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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산 저 | 실천문학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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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9222298 / 136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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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놋숟가락에 퍼 올린 삶의 심연 198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이강산 시인이 10년 만에 세 번째 시집을 들고 우리들을 찾아왔다. 시인으로서 삶 이전에, 소외받고 억압받는 현장에서 함께하기를 외면하지? 않은 이강산은, 이번 시집에서 돌 같은 침묵과 경청을 손에 쥐고 다시 한번 그들에게 나아간다. 강하지만 결코 외치지 않는 이 침묵은 세상을 향한 연민으로 가득하지만, 그 연민은 관조에 그치지 않고 ‘다시 한 번’이라는 충실함으로 갱신된다. 모르는 척 깊어가는 수평의 시학 1980년대 중반부터 대전, 충남지역을 중심으로 ... 놋숟가락에 퍼 올린 삶의 심연 1988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이강산 시인이 10년 만에 세 번째 시집을 들고 우리들을 찾아왔다. 시인으로서 삶 이전에, 소외받고 억압받는 현장에서 함께하기를 외면하지 않은 이강산은, 이번 시집에서 돌 같은 침묵과 경청을 손에 쥐고 다시 한번 그들에게 나아간다. 강하지만 결코 외치지 않는 이 침묵은 세상을 향한 연민으로 가득하지만, 그 연민은 관조에 그치지 않고 ‘다시 한 번’이라는 충실함으로 갱신된다. 모르는 척 깊어가는 수평의 시학 1980년대 중반부터 대전, 충남지역을 중심으로 지역문예운동과 교육운동을 이끈 이강산 시인은 30여 년 동안 말 그대로 ‘숨가쁘게’ 운동판과 삶판을 오갔다. 그에게 ‘시’란 숨이 턱턱 막히는 삶의 기진함과 함께 스러져간 존재들의 좌표를 확인시키는 이정물이자, 필시 다시 이어질 삶을 향하는 충실함에 다름 아니었다. 문학평론가 김형수가 “이강산의 시가 보여주는 풍경들은 우리가 오늘날 잃어버린 것이요. 또한 되찾아야 할 것들”이라고 평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내게 모과의 거처를 귀띔해준 대화공단근로자복지회관 경비 오 씨, 눈사람에 종종 국화 배꼽을 꽂아둔 오 씨 연탄가스를 마셨다 오늘 새벽, (중략) 어디서 눈사람 소식이라도 엿들었는지 모과 한 알이 툭, 떨어졌다 나를 겨냥한 것처럼 명치를 뚫고 지나갔다 _「가슴을 맞았다」 부분 삶이 겹겹이 쌓여갈수록, 익숙해질 때도 됐건만 시인은 세월의 주기만큼 어쩌지 못하는 모과들의 추락에 맨몸으로 맞선다. 과거 그 아픔을 직설적, 고발적, 선언적으로 드러냈다면, 이제 시인은 충분한 거리를 두고 ‘모르는 척’ ‘깊어가는’ 고백을 행한다. 그러나 이 ‘척’에는 필시 무엇을 숨기고 있다. 그것은 무기력함과 외면을 뒤에 숨긴 채 태연한 태도로 후퇴하는 것이 아니다. “맨발로 넘은 만악(萬嶽)의 여정 끝이 저 열무비빔밥이라는/한 입, 한 입 침묵”(「돌」)으로 삶을 퍼 올리는 무한한 집념을 시인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동쪽 호숫가 신하동, 홀아비 김 형은 오늘 저녁도 양은 주전자에 고구마를 삶으려는가. 뒤란 모과나무 아래엔 모과뿐이다. 어제보다 서너 알 늘었는가 싶고 줄어든 것도 같다. 구태여 셀 까닭이 없다. 어차피 속 뒤집어진 김 형에겐 찬밥인 놈들. (중략) 호수에 핏줄을 댄 나무들처럼 김 형의 날숨에선 사계절 물안개가 핀다. 그것도 주목할 일이지만 반쪽뿐인 폐가 그렁그렁 흘린 눈물이려니, 생각하면 왼쪽 가슴이 아프다. 떨어지는 모과를 다 받아 마셨는지 호수는 온통 물뿐이어서 눈물이 난다. 삶은 고구마 속 같은 눈물이 난다. 호수는 모르는 척 깊어가는 중이다. ._「고구마 누룽지」 부분 특히 이번 시집에는 호수와 저수지, 그리고 바다의 이미지가 내내 가로지르고 있는데, 이는 흘러와 고여 있는 존재에 대한 경청과 침묵을 상징하면서 시인 이강산의 ‘모과’들을 향한 느린 포옹을 보여준다. ‘떨어지는 모과를 다 받아 마시’면서도 “내 밑바닥 드러낼 수 있는”(「무녀리」), 그러면서도 “지름길이 없어 누구라도 숫돌처럼 살점 잘라내고서야 간신히 닿는”(「호수 여인숙」) 호수는 시인에게 미래도 과거도 없는 카이로스적 시간의 결들을 함축한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고스란히 수평이라는 심연을 만들며 흐르고 있다. 현재 이강산 시인은 사진작가로서도 활동하며 흑백사진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을 가졌다. 그의 사진작업은 ‘시의 수묵화’로 그 자신이 표현하듯, 이번 시집에서 구현하는 의미를 반복, 확장하고 있다. 묵언의 바다 같은 암실 속 사진 작업과 독거와 침묵을 통해 언어의 절제와 여백의 미를 보여주는 이번 시집은 앞으로 이강산의 시 세계가 빠름이 아니라 느림을, 채우기가 아니라 비우기를 향해 걸어갈 것임을 예시한다. §. 추천의 글 이강산의 시는 어둠을 문질러 돋아나는 싸라기별처럼 맑고 차다. 눈에 띄는 대로 “북향으로 새 乙 새 乙” 새겨진 그의 시 한편 읽어보니, 행간에 묻어놓은 적막과 삶의 기척이 꼭 반반이다. 그런데 “개도 모과도 문자도” “고드름 주렁주렁한 대설”뿐인 이 핍진한 세상, 대체 그는 어디서 이 도저한 그리움의 시들을 휘몰아오는 걸까. 그는 욕망이 지배하는 ‘속도’와 ‘직진’을 버리고 애써 ‘곡선의 길’을 걷는다. 돌아가는 것, 가다 멈칫하는 것, 가다 뒤돌아보는 것, 그런 머뭇거림과 더딤의 행보가 생이고 거기에 시가 있다고 믿는다.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모과’나 ‘동쪽 호수’도 그 길에 있겠고, 어릴 적 그가 “붉게, 맑게 기다리”던 그의 아버지도 필시 그 길을 다녔을 터. 그는 그런 삶의 허기를 놓치지 않고 찰칵, 시를 찍는다. 빼어난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흑백으로 사진을 찍고 거기에 시의 색을 입힌다. 그렇게 서정을 앉히고 풍경을 응축하는 그가 참 부지런하고 활달해 보인다. 언젠가 우리 집에 와서 나를 마당가에 쪼그려 앉혀놓고 ‘시’ 한 장 찍자고 할 때처럼. _ 송찬호(시인) §. 시인의 말 나는 아버지의 분재(盆栽)였다. 아버지는 지극정성으로 내게 물밥을 떠먹여주었다. 수령 56년, 이제 아버지가 원하는 만큼의 수형이 잡혔을까. 오늘 아침, 나의 분재에서 꽃이 피었다. 장돌림 아버지보다 튼튼한 역마 한 마리 끌고 세상을 떠도는 사이 첫 시집을 내고, 10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내고, 하필, 또 10년 만에 세 번째 시집을 낸다. 첫눈이 하필 흰색인 까닭은 첫눈 맞는 대추를 보고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시집과 시집의 사이, 대체 그 10년이란 무엇인지. 봄여름가을겨울 물 밥상 차려 올린 내게 앙가슴을 열어준 풍로초 한 송이……. 10년이란 오늘 아침 눈을 뜬 꽃만 같다. 나무를 닮은 풀 한 포기 화분에 담아 10년을 살폈더니 비로소 나무가 되었다. 그 느려터진 세월의 뒤안에서 나도 나무가 되려는지 낡은 팔다리에서 싹이 돋는다. 어쨌거나 사람이라는 나무라면 다행이겠다. 아껴 먹은 햇살 몇 술 간장 종지에 담아두고 집 밖으로 나선다. 늦기 전에 바다의 숲을 한 바퀴 돌아야겠다. 길은 늘 아버지가 걸었던 그 길, 익숙한 초행이 즐겁다. 2014년 겨울 이강산

저자 소개

1959년 충남 금산에서 태어나 1989년 《실천문학》(시), 2007년 《사람의문학》(소설)으로 등단했다. 시집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물속의 발자국』『모항母港』, 소설집 『황금 비늘』, 명상기행 사진집 『동행冬行』이 있다.
2007년 제1회 흑백사진 개인전 〈가슴으로 바라보다〉(Gallery Photo Class), 2012년 제2회 흑백사진 개인전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다〉(Gallery LUX), 2010년 6인 기획 초대전 〈Happy & Unhappy〉(Gallery NOW) 외 다수의 그룹전을 가졌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과 대전문화재단 예술창작기금을 받았다.



 

머리말

나는 아버지의 분재(盆栽)였다.
아버지는 지극정성으로 내게 물밥을 떠먹여주었다.
수령 56년,
이제 아버지가 원하는 만큼의 수형이 잡혔을까.

오늘 아침, 나의 분재에서 꽃이 피었다.

장돌림 아버지보다 튼튼한 역마 한 마리 끌고 세상을 떠도는 사이
첫 시집을 내고,
10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내고,
하필, 또
10년 만에 세 번째 시집을 낸다.

첫눈이 하필 흰색인 까닭은 첫눈 맞는 대추를 보고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시집과 시집의 사이, 대체 그 10년이란 무엇인지.

봄여름가을겨울 물 밥상 차려 올린 내게 앙가슴을 열어준 풍로초 한 송이…….
10년이란 오늘 아침 눈을 뜬 꽃만 같다.

나무를 닮은 풀 한 포기 화분에 담아 10년을 살폈더니 비로소 나무가 되었다.
그 느려터진 세월의 뒤안에서 나도 나무가 되려는지 낡은 팔다리에서 싹이 돋는다.
어쨌거나 사람이라는 나무라면 다행이겠다.

아껴 먹은 햇살 몇 술 간장 종지에 담아두고 집 밖으로 나선다.
늦기 전에 바다의 숲을 한 바퀴 돌아야겠다.
길은 늘 아버지가 걸었던 그 길,
익숙한 초행이 즐겁다.
2014년 겨울
이강산

책 속에서

모항(母港)

바다는 모두 떠나보내고 일몰만 남겨두었다
바다는 잘 익은 감빛이다

겨울 바닷바람에 떨며
나는 저 바다의 숲 왼쪽 모퉁이에 감나무 한 그루 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감나무 아래 장독대가 있고 앞바퀴가 휘어진 자전거 옆에 쭈그려 앉은 사람이 어머니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나는 방바닥으로 뚝뚝 햇살 방울이 듣는 붉은 기와집, 옛집 풍경의 갯벌 속으로 빠져들 것이고
그러면 엊그제 마지막 남은 앞니를 뺀 어머니가 나를 향해 무어라 중얼거릴 것이다

보일듯 말듯, 한 번도 골짜기를 보여주지 않는 바다
한 번도 골짜기를 들여다보지 못한 어머니

그러나 뒤꼍 귀뚜라미 울음 같은, 그 어렴풋한 말이 무슨 말이든 나는 다 알아들을 것이므로
짐짓 못 들은 척 감나무만 바라보다가
나 홀로 서해까지 달려온 내력이라도 들킨 것처럼 코끝이 시큰해지다가

우우우,
원순모음이 새나오는 어머니의 닭똥구멍 같은 입 속으로 피조개빛 홍시 몇 알 들이밀 것이다

―마포에서 탈출한 곰소 남자, 생의 절반을 잘라냈어요
―지금쯤 청양 외딴집의 여자 가수는 밤바다를 노래하고 있을 거예요
―다들 감나무만 바라보고 있을 거예요

바다는 일몰마저 떠나보내고 혼자 남았다
나는 저 바다의 숲 어딘가 틀림없이 감나무 한 그루 서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죽순(竹筍)

비가 그쳤다

계룡산 기슭에서 아내가 나어린 죽순을 캐왔다
애송이들 품고 오느라 작은 젖이 다 젖었다

젖은 젖은 아랑곳없이 껍질 벗기자 껍질뿐이다
껍질 쓸어 담는 아내의 손가락이 댓가지를 닮았다

나는 숨죽여 무릎을 쳤다

아내는 비가 마른 지 오래되었고 죽순은 비가 막 그쳤을 뿐이었다


돌

신포우리만두 열무비빔밥에 돌 여섯이 둘러앉았다
생강, 마른 수세미, 구부러진 못
닮았다

눈 맞고 별 맞고 인간에도 얻어맞아 저 곡선 얻었을 터
살 닿으면 자갈자갈 흉터들이 터질 듯하다

어느 명장이 먹줄을 때렸는지 둥근 몸의 주름살이 등고 선처럼 곱다
까마득히 깊다

저 겹겹 속으로
귀뚜라미가 울고 쌍둥이가 떠나고 뽕나무가 자라고
여기까지 떠내려온 물결 같은 길이 흐르고, 그리하여

돌 같은 침묵이다
맨발로 넘은 만악(萬嶽)의 여정 끝이 저 열무비빔밥이라는 듯
한 입, 한 입 침묵이다

목차

목차
제1부 나무 기러기|매미|구절사|붉은 눈|사슴을 태우고|빙어|모항(母港)|무녀리|호수 여인숙|지상의 첫 걸음|개미 경전|모과가 붉어지는 이유|겨울, 여름 나무 아래서|원|진흙밭|느린 우체통
제2부 저수지|문병 가슴을 맞았다|돌|고구마 누룽지|호수 가정식백반|달력|젓가락|그물|머리카락 숫돌|웃다|쑥색|약|절|문신|연탄구멍을 맞춘다|평화쥐약이라도 나는 좋은 것이다|도둑 숨
제3부 쌀밥|월담|기찻길 옆 오막살이|눈사람의 나이테|맨밥|살색은 살색이 아니다|분홍입술흰뿔소라|호수를 위하여|똥 누고 가는 새|채송화|감|살|나무|직선 옷 한 벌 입고 싶다는 생각|모과|허공을 끌고|몰래 몰래
제4부 죽순(竹筍)|고추잠자리|머리 긴 놈|장독대|흑백 사진사|생닭|콩밭을 지나며|소나기|밤|신탄진 시장 닭집엔 기차가 산다|송사리|매실|느림에 묶이다|아카시아|아……
해설 김수우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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