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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문명의 역사 로마 제국의 몰락부터 프랑스혁명까지

원제 : Histoire de la civilisation en Europe
시리즈 : 아카넷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72]

프랑수아 기조 저 | 임승휘 역 | 아카넷 |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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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7333860 / 588쪽 160 x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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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문명의 역사는 모든 역사를 재료로 하는 종합본, ‘문명의 역사화’와 이해하기 쉬운 역사해석 추구 19세기 프랑스 복고왕정기에 활동한 자유주의 정치가이자 역사가 프랑수아 기조의 대표작으로, 1828년 강단으로 복귀한 기조가 파리대학교 인문학부에서 14회에 걸쳐 진행한 근대사(로마 제국의 몰락부터 프랑스혁명까지) 강의를 묶은 강의록. 기조는 ‘문명의 이해’를 역사가의 중심 과제로 삼으면서 전통적인 역사이해 방식을 혁신하고, 유럽 문명의 발전과정을 거대한 서사로 재구성한다. 유럽은 18세기까지 보편사의 한 부분에 머물러 있어야 ... 문명의 역사는 모든 역사를 재료로 하는 종합본, ‘문명의 역사화’와 이해하기 쉬운 역사해석 추구 19세기 프랑스 복고왕정기에 활동한 자유주의 정치가이자 역사가 프랑수아 기조의 대표작으로, 1828년 강단으로 복귀한 기조가 파리대학교 인문학부에서 14회에 걸쳐 진행한 근대사(로마 제국의 몰락부터 프랑스혁명까지) 강의를 묶은 강의록. 기조는 ‘문명의 이해’를 역사가의 중심 과제로 삼으면서 전통적인 역사이해 방식을 혁신하고, 유럽 문명의 발전과정을 거대한 서사로 재구성한다. 유럽은 18세기까지 보편사의 한 부분에 머물러 있어야 했지만 19세기 들어서는 자신만의 고유한 문명사를 갖게 되는데, 이는 분명 기조와 그의 『유럽 문명의 역사』 덕분이라 할 수 있다. 한국어판에는 원서에 없는 사진 90여 컷과 각주 200여 개를 추가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출판사 서평 문명의 역사는 모든 역사를 재료로 하는 종합본, ‘문명의 역사화’와 이해하기 쉬운 역사해석 추구 “문명의 역사는 모든 역사 가운데 실로 그 모든 것을 포함하는 가장 거대한 역사가 될 것입니다.” 『유럽 문명의 역사』는 19세기 프랑스 복고왕정기에 활동한 자유주의 정치가이자 역사가 프랑수아 기조(1787?1874)의 대표작으로, 1828년 강단으로 복귀한 기조가 파리대학교 인문학부에서 14회에 걸쳐 진행한 근대사(로마 제국의 몰락부터 프랑스혁명까지) 강의를 묶은 강의록이다. 프랑수아 기조는 책에서 ‘문명의 이해’를 역사가의 중심 과제로 삼으면서 전통적인 역사이해 방식을 혁신하고, 유럽 문명의 발전과정을 거대한 서사로 재구성한다. 유럽은 18세기까지 보편사의 한 부분에 머물러 있어야 했지만 19세기 들어서는 자신만의 고유한 문명사를 갖게 되는데, 이는 분명 기조와 그의 『유럽 문명의 역사』 덕분이라 하겠다. 25세(1812)에 파리대학교 문과대학 근대사 주임교수로 임명되었다가 1814년부터는 관료이자 정치가의 길을 걷던 기조가 공직에서 물러나게 된 이후 강단으로 복귀한 1828년부터 1830년까지 파리대학은 프랑스 젊은 자유주의자들의 집합소였다. 청중들은 교수 기조의 강의를 듣는 것만큼이나 자유주의자 기조에게 박수를 보내기 위해 몰려들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 기조의 문명관은 그의 자유주의 정치이념에서 비롯한다. 『유럽 문명의 역사』는 이처럼 기조의 사상체계, 나아가 19세기 프랑스 자유주의 사상체계를 이루는 역사인식을 조명해주는 저서라 하겠다.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오늘날, 역사의 격변기에 태동한 기조의 자유주의적 사유방식은 우리에게 유용하며 교훈적인 실험대가 되어줄 것이다. 곧 기조의 『유럽 문명의 역사』는 지나간 세기의 지적 유희 또는 과거의 명저로서만이 아니라 현실적 고민에 기반을 둔 자유주의 사상의 ‘문제적’ 토대를 제공하는 전범으로서 유익하고 청량감 넘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또한 역사인식이 어떻게 정치적 사유의 토대가 되는지 보여주는 기조의 텍스트는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동시에 역사연구의 자세와 방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기회를 마련해줄 것이다. 이번 한국어판에는 원서에 없는 사진 90여 컷과 각주 200여 개를 추가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기조의 저작 중 첫 한국어판 … “경이로움 그 자체”이자 “19세기에 쓰인 10대 역사서 중 하나” 기조가 알렉시 드 토크빌, 카를 마르크스, 후쿠자와 유키치 등에 끼친 이러저러한 영향 당시 기조의 강의를 직접 듣기도 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사상가 알렉시 드 토크빌(1805?1859)은 이 책 『유럽 문명의 역사』에 “경이로움 그 자체”라는 찬사를 보냈으며, 프랑스의 지식인이자 역사학자, 콜레주드프랑스 교수이며, 프랑스 민주주의 연구의 대가로 잘 알려진 피에르 로장발롱(1948?)은 이 책을 ‘19세기에 쓰인 10대 역사서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토크빌은 기조에게서 구체제와 프랑스혁명의 연속성 개념을 빌려온다. 프랑스 자유주의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역사가이자 정치학자 에드가르 키네(1803?1875) 역시 크리스트교와 종교개혁에 대한 기조의 해석에 큰 영향을 받았다. 로장발롱에 따르면, 『유럽 문명의 역사』가 미친 영향은 초기 마르크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마르크스는 1843년과 1845년 사이에 기조의 『프랑스 문명사』(1830)와 『유럽 문명의 역사』를 읽었고, 그 안에서 계급투쟁의 개념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진다. 물론 마르크스의 이론은 계급투쟁의 결말에서 기조의 것과는 전혀 다르고 개념의 용도 또한 정반대의 목표를 지향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가 기조의 계급투쟁이라는 개념 자체를 차용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엥겔스가 계급투쟁 개념의 발명자로 마르크스가 아니라 기조를 언급했다는 사실은 이 같은 주장에 확실한 근거를 제공한다. [로장발롱은 기조와 마르크스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고까지 주장한다. 그는 기조를 ‘부르주아지의 그람시’라 평가하기도 한다.] 조금 다른 영향도 있다. 유럽 문명의 비교 우위에 보이는 기조의 태도는 프랑스 문명과 유럽 문명의 우수성에 대한 노골적 예찬으로 귀결된다. 종종 이러한 종류의 문명적 우월감 논리는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로 이어진다. 이 점에서, 일본 근대화의 스승이자 국부처럼 떠받들어지며 소위 ‘탈아론’을 제창하고 아시아 침략을 부르짖은 후쿠자와 유키치가 기조의 문명 개념에 크게 영향 받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1875)은 사회와 개인에 대한 기조의 개념을 그대로 이어받았고, 부분적으로 『유럽 문명의 역사』를 거의 그대로 베껴 쓰다시피 했다. 14개 강의는 곧 14폭짜리 웅장한 역사화 … ‘변화’와 ‘진보’의 묘사로 유럽 문명 전체를 그려내 문명의 이해를 역사가의 중심 과제로 삼은 기조 … 역사 이해 방식에 혁명을 가져오다 기조는 로마 제국이 몰락하고 야만인들이 침입하기 시작한 시기부터 프랑스혁명 시기에 이르기까지 유럽 문명을 총체적으로 묘사한다. 그는 봉건귀족, 교회, 왕정, 도시, 자유와 권위 등 근대사회 구성요소들의 기원, 초기 모습, 순차적으로 또는 동시에 이뤄진 발전의 양상, 핵심 원리에 나타난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처럼 기조는 ‘변화’와 ‘진보’의 국면을 통해 문명 전체를 보여주는 커다란 벽화를 완성해낸다. 역사가로서 기조의 강의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새로운 방법론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는 구체적 사실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원사료를 찾고 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일을 역사가 제1의 사명으로 제시했다. 기조는 강의에서 원사료를 직접 소개하고 다양한 증거들을 비교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프랑스에서 역사학은 기조에 이르러 과학의 시대로 진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기조에게 구체적 사료 조사와 분석이 역사의 최종 목적은 아니었다. 그는 역사에 대한 종합적이고 전체적인 이해를 목표로 삼았다. 문명이란 사회적 발전과 인간의 도덕적·내면적 발전의 원리이자 종합이라고 이해한 기조는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사실들을 일관된 방식으로 설명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로마 제국의 몰락부터 18세기에 이르기까지의 유럽 문명이 “정부와 인민”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실체로 수렴되는 과정이었다는 놀라우리만치 간단명료하게 설명이 가능한 것은 바로 문명에 대한 기조의 이런 확신에서 비롯한다. 『유럽 문명의 역사』의 구성 … 로마 제국의 몰락부터 프랑스혁명까지 유럽 문명의 총체적 묘사 일관되고 유기적이며 논리정연한 강의 … 문명 전체를 온전히 보여주는 보편적인 문명

저자 소개

  • 구분 : 저서
    이름 : 프랑수아 기조 (1787.00.00)
    국적 : 프랑스
    직업 :
    분류 : 역사/종교학자
    인기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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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기조(Francois Guizot, 1787~1874)
19세기 프랑스 복고왕정기에 활동한 자유주의 정치가이자 역사가. “은행가들의 체제”, “납세자 정부”로 낙인이 찍힌 7월왕정의 상징적 인물인 기조는 보잘것없는 야심과 무분별한 정치적 안목을 지닌, 그리고 정치를 통해 사리사욕을 챙긴 인물로 남아 있다. 기조는 좌파에게는 부르주아지의 반동과 편협한 보수주의를 구현한 인물이었고, 부르주아지에게는 7월왕정의 몰락에 따른 정치적 희생양이었다. 


이런 사정으로 50여 종이 넘는 기조의 저작은 세상의 기억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채로 남게 되었다. 기조는 역사가로서 쥘 미슐레나 에드가르 키네, 오귀스탱 티에리에, 자유주의사상가로서는 뱅자맹 콩스탕과 알렉시 드 토크빌에, 또 정치가로서는 루이 아돌프 티에르에 가려진 채 남겨졌지만, 이러저러한 편견에 묻힌 채 기억에서 사라져도 무방한 인물은 결코 아니다. 기조는 19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50여 종이 넘는 저작을 남긴 생산적인 역사가 중 한 사람이다. 


기조는 1812년 25세에 파리대학교 문과대학 근대사 주임교수로 임명된다. 1814년 같은 대학 피에르 폴 루아예 콜라르(프랑스의 정치가·철학자)의 추천으로 복고왕정하 내무부 비서직에 임명되면서 관료이자 정치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820년 과격 왕당파가 득세하자 공직에서 물러나게 되어 대학으로 복귀했다가, 1822년 정부에 의해 강좌가 폐지되는 곡절을 겪은 후, 1828년 다시 대학에 복귀하게 된다. 이때 강의를 묶은 책이 바로 『유럽 문명의 역사』다. 1830년부터 내무장관과 교육장관을 지냈으며, 1840년 외무장관에 취임했다. 1847년 총리가 된 그는 1848년 2월혁명이 발발하면서 영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프랑스의 정치권력을 장악했다. 『유럽 문명의 역사』 외 저작으로는 『프랑스사 소고』(1823), 『영국혁명사』(1826〜1827), 『프랑스 문명사』(1830), 『대의정부 기원의 역사』(1851), 『회고록』(1858〜1867, 전 8권) 등이 있다.


 

역자 소개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졸업하고 파리 4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선문대학교 역사학과에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식인 양의 탄생』, 『절대 왕정의 탄생』 등이 있으며 역서로 『장 보댕의 국가론』 이 있다. 「왕이란 무엇인가?: 프랑스의 왕」, 「근대 국가의 종교적 기원: 프랑스 절대 왕정과 종교」, 「프랑스 구체제의 ‘절대’ 군주와 엘리트: 국왕과 귀족의 역학 관계 다시 읽기」, 「통치 원리로서 ‘국가의 이해관계’: 앙리 드 로앙(Henri de Rohan)의 『크리스트교 국가와 군주들의 이해관계에 관하여』를 중심으로」 등 다수의 논문을 집필했다.

목차

목차
편집자의 말
영어판 서문
제6판 서문(1855)
첫 번째 강의
두 번째 강의
세 번째 강의
네 번째 강의
다섯 번째 강의
여섯 번째 강의
일곱 번째 강의
여덟 번째 강의
아홉 번째 강의
열 번째 강의
열한 번째 강의
열두 번째 강의
열세 번째 강의
열네 번째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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