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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피로 쓴 통열한 반성의 기록, 한글+한문 원문-더클래식 동양고전 컬렉션 12

원제 : 懲毖錄
시리즈 : 더클래식 동양고전 컬렉션 [6]

유성룡 저 | 더클래식 | 2015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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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5515914 / 380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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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 뒤에 환난이 없도록 조심한다(予其懲而毖後患)”는 말이 있다.(시경_詩經) 이것이 바로 내가 《징비록》을 저술한 까닭이다. KBS 특별기획 대하드라마 ‘징비록’이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드라마 ‘징비록’의 원작 《징비록》이 더클래식 동양고전 컬렉션 12번째로 소개된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당시 전쟁의 총 책임자였던 서애 유성룡이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친 전란의 원인, 전황 등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는 전쟁의 참상과 그 배경이 상세히 적혀 있고 조정에서 있었던 여...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 뒤에 환난이 없도록 조심한다(予其懲而毖後患)”는 말이 있다.(시경_詩經) 이것이 바로 내가 《징비록》을 저술한 까닭이다. KBS 특별기획 대하드라마 ‘징비록’이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드라마 ‘징비록’의 원작 《징비록》이 더클래식 동양고전 컬렉션 12번째로 소개된다. 《징비록》은 임진왜란 당시 전쟁의 총 책임자였던 서애 유성룡이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친 전란의 원인, 전황 등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는 전쟁의 참상과 그 배경이 상세히 적혀 있고 조정에서 있었던 여러 실책들을 반성하는 문장들이 쓰여 있다. 그는 후손들이 다시는 이러한 비극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이 《징비록》을 남겼으며 백성들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 씀씀이는 문장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라에 충성하고 민족의 앞날과 백성을 염려했던 서애 유성룡의 쓰라린 고백과 성찰의 문장들을 만나 보자. 국가가 유지되는 것은 인심에 의해서이다. 비록 위태롭고 곤란한 시기라도 인심이 굳게 뭉치면 국가는 편안하며, 인심이 떨어지고 흩어지면 국가는 위태롭다. 《징비록》은 국가의 명운이 달린 역사적 사건 앞에서 유성룡이 쓴 기록이다. 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잘 드러난 이 《징비록》은, 일본의 침략에 위태로운 조선을 걱정하며 탄식하는 유성룡의 고백들이 쓰여 있다. 전쟁 수행의 최고책임자로서 막중한 책임감과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한 후회의 문장들을 통해 후대에 큰 교훈을 남겨주기 위한 그의 진정성이 돋보이는 기록이다. 임진왜란 이후로도 우리나라는 그에 못지않은 외세의 침략으로 인해 치욕과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당시의 지도자를 자처했던 이들 중 그 누구도 부끄러운 과거를 반면 교사삼아 반성하고, 나라의 앞날에 경계와 충고를 해주려는 《징비록》과 같은 글을 남긴 사실은 찾기 힘들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이런 면에서 유성룡의 《징비록》은 국가의 앞날을 이끌어가는 정치인이나 중대한 책임을 맡은 리더들에게 필히 일독을 권한다. 더클래식 동양고전 컬렉션 시리즈 중 열 두 번째로 소개하는 징비록은 번역의 기준을 가급적 독자들이 편하고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원문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어를 풍부하게 사용해 번역하는 데 두었다. 또한 한글 번역문과 징비록 원문을 함께 실어 문장의 뜻을 음미하며 해석 할 수 있도록 안내되어 있다. 조선 시대 최고의 기록문학으로 평가 받는 《징비록》을 더클래식 동양고전 컬렉션으로 만나보자.

저자 소개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은 임진왜란 당시 군사와 외교에서 핵심 업무를 맡았던 문신입니다. 1542년 경상도 의성에서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의 아들로 태어나 16세에 향시에 급제했습니다.
청년기에는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공부했고 스물다섯에 문과에 급제한 뒤 중요한 관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좌의정과 병조판서를 겸하고 있었으며 다시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군사와 국방 외교에서 막중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임금의 피난, 명나라 구원병 교섭, 평양과 서울 탈환, 권율과 이순신의 발탁, 군사력을 강화 하는 일 들에서 큰 공을 세워 전쟁 중에 다시 영의정에 오르지만, 정유재란 이후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쫓겨납니다. 그 뒤에는 오로지 글쓰기에만 몰두했습니다. 1607년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호는 서애西厓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입니다.

목차

목차
특별 부록: 그림으로 보는 징비록
서문
자서
제1권
제2권
녹후잡기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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