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서수일기 200년 전 암행어사가 밟은 5천리 평안도 길

시리즈 : 규장각 새로 읽는 우리 고전 [13]

박내겸 저 | 오수창 역 | 아카넷 | 2015년 03월

북트리

정가
$36.00
판매가
$19.8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40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7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88957334003 / 252쪽 152 x 214 (㎜) / 양장본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 24,300
  • 22,500
  • 26,010
  • 71,280

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서수일기] 소개 상상력 자극하는 논픽션 평안도 암행일기 박문수는 암행어사계의 레전드다. 암행어사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유독 박문수를 떠올리는데 탐관오리를 벌하고,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정의로운 모습은 특히 『박문수전』에서 상세히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박문수가 실제로 암행어사였던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실제 암행어사는 어떤 모습일까? 암행어사는 동아시아에서도 조선에서만 시행되었던 제도로 조선의 관료체제에서도 매우 특수한 관직이었는데, 순조 22년(1822)에 전국 8도... [서수일기] 소개 상상력 자극하는 논픽션 평안도 암행일기 박문수는 암행어사계의 레전드다. 암행어사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유독 박문수를 떠올리는데 탐관오리를 벌하고,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정의로운 모습은 특히 『박문수전』에서 상세히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박문수가 실제로 암행어사였던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실제 암행어사는 어떤 모습일까? 암행어사는 동아시아에서도 조선에서만 시행되었던 제도로 조선의 관료체제에서도 매우 특수한 관직이었는데, 순조 22년(1822)에 전국 8도에 처음으로 빠짐없이 암행어사가 파견되었다. 이 시기에 평안남도 암행어사로 파견된 박내겸은 윤3월 16일부터 7월 28일까지 약 4개월 반 동안 평양을 포함한 청천강 이남 평안도 지방의 군현 23개를 돌며 암행어사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임무기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는데 이것이 현재 전해지는 『서수일기』다. 『서수일기(西繡日記)』는 평안도 암행어사의 일기이다. 조선시대에 평안도 지역은 ‘서(西)’라고 지칭되었다. 일찍이 고려시대에 평안도의 중심인 평양에 서경(西京)이 설치되었으며, 그 지역은 철령의 서쪽이라는 뜻에서 관서(關西)라고 불려왔다. 암행어사란 겉옷 밑에 남몰래 비단옷을 감추어 입는 존재라는 뜻에서 비단 ‘수(繡)’가 암행어사를 가리키게 되었다. 『서수일기』를 지은 이는 순조 22년(1822) 평안남도 암행어사로 파견된 박내겸(朴來謙, 1780~1842)으로서, 그는 서계(書啓)와 별단(別單) 등 공식 보고서 외에 이 기행 일기를 남겼다. 『서수일기』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일기에는 암행어사 출도를 외친 후 늠름하게 관아에 들어가 탐관오리들을 벌하는 정의로운 모습뿐 아니라, 신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 능청맞게 거짓말을 하며 연기하는 일, 감사가 벌이는 잔치를 부러워하며 구경하던 중 군졸이 몽둥이를 들고 와서 구경하는 사람들을 내쫓는 바람에 곤혹스러웠던 일처럼 웃지못할 해프닝도 비교적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날그날의 사건 외에도 거쳐 간 장소, 각 고을의 형세와 분위기, 만난 사람, 하루 이동거리가 빠짐없이 적혀 있고, 특히 각 지역의 명승지는 반드시 방문하고 그 감상도 일기로 남겼다. 또한 눈치 빠른 기생들 앞에서 신분이 탄로 나 당황했다는 고백, 기생과 동침한 일까지도 빠짐없이 적었던 것으로 보아 전체적으로 일기는 매우 솔직하게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특징 지금은 갈 수 없는 북한땅에 대한 향수 불러일으켜 역해자인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오수창 교수는 “북한(평안도) 지역이 우리와 관계없는 남의 땅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수천년 함께 살아온 지역이라는 점을 특히 젊은이들에게 알려 앞으로 다시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자”는 뜻에서 『서수일기』를 소개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기마다 곁들인 평설은 오수창 교수의 평설은 일기에서 서술한 사건이나 시대상황을 이해를 돕는다. 이번에 아카넷에서 출간한 『서수일기』는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해동지도』, 『1872년 지방지도』처럼 군현별 정보를 상세히 담고 있는 지도들을 풍부하게 활용하여 암행어사의 이동경로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또한 박내겸이 거쳐간 명승지의 풍광을 담은 회화를 수록해 지금은 갈 수 없는 북한땅을 밟아보는 특별한 여정을 선사한다. 암행어사의 사적인 일기는 매우 희귀해 후대에는 몇 종만 전해내려 온다. 한글로 번역되어 출간된 것은 황해도 암행어사 박만정이 남긴 『해서암행일기』(1976)와 『서수일기』뿐이다. 특히 『서수일기』는 암행어사 개인의 노정을 넘어 19세기 조선의 통치기구가 작동하던 방식과 평안도 등지에서 지방민들이 살아가던 사정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저자 소개

(朴來謙, 1780~1842)
19세기 순조대와 헌종대에 활동한 관료이다. 문과에 급제한 후 사관·언관과 경연관을 두루 맡으면서 임금을 모시고 호조참판·의주부윤까지 승진한 엘리트 관원이지만, 학파나 권세가에 얽매이지 않고 실무에 치중하였다. 특히 암행어사로서 평안도를 돌아본 사정을 『서수일기(西繡日記)』로, 북평사로 함경도를 돌아본 경험을 『북막일기(北幕日記)』로 남겼다. 변방의 사정을 구체적으로 전해주는 귀한 자료이다. 서장관으로 청나라 심양에 다녀온 경험을 적은 『심사일기(瀋槎日記)』도 개성 있는 저술이다. 시문집으로 2책의 『탑서유고(塔西遺稿)』가 있다.


 

역자 소개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과정을 마쳤다. 17세기 붕당정치와 19세기 세도정치 등 중앙정치로 한국사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조선후기의 중앙정치와 평안도 사회발전의 관계를 검토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에는 춘향전이나 야담과 같은 문학 작품에 담긴 역사적 상황을 해명하고자 하였다. 지은 책으로 『조선후기 평안도 사회발전연구』, 『조선시대 정치, 틀과 사람들』, 『조선정치사 1800~1863』(공저) 등이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학예연구사, 한림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교수로 있다.


 

책 속에서

암행어사의 은밀한 걸음을 따라 살펴보는 민중의 삶
서울을 떠나 다시 돌아올 때까지 130일간 박내겸이 이동한 거리는 4,915리로, 조선후기 10리를 4.2km로 계산하면 2,064km로 경부고속도로의 5배에 이른다. 이토록 부지런히 평안도를 누비고 다니면서 박내겸은 민중들의 어떤 모습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신분 위장
평안도로 파견될 때 박내겸은 신분을 감추는 일에 매우 신중했다. 양반 복장을 포기하지는 않았으나 망가진 갓과 해진 도포로 허름한 복장을 했으며, 때로는 붓과 같은 소품을 활용해 변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암행어사에 대한 지방민의 감시와 기대 속에, 그리고 업무 추진을 위한 연락으로 인해 그 행적이 탄로나기 일쑤였다.

4월 14일
종일 비가 내리다가 저녁에 조금 갰다. 붓 수십 자루를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걸고 향청으로 들어갔다. 나는 해주에 사는 사람으로 묏자리 송사를 벌이다 자산에 귀양 갔는데 다행히 용서는 받았지만 돌아갈 길의 양식을 마련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앞으로 함경도로 들어가 친지나 수령에게 구걸할 계획이며 마침 붓과 먹을 얻었으므로 그것을 팔아서 여행 밑천으로 삼으려고 한다고 하였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한편으로 믿어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의심도 하였다. (본문 86쪽)
전도된 현실 실감

4월 28일
듣자니 읍의 창고에서 환자 곡식을 나누어준다기에 여러 사람 중에 섞여 창고 마당으로 헤치고 들어갔다. 여기저기 돌아보는데 나누어주는 쌀이 품질이 거칠다고 몇 사람이 수령 앞에 나아가 고발하려 하였다. 해당 아전들이 함께 말리니 그 사람들이 원망하여 말하였다. “요즘 암행어사가 내려왔다고 하는데도 당신들은 이처럼 농간을 부리는가. 거친 곡식을 나누어준 데 더해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는 길까지 막아버리면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가라는 말이오.” 아전들이 웃으며 말하였다. “작년에 거친 곡식을 바치고서 지금은 고운 곡식을 받으려 하니, 고운 곡식이 어디서 생겨나겠는가. 이것은 우리들이 농간한 것이 아닌데 당신들이 우리를 죽이려 하는가? 그리고 암행어사가 이 마당에 들어와 있지나 않은지 어떻게들 알고 이처럼 소란스럽게 구는 거요?” 그 몇 사람은 결국 말을 못하고 받은 것을 헤아려 흩어졌다. 어리석은 백성들은 호소할 곳도 없다니, 참 심하구나. (본문 121쪽)

암행어사 출도
박내겸은 성실하게 암행어사의 여정을 밟아 나갔지만, 그런 중에도 권력과 쾌락을 맛볼 수 있었다. 그는 역졸들이 암행어사 출도를 외쳤을 때 “사람들이 무리지어 놀라 피하는 것이 마치 바람이 날고 우박이 흩어지듯 하며”(5월 13일 순안), “성내가 온통 끓는 솥처럼 되어 사람과 말들이 놀라 피하는 것이 산이 무너지고 바닷물이 밀려드는 듯한”(6월 30일 평양) 광경을 즐겼다.

5월 13일
역졸들이 빠른 소리로 암행어사 출도를 한 번 외치니 사람들이 무리지어 놀라 피하는 것이 마치 바람에 날려 우박이 흩어지듯 하였다. 우선 문루에 올라가 바라보니 온 성안의 등불이 모두 꺼지고 바깥문들이 빠짐없이 닫혔다. 연달아 급하게 외쳤지만 끝내 사람의 자취는 없었다. 내 수행원들이 여기저기 들어갔는데 관아 건물들이 모두 비어서 사람이 없었다. 나도 오래 서 있기가 어려워 천천히 동헌으로 들어갔는데 그곳 역시 빈 집이었다. 암행어사의 위엄과 서슬은 과연 이와 같은 것이었다. (본문 150쪽)

 

목차

목차
순조 22년(1822)
윤3월 16일~윤3월 26일 왕명을 받아 평안도에 들어가다 9
윤3월 27일~4월 9일 평안도 동남쪽을 돌아 평양으로 향하다 37
4월 10일~4월 21일 동북쪽 끝인 영원을 돌아 순천까지 암행하다 73
4월 22일~5월 15일 서쪽과 남쪽을 돌아보고 순안에서 처음 출도하다 109
5월 16일~6월 9일 서남과 동북, 끝에서 끝을 돌아 안주에서 출도하다 155
6월 10일~7월 13일 다시 한 바퀴 돌아 평양에서 출도하다 177
7월 14일~7월 28일 130일 되는 날에 복명하다 203
해제: 200년 전 암행어사가 밟은 5천리 평안도 길 221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