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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중봉기 민중을 주인공으로 다시 쓴 남한의 사회운동사 1894 농민전쟁! 2008촛불시위

시리즈 : 아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민중봉기 [3]

조지 카치아피카스 저 | 원영수 역 | 오월의봄 | 201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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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7889600 / 712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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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자유와 존엄을 위해 싸워온 한국 민중권력의 힘 봉기의 프리즘을 통해 본 20세기 한국의 민중 저항사 “봉기는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민중의 열망, 꿈, 그리고 더 나은 삶에 대한 상상의 지표이다. 그 꿈이란 무엇인가? 왜 봉기는 몇 년 전이 아니라 어느 날 일어나는가? 왜 봉기는 놀라운 속도로 한곳에서 다른 곳까지 동시에 발생하는가? 봉기의 결과는 무엇인가?” -1장 ‘봉기와 역사’에서 한국과 아시아의 민중봉기를 재조명한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역작 2부작 ‘68혁명’과 ‘신좌파운동’ 연구로 잘 알려진 미국의 좌파... 자유와 존엄을 위해 싸워온 한국 민중권력의 힘 봉기의 프리즘을 통해 본 20세기 한국의 민중 저항사 “봉기는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민중의 열망, 꿈, 그리고 더 나은 삶에 대한 상상의 지표이다. 그 꿈이란 무엇인가? 왜 봉기는 몇 년 전이 아니라 어느 날 일어나는가? 왜 봉기는 놀라운 속도로 한곳에서 다른 곳까지 동시에 발생하는가? 봉기의 결과는 무엇인가?” -1장 ‘봉기와 역사’에서 한국과 아시아의 민중봉기를 재조명한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역작 2부작 ‘68혁명’과 ‘신좌파운동’ 연구로 잘 알려진 미국의 좌파 정치학자 조지 카치아피카스(George Katsiaficas)의 《아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민중봉기Asia’s Unknown Uprisings》 2부작이 한국어판으로 출간됐다. 1권 《한국의 민중봉기》는 1894년 농민전쟁부터 2008년 촛불시위까지, 역사가 요구할 때마다 어느 권력층이나 엘리트보다 먼저 들고일어나 세계를 변혁해온 한국 풀뿌리 민중의 운동사를 담아냈다. 2권 《아시아의 민중봉기》는 아시아 9개국―필리핀, 버마, 티베트, 중국, 타이완, 네팔, 방글라데시, 타이, 인도네시아―을 1947년부터 2009년까지 휩쓸고 간 혁명의 물결을, 그 세계사적 중요성에 걸맞은 차원으로 생생히 복원해냈다. 또 그러한 분석적 연구를 바탕으로 전 지구적 ‘봉기’의 역학과 오늘날 문제적인 세계 체제 전복의 과제를 집대성했다. 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전 지구적 ‘사랑의’ 투쟁 공동체 조지 카치아피카스는 1968년 5월 프랑스와 1970년 5월 미국 등 전 지구적 운동에서, 혁명에 대한 열망과 투쟁이 매우 빠르게 퍼져나가는 모습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수백만 명의 보통 사람들이 역사의 무대에 갑자기 등장해서 통일된 방식으로 행동했고, 자신들이 사회의 방향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에로스 효과’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에로스 효과는 단순히 정신의 작용이 아니고, 목적의식이나 특정한 정당의 지도에 따라 작동하는 것도 아니라고 그는 설명한다. 오히려 그것은 수십만 명의 보통 사람들이 역사를 ‘자기 자신의 손에’ 가져갈 때 독자적 세력으로 나타나는 민중운동에 더 가깝다. 민중들이 대대적으로 들고일어날 때, 정부의 권위, 노동분업 등 기존 사회의 틀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질 수도 있다. 그 순간에 민중은 전혀 새로운 현실과 생활방식을 상상하며, 수십만 또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변화된 규범, 가치, 믿음에 따라 살아가게 된다. 카치아피카스는 이러한 에로스 효과와 ‘사랑의 투쟁 공동체’의 모습을, 이미 충분히 연구된 프랑스, 미국, 동유럽 등의 서구 세계를 넘어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발견한다. 1980년 5·18광주민중봉기의 ‘절대공동체’, 1980년에서 1992년까지 아시아 여러 나라를 뜨겁게 달군 민중권력 등, 봉기는 전 지구적으로 동시에 커다란 물결을 일으키며 확산됐다. 어떠한 사적 관계나 문화권, 일국(一國)의 틀로도 묶여 있지 않은 각지의 민중들이 서로에게 커다란 동질감을 느꼈고, 서로의 저항에 찬사를 보내고 서로 모방하며 자기 삶을 투신했다. 한국의 광주를 출발로 해서 1986~1992년 아시아의 민중권력은 6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9개국 가운데 8개국에서 독재의 종식을 이루어내는 등 그 궤적이 뚜렷한데도 대개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이 점에 주목한 카치아피카스는 장장 10년간의 애정 어린 연구와 취재, 역사의 중요한 증인들과 했던 100여 회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국과 아시아의 민중이 자생적으로 들고일어나 세계를 뒤엎은 ‘봉기’와 ‘민중권력’의 경험적 역사를 풍부하게 탐구한다. 또한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제적 세계에 시사하는 바를 분석한다. 봉기uprising, 미래 정치 해법의 열쇠 이 두 권의 책은 봉기, 반란, 폭동 등의 ‘불온한’ 개념을 민중 주체의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다룬다. 이를테면 1980년 광주가 다양한 정치적 뉘앙스에 따라 ‘광주사태’ ‘광주민주화운동’ ‘광주민주항쟁’ ‘광주민중항쟁’ 등의 어휘로 표현되는 한국 현실과 달리, 저자는 광주를 일관되게 ‘민중봉기’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그와 같은 관점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한 사건들과 투쟁들을 다룬다. 봉기(蜂起)의 사전적 의미는 말 그대로 ‘벌 떼처럼 떼 지어 세차게 일어남’이다. 주류 학계와 언론매체는 대부분 이러한 봉기를 긍정적으로 다루지 않으며, (주로 서구가 정의하는) ‘합리적 개인’과 대치되는 우매한 군중, 제어되지 않는 혼돈 상태, 무차별 폭력 시위 등의 이미지를 퍼뜨리려고 노력한다. 그에 따라 오늘날 충분히 ‘문명화된’ 현대인의 머릿속에서 ‘봉기’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낡은 역사, 또는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인 대응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편견들은 실제 역사적 사실이 증명하고 있는 봉기의 성과와 가치들을 축소시키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한 결과일 뿐이다. 저자는 “한 세기 넘게 연구가 이루어졌는데도, 근대 사회과학은 정치적 격변을 예측하는 데 전적으로 무능력하다”고 일갈한다. 시모어 마틴 립셋, 새뮤얼 헌틴텅 등 민주화를 말하는 이론가들은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의 긍정적 상관관계에 대해서 주장했을 뿐이고, 그 이후로도 제대로 된 분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저자는 그러한 민주 정치의 설명 변수에 ‘봉기’의 정밀한 성격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위대의 상호관계, 봉기 주체와 상대 세력의 상호작용, 정점에 이른 투쟁의 강도, 거기 동원된 특정 사회계층 등을 분석하면 다가올 정치적 관계, 민주화 규범과 심도, 정치 여론 등을 폭넓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오늘날 대다수의 개인들이 체제에 안주하고 있는 듯 보이고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엄청나더라도, 그들의 마음속에는 분명히 다른 사고의 흐름이 있으며 통제되지 않는 직관과 통찰이 계속해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다름 아닌 ‘봉기’만이 그것을 드러내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민중봉기의 사상과 내용, 행동 구조 등을 밝힘으로써 민중봉기의 ‘합리성’을 추적하고자 한다. 봉기는 무엇을 해왔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민중들이 자생적으로 들고일어나는 봉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사회 주류는 물론이고 평범한 사람들의 안락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불완전하나마 현재 누리고 있는 민주화의 열매는 거의 전적으로 ‘민중봉기’에 빚지고 있는 셈이며, 저자는 이 두 권의 책에서 그 경험적 역사를 치열하게 파헤친다. 흔히 봉기는 커다란 희생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체제를 변혁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 가치가 폄하되곤 한다. 그러나 저자는 봉기의 가치에 대해서 단순히 ‘엘리트 권력의 교체’가 아니라 무엇보다 “민중의 삶의 질과 행복의 폭넓은 지표, 기층 집단이 쟁취한 새로운 권리, 확대된 자유를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배 이데올로기에 속박되지 않은 더 정확한 이해는 ‘주변부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1848년, 1905년, 1968년의 혁명은 세계의 가치를 뿌리부터 바꿔놓으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1848년 이후 노동자들은 더 많은 고용권을 쟁취하고 시민들의 투표권이 확대됐다. 1905년 이후로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은 더 큰 정당성을 얻었다. 1968년 이후에는 여성의 권리, 하층 집단을 위한 정의, 환경이 화두로 떠올랐다. 뒤이은 아시아의 봉기들은 권력을 장악하지 않고도 자유를 확대했다. 타이완의 38년간 계엄 체제가 종식됐고, 타이인, 네팔인, 필리핀인, 한국인들은 더 진보적인 새 헌법을 쟁취했다. 남한에서는 1987년 이후 몇 년간 노동자

저자 소개

미국의 좌파 정치학자. 대학 시절 68혁명을 경험하며 운동에 참여했고, 당시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을 주도적으로 조직하여 FBI의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오랫동안 평화와 정의를 위해 투쟁해온 활동가이자 전남대학교 5·18연구소의 국제 코디네이터이며, 보스턴의 웬트워스 공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신좌파의 상상력: 전 세계적 차원에서 본 1968년》 《정치의 전복》 등이 있다.
카치아피카스는 1968년 5월 프랑스와 1970년 5월 미국 등 전 지구적 운동에서, 혁명에 대한 열망과 투쟁이 매우 빠르게 퍼져나가는 모습에 깊은 충격을 받는다. 수백만 명의 보통 사람들이 역사의 무대에 갑자기 등장해서 통일된 방식으로 행동했고, 자신들이 사회의 방향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민중들이 대대적으로 들고일어날 때, 정부의 권위, 노동 분업 등 기성사회의 틀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질 수 있다. 민중은 운동의 주체로서 전혀 새로운 현실과 생활방식을 상상하며, 수십만 또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변화된 규범, 가치, 믿음에 따라 살아가기도 한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에로스 효과’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면서, 이 에로스 효과가 1980년 5·18광주민중봉기의 ‘절대공동체’, 1980년에서 1992년까지 아시아 여러 나라를 뜨겁게 달군 민중봉기들, 2011년 아랍의 봄과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사랑’의 물결에 완전히 매료된 그는 10년간의 방대한 연구와 취재를 바탕으로 《한국의 민중봉기》 《아시아의 민중봉기》를 저술했다.

역자 소개

1982년 대학 입학 이후 학생운동, 노동운동, 좌파정치운동에 활발히 참여했다. 1997년 이후 국제 연대 활동에 주력해왔으며,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국제기획실장, 《노동자의힘》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국제포럼 운영위원, 도서출판 타흐리르 편집장으로 일한다. 옮긴 책으로 《지금 건설하라, 21세기 사회주의》, 《세계화의 가면을 벗겨라》, 《한국의 민중봉기》와 《아시아의 민중봉기》가 있다. 《The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Revolution and Protest: 1500 to the Present》(2009)의 ‘한국 사회운동’ 관련 항목에 기고했고, 해외 좌파 웹 사이트에 한국의 상황과 운동에 대한 영문 기사도 쓰고 있다.

책 속에서

“많은 관찰자들에게 봉기는 악이자 적대적인 것이며, 기껏해야 지나가면서 또는 완전한 비난 속에서 언급될 뿐이다. ‘진정한’ 역사는 잘 꾸며진 밀실의 엘리트가 만드는 것이며, 이들의 예의바른 행동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이상이다. 부유하고 힘 있는 자들이 하는 거래, 그들이 모래 위에 그은 선과 서명한 종잇조각이 세상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반면, 그들에게 맞선 운동은 폭력과 공포를 낳는다.
이 책은 이런 이해를 거꾸로 뒤집는다. 나는 기존 세계 체제의 구조적 논리가 매일 전쟁과 환경 파괴와 빈곤을 낳는 반면, 그런 구조를 질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운동은 지구 최대의 희망이라고 본다. 오늘날 몇 백 명의 억만장자, 거대 기업, 군사화된 민족국가는 열심히 일하는 남녀 노동자들이 몇 세대에 걸쳐 생산한 막대한 부를 자신들이 허비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봉기는 보통 사람들이 이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32쪽)

“수세기의 운동과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다중의 지혜는 엘리트의 지혜를 훨씬 능가한다. 방어 수단도 없는 가난한 나라들을 상대로 연이어 전쟁을 하는 ‘위대한’ 미국 대통령들보다 평화운동이 더 똑똑하지 않다고 과연 누가 주장할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목숨과 육체의 위험을 무릅쓴 광주의 민중들보다 남한 군부 독재자들이 더 현명하다고 과연 누가 주장하겠는가? 누가 인류의 수세대 노동으로 축적한 막대한 부를 이용할 방법으로서 인간의 필요가 아니라 기업 엘리트의 탐욕을 옹호하겠는가? 우리는 은행과 보험 회사 자산을 대안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발견할 수 있고, 거대 기업의 규모를 줄이고 군대의 힘을 해체할 수 있다. 오직 우리가 보통 사람의 힘과 지혜를 믿을 때에만 그렇게 할 수 있다.”(61쪽)
―1장 봉기와 역사

“제주에는 오랜 자치의 전통이 있었고 해녀 조합은 수세기 동안 일종의 살아 있는 아나키즘이었다. 비록 미국이 제주에 ‘붉은 섬’이라는 딱지를 붙였지만, 제주는 실제적으로 “다른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독립과 자율의 정신이 더 강하게 조화”를 이뤘다. (...) 제주의 해녀는 해안국 조선에서 넓은 범위로 뻗어나가는 모계 문화의 중심이었다. 만장일치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 나이 든 해녀가 궁극적인 발언권을 갖는 합의제 의사 결정 형태를 거쳐오면서 제주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직접민주주의 체제 속에 살았다. 제주 해녀들은 아주 독립적이어서 1901년과 1933년 일본에 맞서 투쟁했다. 1933년 1월부터 4월까지 하도리 마을에서 해녀 1,700명은 생산물 가격을 정할 권리를 비롯하여 공동체적 의사 결정을 통한 여성의 권력을 주장했다. 격렬한 저항 때문에 일본인들은 마을에 경찰서를 설치할 수 없었다. 주민들은 “우리가 평화롭고 자율적으로 살고 있는데 왜 우리에게 파출소가 필요하며, 외부인의 지배 아래서 살아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167쪽)
―4장 분단에 맞서: 제주4·3봉기와 여순봉기

“1871년 파리코뮌과 비교해도 1980년 광주의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훨씬 더 대단한 자기통치 역량을 볼 수 있다. 파리에서는 국민방위군과 그 장교들이 대규모로 코뮌에 가담했지만, 광주의 민중들은 아래에서부터 시민군을 조직했고 수천 명의 정예부대를 몰아냈다. 군인들의 미제 무기는 민중의 힘에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미 실각해서 정부가 부재한 가운데 파리의 통제권을 획득한 국민방위군의 북소리를 훨씬 뛰어넘는 용감한 동원이었다. 이런 중요한 차이가 있지만, 이 두 사건에는 하나로 만나는 아주 주목할 만한 면이 있다. 아래에서부터 무장 저항이 등장하면서 해방된 지역 내에 비슷한 수많은 동력이 생겨났다. 민주적 의사 결정을 하는 민중적 기관이 자연스럽게 등장했고, 범죄 행위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계급, 권력, 지위 체계가 정지됐으며, 시민들 사이에서 진정한 연대와 협력이 이루어졌다.”(291쪽)

“해방된 도시에서 동원된 민중의 권력은 도시의 ‘일상적’ 작동을 훨씬 뛰어넘는 형태의 직접민주주의로 이어졌다. 21일 저녁부터 27일 아침까지 해방광주는 시민들의 손에 있었다. 자발적으로 결성된 그룹들은 필수적인 모든 봉사를 조직했다. 도시의 방어, 관棺을 확보하고 포로를 석방하고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군과의 협상을 준비했다. 사전 계획도 없이 사람들은 도청 주위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명령하지 않았는데도 수백 명이 집에서 빗자루를 들고 나와 돌조각과 버려진 탄피를 청소했다. 아시아자동차의 노동자들은 중장비를 이용해 불탄 차량들을 정리했다. 일부 여고생들은 시민군에게 군대의 이동을 알려줄 교외 첩보 체계를 조직했다. 다른 젊은 여성들은 시체를 수습했다. (...) 어떤 중앙사령관이나 중앙위원회 없이, 새로운 노동분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292쪽)
―6장 광주민중봉기

“그날 용감하게 거리로 나선 수만 명의 학생들이 없었다면 봉기가 시작됐을지 매우 의심스럽다. 학생들의 용기는 주목할 만한 것이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기조직화 역량 때문에 그들은 다음날 6시에 시청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그 다음날도 그랬다. 국본은 6월 11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못했지만, 돌아오라는 지침을 아무도 내리지 않았어도 학생들은 그 뒤 4일 동안 매일 계속 모였다. 매번 40~50명의 학생들이 아주 야만적으로 공격당해서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마침내 수천 명의 보통 사람들, 학생들이 ‘넥타이 부대’라고 부른 사무직 노동자들이 그들에게 합류했다. 학생들이 시위한 곳 근처인 서울의 사무실 건물에 집중돼 있던 그들은 처음에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며칠간 건물의 바로 바깥에서 벌어진 학생과 경찰의 전투를 지켜보다가 시위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부끄러움 때문이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때문이든, 그들의 참여는 누군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수준을 넘어 운동을 새로운 단계로 올려놓았다.”(452~453)
―9장 1987년 6월봉기

“새로운 형태의 지도자 없는 시위들이 민중들을 직접 권력화했다. 한국의 ‘촛불 혁명’을 보면 광주에서처럼 직접민주주의의 동일한 요소가 등장했지만, 이번에는 국가적 위기로 인해 촉발된 ‘에로스 효과’로서 비군사화된 공간에서 등장했다. 지도자 없는 집회의 특징은 모든 계층이 참여한 오픈마이크였다. 저명인사들로 이루어진 중심 집단의 숨 막히는 통제보다 집회 조직자들의 주기적 교체로 다양한 그룹들의 참여가 가능했다. 여중생에서 종교 지도자, 진보적 예비군, 유모차를 미는 아줌마, 노동조합원까지 민중의 새로운 부문들이 참여하면서 시위에 동력을 제공했다. 자신의 박자에 맞춰 행진하는 사람들의 전술과 슬로건의 다양성은 놀라웠다. 아주 다양한 형태의 시위가 운동에서 내적 긴장과 차이를 드러냈다. 이런 차이는 약점을 반영한다기보다 다양성에서 나왔고, 따라서 강점으로 발전과 진보를 활성화시킨 역동적인 내적 변증법이었다. 교수노조는 공통의 감정을 이렇게 요약했다. “우리는 현 상황이 1987년 6월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정부는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619~620쪽)

“이 책에서 논의한 한국의 장기 20세기의 봉기들을 보면, 한 가지 반복되는 주제가 분명해진다. 기존의 엘리트를 훨씬 뛰어넘는 보통 사람들의 집단 지성이 그것이다. 이씨 왕조와 일본인 보호자에 맞선 1894년 반란부터, 이명박과 그의 친미에 도전한 10대 소녀들까지 수십만 명의 보통 시민들은 자신의 마음속으로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목적을 위해 목숨과 신체의 위험을 무릅썼다.
피로 물든 한국의 장기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산물 하나는 민중 자신의 힘, 역사의 주체이자 대상으로서 자신에 대한 직관적 이해, 재활성화된 상상력에 대한 민중의 믿음이다. 민중의 집단적 투쟁 역량은 과거 투쟁의 유산으로서 두드러진다. 그들은 거대하고 격렬한 승리를 거뒀고, 다음 세대들은 교훈을 흡수하고 자유의 정신을 마음속에 간직해왔다. 그들은 이미 생명의 별다른 손실 없이 군대를 권력에서 몰아냈다. 노동조합을 쟁취했고 여고생을 지도자로 상승시킨 문화적 변혁을 시작했다.”(640쪽)
―13장 민주주의의 딜레마

목차

목차
한국어판 서문 ㆍ7
들어가며 / 한국과의 첫 만남 ㆍ16
1장 봉기와 역사 ㆍ30
한국의 봉기, 영웅의 역사가 아닌 민중의 역사로 | 조직과 엘리트를 넘어서는 민중 | 보이지 않는 한국 | 유럽 중심주의의 맹목성 | 봉기의 합리성, 수백만 민중의 힘 | 엘리트들은 봉기를 어떻게 이용하는가 | 다가오는 한국의 물결
2장 한국의 세계 체제 편입 ㆍ68
전통과 근대 | 한국 시민사회의 복원력 | 1894년 농민전쟁, 평등주의 가치와 계급 분노 | 일본의 정복, 애국자들의 저항 | 1919년 3월 1일, 조선독립봉기 | 봉기에서 무장 저항으로
3장 미국 제국주의와 10월민중봉기 ㆍ118
일본과 미국의 협력 | 일본의 생물학전 부대 | 조선인민공화국의 수립 | 1946년 10월봉기, 총파업에서 농민 반란으로 | 10월봉기의 원인과 결과
4장 분단에 맞서: 제주4·3봉기와 여순봉기 ㆍ158
제주 4·3봉기 | 분단에 반대한 마지막 큰 봉기 | 여순봉기, 반란이 아닌 혁명 | 국가보안법과 이승만 독재 | 한국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 미국의 생물학전과 민간인 학살
5장 민중의 각성: 학생들이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을 타도하다 ㆍ216
4·19, 학생들의 이승만 타도 | 제2공화국, 가두동원의 일상화 | 박정희 독재 | 쓰레기처럼 버려진 도시 빈민 | 전태일과 유신 반대 투쟁 | 노동조합운동 전면에 나선 여성들 | 부마봉기, 수많은 인생을 바꾸다 | 전두환의 12·12쿠데타와 ‘서울의 봄’
6장 광주민중봉기 ㆍ266
봉기가 시작되다 | 5월 21일, 격화된 전투 | 해방광주, 사랑의 권력 | 해방광주의 직접민주주의 | 전라남도를 하나로 모은 봉기 | 시민위원회의 갈등, 새 지도부의 탄생 | 더 ‘체계화된’ 투쟁의 움직임 | 군사 조직, 시민군과 기동타격대 | 노동계급과 룸펜, 봉기를 이끌다 | 여성의 봉기 참여와 한계 | 최후의 날
7장 신자유주의와 광주봉기 ㆍ350
시장의 힘으로 이행하다 |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 미국이 광주 진압을 지원한 진짜 이유 | 투자자들의 공포와 전두환의 정화 프로그램 | 연출된 정권 교체 | 경제와 정치를 포괄하는 민중의 통찰
8장 밀려오는 폭풍 ㆍ382
남한의 반미주의 | ‘민중’의 등장 | 예술가들과 민중 대항문화 | 한국의 학생운동 | 운동 내부의 경향, PD와 NL | 노학연대와 여성연합의 성장 | 자유주의 야당의 기회 | 미국의 전두환 압박
9장 1987년 6월봉기 ㆍ430
전두환의 4월 13일 선언, “헌법 논의 불가” | ‘국본’의 탄생 | 6월 10일, 봉기의 시작 | 6월 18일, 전두환의 군대 동원 준비 | 6월 26일, 대결전 | 6월 29일, 군부가 굴복하다 | 민주화 이행을 엘리트가 주도했다? | 한국 시민사회에 대한 왜곡된 평가
10장 노동자대투쟁 ㆍ478
6월봉기의 계급적 성격 | 자주적 노동자 투쟁의 물결 | 재벌 내부의 봉기 | 혁명을 이끌 새로운 노동계급
11장 민중에서 시민으로 ㆍ514
최초로 승리한 야당과 광주 청문회 | 노동계급에 대한 노태우의 전쟁 | 학생들의 통일운동 | 1991년 투쟁, 전술적 패배와 조정 | 민중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 여성운동, 남성 사회에 도전하다 | 환경운동, 핵과 싸우다 | 1990년대 학생운동의 실패 | 최초의 민간 정부
12장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 ㆍ556
시장의 독재 | 1997년 총파업, 국가 정책에 대한 도전 | 1997년 IMF 위기 | 신자유주의, 세계를 집어삼키다 | 20 대 80의 사회 | DJ, 노동을 공격하다 | 여전히 취약한 여성의 자율성 | 외국인 투자가들의 약탈
13장 민주주의의 딜레마 ㆍ596
표면 아래 들끓고 있는 반미주의 | 다가오는 한반도 통일? | 노무현 대통령 | 2MB 정부 | 2008년 촛불시위 | 이명박의 불도저식 반격 | 노무현의 자살과 잇따른 죽음 | 한류의 상업성과 정치성 | 광주봉기에서 반세계화 시위까지 | 전통과 해방의 변증법 | 대안운동, 기성 권력에 도전하다 | 자유의 대가를 발견하며
옮긴이의 말ㆍ644
미주ㆍ648
시민활동가들과의 인터뷰ㆍ700
Creditsㆍ702
찾아보기ㆍ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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