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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1996195 / 192쪽 / 269g / 154 x 1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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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연암 박지원과 쌍벽을 이룬 18세기 문단의 거목 혜환 이용휴 삶과 죽음, ‘참 나’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기록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문장가는 단연 연암 박지원이다. 그의 대표작 『열하일기』는 조선을 넘어 현재까지도 가장 사랑받는 우리 고전 중 하나이다. 이런 연암과 쌍벽을 이룬 문장가가 조선에 있었다. 그것도 동시대인이다. 혜환 이용휴(1708~1782)는 실학자로 알려진 성호 이익의 조카다. 조부 대까지는 조정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남인계 실세였지만, 이익의 맏형인 이잠이 숙종의 친국 끝에 죽임을 당함으로써 역적의 집안... 연암 박지원과 쌍벽을 이룬 18세기 문단의 거목 혜환 이용휴 삶과 죽음, ‘참 나’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기록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문장가는 단연 연암 박지원이다. 그의 대표작 『열하일기』는 조선을 넘어 현재까지도 가장 사랑받는 우리 고전 중 하나이다. 이런 연암과 쌍벽을 이룬 문장가가 조선에 있었다. 그것도 동시대인이다. 혜환 이용휴(1708~1782)는 실학자로 알려진 성호 이익의 조카다. 조부 대까지는 조정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남인계 실세였지만, 이익의 맏형인 이잠이 숙종의 친국 끝에 죽임을 당함으로써 역적의 집안이 되었다. 훗날 이용휴의 아들 이가환이 정조의 신망으로 관직에 올랐지만 그 역시 천주교 전파의 괴수로 지목되어 옥사했고 이후 고종 대까지 신원되지 못했다. 혜환 이용휴는 세상의 명리를 등지고 문학 속으로 침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의 글은 속세의 선비들을 울렸고, 수많은 사대부가의 문인들이 그에게 문장으로써 인정을 받기 위해 몰려들었다. 정약용은 이런 혜환을 재야문형(在野文衡)이라 별칭했다. 재야문형. 재야에서 문단의 저울대를 30여 년간 놓지 않은 인물. 이 거대한 인물의 소박하지만 철학적 깊이가 물씬 넘치는 글들을 이 책 『나를 찾아가는 길』에 담았다.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참 나’를 찾아가는 철학 여행을 해보면 어떨까? 조선의 대문호가 선사하는 나를 찾아가는 여행 연암 박지원과 쌍벽을 이룬 18세기 문단의 재야문형(在野文衡) 혜환 이용휴 서얼 신분인 이덕무와 박제가가 당대에 이름났는데, 선친께서는 그들이 지은 작품을 보시고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영조 말년에 모씨, 모씨와 같은 간사하고 방종한 한 부류가 있었다. 이덕무와 박제가는 이들을 떠받들다가 여기에까지 이른 것이니 시대의 기풍을 볼 수 있다. 서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대부의 자제들도 이들을 애호하니, 세상의 도의를 위해 간과할 수 없는 근심거리다.” ―심노숭(沈魯崇), 『선부군언행기』(先父君言行記) 이덕무(李德懋)와 박제가(朴齊家)가 떠받들었다는 모씨들이 누구일까? 교과서적인 상식으로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을 떠올릴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문체와 발상으로 한 시대를 놀라게 했고 그에 대한 열광적인 추종의 분위기가 근엄한 주자학자들의 우려를 자아낸 인물로 ‘실학파 문인’ 박지원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여기 언급된 인물은 박지원보다 앞서서 문단의 기린아로 등장한 남인계(南人系)의 문사 이용휴(李用休)와 그의 조카 이봉환(李鳳煥)이다. 이 글은 노론(老論) 정객 심낙수(沈樂洙)의 언급이긴 하지만 ‘간사하고 방종한’(邪淫) 인물이라고 평가된 이용휴에게 한 시대의 젊은 문인들이 이토록 열광한 것은 매우 특이한 일이다. 영조 말년 이용휴의 명성은 대단했다. 문장을 연마하는 이들이 모두 그의 비평과 가르침을 듣고자 몰려들었다. 이를 두고 정약용(丁若鏞)은, “벼슬에도 나아가지 않은 신분으로 문단의 저울대를 손에 잡은 것이 30여 년이었으니, 이는 예로부터 유례가 없는 일이다”라고 했다. 정치와 문학이 전혀 별개 영역인 지금의 관점으로는 재야에서 조선 문단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선이라는 국가의 특징을 생각하면 이 의미가 매우 심중함을 알 수 있다. 인문(人文) 숭상을 표방한 조선에서 한 시대의 문장을 평가하고 계도하는 것은 국가의 일이었다(문체반정文體反正을 떠올리면 되겠다). 이를 담당하는 기관인 홍문관, 예문관의 책임자 대제학이 ‘저울대를 잡고 물건의 경중을 가리듯 문장의 고하를 판정하여 인재를 등용하는 직책’이라는 의미의 문형(文衡)이라는 별칭으로 불린 것이 바로 이러한 뜻이다. 따라서 자신의 문장을 인정받고자 하는 문인이라면 이러한 권세를 지닌 이들에게 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벼슬에 오를 가능성이 제한된 서얼은 그렇다 치고, 앞으로 벼슬길에 나아가야 할 사대부의 자제들까지, 실권은커녕 벼슬을 한 적도 없는 재야인사 이용휴의 인정을 받기 위해 몰려든 것이다. 이른바 ‘재야문형’(在野文衡)의 탄생이다. 문학을 전공한 사대부 혜환 이용휴는 28세 생원시 합격을 끝으로 더 이상 과거 시험을 보지 않았고, 이후 75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전혀 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채 그야말로 재야 문사로서의 삶을 살았다. 사대부(士大夫)는 벼슬길에 올라 대부(大夫)로서 경세(經世)에 참여하거나 혹은 학문에 힘쓰는 것이 본분이고, 문장 수련은 그 수단 내지 여기(餘技)에 불과하다는 것이 당대 조선 일반의 인식이었다. 그러나 애초에 대부로서의 가능성이 차단된 이용휴는 오로지 문학에만 힘을 쏟았다. 이용휴에게 있어서 문학은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치열한 장이었으며, 따라서 자신의 문학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컸다. 대학자였던 숙부 성호 이익에게 배운 다른 자제들이 주역학과 예학, 경제학, 수학, 군사학 등에서 각기 일가를 이룬 것과 대등한 열의와 진지함으로 이용휴는 문학을 ‘전공’했다. 전공을 가진다는 것은 ‘군자불기’(君子不器)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대부에게는 금기였다. 사대부의 생을 평가할 때 업적과 장점을 기준으로 경세가, 학자, 문장가의 어느 한쪽에 방점을 찍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결과를 놓고 가하는 후대의 평가일 뿐 대개의 사대부는 이 중 어느 하나를 ‘전공’한다고 자임하지 않았다. 이들이 애초에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가운데 문장가의 길을 걷겠노라고 스스로 천명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렇기에 주자학의 나라 조선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문학 전공자’ 이용휴는 이채로운 인물이다. ‘참 나’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기록들 실학자들이 현실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한 경세(經世)의 이상을 학문으로 저술해 냈다면, 이용휴는 세상의 통념을 넘어서 자신이 생각하는 삶과 예술의 가치를 문학이라는 상상의 세계로 그려냈다. 이용휴의 작품을 일별하면 유독 ‘나’에 대한 시선이 매우 강함을 발견할 수 있다. 남들의 생각, 이미 주어진 관념들을 철저히 해체하고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일갈을 끊임없이 던진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런 내용을 담은 그의 산문 작품 대부분이 남들과의 관계 속에서 지어졌다는 사실이다. 멀리 있거나 떠나는 이를 위해 지은 증서(贈序)와 송서(送序)를 비롯해서, 남의 글이나 그림에 써 준 서문(序文)과 제발(題跋), 상대의 건물 이름에 담긴 뜻을 풀어준 기문(記文), 남의 자(字)를 지어 주며 의미를 밝힌 자설(字說), 장수를 축원하는 수서(壽序), 그리고 죽은 이에게 말을 거는 제문(祭文) 등이 주류를 이룬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은 독방에서 자신을 향해서만 되뇌는 주문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던지고자 한 경구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문학을 매개로 하는 인간관계들이야말로 이용휴가 삶을 이어 나갈 수 있게 한 힘이었다. 그런 면에서 문학은 이용휴가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했다. 나와 남을 놓고 보면, 나는 친하고 남은 소원하다. 나와 사물을 놓고 보면 나는 귀하고 사물은 천하다. 그런데도 세상에서는 도리어 친한 것이 소원한 것의 명령을 듣고, 귀한 것이 천한 것에게 부려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욕망이 그 밝음을 가리고, 습관이 참됨을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이에 온갖 감정과 여러 행동이 모두 남들을 따라만 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지 못한다. 심한 경우에는 말하고 웃는 것이나 얼굴 표정까지도 저들의 노리갯감으로 바치며, 정신과 사고와 땀구멍과 뼈마디 하나도 나에게 속한 것이 없게 되니, 부끄러운 일이다.―내 집에 세 들어 사는 나(원제 『아암기』
목차
책머리에 - 혜환의 글을 다시 풀어 엮으며
해제 - 이용휴, 그의 삶과 글
발문 - 세 가지 만남
삶의 길, 죽음의 자세
상상 속에 그리던 삶
무엇에 빠질 것인가?
살구나무 아래 작은 집
조화로움에 대하여
잘 먹고 잘 살기
빛나는 곤궁함
내 동포 보기를 내 몸 보듯이
부끄러워서 안 부끄러운 사람
편안할 수밖에 없는 집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돌을 마주보며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손자야 내 손자야
바로 이 사람
따르며 살리라
내 집에 세 들어 사는 나
나에게 돌아가기
우리 삶에 허락된 시간들을 위하여
자네와 한 시대를 산 것만으로도 행복이었네
끝내 지켜지지 않은 술 약속
한 염세주의자의 죽음
귀에 거슬리는 말을 이제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마실 가듯 그렇게 가시게나
절반만 살아도 온전한 한평생
세상 밖으로, 예술 속으로
가짜가 판치는 세상
선생님 질문 있어요
골치 아픈 먹물 놈들
임금에게 하는 충고
해서 고을 거지 이야기
최고의 이사
비웃는 자와 비웃음을 받는 자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네 개의 고을로 세상을 다 다니다
절반으로 전체를 읽다
기록을 다 믿는다면
두미호에 출몰한 용
괴상한 이야기에 대한 정말 괴상한 이야기
좋은 꽃은 빨리 시든다
겨울밤의 무지개와 날개 달린 푸른 호랑이
시인의 자리
진정한 소유
시인의 조건
그 시, 그 사람
예전에 쓴 것을 내던져라
옛것과의 단호한 결별
그림으로 더위 나기
환쟁이를 위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