는 노안으로 독서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과 시각 장애인들이 책을 읽기 쉽도록 글자 크기를 키운 도서로, 선진국에서는 ‘라지 프린트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제작되기도 한다. 특히 일본은 전체 도서관 2,500여 곳 중 반이 넘는 곳에서 ‘큰글자(대활자본) 코너’를 별도로 마련하고 있다. 『큰글자 살림지식총서』의 선정기준은 『살림지식총서』 중 독자들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주제들이다. 이 책들은 일반 글자크기인 10포인트(살림지식총서 기준)보다 1.5배 정도 더 큰 약 15포인트의 글자크기로 제작됐다. 『살림지식총서』는 현재 출간된 510여 종의 책 가운데 건강, 복지, 고전, 역사, 인문 등 중장년층의 관심이 집중된 분야 중심으로 『큰글자 살림지식총서』를 추가 제작할 예정이며 『큰글자 살림지식총서』의 출간을 염두에 둔 기획도 진행한다. 독서 소외 계층을 위한 살림지식총서의 노력은 계속될 예정이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영원한 경쟁 관계에 있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 또는 아테네와 로마의 역사와 문화 비교 ▶ 내용 소개 지중해의 영원한 라이벌 고대 시대에 이탈리아 반도와 그리스 반도는 서양 문명의 요람이자 중심지였다. “플라톤이 철학이고 철학이 플라톤이다.”라는 에머슨의 말이나 “서양 철학의 역사는 플라톤의 주석 달기”라는 화이트헤드의 말은 다소 과장된 감이 있지만 그만큼 서양 철학사에 기여한, 아테네 시민이었던 플라톤의 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또한 민주정치(Democracy)와 공화정치(Republic)를 빼면 현대 정치를 이해할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24시 찜질방, 사우나 등 우리나라 목욕 문화의 원조는 로마인들의 목욕탕 문화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 문명의 많은 것들도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의 유산이었다. 그러나 그 명성과 중요성을 감안할 때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아주 피상적이고 빈약하다. 이 책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어쩌면 영원한 경쟁 관계에 있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 또는 아테네와 로마의 역사와 문화를 비교함으로써 서양 고대 문명을 이해하기 위하여 쓰였다. 문명은 그리스로부터 그리스인들이 알파벳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800년경의 일이다. 동부 지중해 연안에 있던 페니키아 문자를 토대로 아람어 문자의 일부 자음을 빌려서 그리스어 알파벳 24개(자음17, 모음 7)가 완성되었다. 문자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알파벳의 발명이야말로 지식의 대중화를 가져온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기원전 5세기와 4세기에 그리스 지식인들은 그리스 문자를 사용하여 시, 희곡, 서사시 등의 문학과 역사, 철학 등 서양의 고전들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다. 이후 서양 문명의 지적 원천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도 그 기저에는 알파벳이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8세기에 그리스 본토에서 폴리스들을 세운 이후 활발한 해상 활동과 식민운동을 통해서 지중해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갔다. 그들의 대외 활동은 곧 그리스 알파벳의 확대를 의미했다. 기원전 6세기부터 라틴어 알파벳 금석문들이 나타나는데, 학자들은 그리스 알파벳이 에트루리아인들을 거쳐 라티움 지방으로 들어온 것으로 생각한다. 로마인들이 사용한 라틴어 문자는 기독교 교회의 공식 문자가 되어 중세로 이어지고, 중세 이후 서양 언어의 모체가 되었다. 영원한 로마 고대 시대에는 이탈리아 반도에 이탈리아라는 나라가 없었고, 로마를 포함해서 여러 도시국가들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리스와는 달리 로마인들은 전쟁으로 또는 외교로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을 정복하면서 세력권을 확대해갔다. 기원전 3세기 초 이탈리아 남부의 타렌툼이 정복되면서 이탈리아 반도는 로마 공화국의 지배 영역이 되었다. 그렇기는 해도 나라 이름은 이탈리아가 아니라 로마였다. 이때부터 로마의 영원성에 대한 지배 이데올로기, 즉 ‘영원한 로마(Roma Aeterna)’ 관념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로마가 지중해 전역을 지배할 때 ‘영원한 로마’ 사상은 더욱더 널리 선전되었다. 따라서 지중해 통치 시대에 국가명은 로마 제국(Imperium Romanum)이었지 이탈리아 제국이 아니었다. 4세기에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된 이후에 ‘영원한 로마’ 사상은 기독교의 영원성과 맞물리면서 더욱더 힘을 갖게 된다. 로마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 그리스와 로마의 대립은 기독교에서도 나타난다. 그 대립의 씨앗을 심은 것이 313년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였다. 콘스탄티누스는 324년 권력의 라이벌이었던 매부인 리키니우스 군대를 물리친 뒤에 ‘새로운 로마’ 건설을 시작했는데, 동로마의 수도로 선정한 곳은, 유서는 깊지만 당시에는 쇠퇴한 그리스의 옛 식민시 비잔티온이었다. 이 도시는 이제 콘스탄티노폴리스, 즉 콘스탄티누스의 도시가 되었다. 콘스탄티노플의 중요성은 391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사실상 국교로 선언하면서 더 부각되었다. 당시 기독교 세계는 5대 교구, 즉 로마ㆍ콘스탄티노플ㆍ예루살렘ㆍ안티오키아ㆍ알렉산드리아로 나뉘어 있었는데, 서로마의 중심도시에 있는 로마 교회와 동로마의 중심 도시에 있는 콘스탄티노플은 정치적인 문제나 교리적인 문제로 대립하게 되었다. 결국 1054년에 로마 교황과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는 서로를 파문함으로써 사실상 분열을 공식화했다. 이때 로마를 중심으로 서유럽 세계를 통괄한 서방 교회는 로마 가톨릭으로,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동유럽으로 교세를 확장한 동방교회는 그리스 정교회로 불리게 되었다.

저자 소개

역사학회 회장,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1959년 경기도 화성시 비봉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양사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로마사를 전공하고 1996년 2월에 <아우구스투스의 프린키파투스의 형성과정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 3월부터 2006년 2월까지 대전 목원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2006년 3월부터 현재까지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7년부터 역사학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교회생활을 했다. 대학교 때 신앙에 대한 회의 때문에 방황했으나 3학년 때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라는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현재 낙성대 앞에 있는 큰은혜교회를 섬기고 있다.
로마사를 전공하기로 한 것은 로마 역사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즉 로마 공화정치, 로마법, 로마 가톨릭교 등이 인류 역사에 끼친 공로가 크고, 특히 로마 시대에 그리스도교가 시작되었다는 것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리스도교가 4세기 말 로마의 국교가 됨으로써 다신교적 전통의 고대 지중해 세계의 그리스도교화가 실현되었지만 또한 다신교적 전통의 로마 문화가 그리스도교에 들어오는 바람에 이른바 그리스도교의 로마화도 함께 진행되었음을 주목하면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앞으로도 종교개혁자들의 정신을 본받아 그리스도교의 로마화에 대한 연구를 계속할 예정이다.
저서로는 《아우구스투스의 원수정: 로마공화정에서 제정으로》(길, 2013), 《그리스와 로마-지중해의 라이벌》(살림, 2004)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하이켈하임 로마사》(현대지성사, 2017), 《로마문명사》(현대지성사, 1997), 《로마혁명사》(한길사, 2006, 공역) 등이 있고 로마사 및 역사교육에 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책 속에서

P.12 : 기원전 8000년경 이른바 ‘신석기 혁명’으로 문화를 건설하기 시작한 인류는 기원전 3000년경 도시를 건설하고 문자를 사용함으로써 문명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 오리엔트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기원전 2000년경으로 오면 지중해 세계로 퍼져나갔다. 기원전 1100년경 에게 문명이 몰락한 뒤 도시가 파괴되고 문자가 쓰이지 않던 ‘암흑시대’를 지나 그리스인들이 알파벳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800년경의 일이다. 

P.48~49 : 아테네가 인류 역사에 끼친 위대한 업적은 많이 있지만 오늘날까지 그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민주정치이다. 민주정치(Democracy)라는 말은 그리스어 데모크라티아(Demokratia)에서 왔는데, 이는 ‘데모스(Demos, 민중)의 지배 체제(Kratia)’ 즉, 민중이 다스리는 정치 체제라는 뜻이다. 아테네인들도 처음부터 민주정치를 한 것은 아니었다. 앞에서 보았듯이 아테네 정치사는 왕정으로 시작되어 귀족정치, 금권정치를 거쳐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참주정치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일인 독재 체제였던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참주정치는 기원전 528년에 그가 죽자 두 아들 히피아스와 히파르코스에게로 넘어갔다. 그러나 기원전 513년에 동생 히파르코스가 살해된 후로 폭정을 거듭하던 히피아스는 외세 스파르타의 후원을 얻은 귀족들의 반참주운동으로 권좌에서 쫓겨난 후 페르시아로 망명해버렸다. 

P.59~60 : 스키피오는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을 격파하여 제2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18~201년)을 승리로 이끈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조카이자 양손이었다. 스키피오는 특히 그리스 문화 애호가로 자신의 집에서 그리스 문화 동호인들을 만나면서 이른바 ‘스키피오 서클’이 만들어졌는데, 폴리비오스도 스키피오 서클의 일원이 되었다. 

폴리비오스는 17년 동안 스키피오와 함께 지내면서 조국의 쇠망과 로마의 부상을 비교하면서 신흥국가 로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스키피오와 함께 한니발 전쟁의 격전지였던 남부 이탈리아, 한니발의 본거지였던 히스파니아(에스파냐) 등을 시찰하고, 아프리카까지 행군했다가 로마로 돌아올 때는 한니발이 그러했듯이 히스파니아의 피레네 산맥을 넘고 남부 프랑스를 거쳐 알프스를 넘고 이탈리아로 오는 대장정을 하기도 했다. 

목차

목차
그리스는 없다
영원한 로마(Roma Aeterna)
문명은 그리스로부터
아테네 vs. 로마
정치의 두 기둥:민주정치와 공화정치
폴리스 문화의 종착점:아테네 제국과 로마 제국
정복한 우리가 정복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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