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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 시집

시리즈 : 연암서가 고금문총 [2]

도연명 저 | 김창환 역 | 연암서가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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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4054612 / 320쪽 / 550g / 152 x 225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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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연암서가 고금문총(古今文叢)은 옛 글 가운데 오늘에도 여전히 읽힐 수 있는 ‘고전’을 엄선하여 펴내는 ‘새로운’ 고전읽기입니다. 중국 고전 시가를 대표하는 시인 도연명, 지조를 지키며 현실?적 삶에 번민하는 자신을 그리다 도연명은 동진(東晉)에서 송(宋)으로 왕조가 교체되는 혼란한 시대를 살면서도 자신의 개성과 지조를 곧게 견지했던 사람이다. 그것은 중국의 양대 사상인 유가(儒家)와 도가(道家)로부터 각각의 장점을 계승하고 조화해 낸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유가적 소양을 닦았고 전원으로 돌아간 후... 연암서가 고금문총(古今文叢)은 옛 글 가운데 오늘에도 여전히 읽힐 수 있는 ‘고전’을 엄선하여 펴내는 ‘새로운’ 고전읽기입니다. 중국 고전 시가를 대표하는 시인 도연명, 지조를 지키며 현실적 삶에 번민하는 자신을 그리다 도연명은 동진(東晉)에서 송(宋)으로 왕조가 교체되는 혼란한 시대를 살면서도 자신의 개성과 지조를 곧게 견지했던 사람이다. 그것은 중국의 양대 사상인 유가(儒家)와 도가(道家)로부터 각각의 장점을 계승하고 조화해 낸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유가적 소양을 닦았고 전원으로 돌아간 후에는 도가적 가르침을 생활 속에 실천하였는데 특히 장자(莊子)의 영향이 지대하였다. 도연명의 시를 읽다 보면 편마다 구절마다 장자를 만나게 된다. 도가의 가르침은 도를 체득하고 그에 따라 사는 것, 바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도연명은 소요유의 경지이자 삶의 터전인 전원에서 직접 농사지으면서 도가의 가르침에 따라 살았고 그 감회와 깨달음을 시로 형상화해 내었다. 대자연의 변화에 대한 순응, 옳고 그름을 따지는 부질없음에서의 초월, 생사의 문제에 대한 달관 등을 드러낸 그의 시들은 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르침과 위안을 동시에 제공하였다. 그리하여 도연명의 삶과 그가 남긴 작품은 혼란한 시대, 가치관이 사라진 시대에 사람들이 이성을 잃지 않고 참된 자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지표가 되었다. 『문선(文選)』을 엮은 것으로 유명한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소명태자(昭明太子) 소통(蕭統, )은, 도연명이 죽고 100여 년이 지난 뒤에 도연명의 시문을 모으고 교감하여 『도연명집(陶淵明集)』을 편찬하였다. 그 내력을 기록한 ‘서문’에서 그는, “도연명의 글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자가 있다면, (명예와 이익을) 좇으며 다투는 마음이 버려질 것이다(有能觀淵明之文者, 馳競之情遣)”라고 하였다. 도연명의 시가 물욕에 이끌려 길[도(道)]을 헤매는 사람들에게 앞길을 비춰주는 빛이 될 것임을 선언한 말이다. 소통의 말대로 도연명의 시를 공부하면 인간의 탐욕을 억제할 수 있고 부질없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지혜와 현실의 각박함을 초탈하는 아량을 지닐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 소개

도연명(陶淵明)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명확하지 않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심약(沈約)의 ≪송서(宋書)≫에 근거해 도연명의 향년을 63세로 보았다. 그러나 여러 자료를 참고할 때 최근 위안싱페이 교수가 주장한 76세설이 가장 타당하다.
도연명은 영화(永和) 8년, 서기 352년에, 현재 장시성(江西省) 주장시(九江市) 인근인 심양(瀋陽) 시상(柴桑)에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 도간(陶侃)은 대사마(大司馬)를 지내고 장사군공(長沙郡公)에 봉해진 동진의 개국 공신이었고, 할아버지는 태수(太守)를 지냈으며, 외할아버지는 당시의 명사로 알려진 맹가(孟嘉)였지만 도연명에 이르러서는 집안이 몰락했다. 어려서부터 빈한해 직접 생업에 힘써야 했지만, 독서를 좋아해 유가와 도가의 경전은 물론이고 ≪산해경(山海經)≫ 같은 이서(異書)까지 즐겨 읽었다. 
태원(太元) 5년(380), 비로소 출사의 기회가 주어져 주좨주(州祭酒)로 부임하지만 며칠 만에 그만두고서 귀가해 버렸다. 이후 주(州)에서 주부(主簿)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이후 근 20년에 달하도록 은거하다가, 398년 47세에 군벌인 환현(桓玄, 369∼404)의 막하에 들어갔는데, 머잖아 모친상으로 귀가했다. 404년 53세에 유유(劉裕)의 참군(參軍)이 되고, 405년에는 유경선(劉敬宣)의 참군으로 옮겼다. 그가 군벌의 막하에 들어간 것이 자의였는지 타의였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시기의 작품에는 불편한 심사가 가득 넘쳐 나고 있어, 자신의 처지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얼마 후 팽택(彭澤)의 현령(縣令)으로 부임하지만, 군(郡)에서 파견한 관리를 깍듯이 모시라는 말에 “나는 다섯 말의 쌀 때문에 저 시골의 애송이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我豈能爲五斗米折腰向郷里小兒)”라 하고, 80여 일 만에 그만두고 <귀거래사>를 부르면서 전원으로 영원히 돌아가 버렸다.
의희(義熙) 2년(406) 이후 도연명은 다시 농부로서의 삶을 그런대로 평온하게 영위해 나갔다. 408년 57세에 화재가 나서 전 재산을 잃고, 조각배 속에서 생활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생활 형편이 어려워지고 병마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꿋꿋하게 전원에서 농사를 지으며 시를 창작하는 생활을 이어 갔다. 411년 도연명이 60세가 되던 해, 예전의 상관인 유유가 태위(太尉)가 되어 실권을 장악했고, 도연명을 저작랑(著作郞)으로 임명했으나 병을 이유로 거절했다. 또 이 무렵 안연지와 약 1년 동안 교유했다. 420년, 도연명이 69세가 되던 해 유유는 마침내 칭제해 송(宋)을 개국했다. 당시 권세가 단도제(檀道濟, ?∼436)의 회유적인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등, 시종일관 새로운 왕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만년에는 극심한 가난과 병마에 고생하면서도 <걸식(乞食)>과 <자제문(自祭文)> 등을 쓰면서 죽음을 의연히 맞아들였다. 원가(元嘉) 4년(427), 76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역자 소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수원에서 유가 경전과 제자백가 등을 공부한 뒤에 서울대학교 대학원 중어중문학과에서 중국 고전 문학을 전공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중국어 교사 특별 양성 과정에서 초빙 교수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중국어문학연구소에서 책임연구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중문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도연명의 사상과 문학』, 『중국의 역대 명문 24선』, 『중국어 유래 어휘 사전』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장자』 내편, 『장자』 외편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陶詩의 『莊子』 思想 受用 樣相」, 「『五經算術』 初探」, 「『論語』를 통해 살핀 孔子의 敎授法」 등이 있다. 

목차

목차
머리말
「먹구름(停雲)」 1수 및 서문
「계절의 운행(時運)」 1수 및 서문
「무궁화(榮木)」 1수 및 서문
「장사공에게 증정함(贈長沙公)」 1수 및 서문
「정채상에게 드리는 답시(酬丁柴桑)」 1수
「방참군에게 보내는 답시(4언) [答龐參軍(四言)]」 1수 및 서문
「농사를 권장함(勸農)」 1수
「아들에게 자(字)를 지어 주면서(命子)」 1수
「돌아온 새(歸鳥)」 1수
「몸과 그림자와 정신(形影神)」 3수 및 서문
「몸이 그림자에게 줌(形贈影)」
「그림자가 몸에게 대답함(影答形)」
「정신의 풀이(神釋)」
「9월 9일에 한가로이 지내면서(九日閑居)」 1수 및 서문
「고향집에 돌아옴(歸園田居)」 5수
「고향집에 돌아옴(歸園田居)」 제1수
「고향집에 돌아옴(歸園田居)」 제2수
「고향집에 돌아옴(歸園田居)」 제3수
「고향집에 돌아옴(歸園田居)」 제4수
「고향집에 돌아옴(歸園田居)」 제5수
「사천에 나들이하면서(遊斜川)」 1수 및 서문
「주속지, 조기, 사경이 세 사람에게 보임(示周續之祖企謝景夷三郞)」 1수
「걸식(乞食)」 1수
「여러 사람들이 함께 주씨 집안 선영의 잣나무 밑에서 놀면서(諸人共遊周家墓栢下)」 1수
「원가행 체의 초나라 곡조로 방주부와 등치중에게 보여줌(怨詩楚調示龐主簿鄧治中)」 1수
「방참군에게 보내는 답시(5언)[答龐參軍(五言)]」 1수 및 서문
「5월 초하루 아침에 지어 대주부의 시에 화답함(五月旦作和戴主簿)」 1수
「연일 오는 비에 혼자 술을 마시며(連雨獨飮)」 1수
「이사(移居)」 2수
「이사(移居)」 제1수
「이사(移居)」 제2수
「유채상의 시에 화답함(和劉柴桑)」 1수
「유채상에게 드리는 답시(酬劉柴桑)」 1수
「곽주부의 시에 화답함(和郭主簿)」 2수
「곽주부의 시에 화답함(和郭主簿)」 제1수
「곽주부의 시에 화 답함(和郭主簿)」 제2수
「무군장군 왕홍(王弘)이 마련한 자리에서 객을 전송함(於王撫軍座送客)」 1수
「은진안과 헤어지면서(與殷晋安別)」 1수 및 서문
「양장사에게 증정함(贈羊長史)」 1수 및 서문
「세모에 장상시의 시에 화답함(歲暮和張常侍)」 1수
「호서조의 시에 화답하여 고적조에게 보여줌(和胡西曹示顧賊曹)」 1수
「사촌 동생 중덕을 슬퍼함(悲從弟仲德)」 1수
「처음으로 진군장군의 참군이 되어 곡아를 지나면서(始作鎭軍參軍經曲阿)」 1수
「경자년 5월 중에 도성으로부터 돌아오는데 규림에서 바람에
막혀 있으면서(庚子歲五中從都還阻風於規林)」 2수
「경자년 5월 중에 도성으로부터 돌아오는데 규림에서 바람에 막혀 있으면서(庚子歲五月中都還阻風於規林)」 제1수
「경자년 5월 중에 도성으로부터 돌아오는데 규림에서 바람에 막혀있으면서(庚子歲五月中都還阻風於規林)」 제2수 「신축년 7월에 휴가 갔다 강릉으로 돌아갈 때 밤에 도구를 지나면서(辛丑歲七月赴假還陵夜行塗口) 1수
「계묘년 초봄에 농막에서 옛날을 생각하면서(癸卯歲始春懷古田舍)」2수
「계묘년 초봄에 농막에서 옛날을 생각하면서(癸卯歲始春懷古田舍)」 제1수
「계묘년 초봄에 농막에서 옛날을 생각하면서(癸卯歲始春懷古田舍)」 제2수
「계묘년 12월 중에 지어 사촌 동생 경원에게 줌(癸卯歲十二月中作與從弟敬遠)」 1수
「을사년 3월 건위참군이 되어 도성으로 사신 가는 길에 전계를 지나면서(乙巳歲三月爲建威參軍使都經錢溪)」 1수
「전에 살던 집에 돌아와서(還舊居)」 1수
「무신년 6월 중에 화재를 만남(戊申歲六月中遇火)」 1수
「기유년 9월 9일(己酉歲九月九日)」 1수
「경술년 9월 중에 서쪽 밭에서 올벼를 거두고서(庚戌歲九月中於西田穫早稻)」 1수
「병진년 8월 중에 하손의 농막에서 추수하면서
(丙辰歲八月中於下?田舍穫)」 1수
「술을 마시고(飮酒)」 20수 및 서문
「술을 마시고(飮酒)」 제1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2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3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4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5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6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7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8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9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10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11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12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13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14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15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16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17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18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19수
「술을 마시고(飮酒)」 제20수
「술 끊기(止酒)」 1수
「술을 말함(述酒)」 1수
「아들들을 나무람(責子)」 1수
「깨달음이 있어서 지음(有會而作)」 1수 및 서문
「납제삿날(?日)」 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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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聯句)」 1수
「도화원시 및 기문(桃花源詩幷記)」 1수 및 기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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