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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석 서유구 연구 - 상

시리즈 : 실시학사 실학연구총서 [13]

조창록, 김문식, 염정섭 외 저 | 사람의무늬 |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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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5500811 / 431쪽 153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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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풍석 서유구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실학사상의 계승 발전을 위해 설립된 재단법인 실시학사가 중점적으로 추진하여 발간하는 ‘실학연구총서’의 아홉 번째 책이다. 다섯 명의 연구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임원경제지』에 접근하여, 서유구의 학문적 지향과 특징을 분석하고 평가한다. 각 논문의 개요 조창록의 「풍석의 실학자적 위상과 임원경제」는 서유구의 학문적 연원을 소개하고 『임원경제지』의 성격을 정리한 것이다. 조창록은 서유구의 학문적 연원으로 조부 서명응(徐命膺)의 상수학과 부친 서호수(徐浩修) 및 백씨 서유본(徐有本... 풍석 서유구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실학사상의 계승 발전을 위해 설립된 재단법인 실시학사가 중점적으로 추진하여 발간하는 ‘실학연구총서’의 아홉 번째 책이다. 다섯 명의 연구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임원경제지』에 접근하여, 서유구의 학문적 지향과 특징을 분석하고 평가한다. 각 논문의 개요 조창록의 「풍석의 실학자적 위상과 임원경제」는 서유구의 학문적 연원을 소개하고 『임원경제지』의 성격을 정리한 것이다. 조창록은 서유구의 학문적 연원으로 조부 서명응(徐命膺)의 상수학과 부친 서호수(徐浩修) 및 백씨 서유본(徐有本)의 천문학과 수학을 꼽았고, 그와 교류한 문광도(文光道)와 김영(金泳), 어릴 때의 스승인 유금(柳琴)이 모두 수학자였음을 거론했다. 또한 서유구 집안의 인물들이 서광계(徐光啓)의 『농경전서(農政全書)』를 중시하고, 서유구는 서광계의 농학 지식뿐 아니라 농작물을 재배하고 농업 설비를 시험하며 말년까지 저작을 손질하던 행적을 본받았음을 주목했다. 조창록은 서유구가 농업을 비롯한 산업 전반에 학문적 관심을 가졌고 『임원경제지』는 이용후생을 집성한 기술서로 이해했다. 그는 18세기에 이뤄진 이용후생학의 성과가 19세기에는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는 단계로 들어갔고, 서유구는 학문의 지향점을 실용에 두고 사대부가 임원(林園)을 경영하며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을 『임원경제지』에 수록한 것으로 보았다. 김문식의 「풍석의 수원유수 시 활동 양상」은 서유구가 1836년부터 2년간 수원유수로 근무할 때 작성한 『화영일록(華營日錄)』에 나타난 활동을 검토한 것이다. 이 시기는 서유구가 『임원경제지』의 초고를 작성한 이후 수정을 하던 때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서유구는 수원유수로 있으면서 규장각 제학을 겸했기 때문에 규장각 제학으로서의 활동과 수원유수로서의 활동을 동시에 보여 주었다. 서유구 집안은 정조가 규장각을 설립할 때 조부 서명응이 중요한 역할을 한 이후 대대로 규장각과 인연이 있었고, 서유구도 정조 대 이후 규장각의 관직을 두루 역임했던 인물이었다. 서유구는 순조가 사망하고 헌종이 즉위하던 시기에 규장각 제학으로 있으면서 순조와 익종의 어제(御製)를 편찬하고, 왕실의 주요 의례에 참석하였으며, 헌종의 경연(經筵)에 나가는 등 고위 관리로서의 활동을 계속했다. 수원유수로서의 활동은 화령전(華寧殿)과 현륭원(顯隆園)의 관리, 인사 관리, 민생 관리로 구분되며, 그중에서도 민생 관리는 『임원경제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를 보면 19세기 전반 수원부의 형편은 농사가 계절별 강수량에 큰 영향을 받고, 정조 대에 축조된 수리(水利) 시설은 손상된 곳이 많았으며, 매년 흉년이 들 것을 걱정하고 해일 피해를 입은 기민(饑民)들을 구제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이에 수원유수 서유구는 자신이 관할하는 지역의 농업을 장려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데 최선을 다했다. 김문식은 이를 근거로 『임원경제지』에 수록된 농사와 수리 시설에 대한 방대한 지식에는 개인 차원의 가정(家政) 경영과 함께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에게 혜택을 주려는 국가 경영자로서의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해석했다. 염정섭의 「풍석의 농법 변통론과 농정 개혁론」은 『행포지(杏蒲志)』와 『의상경계책(擬上經界策)』, 『임원경제지』의 「본리지(本利志)」에 나타나는 농법 변통론과 농정 개혁론을 정리한 것이다. 염정섭은 서유구가 농법 변통론으로 수전(水田)에서 이앙법을 실시하고 시비(施肥)를 강조하며, 한전(旱田)에서 조과(趙過)가 고안한 대전법을 재해석한 풍석대전법(楓石代田法)을 제시한 것으로 보았다. 또한 서유구는 요긴한 수리 기술을 정리하고 보급하며, 조선의 각 지역에서 선호하던 도종(稻種)을 정리하여 조선 농법의 고유한 측면을 강화하면서 중국의 우량한 품종을 도입하여 시험한 것으로 보았다. 염정섭은 서유구가 농정 개혁론으로 결부법(結負法)의 폐단을 지적하고 경무법(頃畝法)을 보급하며, 방전법(方田法)을 사용하여 전국적인 양전(量田)을 시행하자고 주장한 것으로 보았다. 또한 서유구는 한전을 수전으로 바꾸는 번답(反沓)을 금지하고, 둔전(屯田)을 확산시키며 북방 지역을 점차 개발하려는 구상을 가졌다고 보았다. 염정섭은 특히 서유구의 둔전 설치론을 주목하여 농법의 변통을 통해 지력(地力)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국가재정을 보충하려는 개혁론으로 보았다. 박권수의 「풍석의 자연과학 저술의 특징」은 『임원경제지』에 수록된 천문학ㆍ기상학ㆍ수학ㆍ풍수지리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고 그 특징을 밝힌 것이다. 박권수는 「위선지(魏鮮志)」에 있는 천문과 기상, 「본리지(本利志)」에 나오는 역산(曆算)이 서양에서 전래된 정보를 이용했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서유구가 이를 저술한 목적은 천문과 자연 현상을 통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고 계절별로 농가에서 해야 할 일을 정리하는 것과 같이 임원에서 생활하는 유자(儒者)에게 필요한 지식을 얻는 데 있었던 것으로 보았다. 또한 「유예지(遊藝志)」의 산법(算法)은 청에서 전래된 『수리정온(數理精.)』을 참고했지만 전통적인 상수학적 관념이 반영되어 있으며, 「상택지(相宅志)」의 풍수지리도 전통적 풍수지리와 술수적 관념을 가지고 실용적 지식을 정리한 것으로 보았다. 박권수는 『임원경제지』에 과학적 지식과 술수학적 지식이 공존하며, 서유구는 술수학과 상수학의 이론 자체를 연구하지 않고 실제에 필요한 지식을 집대성한 것으로 보았다. 박권수는 서유구의 지식이 서명응과 서호수로부터 이어지는 가학의 전통에서 발전되었으며, 『임원경제지』는 실용성과 전문성을 아우르는 백과사전류의 책으로 파악했다. 김호의 「풍석의 의학론」은 『임원경제지』 「인제지(仁濟志)」에 나타나는 이용후생의 면모를 중국 외과 기술의 수용과 조선 후기 경험방의 수집이라는 측면에서 정리한 것이다. 김호는 서유구가 의학을 「보양지」와 「인제지」로 구분하여 체계화하고, 중국 의서(醫書)의 백미라 할 『경악전서(景岳全書)』와 『의종금감(醫宗金鑑)』을 적극 수용하고 조선의 경험방 서적도 최대한 수집하여 정리한 것으로 보았다. 특히 「인제지」에서는 청 건륭제의 명령으로 오겸(吳謙)이 편찬한 『의종금감』을 널리 인용하면서 자신의 분류체계로 재정리하여 효율적으로 활용하게 했으며, 서양의 의학과 약물 제조 기술에도 관심으로 가진 것으로 보았다. 서유구는 조선의 경험방도 널리 수집하고 자신의 방법으로 재분류했으며, 그 대상은 『산림경제』와 『증보산림경제』를 비롯하여 『광제비급』, 『김씨경험방』, 『규합사의』, 『해동경험방』을 망라하였다. 김호는 서유구가 정조의 의도를 제대로 실현한 측면이 있다고 보았다. 정조는 『동의보감(東醫寶鑑)』이 나온 이후에 나타난 중국 의서를 보완하고 조선 후기의 경험방을 보충한 새 의서를 편찬할 계획을 세웠고 강명길(康 命吉)의 『제중신편(濟衆新編)』은 그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서유구는 명과 청, 일본의 서적까지 활용하고 조선의 의방을 빠짐없이 수집하여 「인제지」를 편찬함으로써 정조의 의도를 완수했다는 것이다. 김호는 서유구가 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최대한 수집하여 활용하려 했지만 지식의 양이 많아질수록 활용은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실학연구총서를 펴내며... 지금 여기, 실학의 의미를 되묻다 최근 학계 일각에서 ‘실학’의 역사적 실체에 대한 의심과 회의의 시각이 거센 것으로 보인다. 한편에서는 ‘근대’에 대한 반성에 수반하여, 실학이 단지 근대 국가를 지향하던 시기에 지식인들의 한시적 관심 위에 구성된 허구적 가상물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구체적인 연구의 심화에 따라, 실학자들의 경학 혹은 자연학 상의

저자 소개

(金 文 植)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문학박사 논문은 「19세기 전반 경기학인의 경학사상과 경세론」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경학사상, 정조와 정약용, 국왕 교육, 국가 전례, 대외인식에 관한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발표하였다. 최근에는 조선시대의 국가 전례 및 왕실 문화에 나타나는 예악(禮樂) 국가로서의 특징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조선후기 경학사상 연구』, 『정조의 경학과 주자학』, 『정조의 제왕학』, 『조선후기 지식인의 대외인식』, 『왕세자의 입학식』, 『정조의 생각』 등이 있다. 공저로는 『조선의 왕세자 교육』, 『조선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 『조선 국왕의 일생』, 『왕실의 천지제사』, 『즉위, 국왕의 탄생』 등이 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서울대학교 규장각 책임연구원과 가톨릭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를 거쳐 현재 경인교육 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자는 박사논문을 바탕으로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를 출간한 뒤 《원통함을 없게 하라》, 《조선의 명의》 등 여러 권의 책과 〈奎章閣 소장 檢案의 기초적 검토〉, 〈100년 전 살인사건-검안을 통해 본 19세기 사회사〉 등 관련 논문을 여러 편 썼다. 대학원 시절 검안 기록을 읽으면서 조선의 죄와 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후 조선의 성리학과 법을 둘러싼 철학적 긴장을 고민하게 되었고, 근래 본격적으로 다산 정약용의 경세론과 법학을 연구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다산의 형법서인 《흠흠신서》를 통해 ‘다산이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고찰하고자 했다. 조선 성리학의 정치 기획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던 18세기에, 다산은 성리학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변통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여러 가지 대안을 모색했다. 도덕정치에 충실하려는 정조의 판결과 이에 대한 다산의 ‘동의와 비판’은, 정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산물이다. 저자는 다산의 명쾌한 논리와 치열한 고민을 연구하면서, 정의가 흐릿해지고 금권이 판을 치는 세상에 정의의 신념이 뿌리내리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키우고 있다. 

서울대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한림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논문으로 「조선시대 일기류 자료의 성격과 분류」, 「조선후기 한성부 준천의 시행」, 「숙종 후반 양전론의 추이와 경자양전의 성격」, 「18세기말 正祖의 <農書大全> 편찬 추진과 의의」 등이 있으며 저서에는 〈서유구〉 등이 있다.

책 속에서

․ 이 책에서 다섯 명의 연구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 접근하면서 그 학문적 특징을 다음과 같이 파악했다. 서유구는 학문적 지향점을 ‘실용’과 ‘이용후생’에 두고 사대부가 임원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고 정리했다. 그는 명과 청, 서양, 일본에서 들어온 신지식과 조선의 전통적 지식을 망라하여 수집한 후 이를 자신의 방식으로 재분류하고 체계화했다. 이렇게 정리된 『임원경제지』는 개인 차원의 가정(家政) 경영과 함께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에게 혜택을 주려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을 내면서’ 중에서 ■

목차

목차
ㆍ 간행사 ㆍ 실학연구총서를 펴내며
ㆍ 이 책을 내면서
ㆍ 풍석의 실학자적 위상과 ‘임원경제’ | 조창록 |
1. 연구사 검토
2. 학문적 연원: 달성 서씨의 가학
3. 『임원경제지』의 찬술과 ‘임원?경영’
4. ‘임원경제’의 후대적 계승 양상
5. 맺음말
ㆍ 풍석의 수원유수 시 활동 양상 | 김문식 |
1. 머리말
2. 규장각(奎章閣) 제학(提學)으로서의 활동
3. 화령전(華寧殿)과 현륭원(顯隆園)의 관리
4. 인사(人事) 관리
5. 민생(民生) 관리
6. 맺음말
ㆍ 풍석의 농법 변통론과 농정 개혁론 | 염정섭 |
1. 머리말
2. 농법(農法) 현실 진단과 변통론(變通論)
3. 농정(農政) 현황 파악과 개혁론(改革論)
ㆍ 풍석의 자연과학 저술의 특징 | 박권수 |
1. 머리말
2. 천문(天文)과 기상(氣象), 점후(占候)의 지식들: .위선지(魏鮮志).
3. 역법(曆法)과 농시(農時)의 지식들: .본리지(本利志)., 심시(審時)
4. 산법(算法)과 수학의 지식들: .유예지(遊藝志)., 산법
5. 풍수지리(風水地理)의 지식들: .상택지(相宅志).
6. 서유구 자연과학 저술의 특징
ㆍ 풍석의 의학론: 「인제지」의 ‘이용후생’을 중심으로 | 김호 |
1. 머리말
2. 「인제지(仁濟志)」 편찬 의도
3. 새로운 외과 지식의 수용
4. 외과 정골학(整骨學)의 도입
5. 조선 후기 ‘경험방(經驗方)’의 수집과 정리
6. 맺음말

ㆍ 풍석 유적 답사기
ㆍ 연보
ㆍ 성호 연구논저 목록
ㆍ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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