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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5641094 / 216쪽 128 x 1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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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100년 전 미국으로 떠난 한국인 천재 유학생 김동성 그의 눈에 비친 아메리카의 풍경 ㆍ 1916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에서 발간한 영문 단행본 Oriental Impressions In America의 우리말 번역 수록 ㆍ 1918년 한국어 일간신문 ≪매일신보≫에 연재한 [미주의 인상] 현대어역 수록 한 조선 청년이 뉴욕 항에 도착했다. 개성에서 출발해 아시아, 유럽 대륙을 거쳐 사우샘프턴에서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다. 1909년, 그의 나이 스무 살이었다. 기나긴 항해의 끝, 저 멀리 맨해튼의 높은 빌딩... 100년 전 미국으로 떠난 한국인 천재 유학생 김동성 그의 눈에 비친 아메리카의 풍경 ㆍ 1916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에서 발간한 영문 단행본 Oriental Impressions In America의 우리말 번역 수록 ㆍ 1918년 한국어 일간신문 ≪매일신보≫에 연재한 [미주의 인상] 현대어역 수록 한 조선 청년이 뉴욕 항에 도착했다. 개성에서 출발해 아시아, 유럽 대륙을 거쳐 사우샘프턴에서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다. 1909년, 그의 나이 스무 살이었다. 기나긴 항해의 끝, 저 멀리 맨해튼의 높은 빌딩 무더기를 바라보며 이 조선 청년은 어떤 꿈을 품었던 것일까. 그의 이름, 김동성. 약관의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10년의 유학을 마치며 한 권의 책을 영문으로 출간했다. Oriental Impressions In America. 우리말로 옮기면 『동양인의 미국 인상기』다. 신시내티의 아빙돈 출판사(The Abingdon Press)에서 1916년에 ‘Dong Sung Kim’이라는 저자명으로 발간된 이 책은 한국인 최초로 발간한 영문 단행본으로 기록되고 있다. 미국 유학생 이승만과 노벨문학상 후보로 오른 강용흘보다도 한 걸음 앞섰던 것이다. 김동성은 이 책에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인상을 재치 있고 명랑한 어법의 글과 그림으로 담았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서고에서 빛바래가던 이 책을 우리말로 옮겨 세상에 꺼내놓는다. 근대 조선의 서양관, 근대 지성의 재발견 『미주의 인상』이라는 이 책의 제목은 1916년 미국에서 발간된 영문 단행본 Oriental Impressions In America를 저자 김동성이 직접 우리말로 옮긴 말이다. 김동성은 귀국 후인 1918년 2월, 당시 한국어 일간신문이었던 ≪매일신보≫ 에 자신이 미국에서 펴낸 책의 일부를 국한문체로 직접 번역해 5회에 걸쳐 연재했다. 당시의 연재명이 바로 ‘미주의 인상(米洲의 印象)’이었다. 그리하여 저자 스스로가 우리말로 번역한 이 말 『미주의 인상』이 책제목으로 선택되었다.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제1부에 Oriental Impressions In America, 우리말로 옮기면 『동양인의 미국 인상기』를 영어에서 현대 우리말로 옮겨 실었고, 제2부에 1918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을 당시 국한문체에서 현대 우리말로 옮겨 수록했다. 이 제2부는 저자 자신의 번역을 수록하고 있어 번역사에도 가치 있는 자료이다. 제3부는 1916년 영문 책자가 출간되었을 당시 미국 언론에 실린 서평을 영어에서 우리말로 옮겨 실었으며, 이 책의 번역자이자 해설자인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황호덕 교수의 해제를 덧붙였다. 또한 김동성이라는 인물을 재조명하기 위해 그의 유학과 삶의 궤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사진 및 그림을 본문 앞쪽에 배치했다. 이 도판들 가운데에는 저자가 안창호에게 보낸 서신이나 1921년 저자가 ≪동아일보≫ 기자 시절에 한국인 최초로 국제기자대회에 참석해 부의장에 피선되고 미국의 대문호 허버트 조지 웰스와 찍은 사진같이 희귀한 도판들도 수록되어 있다. 제1부에 수록한 『동양인의 미국 인상기』(1916)의 대체적인 내용은 동서 비교 문화론에 가깝다. 의식주를 비롯한 미국의 생활문화, 미국인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생각과 현실, 여성과 가정에 대한 관찰, 대학 생활의 편린들, 정치와 언론 등 공공 영역에 대한 평가 등 조선이라는 세계의 변방, 식민지에서 온 한 동양인 청년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땅에서 경험한 일들과 문화적 섭취들이 담담하고도 재치 있게 표현되어 있다. 1910년대 근대로의 입구에 서 있던 한국인이 가질 법한 미국관, 서양관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양성 평등이나 민주적 가치, 자유로운 개인과 언론의 중요성, 도서관 문화로 대표되는 교양을 강조하는 등 서구화된 근대지성의 원형을 살펴볼 수 있는 점도 의미가 깊다. 미국은 무엇이고, 미국인은 누구인가 조선 청년 김동성의 눈에 비친 아메리카의 풍경은 어땠을까. 『동양인의 미국 인상기』의 몇몇 장을 살펴보면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인 미국을 경험한 조선 청년의 고뇌를 읽어낼 수 있다. “미국의 자유는 과거든 현재든 가장 부러운 것이었다. 법원이건 개인이건, 아무리 잘못된 행동이라도 남들을 짓밟거나 이용해먹은 적이 없다. 구두닦이에게도 상류층 사람이나 백만장자만큼의 자유가 있다”(103쪽)는 대목이나, “미국이 공화국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나라의 최고 책임자를 4년마다 선출하는 일이 가능하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 그는 완전히 사심 없는 동기를 지닌 국민의 심부름꾼에 불과했다. … 우리는 하인을 대를 물려가며 두는 데 익숙했는데, 그는 동등한 능력을 가진 다른 이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난다(99쪽)는 대목에서는 조선의 전근대성과 비교되는 미국의 선진 정치문화를 경험하면서 그가 느꼈을 법한 안타까움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러나 먼 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 해서 미국의 모든 면모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또 다른 장에서는 “왜 남성들이 투표권처럼 사소한 것을 여성들에게 내주기를 주저하는지, 도저히 모를 일이다. … 몇몇 여성은 소위 ‘자격이 충분한’ 정치가들보다 공직에 더 적합하다. 이런 점에서 몇몇 남성은 밥줄을 잃게 될까 두려워했다”(85쪽)며 비난 없는 질책을 서슴지 않으며, “이웃보다 조금 더 재산이 많은 이가 있다면, 동네에서 제일가는 미녀가 그를 먼저 선택한다”면서 미국의 자본주의 속물성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입담을 펼쳐놓는다. 이 책의 ?서문?을 써준 ≪신시내티 인콰이어러≫ 편집장의 말을 빌리자면, 김동성의 글쓰기는 “기발하고 건전한 유머를 통해 … 정확한 판단과 안목으로 서양 문명을 실제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 그의 재치는 인유, 즉 패러디에서 기인한다. 김동성은 자신이 영문 고전의 정격적 문장들로부터 자양분을 얻고 그것을 변형해 스스로의 감상과 관점을 전달한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명랑하고 유쾌하며 재미있다. 한 세기 전에 고루한 조선인이 쓴 한문체 글을 상상한다면 오산이다. 한국 3대 기자로 꼽히는 김동성,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서 한국에서 북감리교 선교사로 20년간 활동했던 조지 허버 존스는 ≪세계 전망≫에 『동양인의 미국 인상기』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한국인은 …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간다면, 턱 밑에서 잡아매는 운두 높은 모자를 다시 쓰고 선조들의 나라에 대한 평화로운 만족에 잠겨 안주하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과연 고국에 돌아온 김동성은 자신의 재능과 지성을 유감없이 발휘해 근대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먼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그은 식민지가 된 조선의 현실을 마주하고 언론인의 길을 가기로 작정한다. 1920년 ≪동아일보≫ 창간 당시에 기자로 입사한 그는 창간 축사를 받기 위해 베이징에 특파되는데, 이로써 그에게 두 번째 한국인 최초의 기록이 붙게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특파원.’ 그는 ≪동아일보≫ 창간 기자로서 창간호 1920년 4월 1일자 3면에 만평을 그렸으며, 1920년 4월 11일자부터는 직접 그린 4칸 만화를 싣는 등 우리나라 언론사상 최초로 4칸 만화를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그 다음해인 1921년 10월에는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제2차 만국기자대회에 조선 대표로 참석해 부의장에 피선되어 한국 최초의 국제기자대회 참석자라는 기록도 갖게 된다. 그 후로 ≪조선일보≫ 편집인 겸 발행인, ≪조선중앙일보≫의 편집국장으로 활약했고, 해방 후에는 오늘날 ≪연합뉴스≫ 의




목차
『미주의 인상』을 펴내며
사진으로 보는 천리구 김동성
제1부 김동성의 『동양인의 미국 인상기』(1916)
감사의 말 | 머리말 | 서문 | 우리의 미국 여행 | 도시 | 시골 생활 | 교회 다니기 | 미국의 가정 | 춤 | 자동차 | 옷 | 개구리 다리 | 사고 | 우편배달부 | 사랑 | 여성 참정권 | 대학 사교 모임 | 대학 생활 | 야구 | 풋볼 | 대통령 | 남부 | 자유 | 유명한 미국인들 | 작가들 | 공공 도서관 | 신문
제2부 ≪매일신보≫의 <미주의 인상>(1918)
도미 | 시가지 | 도서관 | 의복 | 음식
제3부 『동양인의 미국 인상기』에 대한 미국 언론 리뷰
≪캔자스시티 스타≫ | ≪보스턴 저널≫ | ≪아이다호 스테이츠먼≫
해설
문화번역가 천리구 김동성, 그 동서 편력의 첫 화첩
한국인 최초의 영문 단행본 『동양인의 미국 인상기』에 대해 | 황호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