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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3년의 북경 외교 인조 책봉주청사 이민성의 조천록(朝天錄)

이민성 저 | 대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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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6908324 / 332쪽 152 x 225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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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2014 우수출판콘텐츠 선정 도서 인조 책봉주청사 이민성 일행의 만 14개월간의 피말리는 외교 활동과 흥미진진한 중국 풍물이야기 이 책은 1623년 3월, 인조반정 후 명나라에 인조 책봉을 요청하기 위하여 사신으로 갔던 이민성(李民宬) 일행의 여행 견문과 북경에서의 활동을 기록한 일기 「조천록(朝天錄)」의 국역본이다. 조선 왕조에서는 새 임금이 즉위하면 의례히 명나라에 ‘조선국왕’의 책봉을 요청하였고, 명은 군말 없이 책봉 교서와 고명(誥命 : 임명장)을 발급해 주었다. 그러나 인조는 반정으로 즉위하였기 때문에 명 조... 2014 우수출판콘텐츠 선정 도서 인조 책봉주청사 이민성 일행의 만 14개월간의 피말리는 외교 활동과 흥미진진한 중국 풍물이야기 이 책은 1623년 3월, 인조반정 후 명나라에 인조 책봉을 요청하기 위하여 사신으로 갔던 이민성(李民宬) 일행의 여행 견문과 북경에서의 활동을 기록한 일기 「조천록(朝天錄)」의 국역본이다. 조선 왕조에서는 새 임금이 즉위하면 의례히 명나라에 ‘조선국왕’의 책봉을 요청하였고, 명은 군말 없이 책봉 교서와 고명(誥命 : 임명장)을 발급해 주었다. 그러나 인조는 반정으로 즉위하였기 때문에 명 조정에서는 이를 쿠데타에 의한 왕위 찬탈로 인식하여 책봉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민성 일행은 북경에서 인조반정의 실상을 해명하고 책봉을 얻어내기 위해 그야말로 피눈물나는 외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들은 온갖 수모를 받으며 6개월간에 걸친 치열한 노력과 끈질긴 로비로 책봉을 인가받을 수 있었다. 조선시대 중국과의 외교에서 이때처럼 어려운 적은 없었고, 모든 사신들 중에서 이들만큼 사활을 걸고 투쟁한 적도 없었다. 이 책은 당시의 눈물겨운 노력 끝에 이룬 값진 외교 성과를 보여 주고 있다. 이민성의 「조천록」은 조선 중기 한·중 외교사에 핵심이 되는 중요한 사료이며, 만 1년이 넘는 여행 과정에서 보고 들은 흥미진진한 중국 풍물과 여러 가지 에피소드는 문학적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 조선 후기의 수많은 연행록들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전통시대의 한·중 불평등 외교 체제와 조선 사신들의 피땀 어린 외교 투쟁을 보여 주는 자료로서, 오늘날 한반도 주변 4강을 비롯한 강대국들과의 외교에서 우리가 어떠한 정신과 협상력을 발휘해야 하는지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저자 소개

이민성(李民宬)
1570년(선조 3)∼1629년(인조 7), 조선 중기의 문신. 경상북도 의성 출신으로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관보(寬甫), 호는 경정(敬亭). 1597년(선조 30) 정시(庭試) 문과에 급제, 승문원 부정자, 박사, 승정원 주서(注書) 등을 역임하였다. 1602년(선조 35) 왕세자 책봉주청사 서장관으로 북경에 갔다가 이듬해에 귀환하여 예조 병조 좌랑을 지냈다. 1613년(광해군 5) 예조 정랑, 홍문관 교리를 지내며 폐모론을 비판하여 파직되었다. 이듬해 홍문관 부수찬으로 복직되었으나 다시 파직된 후 낙향하여 성리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 책봉주청사 서장관으로 북경에 파견되어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였다. 1624년에 북경에서 돌아와 성균관 사성 겸 사헌부 집의에 임명되었다. 1625년 동부승지로 승진하였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는 경상좌도 의병대장이 되었다. 다시 좌승지를 지내고, 1629년 형조 참의가 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그해 8월 15일 병으로 작고하였다. 1672년(현종 13) 장대서원(藏待書院)에 제향되었다. 현재 1000여 수의 시가 전해지며, 문집으로 『경정집(敬亭集)』이 있다.

역자 소개

  • 역자 :
이영춘(李迎春)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대학원 문학박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연구편찬실장 역임
한중역사문화연구소 소장(현)

정진석(鄭鎭錫)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연수과정
국사편찬위원회 근무, 심원고전연구소 운영

강한규(姜漢奎)
부산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LG그룹 부장, 동진전원 이사 역임, 한자학(漢字學) 연구

원재연(元載淵)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동 대학원 문학박사
수원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역임
덕성여대 역사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이미선(李美善)
한신대학교 국사학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학원 문학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한신대학교 강사

책 속에서

 

 

목차

목차
서 문
「조천록(朝天錄)」 해제(解題)
조천록(朝天錄)
1 서장관에 임명되어 여행 준비를 하다
2 서울을 출발하여 평안도 선사포에 이르다
3 험난한 항해 끝에 중국 등주(登州)에 이르다
4 등주에서 군?문(軍門)을 설득시키고 봉래각(蓬萊閣)을 유람하다
5 등주에서 제남(濟南)으로 이동하여 선박 지급 증서를 받다
6 제남에서 대운하의 요충지 덕주(德州)에 이르다
7 덕주에서 배를 타고 천진(天津)에 이르다
8 천진에서 육로로 북경에 이르다
9 북경 각 아문을 찾아 피 말리는 외교전을 벌이다
10 외교전이 교착 상태에 빠지다
11 최후의 외교 투쟁을 벌이다
12 드디어 책봉을 인가받고, 북경 각지를 유람하다
13 북경을 출발하여 귀국길에 오르다
14 등주에서 배를 타고 선사포로 돌아오다
15 선사포를 출발하여 서울로 귀환하다
부록 | 사신(使臣)들의 보고 문서
책봉 전례를 빨리 시행해 주기를 청하는 주본(奏本)
황제에게 올리는 주문(奏文)의 초고 수정을 청하는 계본(啓本)
관소에서 올린 비밀 장계
또 관소에서 올린 비밀 장계(옥하관 비밀 장계(玉河館?密狀啓))
책봉이 완결된 일을 선발대 편에 보내는 장계
별도로 올린 장계(별장계(別狀啓))
모 도독(毛都督)에게 보낸 문서
등주(登州)에서 올린 장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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