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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불리의 철학자 요리사, 철학자, 그의 레스토랑, 그리고 그의 예술

장 폴 주아리 저 | 함께읽는책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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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7680122 / 240쪽 170 x 2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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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그의 요리는 유희처럼 가볍다. 첫 입에 깊은 사색을 피할 길 없고 두 입에 놀라움을 금할 길 없다. 가우디가 건축에서 한 일을 요리에서 해낸, 가장 순수한 형태의 예술가” _미셸 게라르 “그의 요?리는 익숙한 것과 익숙하지 않은 것, 기준과 추상적 발명 사이에서 벌어지는 놀이이다. 그는 참으로 놀라운 형태적 감각으로 메뉴를 구성한다.” _브루노 만토바니 ▣ 깐깐한 마르크스주의자, 미식을 탐하다 2011년 7월 30일 한 레스토랑이 문을 닫았다. 그냥 평범한 레스토랑 얘기가 아니다. 스페인 카탈루냐 주, 크레우스 곶... “그의 요리는 유희처럼 가볍다. 첫 입에 깊은 사색을 피할 길 없고 두 입에 놀라움을 금할 길 없다. 가우디가 건축에서 한 일을 요리에서 해낸, 가장 순수한 형태의 예술가” _미셸 게라르 “그의 요리는 익숙한 것과 익숙하지 않은 것, 기준과 추상적 발명 사이에서 벌어지는 놀이이다. 그는 참으로 놀라운 형태적 감각으로 메뉴를 구성한다.” _브루노 만토바니 ▣ 깐깐한 마르크스주의자, 미식을 탐하다 2011년 7월 30일 한 레스토랑이 문을 닫았다. 그냥 평범한 레스토랑 얘기가 아니다. 스페인 카탈루냐 주, 크레우스 곶의 외딴 해변에 숨어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목이 집중되고 언론에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레스토랑, 바로 엘불리 얘기다. _‘앙트레’ 중에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렇다면 이 책은 철학자가 요리사의 작품을 분석하는 내용을 담고 있나? 아니면 요리사의 전기나 요리 비평, 혹은 요리 레시피를 담은 요리책인가? 이 책의 저자인 장 폴 주아리가 서두에 밝히고 있듯이, 위와 같은 주제들에 대해서는 이미 괜찮은 책들이 많이 나와 있으며 이 책의 말미에도 그러한 주제들을 깊이 있게 다룬 참고 서적들의 목록을 실어 놓았으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자이며, 급진적 철학자인 저자가 그러한 사상과는 전혀 무관하게, 순전히 미식가로서, 페란 아드리아라는 천재 요리사와 그의 레스토랑이 실험해 온 예술 작품들에 관한 철학적, 미학적 고찰을 담은 예술서이다. 철학자이자 미식가인 저자는 운 좋게도 거의 매년 엘불리의 새로운 요리를 맛보고 페란 아드리아와 대화할 기회를 누렸다. (1년 중 6개월은 영업을 하지 않고 창조에만 몰두하며, 하루 50명의 손님만 받는 엘불리에는 매년 250만 명 정도가 예약을 시도하지만 그중 8천 명 정도만이 식사할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그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질문이 떠오른다. 만약 이곳이 단순한 레스토랑이 아니라 예술적 창조의 장소라면? 손님들이 그저 편안하게 식사를 하려고 오는 곳이 아니라 콘서트홀이나 전시 갤러리처럼 내밀한 감성을 추구하는 곳이라면? 간단히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철학적인 해명이 필요한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감각적 즐거움과 순수한 미학적 즐거움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어디까지가 기술이고 어디부터가 예술일까? 먹기 위해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우리가 흔히 ‘순수 예술(beaux arts)’이라고 부르는 것의 반열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것일까? 물론 얼핏 봐도 인류의 생존에 직결되는 더 중요한 철학적 문제들이 얼마든지 있다. 지구 행성은 불평등과 전쟁, 기아, 자연 자원의 파괴로 고통 받고 있다. 나는 이미 이런 주제들에 대해 수천 페이지의 글들을 썼고,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러나 문화의 다양한 측면, 즐거움을 공유하는 다양한 가능성들이 빠진 인간 해방은 무력할뿐더러 무의미하다. 넓은 시각으로 깊이 들여다보면 예술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감정을 창조하는 것보다 더 혁명적인 것은 없다. _‘앙트레’ 중에서 요리는 예술이 될 수 있는가? 될 수 있다면 이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것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다. 저자 장 폴 주아리는 15년 넘게 엘불리에서 식사를 하며 우정을 쌓은 페란 아드리아의 요리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탐구한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혹은 유럽) 요리의 역사, 예술사, 미학사, 먹는다는 행위 혹은 맛에 대한 철학자들의 생각들이 다채롭게 소개된다. 페란 아드리아의 요리에 대해 저자는 그것이 예술 작품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여기서 예술에 대한 칸트의 이론이 주요 분석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저자는 한 창조물이 예술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칸트적인 의미에서 독창성, 보편성, 재현, 오성의 확장, 엘리아스와 베커의 미학적 요구, 이렇게 다섯 가지 요구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전제한 후, 아드리아 요리의 각 측면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통해 긍정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국내에도 이미 엘불리에 대한 책들이 소개된 바 있지만 《엘불리의 철학자》는 내용면에서나 형식면에서 그들과 다르다. 단지 엘불리나 페란 아드리아에 대해 소개하거나 비평하는 글이 아니라 한 철학자가 그의 요리 세계를 미학적, 철학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요리를 철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저자의 철학적 고찰은 지나치게 난해하거나 복잡하지 않다. 때로는 우리에게 친숙한 철학자나 예술가들의 말을 인용하기도 하고 구체적인 미학적 이론을 간략하게 소개한 뒤 아드리아의 요리 세계에 적용하여 분석을 전개하기도 한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오랜 시간 페란 아드리아의 전속 사진사로 일해 온 프란세스크 기야메의 멋진 사진들이다. 저자는 인류 문화 전체에서 가장 근본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철학적 대상에서 늘 제외되어 왔던 요리라는 분야에 대해 “인간의 가장 동물적인 측면에 해당하는, 생존과 직결되는 이 영양 섭취의 영역에 예술적 행위가 개입하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며, 철학이 이것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고 말한다. ▣ 페란 아드리아, 그의 엘불리, 그의 예술 엘불리는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세 개를, 《고미요》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페란 아드리아는 영국의 《레스토랑 매거진》에 의해 세계 최고의 요리사로 선정되었을 뿐 아니라, 요리사로서는 처음으로 카셀 도쿠멘타 현대미술전에 아티스트 자격으로 초청되기도 했다. 그는 온갖 종류의 메달을 받았고, 수많은 강연회와 컨퍼런스에 초대받았으며, 다양한 칭호의 최고 요리사로 선정됐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그에 관한 기사만 1만 편이 넘게 쓰였고, 수도 없이 방송국에 불려가거나 책 속에 등장했다. 전 세계의 유명 셰프들이 엘불리를 방문했고, 심지어 만토바니는 그의 요리에서 영감을 받아 곡을 만들기도 했다. _‘위대한 역사, 사소한 이야기들’ 중에서 ‘누벨 퀴진’이니 ‘분자요리의 대가’니 하는 수식어들이 페란 아드리아에게 꼬리표처럼 늘 따라붙지만 이들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차원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요리를 표현한다. “요리는 조화, 창조, 행복, 아름다움, 시, 혼돈, 마술, 유머, 도발, 문화 등을 매개하는 언어이다.” 페란 아드리아의 작품을 접한 사람들은 그의 요리에서 모든 종류의 해체, 비물질화, 전이, 일탈, 놀라움, 환상, 충격, 웃음, 어긋남 등을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은 요리를 공유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질문하게 하고 성찰하게 하며 그로인해 다시 자신으로 회귀하게 한다. 페란 아드리아는 자신의 요리에 여섯 가지 감각(‘일종의 지적 만족’을 제공하는, ‘웃음을 자아내는’, ‘지식에 호소하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는’,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영혼이 느끼는 기쁨’)을 적용함으로써 작품 감상자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시도들이 최초로 영양 섭취 대상과 그것을 맛보며 즐거움을 느끼는 주체 사이를 매개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 매개 덕분에 요리가 특정한 방식으로 재현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 과정 없이 그의 요리는 순수한 의미의 예술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손님은 우선 음식의 외양에 깜박 속아 넘어간다. 그런 후에 음식 이름 속에 암시된 영감의 원천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손님들은 이 발견을 통해 일종의 게임에 참여하는 셈이다. 놀라움과 즐거움, 때때로 터져 나오는 웃음이 감각과 감정, 성찰 속에서의 왕복운동을 통해 우리가 평소 음식과 맺고 있던 관계를 변형시킨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 소개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필가이다. 현재 끌로드 모네 고등학교에서 그랑제꼴 입시준비반 교사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으며 파리에 있는 국립 상업학교의 교수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급진적 성향의 주간지 〈레볼루시옹〉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철학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인 아르노 스피르와 공동으로 여러 편의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철학 속으로 들어가기》《철학하기, 이게 쉬웠다면?Philosopher. Et si c'était facile?(2008)》, 《철학으로 정치를 취하다Prendre la politique avec philosophie(2003)》등이 있다.
이 책 《나는 투표한다, 그러므로 사고한다Je vote donc je pense》는 2007년 프랑스에서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출간되어 많은 언론과 국민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2012년, 대한민국은 두 개의 큰 선거를 앞두고 있다. 프랑스와의 정치 상황은 다르지만,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저자의 메시지는 우리에게도 동일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통해 장 폴 주아리는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사회적․문화적 다양성을 편협한 정치 이념이나 사회적 통념에 치우치지 않고 폭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꿰뚫어 보고 분석한다. 그는 특히 정치와 철학의 합집합을 구사하는 데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철학은 물론 정치 전반에 대해 성찰하는 그의 놀라운 통찰력은 당신의 정치 알레르기를 치료할 것이다.


역자 소개

파리8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을 졸업했다. 번역한 책으로는《프란츠의 레퀴엠》,《남겨진 사람들》,《고독의 심리학》,《트레이더는 결코 죽지 않는다》,《고양이가 내게 말을 걸었다》,《퀴르 강의 푸가》,《철학자에게 사랑을 묻다》,《프랑스는 몰락하는가》,《해피스톤은 왜 토암바 섬에 갔을까?》,《괜찮아 마음먹기에 달렸어》,《리듬분석》, 《논 피니토: 미완의 철학》 등이 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번역에도 참여하고 있다.

책 속에서

만약 이곳이 단순한 레스토랑이 아니라 예술적 창조의 장소라면? 손님들이 그저 편안하게 식사를 하려고 오는 곳이 아니라 콘서트홀이나 전시 갤러리처럼 내밀한 감성을 추구하는 곳이라면? 그곳에서 한번쯤 식사하고 싶다고 꿈꾸는 모든 이들이 자주 던지는 질문이 있다. 그 음식들은 진짜인가? 그곳에서 사람들은 즐거움을 느끼는가? 요리가 지나치게 섬세한 건 아닐까? 혹은 너무 독창적인가? 간단히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철학적인 해명이 필요한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감각적 즐거움과 순수한 미학적 즐거움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어디까지가 기술이고 어디부터가 예술일까? 오직 타자와 자신을 구별하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빈곤한 독창성과 새로운 스타일을 발명하고 타자에게 영감을 주는 창조적인 독창성은 어떻게 다른가?
페란 아드리아의 모든 작업은 결국 요리가 미학적 의미에서 순수 예술로 변형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동일한 질문을 제기한다.
물론 얼핏 봐도 인류의 생존에 직결되는 더 중요한 철학적 문제들이 얼마든지 있다. 지구 행성은 불평등과 전쟁, 기아, 자연 자원의 파괴로 고통 받고 있다. 나는 이미 이런 주제들에 대해 수천 페이지의 글들을 썼고,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러나 문화의 다양한 측면, 즐거움을 공유하는 다양한 가능성들이 빠진 인간 해방은 무력할뿐더러 무의미하다. 넓은 시각으로 깊이 들여다보면 예술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감정을 창조하는 것보다 더 혁명적인 것은 없다.
참된 인간성은 구석기 시대 예술에서 탄생하여, 우리의 감수성과 지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모든 모차르트들과 함께 활짝 피어났다. 우리의 가장 동물적인 측면에 해당하는, 생존과 직결되는 이 영양 섭취의 영역에 예술적 행위가 개입하는 것은 분명 하나의 사건이다. 철학이 이것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_‘앙트레’ 중에서


반면, 임마누엘 칸트는 우리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미식이성비판’ 따위의 저서를 쓴 것은 아니지만, 그의 철학 속에서 미학에 대한 현대적 성찰이 최초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우리의 행위를 결정짓는 자연적인 성향들을 ‘근본악’의 일종으로 간주했으며, 이것이 오로지 이성에 의해서만 이해 가능한 (항상 실현 가능한 것은 아닌) 자유를 방해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칸트의 철학에서는 영양 섭취 행위 자체가 인간의 가장 고귀한 행위로 간주될 위험은 없다. 칸트는 최초로 기술적 · 물질적 필요의 충족, 타산적인 감각적 쾌락에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창조로서 예술의 개념을 정초했다. 이 개념은 요리가 예술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물론 칸트의 미학 이론이 완전무결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는 칸트야말로 엘불리가 우리에게 제기하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 철학자이다. 요리인가, 예술인가? 감각적 쾌락인가, 영혼과 감각의 동시적 쾌락인가? 재료의 섭취인가, 감정의 내면화인가?
_‘칸트의 레시피 : 미식이성비판’ 중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도락을 악으로 여겼고, 에피쿠로스와 스토아학파뿐 아니라 견유학파 철학자들은 마음의 평정(아타락시아)을 방해하는 열정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는 음식 섭취에 대해 매우 진지한 태도를 취했다. 한쪽에서는 연체동물 혹은 돼지고기 섭취를 금지했고, 다른 쪽에서는 일주일에 하루 고기 섭취를 금지했다. 종교에 따라 각기 다른 기간 동안 단식을 해야 했으며, 특정 축제 기간 동안 먹는 전통 음식들이 존재했다. 빵이나 생선이 등장하는 기적에 관한 이야기들도 많았다. 365년, 수도사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는 식도락을 아담의 원죄 이래 가장 큰 죄로 규정하고 그 죄인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6세기에 교황 그레고리 1세는 식탐이라는 죄가 성립하는 조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그는 “미각이라는 비천한 감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가장 맛좋은 음식을 찾아 먹는 것, 즐거움을 위해 요리에 맛을 첨가하는 것, 과식 혹은 지나친 식탐을 죄로 보았다. 식도락은 신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러서야 죄가 경감되었다. 그리고 단테에서 시작하여 마침내 교회도 식도락과 식탐, 폭식을 구별하기 시작했다.
17세기까지 사람의 위는 일종의 통 같은 것으로 인식되어 그것을 막히지 않게끔 하면서 채우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 통을 막히게 하는 것은 더 ‘무거운’ 것들이다. 그리고 신은 ‘무거운’ 것일수록 더 아래쪽에 위치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신학적-위생학적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하늘에서 온 것부터 먹기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무거운 것을 먹었다. 나중에 섭취한 무거운 음식이 이미 섭취한 가벼운 음식을 눌러서 차곡차곡 쌓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19세기 주류를 이루었던 ‘프랑스식 서빙’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 요리 서빙 방식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때의 식사는(물론 귀족, 부자들의 식사를 말한다) 여러 차례의 ‘서비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각 서비스마다 다양한 요리로 가득한 접시들이 테이블 전체를 꽉 채우는 식이었다. 각 손님들은 그중 자기 손이 닿는 거리 내의 요리들을 맛보면 되었다. (그래서 안전을 위해 잔을 올려놓지 못하게 금지한 것이다. 적어도 공식적인 이유는 그랬다.) 테이블 전체의 조화를 중시하는 이 프랑스식 서빙은 다양한 기하학적 대칭을 추구하는 ‘프랑스식 정원’과 비교되기도 했다. 한 예로, 베르사유에서는 한 테이블에 최고 8백 개의 접시가 서빙 되는 경우도 있었다!
_‘새로운 아타락시아로’ 중에서

목차

목차
앙트레
칸트의 레시피: 미식이성비판
멜론의 이데아를 찾아서
위대한 역사, 사소한 이야기들
새로운 아타락시아로
혼돈, 마술, 유머…… 도발!
맛보는 능력 비판
해체-재구성으로서의 카니발
미식의 시?대를 열다
당신들의 취향, 페란 아드리아의 창조
주문에서 창조로
페란 아드리아의 앙트르메
마지막 저녁
밀푀유 알라카르트
감사의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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