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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0514669 / 544쪽 147 x 219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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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 남회근 저작선 [16]
반디앤루니스 리뷰
춘추 전국이라는 전란의 무대에서
주인공 맹자와 동시대인들이 펼치는 대화
맹자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군주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
총 7편으로 된 『맹자』 중 제1편 「양혜왕」은 맹자의 정치사상과 철학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극히 혼란스러웠던 전국 시대를 한 마음 한 뜻으로 구하고자 했던 맹자의 이상과 포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맹자는 제나라, 위나라 군주들에게 의리(義利), 인의(仁義) 사상을 유세하여 정권에 중용되기를 바랐다. 그러한 그의 사상 가운데 최고의 정치 원칙과 철학적 기초가 「양혜왕」 속에 들어 있다.
저자 남회근은 「양혜왕」 편에서 설득의 대가인 맹자의 유세술에 초점을 맞춘다.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고 그의 상황을 인정해 주면서도 자신의 논지를 펼칠 기회를 놓치지 않는 맹자. 상대가 자기 문제를 스스로 인식하도록 뛰어난 대화술로 유도하는 맹자. 또 맹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소진, 추연, 각국의 군주를 등장시켜 뜻한 바와 그 목적에서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저자의 시선을 거친 맹자는 추레하다. 안타까울 정도로 올곧기만 하다. 남선생은 인간 맹자를 때론 객관적인 연출가처럼, 때론 시비를 논단하는 변호사처럼, 때론 한발짝 떨어진 청중처럼 입체적으로 그려 살아 있는 캐릭터로 탈바꿈시켰다. 홀대와 무시에 아랑곳 않고 눈앞의 이익에 연연해하지 않고 큰 안목과 포부로 정치와 인간을 말하는 맹자. 종횡으로 엮인 사료를 읽는 맛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춘추 전국이라는 전란의 무대에서 주인공 맹자와 동시대인들이 펼치는 대화 맹자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군주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 총 7편으로 된 『맹자』 중 제1편 「양혜왕」은 맹자의 정치사상?과 철학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극히 혼란스러웠던 전국 시대를 한 마음 한 뜻으로 구하고자 했던 맹자의 이상과 포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맹자는 제나라, 위나라 군주들에게 의리(義利), 인의(仁義) 사상을 유세하여 정권에 중용되기를 바랐다. 그러한 그의 사상 가운데 최고의 정치 원칙과 철학적 기초가 「양혜왕」 속에 들어 있다... 춘추 전국이라는 전란의 무대에서 주인공 맹자와 동시대인들이 펼치는 대화 맹자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군주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 총 7편으로 된 『맹자』 중 제1편 「양혜왕」은 맹자의 정치사상과 철학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극히 혼란스러웠던 전국 시대를 한 마음 한 뜻으로 구하고자 했던 맹자의 이상과 포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맹자는 제나라, 위나라 군주들에게 의리(義利), 인의(仁義) 사상을 유세하여 정권에 중용되기를 바랐다. 그러한 그의 사상 가운데 최고의 정치 원칙과 철학적 기초가 「양혜왕」 속에 들어 있다. 저자 남회근은 「양혜왕」 편에서 설득의 대가인 맹자의 유세술에 초점을 맞춘다.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고 그의 상황을 인정해 주면서도 자신의 논지를 펼칠 기회를 놓치지 않는 맹자. 상대가 자기 문제를 스스로 인식하도록 뛰어난 대화술로 유도하는 맹자. 또 맹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소진, 추연, 각국의 군주를 등장시켜 뜻한 바와 그 목적에서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저자의 시선을 거친 맹자는 추레하다. 안타까울 정도로 올곧기만 하다. 남선생은 인간 맹자를 때론 객관적인 연출가처럼, 때론 시비를 논단하는 변호사처럼, 때론 한발짝 떨어진 청중처럼 입체적으로 그려 살아 있는 캐릭터로 탈바꿈시켰다. 홀대와 무시에 아랑곳 않고 눈앞의 이익에 연연해하지 않고 큰 안목과 포부로 정치와 인간을 말하는 맹자. 종횡으로 엮인 사료를 읽는 맛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출판사 리뷰 경전(經典)은 따분하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그렇다. 현실적이지 않고 고루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관점과 언어로 고전을 재해석하면 문제가 없어질까. 무게를 잡지 않는다며 일부러 웃기기도 하고 욕도 하면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좋을까. 이런 건 학문 하는 태도가 아니라며 엄격한 자세를 고수하는 것이 올바를까. 어려운 일이다. “시공이 교차하면서 생겨난 변화는 단지 현상의 차이일 뿐, 천지(天地)는 여전히 예전의 천지요 인물(人物)도 여전히 예전의 인물로서 생존의 원칙은 결코 변하지 않았습니다. 변한 것은 다만 생활의 방식뿐입니다.” 책 서문에 나온 저자의 말이다. 시공이 변화해도 인간과 삶의 조건은 크게 다를 바 없다. 긴 시간을 살아남아 전해지는 고전이 유효한 이유이자, 남회근의 저서에서 일관된 “경전과 역사를 함께 참고하는” 것이 생동감 넘치고 살아 있는 고전 해석 방식이 되는 이유다. 이 책은 1976년에 대만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남회근 선생의 『맹자』「양혜왕」 강연 기록이다. 저자는 “시대의 요청에 따라 학생들이 접근하기 쉽고 관심을 불러일으키도록 일부러 가벼운 방식을 사용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이런 방식은 어쩌다 한번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 자칫하면 경솔함으로 흐르기 쉬워 준칙으로 삼기에는 부족하다”고도 했다. 저자의 우려는 기우였다. “경전과 역사를 함께 참고하는” 해석 방식이 맹자라는 인물을 한층 입체적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성인 맹자뿐 아니라 노인장 맹자, 냉대 받는 맹자, 처량하고 쓸쓸한 맹자, 안타까울 정도로 올곧기만 한 맹자 등 정면과 이면의 맹자가 있다. 「양혜왕」 편은 맹자가 학문을 성취한 이후 중년에서 만년에 이르기까지 국제 사회를 돌아다녔던 기록의 축소판 전기로, 맹자의 정치사상과 철학을 담은 부분이다. 전란의 시대 맹자가 각 나라 제후들과 나눈 대화, 맹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종횡가들에 대한 기록, 중국 역사에서 끌어온 다양한 사실 등으로 엮인 『맹자와 양혜왕』은 전국 시대를 무대로 만든 대규모 서사극을 방불케 한다. 이 무대를 위해 동원된 각양각색의 등장인물, 종횡으로 촘촘히 짜인 사료들, 저자의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세상사에 대한 이해 등이 모여 맹자의 풍격이 더없이 깊고 넓게 드러났다. ― 공감의 대가 설득의 달인, 맹자 「양혜왕」 편에서 저자가 먼저 초점을 맞춘 것은 설득과 공감의 달인 맹자의 뛰어난 유세술이다. 저자가 포착해 낸 맹자 유세술의 특징은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고 상대의 현재 상태를 인정해 주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논지를 펼칠 기회를 놓치지 않아서 상대가 스스로 문제점을 인식하게 만든다. 상대의 현 상태를 인정해 준다는 것은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상대의 마음에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또 그것은 공자가 말했던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 남까지 헤아리는 ‘서(恕)’의 마음이다. 맹자의 교육은 유도의 방식이었다. 이것은 시비를 가리고 선악을 첨예하게 대립시켜 이분법으로 논단하는 종교나 설교 이론과는 크게 다르다. 그것은 기회를 포착하여 교육을 펼치고 또 상대방을 격려해 제후들이 왕도의 길을 가고 인정(仁政)을 행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맹자는 교육의 방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유도(誘導)의 방식을 사용하였고, 교화의 입장에서 말하면 시종일관 사도(師道)와 신도(臣道) 사이의 노선을 걸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가 제 선왕에게 말한 내용을 보면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차마 소를 죽이지 못했던 제 선왕의 선한 생각을 놓치지 않고 붙잡은 다음, 그에게 그런 마음을 확충시켜서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한 것을 좇아서 유도해 나가는 방식입니다. (...) 먼저 상대의 의견에 동의하고 찬성한 후에 상대를 유도해서 그로 하여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다른 사람도 좋아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도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양 혜왕이든 제 선왕이든 맹자가 군주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은 모두 이렇다. 제 선왕이 자신은 여색과 재물과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맹자는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만 그것을 확충시켜서 천하 사람들이 모두 부강하고 안락한 생활수준에 도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제 환공이 사냥과 술과 여색을 좋아하는 등 군주로서 문제가 있다고 말할 때, 관중이 나쁘기는 하지만 군주의 자질에서 시급한 문제는 아니라고 말했던 것과 유사하다. 공감은 설득의 핵심이다. 양 혜왕이나 제 선왕의 태도가 점차 바뀌는 대목을 보자. 처음에는 맹자를 공소(空疏)한 이론주의자로 보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대화를 이어가면서 어투와 태도가 눈에 띄게 바뀐다. 맹자의 대화법, 공감과 설득의 방식에 이끌린 변화다. 양 혜왕이 맹자의 영향을 받아 대화를 나눌 때마다 태도가 조금씩 좋아져 간다는 사실은 이 문장을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이번 대화는 이전의 대화에 비해 훨씬 좋아졌습니다. 그는 입을 열자마자 대뜸 “저는 마음을 비우고 정성을 다해 당신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맹 선생의 의견을 듣기 원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도 질문하지 않고 그저 맹자가 자신에게 앞으로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지에 관해 의견을 들려주기만을 바랐습니다. ― 노인장 맹자 vs 아성 맹자 이 책에서 저자의 시선을 거친 맹자는 인간적이다. 인의, 왕도, 민본, 민생을 올곧게 외친 성인 맹자의 모습만 그려진 것이 아니다. 저자는 냉대가 섞인 제후들의 태도, 다른 유세가들에 비해 현격히 차이나는 대우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게다가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맹자에 대한 양 혜왕의 호칭입니다. 춘추 시대 제후들이 공자에 대한 존경심으로 사용했던 선생님[夫子] 같은 존칭도 아니고, 전국 시대 당시의 제후들이 현사(賢士)에 대한 예우로 사용했던 선생(先生) 같은 존칭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예 대놓고 ‘노인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수(?)’ 자는 좀 듣기 좋게 말하면 어르신이라는 뜻이지만 그냥 무례하게
맹자는 죽을 때까지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들었인의는 확실히 좋은 덕행입니다. 하지만 이 덕행을 오래 사용하면 본래 모습을 잃게 되어 사람들이 그것을 이용해 권력과 이익을 다투는 도구로 변해 버립니다. 이것을 통해서도 도가를 대표하는 인물인 노자와 장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노자는 일찍이 도덕이 퇴락하면 그제야 예의의 학설이 생겨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런 말도 늘 했습니다. “성인이 죽지 않으면 큰 도둑도 그치지 않는다[聖人不死, 大盜不止].” 당시 인의예악의 도덕관념에 대한 노자의 비평은 아주 혹독했습니다. 장자 역시 일찍이 “인의라는 것은 선왕의 임시 거처이니 하룻밤 잘 수는 있어도 오래 머무를 수는 없다[仁義者, 先王之遽廬, 可以一宿, 不可以久處]”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춘추 전국 시대에 각국 제후들의 정벌 구호가 대개 인의를 표방하였지만, 실제로는 결코 인의를 시행하지 않고 단지 인의라는 미명하에 권력을 다투고 이익을 빼앗는 목적에 도달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113-114쪽)
맹자가 인의를 이야기하고 의리지변(義利之辨)을 강조한 이후 후세에는 그 영향을 받아 의리지변을 중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후세의 의리지변은 점차 자사무사(自私無私)의 구분과 동일시되어 ‘의(義)’와 무사(無私)’가 같은 의미로, 그리고 ‘이(利)’와 ‘자사(自私)’ 즉 이기(利己)가 같은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한(漢)•당(唐) 이후 유가의 의리지변은 대부분 사(私)와 무사(無私)의 구분과 뒤섞여 버린 나머지 그 둘을 분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의리지변을 이야기할 때면 논리적으로 서로 얽혀서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결과 현재 우리들까지도 여전히 분명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유가 사상은 뭐 그리 대단할 것도 없다”라는 착각을 낳기까지 했습니다. (116-117쪽)
대우(大禹)의 치수 이후로 농업으로 나라를 세운 중원에서는 아직 소금과 철의 이익을 중시하는 이론이 확립되지 않았고 전국 시대에 크게 행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맹자의 구체적인 의견이 당시의 실제 상황에는 그런대로 들어맞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경제 구조에 대한 그의 건의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후세에 독서로 정치를 한 지식인들은 맹자의 이러한 관념을 고지식하게 붙잡은 나머지, 농업을 중시하고 상공업은 경시하는 잘못되고 치우친 관념을 형성함으로써 산업이 낙후되고 경제가 쇠퇴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152쪽)
제 선왕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의 어떤 사람도, 설사 가장 나쁜 사람이라 할지라도 심리 행위에서는 모두 선의(善意)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만 동일한 일에 모두 똑같이 반응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다른 일에서 그런 선의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흔히 하는 말로 호랑이가 독해도 자식은 잡아먹지 않는다고 하는데, 동물이 그렇고 인류 역시 그러합니다. 다만 보통 사람들은 현실 생활에서 물질적 필요 때문에 생겨나는 욕망이 이 착한 생각을 가려 버리고 덮어 버립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방금 말했던 『서유기』의 우마왕입니다. 바로 사람의 성질이지요. 우리는 그것을 황소고집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사람은 한번 성질이 나면 이지(理智)도 감정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런 까닭에 모든 종교 신앙과 종교 철학 그리고 공맹 학설까지도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이성과 이지에 있어서 이러한 선의를 확충시켜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욕망과 기질을 바꾸어 놓고, 내재적인 심성 수양으로 하여금 모든 것을 초월하여 성스러운 경지에 도달하게 할 것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그 벌벌 떠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여” 소를 놓아준 제 선왕의 선한 생각을 맹자가 때를 놓치지 않고 포착한 것도 바로 이러한 심리 행위의 이치에 기초했습니다. (237쪽)
도덕 수양에서 심리적 반성의 중요성은 측정에서 저울과 자가 차지하는 무게와 마찬가지로 중요합니다. 따라서 자기 자신의 행위를 검토하고 반성하면 자신이 도덕의 표준에 합치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반성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생각과 심리에서 어떤 부분을 고쳐야 하는지 또 어떤 부분을 더 발전시켜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250쪽)
어떻게 해야 부국강민의 정치를 펴서 안락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요? 맹자는 계속해서 자신의 의견을 말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민생주의의 중요성을 지적한 것입니다. 맹자의 주장은 먼저 개인의 경제가 안정되고 가정 경제가 부유해진 후에 사회의 부유와 국가의 부강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정(仁政)은 반드시 경제의 안정과 안락하고 건강한 사회를 기초로 해야 합니다. 당시에는 현대처럼 전문적인 용어로 이러한 정치의 경계를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맹자는 구체적인 상황으로 설명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280쪽)
행위 철학과 역사적 사실을 함께 참고하여 살펴본다면 그것은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주제가 될 것입니다. 물론 아주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역대의 명신(名臣)과 대신(大臣)들을 보면 유가의 학문으로 조정에서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많은 성취를 거두었다 할지라도, 제왕 자신이나 궁정 안에 문제가 생겼다 하면 그들로서는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살펴보면 유가는 줄곧 다른 사람에게 기대어 왔을 뿐 자립하지 못했고 천하에 큰 영향을 미치지도 못했습니다. (295쪽)
교화의 태도와 방법에서도 맹자와 관자는 거의 비슷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관자는 대정치가의 입장에 서서 신도(臣道)로서 건의를 했고 현실 정치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맹 선생님은 정치 철학의 원칙에 더 치우쳤고 동시에 사도(師道)의 유도(誘導)적 방식을 띠고 있었습니다. 경지에서는 당연히 관중보다 한층 더 높았지만 안타깝게도 효과에서는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맹자와 관중이 만난 두 명의 고객, 즉 사장은 인격이나 개성에서 차이가 많습니다. 그로 인해 역사에서의 성취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374-375쪽)
역대 인사 행정의 기록을 참고해 보면, 새로운 시대의 기초를 다지고 새로운 국면을 열어야 하는 시기에는 대체로 용인(用人)에서 태평 시대의 인사 제도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새로운 기상과 새로운 국면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천하가 안정되고 경험이 쌓이면 용인(用人) 행정이 궤도에 오르고 모종의 인사 제도와 법규를 좇아 기용하게 됩니다. 이것이 고금에 변하지 않는 변천 과정입니다. 한 제도가 시행되어 시간이 오래 지나면 점차 잘못이 드러나게 되는데 이는 필연적인 추세입니다. (427쪽)
하지만 뒤집어서 말하면 인재를 기용하는 최후 결정권이 전적으로 ‘명주’와 ‘현군’들의 총명과 지혜에 달렸으니, 자신의 호오(好惡)를 근거로 인재를 선택하는 일은 정말 너무도 어려운 일입니다. 도대체 ‘명주’의 명(明)과 ‘현군’의 현(賢)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다는 말입니까? 게다가 진정으로 ‘명(明)’하고 진정으로 ‘현(賢)’한 군주가 결국 몇 명이나 되었습니까? 정말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429쪽)
하지만 진정한 민주는 참으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진정한 민주에 대해 말하려면 선결 조건이 있으니 전 국민이 모두 성현이 되어야만 합니다. 적어도 전 국민의 교육 수준, 학식과 수양이 일치된 수준에 도달해야만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군중은 때때로 맹종(盲從)적이고 맹동(盲動)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지러이 떠들어 대는 것은 선비 하나가 곧은 소리를 하는 것만 못 하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온 국민이 모두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더라도 그것이 진정한 시비선악(是非善惡)이라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강력한 군주 한 사람의 주장이 백 퍼센트의 결정적인 영향력을 지니려면 반드시 군주의 총명과 예지가 있어야 합니다. (435쪽)
결론적으로 국가에서 인재를 선발하는 천하 대사는 물론이고 작게는 회사나 작은 단체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서로 배척하는 일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라는 생물이 천성적으로 그렇게 큰 그릇이 못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관하는 사람이나 가장이 된 사람은 반드시 “선비는 현명하거나 어리석거나 막론하고 조정에 들어가면 반드시 참소를 당한다. 여자는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막론하고 궁에 들어가면 질투를 당한다[士無論賢愚, 入朝則必遭讒. 女無論美醜, 入宮則必遭嫉]”라는 원칙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인의(仁義)에 머무르고 지혜와 덕술(德術)을 활용한다면 어쩌면 효과가 훨씬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435-436쪽)
사실 맹자의 사상은 당시의 시대적 추세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공자처럼 그렇게 주나라를 종주로 삼지 않았습니다. 칠백여 년을 지나오면서 중앙의 주 왕실은 이미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깨어진 질그릇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인의를 시행하고 백성을 위해 복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맹자는 곧바로 그를 도와 왕 노릇을 하게 했을 것입니다. (486쪽)
개인의 일, 국가의 일, 천하의 일에 그 원칙은 마찬가지입니다. 오로지 스스로를 강하게 하고 스스로를 세우는 것이 유일한 생존의 길입니다. 특히 국제 사회에서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국가에게는 스스로를 세우고 스스로를 강하게 하는 것 외에 다른 타협적인 계책이 결코 없습니다. 타협하면 할수록 어려움만 더 많아질 것입니다. 그래서 맹자는 차라리 나라가 망할지언정 국격(國格)이나 인격(人格)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답으로 제시했던 것입니다. (527쪽)
국가의 대사가 그러하고 개인의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어설 수 있으면 일어서고 일어설 수 없으면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이 사회에 수많은 사람들은 일어설 수 없을 때 기려고 하지 않고 기어갈 수 없을 때 누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서 있는 것이 아니니 가여울 따름입니다. 아무튼 인생철학과 정치 철학의 이치는 똑같습니다. (530-531쪽)
모든 사람의 심리는 선천적인 결점을 지니고 있는데, ‘참언’과 ‘쓸데없는 말’을 듣기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은 큰 이치나 중요한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 것에는 질려 있습니다. 그래서 참언이나 쓸데없는 말이 빈틈을 노리고 들어와서는 과녁을 명중시키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이것이 역사상 명철한 지혜로 칭찬받는 군주가 드문 까닭입니다. 사실 어디 군주만 그렇겠습니까. 무릇 지도자가 된 사람은 모두 주의해야 합니다. 한 집의 가장이 되어 작은 일을 처리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주의해야 합니다. 옛사람들이 “시비를 말하는 자가 바로 시비의 당사자이다[來說是非者, 便是是非人]”라고 한 것은 변치 않는 명언입니다. (538쪽)
456|맹자의 책략, 바름으로 바로잡다 460|소진, 구변으로 열 개의 성을 되찾다 464|제나라와 연나라의 전쟁 467|소대, 제나라 왕을 평론하다 472|훌륭한 부대, 백성을 괴롭히지 않는 전쟁 474|어진 장군 조빈 477|인의의 실질과 권모술수 482|맹자가 위와 제에 있던 때의 비공식적 기록 486|제 선왕의 풍격 487|조정에는 문무 재사가 많습니다 488|이해관계에 따른 칭찬의 말 492|가난하고 미천한 사람이 교만하게 군다 494|해학의 대가 순우곤 499|전국 시대 양사의 기풍을 연 제 선왕 503|혼탁한 세상을 홀로 걸어간 맹자 506|역사의 변화가 바로 정치의 인과응보다 508|군주의 도와 신하의 절개 514|역사에서의 기층 정책 517|관리가 되어도 나쁜 짓은 하지 말라 519|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의 어려움 525|사람은 자립을 귀하게 여긴다 531|맹자가 입신처세의 원칙을 논하다 535
목차
옮긴이 말 5
들어가는 말 9
강연에 앞서 21
춘추 시대에 의로운 전쟁은 없었다 25|사마천의 편찬 기법 속 맹자 29|추연과 맹자의 강렬한 대비 33|처세의 철학 문제 38|소진과 맹자의 시대 43|진시황 패업의 청사진 45|소진, 초라한 몰골로 돌아오다 49|천고에 변치 않는 인정세태 52|소진의 성공 비결 57|왕도와 패도가 서로 넘나들다 58|『음부경』의 계시 60|개인의 뜻을 펼치는 데 목적이 있었다 63|여섯 나라 재상의 인장을 찼던 빛나는 시기 66|소진의 철학적 관점과 서생으로서의 본색 72|역사에서 소진의 공적 79|소진에 대한 평가와 사마천의 평어 81|경전과 역사를 함께 참고하다 87|양 혜왕의 선조 88|상앙과 양 혜왕 90
양혜왕 상 95
양 혜왕과 맹 노인장 98|양 혜왕과 맹자에 대한 사마천의 관점 101|맹자의 의리지변 105|어찌 이로움을 말하지 않을 수 있으리 109|도덕이 쇠미할 때에야 인의가 나온다 112|맹자의 사상은 뒤섞여 명확하지 않게 되었다 114|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다 120|「아방궁부」의 기록과 진시황 125|『삼보황도』에 기록된 아방궁의 모습 128|미루와 수 양제 131|간악과 송 휘종 135|이화원과 청나라 말 자희 태후 142|봉각 용루와 이후주 143|청명상하도의 이면 148|농사철을 어기지 않다 153|난세에 유랑하는 백성을 그린 문학 155|도강언을 만든 이빙 부자 164|비유와 은유를 통해 양혜왕을 설득하다 170|양 혜왕이 괴로움을 호소하다 176|인정의 도 178|인품과 재능의 평가 188|역시 관상법이라 195|천하가 하나에 정해지다 199|맹자와 소진의 대조 203|『전국책』 원문, 소진이 위나라에 합종을 유세하다 203|소진의 권모술수 209|맹자가 말끝을 돌리다 212|하나에 정해지다 216|근원이 같은 유가와 도가의 천하통일 218|인애의 확장 221|차마 소를 죽이지 못했던 제 선왕의 인술 224|인애의 심리 행위 229|소를 놓고 마음을 이야기하다 231|정치 지도자의 비정상적 심리 237|맹자의 행위 심리학 242|권능의 문제 247|세상에는 사람처럼 음험한 것이 없다 251|꿈같은 인생 259|제나라의 부강을 묘사하다 262|연목구어 270|경제와 정치 276|행하면서 소유하지 않는 농민 282|백성들이 어찌 즐거이 나무 하고 풀 베랴 285|감히 천하를 위해 나서지 않았던 후세의 유생 287
양혜왕 하 297
예악을 중시하는 다스림의 도 301|옛날과 오늘날의 음악관 309|원림과 다스리는 이치 315|대국과 소국의 외교 책략 321|큰 용맹이 천하를 안정시킨다 325|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복제를 고친 조 무령왕 328|힘을 믿고 용맹을 좋아했던 진 무왕 346|항우와 유방 349|묵자가 용맹을 이야기하다 350|설궁에서 정치를 논하다 352|명당이란 무엇인가 361|과인은 재물을 좋아한다 368|「화식열전」의 일부분 375|인류 사회의 변화 순서와 인심의 추세 384|경제, 문화, 도덕의 연쇄 관계 388|과인은 여색을 좋아한다 393|추와 미 396|여색을 좋아한 이야기를 담은 시와 사 399|왕소군 사건에 관한 평어 401|당대의 오랑캐 화친 정책의 감상 403|양귀비를 변호하는 말 407|서시에 대한 역사의 시비 408|인사 행정에 관하여 410|손가감의 삼습일폐소 상주문 416|세신, 거족 가문의 출현 427|파벌 당쟁의 화 429|민주는 어렵고 법치 또한 쉽지 않다 434|성인을 의심한 재미있는 이야기 436|사용되지 못하는 것을 배우고 뛰어나지 못한 것을 사용하다 445|유생의 길, 권세 있는 사람에게 아첨하여 달라붙다 450|과거 시험을 통해 세상에 팔려 나간 지식인 454|맹자는 죽을 때까지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들었다 456|맹자의 책략, 바름으로 바로잡다 460|소진, 구변으로 열 개의 성을 되찾다 464|제나라와 연나라의 전쟁 467|소대, 제나라 왕을 평론하다 472|훌륭한 부대, 백성을 괴롭히지 않는 전쟁 474|어진 장군 조빈 477|인의의 실질과 권모술수 482|맹자가 위와 제에 있던 때의 비공식적 기록 486|제 선왕의 풍격 487|조정에는 문무 재사가 많습니다 488|이해관계에 따른 칭찬의 말 492|가난하고 미천한 사람이 교만하게 군다 494|해학의 대가 순우곤 499|전국 시대 양사의 기풍을 연 제 선왕 503|혼탁한 세상을 홀로 걸어간 맹자 506|역사의 변화가 바로 정치의 인과응보다 508|군주의 도와 신하의 절개 514|역사에서의 기층 정책 517|관리가 되어도 나쁜 짓은 하지 말라 519|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의 어려움 525|사람은 자립을 귀하게 여긴다 531|맹자가 입신처세의 원칙을 논하다 5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