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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와 맞선 사람들

시리즈 : 그린비 인물시리즈 he-story [8]

박금표 저 | 그린비 | 2015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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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6825384 / 496쪽 150 x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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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이 책은 인도 독립의 아버지인 마하트마 간디, 그리고 인도의 독립을 위해 간디와 함께 투쟁했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대립각을 세웠던 네 명의 인물들(빔라오 람지 암베드까르, 수바스 찬드라 보세, 무함마드 알리 진나, 비나약 다모다르 사바르까르)을 통해 인도 독립의 과정과 그 속에서 제기된 쟁점들을 살피는 책이다. 흔히 인도의 독립은 간디가 이끈 비폭력저항 운동이 이루어낸 성과이며, 따라서 인도 독립의 공은 대부분 간디에게 있는 것처럼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인도의 독립을 위해 간디만큼이나 열정적으로 투쟁했던 인물들이 많았고, 그 방향과 방식은 많은 경우 ‘위대한 성인’ 간디와는 달랐다. 불가촉천민 문제의 해법을 놓고 간디와 맞섰던 암베드까르, 독립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이라도 동원하고 누구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면서 간디의 비폭력투쟁에 비판적이었던 보세, 간디와 국민회의가 힌두 중심의 국가를 만들려 한다며 무슬림 국가의 분리 독립을 위해 힘썼던 진나, 반대로 간디가 친무슬림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비판하며 ‘힌두스탄’(힌두의 국가) 건립을 위해 애썼으며 끝내 간디 암살의 배후로 지목되기까지 했던 사바르까르. 이 네 명의 인물들은 모두 간디의 위대함에 존경을 표하고 인도 독립에 있어서 간디가 가진 영향력을 인정하면서도 간디의 ‘어떤’ 측면에 대해서는 맞서고 투쟁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현재 한국

외국어대학교 인도연구소 연구교수로 인도의 식민지 시기와 독립과정에 대해 10여 년간 꾸준히 연구를 지속해온 저자 박금표는 오랜 연구의 성과들을 토대로 이 네 명의 인물, 그리고 그 맞섬의 대상이었던 간디라는 인물을 통해 영국에 맞선 인도의 투쟁과 독립의 역사를 꼼꼼하게 직조해 내고 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이 책은 인도 독립의 아버지인 마하트마 간디, 그리고 인도의 독립을 위해 간디와 함께 투쟁했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대립각을 세웠던 네 명의 인물들(빔라오 람지 암베드까르, 수바스 찬드라 보세, 무함?마드 알리 진나, 비나약 다모다르 사바르까르)을 통해 인도 독립의 과정과 그 속에서 제기된 쟁점들을 살피는 책이다. 흔히 인도의 독립은 간디가 이끈 비폭력저항 운동이 이루어낸 성과이며, 따라서 인도 독립의 공은 대부분 간디에게 있는 것처럼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인도의 독립을 위해 간디만큼이나 열정적으로 투쟁했던 인물들이 많았고,... 이 책은 인도 독립의 아버지인 마하트마 간디, 그리고 인도의 독립을 위해 간디와 함께 투쟁했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대립각을 세웠던 네 명의 인물들(빔라오 람지 암베드까르, 수바스 찬드라 보세, 무함마드 알리 진나, 비나약 다모다르 사바르까르)을 통해 인도 독립의 과정과 그 속에서 제기된 쟁점들을 살피는 책이다. 흔히 인도의 독립은 간디가 이끈 비폭력저항 운동이 이루어낸 성과이며, 따라서 인도 독립의 공은 대부분 간디에게 있는 것처럼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인도의 독립을 위해 간디만큼이나 열정적으로 투쟁했던 인물들이 많았고, 그 방향과 방식은 많은 경우 ‘위대한 성인’ 간디와는 달랐다. 불가촉천민 문제의 해법을 놓고 간디와 맞섰던 암베드까르, 독립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이라도 동원하고 누구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면서 간디의 비폭력투쟁에 비판적이었던 보세, 간디와 국민회의가 힌두 중심의 국가를 만들려 한다며 무슬림 국가의 분리 독립을 위해 힘썼던 진나, 반대로 간디가 친무슬림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비판하며 ‘힌두스탄’(힌두의 국가) 건립을 위해 애썼으며 끝내 간디 암살의 배후로 지목되기까지 했던 사바르까르. 이 네 명의 인물들은 모두 간디의 위대함에 존경을 표하고 인도 독립에 있어서 간디가 가진 영향력을 인정하면서도 간디의 ‘어떤’ 측면에 대해서는 맞서고 투쟁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현재 한국 외국어대학교 인도연구소 연구교수로 인도의 식민지 시기와 독립과정에 대해 10여 년간 꾸준히 연구를 지속해온 저자 박금표는 오랜 연구의 성과들을 토대로 이 네 명의 인물, 그리고 그 맞섬의 대상이었던 간디라는 인물을 통해 영국에 맞선 인도의 투쟁과 독립의 역사를 꼼꼼하게 직조해 내고 있다. 간디와 맞섰던 네 명의 인물들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정치가로서의 간디’를 만난다!! ―논쟁과 대립을 통해 본 인도 독립의 역사와 쟁점들!! 이 책 『간디와 맞선 사람들』은 인도 독립의 아버지인 마하트마 간디, 그리고 인도의 독립을 위해 간디와 함께 투쟁했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대립각을 세웠던 네 명의 인물들(빔라오 람지 암베드까르, 수바르 찬드라 보세, 무함마드 알리 진나, 비나약 다모다르 사바르까르)을 통해 인도 독립의 과정과 그 속에서 제기된 쟁점들을 살피는 책이다. 흔히 인도의 독립은 간디가 이끈 비폭력저항 운동이 이루어낸 성과이며, 따라서 인도 독립의 공은 대부분 간디에게 있는 것처럼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인도의 독립을 위해 간디만큼이나 열정적으로 투쟁했던 인물들이 많았고, 그 방향과 방식은 많은 경우 ‘위대한 성인’ 간디와는 달랐다. 불가촉천민 문제의 해법을 놓고 간디와 맞섰던 암베드까 르, 독립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이라도 동원하고 누구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면서 간디의 비폭력투쟁에 비판적이었던 보세, 간디와 국민회의가 힌두 중심의 국가를 만들려 한다며 무슬림 국가의 분리 독립을 위해 힘썼던 진나, 반대로 간디가 친무슬림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비판하며 ‘힌두스탄’(힌두의 국가) 건립을 위해 애썼으며 끝내 간디 암살의 배후로 지목되기까지 했던 사바르까르. 이 네 명의 인물들은 모두 간디의 위대함에 존경을 표하고 인도 독립에 있어서 간디가 가진 영향력을 인정하면서도 간디의 ‘어떤’ 측면에 대해서는 맞서고 투쟁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연구소 연구교수로 인도의 식민지 시기와 독립과정에 대해 10여 년간 꾸준히 연구를 지속해온 저자 박금표는 오랜 연구의 성과들을 토대로 이 네 명의 인물, 그리고 그 맞섬의 대상이었던 간디라는 인물을 통해 영국에 맞선 인도의 투쟁과 독립의 역사를 꼼꼼하게 직조해 내고 있다. 이렇게 여러 인물들이 구체적으로 대립하고 논의했던 과정을 살피면서 저자는 인도라는 거대한 아대륙이 ‘독립’이라는 대의를 달성하는 것과 함께, 내부의 첨예한 갈등을 해결해야 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힌두 전통에서 비롯된 카스트제도의 문제, 다양한 종교·민족간 갈등의 문제 등. 간디는 때로는 대화와 청원으로, 때로는 기도와 단식으로, 때로는 비폭력 실천으로 이렇게 첨예하고 종종 극단적인 폭력 사태에 이르기도 하는 입장 차이들을 한데 모아나갔다. 하지만 이런 ‘마하트마’의 모습은 어떤 이들에게는 답답함으로, 또 어떤 이들에게는 또 다른 폭력으로 비쳐지기도 했다. 불가촉천민의 분리선거권을 단식을 통해 막아내고, ‘비폭력’과 영국 정부에 대한 청원에만 몰두하는 듯 보이고, 무슬림과 정치적 권력을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 듯 보이면서도, 종교적 관용은 설파하고 싶어 했던 간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네 개의 각기 다른 렌즈를 통해 그 동안 위인전 류의 책들이 소개하지 못했던, ‘정치가’로서의 간디, ‘인간’으로서의 간디를 새롭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간디의 반대와 거부 ― 암베드까르와 보세 ▶ 불가촉천민 분리선거제를 둘러싼 대립 : 암베드까르의 경우 간디가 인도인에 대한 차별을 뼈저리게 느꼈던 것은 아프리카에서였다. 1893년 영국 유학을 마치고 변호사 일을 맡아 남아프리카 더반으로 갔을 때, 1등칸 표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열차에서 쫓겨난 것이었다. 이후 간디는 남아 프리카의 인도인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이다가, 22년 후인 1915년에 귀국하여 인도의 독립운동에 매진하게 된다. 귀국 이후 간디는 그동안 입었던 양복을 벗어버리고 인도의 전통 의상인 도띠를 입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외에서 인도인에 대한 불평등을 절실하게 깨달았던 간디와 달리, 불가촉천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미국과 영국에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인 암베르까르가 처음으로 차별을 느낀 것은 미국이나 영국이 아닌 바로 인도에서였다. 인도의 촌락에서 불가촉천민은 저수지나 우물, 도로를 함부로 사용할 수도 없었고, 언어와 의복에서도 정해진 규정을 따라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규정을 어길 경우에는 목숨을 잃을 정도의 폭력에 마주해야 했다. 불가촉천민에 대한 이런 혹독한 차별 속에서 살다가 미국과 영국의 자유로움을 경험하고 돌아온 암베드까르는 신발과 장신구가 허용되지 않고, 옷도 하체를 겨우 가릴 정도만 허용되는 인도의 불가촉천민 차별에 대한 저항의식을 양복과 넥타이를 통해 드러내면서 불가촉천민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철폐하는 운동에 전념하게 된다. 도띠와 양복. 입고 있던 옷만큼이나 간디와 암베드까르는 인도의 촌락에 대해 상반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간디는 인도의 전통적인 촌락은 스와라지(자치)를 통해 완전히 평등하고 공평한 것으로 복원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인도의 자치를 달성할 수 있다고 바라보았다. 착취와 의존성을 논함에 있어 촌락과 외부의 관계를 문제 삼았을 뿐 촌락 내부의 문제는 크게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암베드까르는 촌락이 차별의 온상이었으며 시궁창과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불가촉천민에게 의존성과 착취의 문제는 외국 지배자와 인도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촌락 안에서 살고 있는 카스트 힌두와 불가촉천민 사이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두 입장의 차이는 1931년 9월 7일 런던에서 개최된 ‘2차 원탁회의’에서 논의된 ‘불가촉천민 분리선거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맞붙게 된다. 인도 통치법의 개정을 논의하는 3차에 걸친 원탁회의에 암베드까르는 불가촉천민의 대표로 참석하여 그동안 무슬림에게 허용되어 왔던 분리선거제를 불가촉천민에게도 부여할 것을 주장했고, 암베르까르의 이런 노력으로 영국 정부는 불가촉천민에게도 분리선거권을 부여한다는 결정을 하게 된다. 하지만 간디는 원탁회의의 이러한 결정에 죽음을 불사하는 단식으로

저자 소개

숙명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인도의 종파주의』 『인도의 사상가』『불교와 인도 고대국가 성립에 관한 연구』『인도사 108 장면』등이 있다.

책 속에서

이 책을 쓰는 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간디와 맞선 사람들을 쓰기 위해 내가 택한 방식은 몇 개월씩 간디와 맞선 네 명의 인물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었다. 즉 처음 몇 개월은 암베드까르가 되어 간디와 맞서며 살았고, 그다음 몇 개월은 보세가 되어 간디와 맞서며 살았던 셈이다. 그렇게 네 명의 인물이 되어 살면서 나는 ‘간디는 왜 암베드까르에게 불가촉천민 운동을 맡겨두지 않았을까? 보세에게는 왜 그렇게 냉혹했을까? 진나에게는 왜 또 그리 박절했을까? 왜 사바르까르를 그렇게 몰아세웠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가슴이 답답했다. 그런 마음으로 간디와 맞선 네 명의 기초자료 정리를 마치고 나서야 내가 잊은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명의 인물이 되어 살아보았듯이 간디가 되어 사는 시간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8~9쪽)

 

아프리카에서 양복을 입고 변호사로 활동한 간디가 인도에 돌아오면서 양복 대신 도띠를 입은 것은 그의 생각, 즉 인도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도에서 일어난 많은 개혁운동은 서구의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개혁의 물결에 대해 재고하고, 단호히 인도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것을 선언하는 것이 간디가 입은 도띠의 상징성일 것이다. 그런데 인도의 불가촉천민들은 거의 반나체 상태로 살고 있다. 그들은 인도의 전통 의상을 입어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거나 영국이 가져다준 유럽식 의상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어서 반나체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신발과 장신구가 허용되지 않았고, 옷도 하체를 겨우 가릴 정도만 허용되었기 때문에 반나체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불가촉천민인 암베드까르의 양복과 넥타이에는 이러한 불가촉천민을 차별하는 데 대한 저항의식이 들어 있다.(28~29쪽)

 

요컨대 진나가 국민회의와 등지게 된 것은 간디의 비협조 결의안이 채택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비협조 결의안의 어떤 점이 진나의 정치 행보와 충돌하게 된 것일까. 가장 중요한 요인은 대중을 선동하는 정책과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선동적 저항 활동은 진나의 정치적 궤도를 벗어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진나는 기본적으로 의회민주주의와 입헌주의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에게 보통교육을 실시하는 의무교육제도의 도입과 공무원에 인도인 채용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것 등을 통하여 자치를 달성하기

 

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간디는 대중을 동원하여 소요를 일으키거나 학생들에게 등교를 거부하라고 할 뿐만 아니라 공무원들과 의원들에게 사퇴하라고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간디의 정책을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로울라트 법안 반대 사뜨야그라하와 암리차르 대학살 등에서 드러난 영국의 포악성이 간디가 정계의 전면에 나서는 계기가 되었고, 대중 역시 그러한 간디의 지도력에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진나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256~257쪽)

 

그의 삶 자체가 진리의 실험이었던 간디의 위대함은 그를 마하트마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한 식민지에서 독립을 위해 투쟁하면서 어떤 순간에도 비폭력 정신을 잃지 않은 그에 대해 어떠한 찬사를 한다 해도 결코 지나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비폭력을 통한 진리 실험 정신은 간디가 살았던 당대는 물론 오늘의 우리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러한 비폭력의 실천이 때로는 우유부단하게, 때로는 너무 느리게 진행되었고, 완고한 직선 행보는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방법론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러한 과정에서 불가촉천민의 울음이 가득했고, 느림의 미학만으로 아름다움을 생산할 수 없을 때 생기는 급진적 주장을 누그러뜨리지 못했으며, 타협정신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함으로써 등을 돌리는 인물들을 만들었다. 그 결과 파키스탄이 탄생했고, 불가촉천민을 비롯한 하층민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차별 조항이 헌법에 명시되었음에도 아직도 인도의 불가촉천민은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또 다른 한편에서는 힌두근본주의가 성장하여 종파갈등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면 너무 가혹한 평가일까.(426~427쪽)


 

목차

목차
프롤로그 _ 맞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등장인물 소개
I부 간디 vs. 암베드까르: 하리잔과 달리뜨
1. 도띠와 넥타이
2. 시궁창과 스와라지
3. 불가촉의 족쇄 풀기: 쟁취와 자비
4. 사뜨야그라하 단식과 야비한 단식
5. 하리잔과 달리뜨
II부 간디 vs. 보세: 위대한 영혼과 용감한 지도자
1. 물레와 호랑이
2. 한 줌의 소금이 만들어낸 열기와 갈등
3. 힘겨루기: 좌파와 우파의 대립
4. 히틀러에게: 충고와 지원 요청
5. 줄다리기와 총공격
6. 위대한 영혼과 용감한 지도자
III부 간디 vs. 진나: 인도와 파키스탄의 아버지
1. 신념과 의심
2. 거목의 등장과 임무 교대
3. 거짓과 현실
4. 동상이몽의 대화
5. 인도와 파키스탄의 아버지
IV부 간디 vs. 사바르까르: 람 라즈야와 힌두뜨와
1. 아힘사와 암살
2. 돋보기로 읽는 역사
3. 더하기와 나누기
4. 미래를 위한 산실: 감옥과 군대
5. 비폭력주의자와 혁명주의자의 역설적 죽음
6. 람 라즈야와 힌두뜨와
에필로그 _ 맞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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