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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화와 반정의 시대[개정판] 성종 연산군 중종대의 왕권과 정치

김범 저 | 역사의아침 | 2015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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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구판 정보

사화와반정의시대 김범 저 | 역사비평사 | 2007년 11월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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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3119886 / 328쪽 148 x 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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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가 탄생한 뒤 첫 세기를 지나면서 맞은 성종·연산군·중종의 치세 75년은 『경국대전』이 완성되는 등 국가의 주요 제도가 정비된 기간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선 최초의 사화, 조선 최초의 반정 등 다양한 정치적 갈등과 변화가 일어난 격동의 기간이기도 했다. 2007년에 출간된 『사화와 반정의 시대』의 내용을 수정하고 보완해 다시 출간한 이 책은, 성종·연산군·중종대에 전개된 정치적 역정과 의미를 국왕·대신·삼사(三司)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한다. 이를 통해 조선의 정치는 국왕·대신·삼사라는 주요한 세 정치세력이 시기와 국면에 따라 협력·대립관계를 바꿔가면서 운영되었으며, 그 결과 어느 한 정치세력의 독주보다는 서로의 합의와 균형이 중시되는 형태를 갖게 되었음을 규명한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가 탄생한 뒤 첫 세기를 지나면서 맞은 성종·연산군·중종의 치세 75년은 『경국대전』이 완성되는 등 국가의 주요 제도가 정비된 기간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선 최초의 사?화, 조선 최초의 반정 등 다양한 정치적 갈등과 변화가 일어난 격동의 기간이기도 했다. 2007년에 출간된 『사화와 반정의 시대』의 내용을 수정하고 보완해 다시 출간한 이 책은, 성종·연산군·중종대에 전개된 정치적 역정과 의미를 국왕·대신·삼사(三司)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한다. 이를 통해 조선의 정치는 국왕·대신·삼사라는 주요한 세 정치...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가 탄생한 뒤 첫 세기를 지나면서 맞은 성종·연산군·중종의 치세 75년은 『경국대전』이 완성되는 등 국가의 주요 제도가 정비된 기간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선 최초의 사화, 조선 최초의 반정 등 다양한 정치적 갈등과 변화가 일어난 격동의 기간이기도 했다. 2007년에 출간된 『사화와 반정의 시대』의 내용을 수정하고 보완해 다시 출간한 이 책은, 성종·연산군·중종대에 전개된 정치적 역정과 의미를 국왕·대신·삼사(三司)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한다. 이를 통해 조선의 정치는 국왕·대신·삼사라는 주요한 세 정치세력이 시기와 국면에 따라 협력·대립관계를 바꿔가면서 운영되었으며, 그 결과 어느 한 정치세력의 독주보다는 서로의 합의와 균형이 중시되는 형태를 갖게 되었음을 규명한다. ▶ 출판사 서평 조선 최초의 사화와 반정의 시대, 그 뜨거운 정치적 역정을 새롭게 읽다! 시대와 지역을 넘어 중앙 정치에는 평화와 안정보다는 긴장과 갈등이 우세하다. 조선이 건국된 뒤 첫 1백 년을 통과한 시간에 걸쳐 있는 성종·연산군·중종의 3대 75년은 그런 일반적 과정에서도 특히 흥미롭고 중요한 사건이 전개된 기간이었다. 그 사건은 ‘조선 최초의 사화와 반정’이다. 왕조가 탄생한 지 거의 1세기 만인 성종 중반 『경국대전』이 마무리되어 주요제도가 완비됨으로써 조선의 앞길은 평탄하게 보였다. 그러나 그런 예상은, 13년 뒤 최초의 사화가 일어나고 다시 20년 동안 두 번의 사화와 한 번의 반정이 더 발생하면서 크게 빗나갔다. 제도가 완비되었지만 심각한 혼란과 갈등이 이어진 까닭은 무엇인가? 이 책은 ‘삼사’를 그 대답의 핵심어로 제시한다. 이 기간의 뜨거운 정치적 역정은 삼사라는 중요한 제도가 현실에 뿌리내리는 성장통이었다. 아울러 그런 과정을 통과한 신하들은 ‘훈구’와 ‘사림’이라는 고정된 이분적 구도가 아니라 ‘대신’과 ‘삼사’라는 직책에 따라 활동한 인물들이었다. 이 시기 다양한 실험과 모색을 거쳐 이뤄진 국왕·대신·삼사의 ‘정치적 정립구도(鼎立構圖)’는 그뒤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중앙정치를 움직이는 핵심적 체제로 기능했다. 왕권의 안정, 그리고 삼사의 정립 예종이 재위 14개월 만에 갑자기 붕어하자, 성종은 왕의 적장자가 아님에도 13세의 나이로 갑자기 조선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 성종은 성년이 된 재위 7년까지 조선 최초의 수렴청정과 훈구대신에 의한 원상제라는 변형된 왕정을 경험해야 했다. 그 동안 성종이 훈구대신의 지나친 권력 팽창에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왕권의 강화와 안정을 모색한 성종은, 훈구대신의 지나친 권력 팽창을 견제하고자 치세 중반부터 대간을 적극 후원했고, 그에 힘입어 대간은 활발한 언론활동을 전개하면서 위상을 크게 높였다. 한편으로 성종은 홍문관을 언관화함으로써 언론기관 내부의 견제와 균형을 유도했다. 그 결과 성종 초까지 대신에게 기울어진 중앙정치권력은 이후 국왕이 상위에 군림하면서 대신과 삼사가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안정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폭력을 수반하지 않는, 어쩌면 이상적인 유교정치를 수행하고자 했던 성종의 노력은 대간이 충분히 제어되지 않음으로써 만족스럽게 구현되지 않았다.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그 이면과 본질 성종의 적장자로 열 번째 국왕에 올라 12년을 재위한 연산군은, 즉위 당시 부왕의 유산이었던 삼사의 지나친 언론활동은 매우 불만스러웠다. 성종도 고민했듯, 삼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엽적 사안들을 물고 늘어져 국왕과 대신의 정당한 권한을 제약하는 것이었다. 왕과 대신이 보기에 그것은 윗사람을 능멸하는 ‘능상’이었다. 왕권의 자유로운 행사에 남다른 의지를 가진 연산군에게 이것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였으며, 이를 위해 특별한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데에 대신도 공감했다. 그 결과 연산군 4년 7월, 조선 최초의 사화인 무오사화가 발생했다. 김종직과 그 일파의 숙청이라는 무오사화의 표면적인 이유 이면에는 삼사의 활동을 제재하려는 연산군의 의지와 대신 세력의 동의가 내포되어 있었다. 사화의 지속기간·처벌규모·수준 등을 분석했을 때 전면적인 숙청이 아닌 상당히 제한적으로 이루어진, 그래서 폭정이 아닌 왕조 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정치행위였다. 그러나 무오사화 이후 강력해진 왕권을 오용한 연산군의 일탈은 대신과 삼사를 협력하게 했으며, 연산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정국을 타개하고자 연산군이 주도한 갑자사화는 결국 조선 최초의 반정과 연산군의 폐위로 이어졌다. 새로운 중흥을 위한 끝없는 노력과 한계 비록 반정 때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고 단지 추대된 국왕이었지만, 중종은 즉위 후 연산군 때의 정치적 파탄을 수습해 왕권을 회복하고 국정을 안정시키고자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기묘사림의 등용과 김안로 일파를 앞세운 정국운영 등은 그런 모색의 대표적 성과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중종은 왕권을 충분히 행사하지 못했다. 집권 초반의 정국공신, 삼사의 변화를 위해 등용한 기묘사림, 사화를 주도한 일부 대신, 그리고 권신 김안로에 이르기까지 중종은 대체로 어떤 집단에 왕권의 영향력을 위임하거나 정치적 주도권을 빼앗긴 상태로 치세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결국 사평에서 드러나듯 중종의 과단성의 부족에서 기인한 인사정책의 실패 등은 그로 하여금 어떤 문제를 적절한 시점에서 제어하거나 수습하지 못한 채 계속 확대시키다가 결국 밀지와 숙청이라는 돌발적 수단으로 사태를 종결하게 했다. 이처럼 국정의 핵심인 인사정책에서 충분한 판단력과 조정력을 발휘하지 못해 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것은 중종의 한계였다.

저자 소개

金範
1970년 서울 출생. 고려대 한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9년부터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로 재직하고 있다. 조선시대 정치사화 사회사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화와 반정의 시대󰡕(2007), 󰡔연산군―그 인간과 시대의 내면󰡕(2010), 번역서로 󰡔유교적 경세론과 조선의 제도들―유형원과 조선 후기󰡕 1·2(제임스 B. 팔레 지음, 2008)가 있다. 

책 속에서


현재 ‘훈구·사림’에 관련된 연구에는 두 세력을 도덕적 선악구도로 가르는 시각이 적지 않게 투영되어 있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각 정치세력의 활동은 기본적으로 현실적 이해관계와 실제적 목적이 복잡하게 얽힌 정치행위였다. 따라서 어떤 쪽에 도덕적 우월성을 미리 부여하거나 박탈하기보다는 그 활동의 타당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이런 측면은 기묘사림의 개혁정치를 분석하는 데 특히 중요하다). _ 16쪽, <책을 시작하며> 중에서

여러 상황적 맥락상 홍문관의 언관화는 그 위상을 강화해 대간을 견제함으로써 언론기관 내부의 권력 균형을 맞춰 점차 이완되던 국왕·대신·삼사의 ‘정치적 정립구도’를 다시 정비하려는 성종의 시책이었다고 판단된다. 이런 측면 또한, 앞서 대신의 견제세력으로 대간을 육성한 것과 비슷하게, 어떤 문제를 직접 건드리기보다는 그 대항세력을 만들어 해결하려는 성종의 정치가 다시 구현된 결과였다. _ 60쪽, <균열의 시작-18~25년> 중에서

삼사의 강력하고 지속적인 탄핵에 시달리던 연산군과 대신은 당시의 가장 커다란 문제가 바로 삼사의 능상이라는 결론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연산군 때의 첫 정치적 파국이자 조선 최초의 사화인 무오사화는 이처럼 국왕과 대신이 한편이 되고 그 대척점에 삼사가 자리 잡은 구도에서 발생했다. _ 104쪽, <능상에 대한 경고-무오사화(1~4년)> 중에서

폭군의 공통점이기도 하지만, 연산군은 여느 국왕들보다 개인적 성향을 현실정치에 직접 투영한 비중이 훨씬 컸다. 다시 말해서 그의 정치적 실패는 그의 인간적 특징과 많은 관련을 갖고 있다. 연산군의 개인적 특징 가운데 특히 중요하고 두드러진 측면은 과도한 집착에 따른 자기 제어의 부족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서로 인과관계에 있는 이 문제는 갑자사화 이후 극단적 형태로 계속 나타나 연산군의 통치를 유례없는 폭정으로 전락시켰다. _ 156쪽, <폭정과 폐위-11~12년> 중에서

요컨대 기묘사림의 등용은 당시의 상황적 맥락과 그 핵심 인물인 조광조가 권력의 핵심으로 진출한 계기, 그리고 그의 정치적 지향 등을 종합할 때 기존 삼사의 월권을 제어하려는 중종의 포석으로 생각된다. 중종은 새로 삼사에 등용한 기묘사림이 그 고유 임무인 대신 비판을 방기하는 것은 바라지 않았겠지만, 대신의 권한을 충분히 인정해 무너진 정치적 균형을 복원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희망은 크게 빗나가고 말았다. _ 201쪽, <급진적 개혁과 실각-기묘사화(10~14년)> 중에서

요컨대 김안로가 집권하는 동안 왕권의 위상과 정치는 상당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중종이 왕권의 영향력을 김안로에게 거의 위임한 결과 대신과 삼사를 포함한 거의 모든 신하가 그에게 종속됨으로써 정치세력의 균형은 크게 와해되었다. 특히 중요한 사실은 삼사가 김안로에게 사유화된 기능 변질이 뚜렷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대부분 김안로 당파로 채워진 삼사는 김안로의 비위를 맞추거나 그의 정적을 실각시키는 어용 언론을 전개했다. 이 시기 삼사는 “정치가 대간에 귀속되었다”고 평가될 정도로 강력했지만, 그것은 본연의 기능을 폐기하고 권신의 사적 언론으로 전락해 얻은, 다시 말해 권신이 허락한 권력일 뿐이었다. _ 230~231쪽, <김안로의 집권과 삼사의 기능 변질-26~32년> 중에서


목차

목차
감사의 글
책을 시작하며_ 조선 최초의 사화와 반정의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1장 성종 - 왕권의 안정과 균열의 시작
1. 변형된 왕정-1~7년
갑작스런 즉위 | 수렴청정과 원상제의 시행 | 훈구대신의 영향?력
2. 균형과 견제-8~17년
친정을 시작하다 | 대신을 압박하다 | 몰리는 한명회 | 대간의 부상浮上 | 균형과 견제 | 월권의 조짐 | 국왕의 고민
3. 균열의 시작-18~25년
홍문관의 기능 확대 | 제3의 언론기관, 홍문관 | 회복되는 대신의 위상 | 갈등의 고조 | 국왕의 경고 | 성종대의 정치적 유산
4. 성종의 왕권-비폭력적 유교정치의 수행
2장 연산군-절대왕권의 추구와 정치적 파탄
1. 능상에 대한 경고-무오사화(1~4년)
국왕과 삼사의 대립 | 대신과 삼사의 충돌 | 삼사의 능상을 교정하라 | 조선 최초의 사화, 무오사화 | 사화의 전개 1-김일손의 사초 | 사화의 전개 2-붕당의 단초 | 사화의 전개 3-「조의제문」의 발견과 해석 | 삼사의 연루 | 피의자들의 처벌 |사화의 분석
2. 왕권의 일탈과 무차별적 숙청-갑자사화(5~10년)
제어받지 않는 왕권 | 패행과 사치 | 재개되는 삼사의 간쟁 | 국왕과 삼사의 충돌 | 신과 삼사의 협력 | 갑자사화의 발발-이세좌·홍귀달 사건 | 폐모 사건의 보복 | 피화인의 분석
3. 폭정과 폐위-11~12년
일상화된 폭정 | 불안해하는 폭군 | 반정과 폐위
4. 연산군의 왕권-전제왕권의 추구와 정치적 파탄
3장 중종-중흥과 개혁의 모색
1. 추대된 국왕-즉위년~9년
편중된 권력 | 삼사의 도전 | 삼대장과의 갈등 | 재연再燃되는 능상
2. 급진적 개혁과 실각-기묘사화(10~14년)
왕권 강화의 의지 | 기묘사림의 등장 | 개혁정치를 보는 시각
3. 역전된 정국-15 ~25년
다시 우위에 선 대신 | 삼사의 회복 | 변질의 실마리
4. 김안로의 집권과 삼사의 기능 변질-26~32년
김안로의 시대 | 국정의 난맥상 | 사유화된 삼사
5. 중흥의 마지막 노력-33~39년
중흥의 의지 | 한계와 성과
6. 중종의 왕권-조정력의 부재와 미완의 중흥
책을 마치며_삼사의 위상 확립과 정치적 정립구도의 형성
주석 | 참고문헌 | 부록: 갑자사화 피화인의 명단 |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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