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심양장계 1637~1643년 심양에서의 긴급 보고

시리즈 : 규장각 새로 읽는 우리 고전 [13]

심양관 저 | 김남윤 역 | 아카넷 | 2014년 08월

북트리

정가
$52.00
판매가
$28.6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57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8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88957333822 / 556쪽 158 x 221 (㎜) / 양장본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병자호란 직후 대청(對淸)외교 최전선의 현장 보고 『심양장계』는 병자호란 직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배종 신하들이 청나라의 수도 심양(성경)에서 승정원에 보낸 장계를 모은 것이다. 장계에는 세자나 대군의 안부에서부터 관소에서 벌어진 일, 정축화약의 약조에 따른 양국 간의 현안 등을 상세히 기록하여, 명·청 교체기 조선이 처한 현실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청나라 군대의 침공으로 쑥대밭이 된 강토와 청으로 끌려간 포로가 수(십)만을 헤아리는 참담한 상황에서 대청외교의 최전선에서 타전한 현장 보고인 것이다. 장계는... 병자호란 직후 대청(對淸)외교 최전선의 현장 보고 『심양장계』는 병자호란 직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배종 신하들이 청나라의 수도 심양(성경)에서 승정원에 보낸 장계를 모은 것이다. 장계에는 세자나 대군의 안부에서부터 관소에서 벌어진 일, 정축화약의 약조에 따른 양국 간의 현안 등을 상세히 기록하여, 명·청 교체기 조선이 처한 현실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청나라 군대의 침공으로 쑥대밭이 된 강토와 청으로 끌려간 포로가 수(십)만을 헤아리는 참담한 상황에서 대청외교의 최전선에서 타전한 현장 보고인 것이다. 장계는 1637년 2월 11일 소현세자 일행이 심양으로 가는 길에 장단(長湍)에서 보낸 것을 시작으로 1643년 12월 15일 세자가 두 번째 일시 귀국길에 보낸 것까지 7년간의 장대한 기록이다. 이번에 ‘규장각 새로 읽는 우리 고전’의 하나로 출간된 역해본 『심양장계』는 핵심 장계들만을 가려 뽑아 다양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으며, 등장인물의 면모, 청나라 중심의 국제관계, 만주족과 심양 사회의 모습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충실한 주석과 깊이 있는 해설을 실었다. 대사관 또는 영사관의 구실도 한 심양관 심양으로 끌려간 소현세자와 배종 신하들이 머물던 관소를 심관(瀋館) 또는 심양관(瀋陽館)으로 부른다. 조선에서 보낸 사신이나 재자관(?咨官)도 심양에 오면 머물게 되었고, 피로인을 속환하려고 심양에 온 그 가족들, 청과 무역에 나선 상인들도 심양관 일대에 머물다 갔다. 또 화약에 따라 삼공육경(삼정승 육판서)도 질자(質子)를 보내야 했는데, 이들은 관소 옆 질자관에 머물렀다. 심양관은 심양에 온 조선인들이 모이는 곳이었고 이들에 대한 관리도 담당해야 했다. 즉 현재의 대사관이나 영사관 역할도 겸하였다. 청나라는 양국의 현안들을 먼저 심양관에 와서 세자와 재신(宰臣)에게 말하고 즉시 본국 조정에 장계로 보고하여 조치하도록 주문하였다. 따라서 심양관의 세자와 재신들은 청나라의 강압을 가장 먼저 대하는 대청외교의 최전선에 자리했다. 이들은 장계를 작성하여 청의 요구를 곧바로 조선에 보고하였다. 또 전란 후 조선의 어려운 실정을 대국 청나라에 호소하여 청의 압박을 줄이려고 노력하였다. 이 심양에서의 긴급 보고는 청 태종이 조선에 내린 명령, 칙사 행차 소식, 청 군병들이 사로잡은 피로인의 속환, 조선에 살던 향화인의 쇄송, 대명전쟁에 참전할 조선 군병과 군량의 징발, 조선에 대한 불신, 조선과 명의 밀통 사건으로 인한 양국 관계의 경색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다루었다. 곧 조청관계의 현안들을 본국으로 알리던 보고문이 『심양장계』이다. 패전국 조선의 치욕스러운 역사 가장 중요한 현안은 전후 처리에 관한 것이다. 병자호란 뒤에 두 나라가 맺은 화약(정축화약)에 따라 양국의 사대(事大) 관계를 새로이 정립하고, 수많은 피로인(被擄人)을 속환(贖還)하는 문제였다. 청나라는 조선에 명나라와의 관계를 끊고 소국으로서 대국에 사대를 바치고 약조를 이행할 것을 종용하였으며 그 일환으로 명나라를 침략하는 전쟁(대명전쟁)에 필요한 물자와 식량을 조달하고, 수군과 포수 등 일부 군병을 조선에서 징발하고자 하였다. 1637년 4월에는 [명나라 도독 모문룡(毛文龍)의 잔당들이 머물던] 가도(?島) 토벌에 동참하도록 명령하였고, 1638년 1월에는 명나라의 금주(錦州) 공격에 군병 5천의 동원을 요구하였다. 결국 1640년 해주 전투에 임경업(林慶業)의 수군이 참전한 일을 시작으로 이후 조선 군병의 참전은 계속되었고, 군량도 조달해야 했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또한 청 태종을 수행하여 전장에 나가야 했다. 전란 후 조선은 계속된 재해와 흉년으로 그 피해를 거의 복구하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청의 요구대로 신속히 응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특히 대명전쟁에 참전하는 일은 조선 신료들이 어떻게든 회피하려고 하였다. 침공해온 청의 무력에 굴복하였으나, 성리학적 명분론과 대명 의리 의식은 여전히 강고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장계에는 1640년 수군을 이끌고, 많은 군량을 운송하는 임무까지 띠고 참전한 임경업이 일부러 이동을 지연하고 청의 군령을 따르지 않는 태만한 모습을 지적하고 있다(40번 장계). 또한 조정에서 척화신 김상헌(金尙憲)이 대명전쟁 참전 등 청의 명령에 반대하는 논의를 펼치고, 병자호란 이후 조정을 주도한 최명길(崔鳴吉)이 승려 독보(獨步)를 몰래 명으로 들여보내 청에 굴복한 조선의 사정을 알린 사건 등이 밝혀지면서 조청관계는 급속히 경색되었으며, 사건 당사자들은 청나라로 끌려가 신문을 받고 형벌을 당하게 된다(64번 장계). 이처럼 『심양장계』는 청나라의 강압에 시달리는 패전국 조선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자세히 전하고 있다. 피로인 속환을 둘러싼 청인들의 횡포 청 군병이 수(십)만의 조선인을 포로로 잡아간 데는 개인의 소유물이 된 이들 피로인(被擄人)의 몸값을 치르고 개별적으로 속환(贖還)하게 함으로써 경제적 이득을 취하며, 청의 인구수를 늘리려는 목적도 있었다. 청은 피로인 시장을 열고 청인(淸人) 주인과 피로인 가족 간에 개별적으로 속환을 하게 하였다. 그런데 이런 청의 속환책은 자신의 아들딸을 빨리 되찾으려는 일부 조선 고관의 행태와 더 많은 속전(贖錢)을 챙기려는 청인들의 욕구가 맞물려 피로인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는 등 큰 폐단을 낳았다. 준비해온 돈으로는 속환을 할 수 없어 속전을 일부만 주고 가거나, 청인에게 빌려 속환한 사람들도 생겨났다. 이들이 조선으로 돌아간 뒤 미수금을 관소에서 받아내려는 청인들의 횡포까지 『심양장계』에서 볼 수 있다(27번 장계). 피로인 가운데 압록강을 건넌 뒤에, 즉 청나라 땅으로 들어온 뒤에 도망간 포로는 주회인(走回人)이라고 하였다. 도망가다 붙잡히면 발꿈치를 잘리는 형벌을 당하였고, 천신만고 끝에 돌아갔다 해도 다시 조선 조정에 의해 심양으로 쇄환되었다. 이것 역시 약조에 따른 일이었다. 조정을 원망하는 민심이 흉흉하였으나, 당시 조정은 피로인·주회인에 대한 대책 없이 청의 압박과 요구에 따라 억지로 이들을 색출해 보내야 했다(17번 장계). 또 조선에 향화(귀화)하여 살고 있는 여진인과 그 자손도 찾아내 돌려보낼 것을 지속적으로 강요하였다(53번 장계). 조선에 정착하여 몇 대에 걸쳐 살고 있는 향화인도 여진족(만주족)의 골육이므로 돌려보내라는 것이었는데, 이 때문에 이산가족이 된 향화인들이 다시 조선으로 도망쳐 돌아오기도 하였다. 향화인 쇄송은 만주족의 인구수를 늘리려는 방도의 하나였다. 소현세자의 현명한 처신 돋보여 청나라의 볼모살이에서 풀려나 8년 만에 조선으로 돌아온 소현세자는 곧 ‘학질’에 걸려 숨을 거둔다. 소현세자가 청조에 보인 처신과 능력을 높게 평가하는 이들은 이 ‘의문의 죽음’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청나라의 황제나 관료들을 상대하는 『심양장계』 속 세자의 모습에서도 현명한 대응과 처신이 단연 돋보인다. 세자는 조선의 어려운 형편을 호소하여 청측의 관용을 이끌어냈는가 하면, 조선의 관례를 내세워 이해를 구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황제나 청나라의 요구를 단호하게 물리치는 모습도 보인다. 징병 명령을 따르기 어려움을 호소한 자문의 내용을 두고 청 관료들의 힐책이 이어지자, ‘양국이 한집안이고 부자관계와 같다’라는 황제의 말을 인용하며 조선의 때와 형세가 명령을 따르기 어려우니 아버지께 진정한 것이라며 호소하는 모습(21번 장계), 청나라 장수 만월개(滿月介)가 세자에게 모든 것을 본국에 미루고만 있다고 핀잔하자, 세자는 본디 정사에 관여할 수 없게 되어 있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저자 소개

심양관은 소현세자가 병자호란 직후 청나라의 볼모로 심양에 있을 때 머물렀던 관소이다. 조청관계의 통로 역할을 했으며, 양국 간의 현안과 소현세자의 동정 등 모든 일을 장계로 보고하였다. 장계는 소현세자의 배종 신료 가운데 주로 재신이 작성하여 승정원에 보낸 보고문이다. 심양관의 재신은 세자 빈객이나 이사를 겸하고 있었다.

책 속에서


황제가 “조선은 매사에 없다고 막아버리는데, 내가 무슨 요구를 하였기에 이러는가?” 하자, 세자가 “어찌 없는 것을 있다 하고, 있는 것을 없다 할 리가 있겠습니까. 황제께서 이미 환히 아실 것입니다”라고 답하였습니다.

(본국에 모든 사안을 미룬다는 만월개 장군의 추궁에 대하여) 세자가 답하기를, “내가 감히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은 부득이 국왕께 통보하고,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힘을 다해 하고 있습니다. 어찌 미루는 일이 있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심양관의 내관이) “법에 아비를 따르게 되어 있다면 위 향화인의 딸은 그 아비를 따르더라도, 향화인의 사위는 우리나라 사람이니 그의 딸은 아비를 따라 우리나라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답하자, 정역이 말이 궁하여 “이런 일은 조선에서 스스로 실상을 조사하고 처리해야 할 것이니, 우선 장계하십시오”라고 답하였습니다.

목차

목차
해제 『심양장계』의 편찬과 내용
정축년(인조15, 1637)
1 장단에서 띄운 첫 장계
2 황해도 봉산에서
3 월경 채비
4 가도 토벌군의 징발
5 심양 도착
6 심양에 온 사신과 임경업
7 피로인 속환과 윤집·오달제의 죽음
8 명나라에 보낸 마지막 사신
9 청조의 여러 행사
10 평안도 바닷가에서 명장을 접대한 사건
11 약조 이행 강요
12 칙사에 대한 탐문
13 황제가 보낸 세찬
무인년(인조16, 1638)
14 삼전도비문 수정
15 몽골에서 소 사들이기
16 호부에서 보낸 찬값
17 향화인과 주회인 쇄송
18 몽골에 간 성익의 보고
19 세자의 산증
20 심양관의 돌림병
21 조선 군병의 징발
22 세자의 참전 통고
23 청나라에 바친 시녀
24 황제의 진노
25 봉림대군의 참전
26 마부대의 권유
27 십왕의 패전 소식
28 홍시와 배의 매매
기묘년(인조17, 1639)
29 피로인 속환의 폐단
30 정명수·김돌시 고발 사건
31 더욱 엄중해진 검문 수색
32 고발 사건 처리에 대한 염탐
33 중전과 세자 책봉의 규례
34 제왕이 베푼 잔치
35 관원 파견 요청
36 삼전도비문 새김
경진년(인조18, 1640)
37 인평대군의 숙배
38 원손의 심양 도착
39 원손과 봉림대군의 귀국
40 군령을 따르지 않은 조선 수군
41 군량을 나를 부마의 징발
42 약조를 어긴 일 12가지
43 인평대군의 귀국
44 쇄환인의 도착
신사년(인조19, 1641)
45 김상헌·신득연·조한영·채이항의 진술
46 사신의 선물을 받은 청역들
47 조선 군병의 교체
48 세자와 봉림대군의 참전
49 송산 전쟁터에서
50 신비의 장례
51 경중명의 도움
52 김상헌 등에게 내린 황명
임오년(인조20, 1642)
53 향화인 자손의 쇄송
54 승전 진하례
55 공미 오천 석
56 일본에 대한 문답
57 명과 강화하는 일에 대한 의논
58 심양관 원역들의 호소
59 홍승주·조대수의 복종 의식
60 심양으로 몰려오는 사람들
61 본국과의 통로가 막힌 심양관
62 청의 깊어가는 의심
63 봉황성에서의 심문
64 세자의 완강한 거부
65 전 평안감사 민성휘의 진술
계미년(인조21, 1643)
66 척화신에 대한 처분
67 명나라에서 넘어온 조선 군병
68 최명길·김상헌 등의 방면
69 칙사 접대와 세폐에 대한 경감 조치
70 청군의 회군과 전과
71 황제의 죽음과 장례
72 황위 승계
73 금주의 승전보
74 세자와 강빈의 귀근
연표
참고문헌
도판목록
찾아보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