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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의 봄 초기 경맥 형성사

정우진 저 | 청홍 | 2015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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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0116673 / 224쪽 153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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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유별은 관계있는 것들을 묶는 방식이다. 기원전, 중국에는 두 종류의 전문의가 있었다. 한 집단은 뜸법파였고, 다른 집단은 일종의 외과수술용 돌칼을 사용하는 폄법파였다. 뜸법파들은 뜸을 떠서 한증?을 제어했고, 폄법파들은 날카로운 돌칼로 종기를 제거했다. 두 집단이 임상경험을 누적시키고 있을 때, 철학자들은 동양과학의 기초이론을 다듬어 나가고 있었다. 동양과학의 기본적 지향은 관련 있는 것들을 하나로 묶어나가는 것이었다. 서양에서도 유별(類別, categorization)은 질서지움의 기본이었지만, 동양의 유별은 독특했다. 전국 말부... 유별은 관계있는 것들을 묶는 방식이다. 기원전, 중국에는 두 종류의 전문의가 있었다. 한 집단은 뜸법파였고, 다른 집단은 일종의 외과수술용 돌칼을 사용하는 폄법파였다. 뜸법파들은 뜸을 떠서 한증을 제어했고, 폄법파들은 날카로운 돌칼로 종기를 제거했다. 두 집단이 임상경험을 누적시키고 있을 때, 철학자들은 동양과학의 기초이론을 다듬어 나가고 있었다. 동양과학의 기본적 지향은 관련 있는 것들을 하나로 묶어나가는 것이었다. 서양에서도 유별(類別, categorization)은 질서지움의 기본이었지만, 동양의 유별은 독특했다. 전국 말부터 전한기에 활동했던 일군의 학자들은 유별을 이론적으로 다듬어 나갔다. 유별은 관계있는 것들을 묶는 방식이었으므로, 관계에 대한 규정이 시도되었다. 인과라는 관계지움은 보편자가 현상을 만들어내는 방식, 즉 질병이 증상을 만들어내는 방식이었고, 서양 지성 전통의 중요한 관계지움이었다. 이성보다는 감정이 중시되는 마음이론이 구축되었다. 중국에서도 인과는 상식적이고 통속적이었다. 그러나 통속적이었을 뿐, 인과의 이론화는 시도되지 않았다. 대신 떨림의 관계에 대한 이론화가 시도되었다. 봄에 피는 진달래는 봄기운에 떨리는 것이라고 설명되었다. 마음을 파악할 때도 이 점이 중시되었다. 그 결과 이성보다는 감정이 중시되는 마음이론이 구축되었다. 그런 떨림은 감응(感應, resonance)이라고 말해졌다. 감응하는 것들은 하나의 유로 묶여졌는데, 기가 감응을 매개했다. 시간의 순환을 사계절로 나눌 수 있는 것처럼, 몸도 반응을 기준으로 몇 개로 나눌 수 있었다. 각 영역에 속하는 증상들은 함께 감응하는 것이었다. 대퇴부의 특정한 통증이 몸의 다른 곳에서 생겨난 증상과 하나로 묶일 수 있었다. 뜸법파들은 몸의 특정 부위가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임상경험을 철학자들이 만들어낸 기초과학 이론에 토대 지웠다. 그 과정은 기초과학 이론의 단순한 답습이 아닌, 변화를 통한 능동적 수용이었다. 그 결과 몸에 여섯 개의 영역으로 나뉜 패턴이 그려졌다. 상호 관련된 증상은 기의 움직임으로, 치료는 감응의 조절로 해석되었다. 경험지식이 경맥체계와 연결시켜 사혈이 탄생했다. 여섯 개의 묶음으로 설계된 경맥체계가 탄생했다. 경맥체계는 확장되었다. 상체에서도 같은 논리가 적용되었다. 그 결과 경맥은 여섯 개에서 여덟 개로 다시 열한개로 늘어났다. 열 두 개의 달과 열 개의 태양이라는 논리가 적용되었다. 발에는 여섯 개의 경맥이, 손에는 다섯 개의 경맥이 그려졌다. 뜸법파들이 만들어낸 경맥체계를 폄법파들이 발전시켰다. 폄법파들은 열증이 종기로 발전하고 다시 염증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혈맥에 관한 특별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커다란 종기를 제거하는 외과수술은 위험한 작업이었고, 혈맥에 관한 지식을 요구했다. 폄법파들은 종기를 제거해야 하는지 아니면, 종기가 곪은 뒤에 제거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했다. 곪은 뒤에 제거하면 위험이 배가되었는데, 곪기 전에 제거하는 것이 오히려 위험을 초래하기도 했다. 종기 제거는 딜레마였고, 폄법파들은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에서 숨구멍을 찾았다. 조선시대의 어의들도 이 문제를 두고 다투었다. 폄법파들은 열증을 제거함으로써, 이 과정을 끊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이 경험지식이 경맥체계와 연결되는 순간 사혈이 탄생했다. 그러나 사혈은 동양의 생명관과 어울리지 않는 치료법이었다. 서양에서 사혈이 유행한 것은 잉여(剩餘)를 병인으로 보는 시선 때문이었다. 동양인들은 피에 생명의 씨앗인 정기(精氣)가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생명을 줄이는 위험한 치료법이었으므로, 사혈은 의학의 중심이 될 수 없었다. ?황제내경? 직전에 성립한 사혈은 ?황제내경?이 성립하는 200년 정도의 시간 동안 서서히 주변부로 밀려났다. 특정한 관점과 어울리지 못하는 치료법은 유행할 수 없다는 당연한 지적이 이곳에도 통용될 수 있다. 사혈의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피를 빼내지 않는 치료법이 필요했다. 한의학의 탄생과 혁신을 말하다. 그리고 침법파가 등장했다. 침법파는 병리의 영역에 머물렀던 경맥을 생리의 분야로 확장했고, 도가의 수양론을 받아들임으로써, 심리의 영역까지 포괄하는 경맥체계를 완성시켰다. 경맥체계가 형성되고 완성되는 사이에 세 번의 혁신이 있었다. 최초의 혁신은 경맥체계를 창안한 뜸법파들에 의해서 이뤄졌다. 뜸법파들은 철학자들의 논리를 수용했다. 폄법파들은 사혈을 창안해 냄으로써, 두 번째 혁신을 만들었다. 이 사이에 진단법이라는 또 다른 혁신이 수반되었다. 폄법파들의 병인론인 사기의 침입은 맥동의 이상이 질병을 상징한다는 생각과 잘 어울렸다. 침법파들은 병리에 머물러 있던 경맥을 생리의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이것이 세 번째 혁신이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경맥이야기는 뜸법파와 폄법파 그리고 침법파가 이룬 세 가지 혁신과 그런 혁신에 수반되었던 변화들에 관한 아주 오래된 옛날이야기다.

저자 소개


저자 소개
정우진은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청주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고, 고려대학교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경희대학교에서 한의철학협동과정을 수료한 후, 2010년도에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연세대학교 원주의대, 청주교대, 경희대 등에서 강의했고, 2013년 봄부터 2016년 봄까지 경희대학교 철학과에서 연구조교수로 근무했다. 경희대학교 철학과의 BK사업 “동서양과학문화에 대한 철학적 성찰” 사업에 참여교수로 있었다. 2014년 2학기에 중국 四川大學校 宗敎文化硏究所에서 방문학자로 초기 도교사를 연구했고, 2015년 말부터 대만 臺中科學技術大學에서 방문학자 자격으로 도교를 연구하고 있다. 《강설1 황제내경》(청홍), 《강설2 황제내경》(청홍), 《한의학의 원류를 찾다》(청홍), 《몸의 노래》(이음)를 공역했고, 《증산사상의 다층적 분석》(청홍), 󰡔동서양문명과 과학적 사유》(문사철)를 공저했으며, 《노자상이주 역주》(문사철), 《한의학의 봄󰡕(청홍)을 저술했다. 주된 연구 분야는 수양론과 동양과학문화로 현재는 도교수양론의 변화와 의학적 신체관과 수행자의 신체관 사이에 나타나는 긴장관계, 수양론에 기반한 마음의 구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동양의 도가도교수양론, 한의학, 연단술 등의 사상적 배경을 통사적으로 고찰하는 것과, 동양의 몸과 마음을 공시적으로 재구성해내는 것을 이후의 목표로 삼고 있다. 


 

책 속에서

1972년 1월 16일 마왕퇴 고분의 발굴이 시작되었고, 2년간 세 개의 고분이 발굴되었다. 1973년 이 중 한 무덤, 소위 3호 한묘에서 기원전 168년 땅에 묻혔던 문헌이 발굴되었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34세의 남성이었다. 세간에는 이 남성의 어머니인 신추(辛追)가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남성의 어머니 시신은 상당히 잘 보존된 상태였는데, 심지어 피부에서 탄력마저 느껴질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다.
_26쪽 중에서

마왕퇴 발굴 이전에 행해진 연구 중 어떤 것은 허식이 많았는데, 허식은 사실의 왜곡을 문제 삼지 않는 태도와 상통했다. 허식이 있는 이들은 특히 말이 많았으므로, 학문 정치적 권한이 집중되는 경향도 있었다. 그러므로 중국학계는 일정한 근거도 없이 침과 경맥이 상고 시대부터 존재했었고, 침구이론서인 『황제내경』도 아주 오래된 문헌이라고 주장했고, 한국에서는 이 말을 받아 적고 있었다.
_31쪽 중에서

족양명맥이 동하면 오한이 있고, 기지개를 펴며 하품을 자주하고 얼굴빛이 검다. 몸이 붓고, 병이 심해지면 사람과 불을 싫어한다. 목음을 들으면 깜짝 놀란다. 문을 닫고 홀로 있으려고 한다. 병이 심해지면 높은 곳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옷을 벗고 달리려고 한다. 이것을 한궐이라고 하는데 이런 증상은 양명맥으로 치료한다.
_51쪽 중에서

퇴가 걸린 경우 먼저 고환을 위로 올리고 그 피부를 아래로 당겨 그 옆을 폄으로 뚫는다. … 진한 술로 씻어내고 또 그 상처에 뜸뜬다. 바람을 쐬지 않으면 쉽게 낳는다. 그 태음과 태양에 뜸뜬다. 영험하다
_63쪽 중에서

족태음맥은 엄지발가락 안쪽의 골제에서 나와 안쪽 복사뼈의 위쪽을 지난 후, 정강이 안쪽을 따라 위로 올라가 무릎 안쪽에 이른다. 장딴지 안쪽을 지난다. 족태음맥의 병은 다음과 같다. 엄지발가락을 못 쓰고, 정강이 안쪽이 아프며, 장딴지 안쪽이 아프다. 배가 아프고 붓는다.
_74쪽 중에서

뜸법파들이 처음에 몇 개로 된 경맥체계를 구성했었는가 하는 것은 확인할 수 없다. 양맥 쪽의 증상이 외적인 것이고 음맥 쪽의 증상은 내적인 질병이기 때문에, 양맥이 먼저 발견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초기 경맥학파였던 뜸법파는 양맥과 음맥 사이의 차이에 주의를 기울였던 것으로 보인다.
_75쪽 중에서

충맥은 뇌의 뒤쪽에 있고, 임맥은 배꼽 앞에 있으며 독맥은 배꼽 뒤에 있고 대맥은 배에 있으며 음교맥은 음낭 밑에 있고, 양교맥은 꼬리뼈에 있으며 음유맥은 정수리 앞에 있고 양유맥은 정수리 뒤에 있다. 사람에게 있는 여덟 맥은 모두 음인 신에 속하고 닫혀서 열리지 않는다. 오직 신선만이 양기로서 열게 되므로 진리를 얻을 수 있다.
_86쪽 중에서

처음에 발견된 것은 치료 지점이 아니라 증상이었다. 어떤 증상들은 서로 관련되어 있고, 뜸법파들은 이 점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환부가 아닌 다른 곳에 뜸을 뜸으로써 특정 증상이 개선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점은 앞서 인용했던 퇴병에 정수리에 뜸뜨는 사례로부터 알 수 있다.
_94쪽 중에서

족육맥 체계에서 족태음맥과 족소음맥 사이에는 혼착이 있었다. 이 점을 해결하기 위해 족 쪽이 아닌 수 쪽에서 새로운 맥이 찾아졌던 것으로 보인다. 새롭게 찾아진 맥들은 족태음맥 및 족소음맥과 관련된 것이어야 했으므로, 각각 비소음맥과 비태음맥이라고 불려졌다.
_106쪽 중에서

사혈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부재를 증명하는 것은 더 어렵다. 갑골문을 직접 검토해도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는 없다. 해독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갑골문에 사혈이 보인다는 긍정적인 근거를 찾지 못했다. 양동숙은 갑골문 중 비교적 명확한 자료를 골라서 폭넓게 정리 소개했는데, 그 와중에 갑골복사에서 사혈이 있었음을 좀 불명확하게 표현했다
_115쪽 중에서

옹저 즉, 종기는 폄법으로 치료하는 주 증상이다. 인용문의 저자는 한사가 원인이 되어 종기가 생기고 이어서 염증으로 발전하는 질병의 기전을 묘사했다. 중간에 나오는 한기가 열로 바뀐다는 것이 앞에서 말한 기가 오르락내리락한다는 말의 의미일 것이다. 다른 가능성도 있다.
_125쪽 중에서

열어서 제거할 때 사용하는 침은 수술용 칼과 같은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폄을 계승한 봉침 혹은 피침으로서, 종기 제거를 위한 수술용 침이다. 석은 사혈용임이 분명하다. 수술과 사혈은 같은 병의 전변에 따라 쓰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같은 병인데 치법만 다른 것이고, 이름은 같지만 단계가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_132쪽 중에서

유승의 묘에서 발굴된 침은 기원전 113년에 침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사마천의 고쳐 적기는 유사한 시기인 사기의 성립 시점인 기원전 100년경에 침이 유행했다고 말해준다. 침술의 성립 연도를 기원전 113년 이전으로 소급시킬 수 있을까
_147쪽 중에서

본래 방광으로 수분이 배출됨에도 불구하고 관을 찾을 수 없었던 침법파들은 성근 살로 이루어진 초라는 기관이 그곳에 있다고 가정했다. 그리고 하초에서 착안한 초의 개념을 위에서 경맥으로 이어지는 문제에서 차용했다. 삼초는 독립된 하나의 기관이어야 했고, 경맥과 연결되어야 했다.
_163쪽 중에서

마음에서 근심과 즐거움, 기쁨과 노여움, 욕정과 이익을 탐하는 마음을 버리면 마음은 반드시 안정된다. 저 마음이라는 것은 편안한 것이 이롭다. 번거롭게 하지 말고 어지럽게도 하지 않으면 마음의 조화로움이 저절로 이뤄진다.
_168쪽 중에서

목차

목차
책머리에
들어가는 말: 한의학의 탄생과 혁신
1. 문헌 이야기
2. 족비와 음양의 성립 순서
3. 뜸법파의 경맥
4. 경맥의 기원
5. 6→8→11경맥에 이르는 과정
6. 사혈의 등장
7. 폄법파의 경맥
8. 침술?의 기원
9. 침법파의 경맥
부록: 발굴문헌의 원문과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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