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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뒤집은 황당무계 사건들

정구선 저 | 팬덤북스 | 2014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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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4792934 / 372쪽 145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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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점을 쳐서 수도를 결정하다, 임금을 몰래 미행한 사관, 젖비린내 나는 아이가 관리가 되다, 판서가 졸병과 함께 보초를 서다, 코끼리에게 밟혀 죽은 판서, 서울에 운하를 건설하려고 하다, 노비에게도 봉급과 휴가를 주다, 화폐 위조범을 찾아라, 외국 사신을 놀라게 한 불꽃놀이……. 조선판 ‘세상에 이런 일이’ 조선에서 일어난 흥미롭고 놀라운 사건들! 조선 시대라 하면 고루하고 답답한 시대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아주 흥미로운 시기였다. 《조선왕조실록》을 찬찬히 읽다 보면 조선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야말... 점을 쳐서 수도를 결정하다, 임금을 몰래 미행한 사관, 젖비린내 나는 아이가 관리가 되다, 판서가 졸병과 함께 보초를 서다, 코끼리에게 밟혀 죽은 판서, 서울에 운하를 건설하려고 하다, 노비에게도 봉급과 휴가를 주다, 화폐 위조범을 찾아라, 외국 사신을 놀라게 한 불꽃놀이……. 조선판 ‘세상에 이런 일이’ 조선에서 일어난 흥미롭고 놀라운 사건들! 조선 시대라 하면 고루하고 답답한 시대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아주 흥미로운 시기였다. 《조선왕조실록》을 찬찬히 읽다 보면 조선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야말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 야사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마치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놀랄 정도의 역사가 가득하다. 《조선을 뒤집은 황당무계 사건들》은 실록 속에 숨어 있는 흥미진진하고 황당한, 때로는 놀라운 역사를 정리하여 담아낸 이야기보따리다. 책에 실린 이야기를 통해 조선의 생생한 역사 속으로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 그동안 감추어진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나아가 조선 시대, 조선 사람들에 대하여 좀 더 폭넓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책의 기본 배경은 조선 건국 직후인 태조 때부터 3대 태종 때까지이다. 해당 시기의 국왕과 왕실, 관료, 백성, 명나라 사신과 관련된 역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후대 왕의 연간에서 관련 일화를 첨부하기도 했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한 공신들은 고려 왕실의 후예인 왕씨들이 살아 있는 한 편히 발을 뻗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들은 모반을 도모했다는 허무맹랑한 구실을 꾸며 왕씨들을 일망타진하였다. 조선은 태조 3년 9월에 한양으로 수도를 옮겼지만, 그 이전에는 계룡산 부근에 수도를 정하려다가 취소하였다. 다시 서울의 무악재 아래 신촌 일대로 옮기려다가 포기한 적도 있다. 한양에 수도를 정한 조선은 ‘왕자의 난’ 이후 개성으로 잠시 옮겼다가 태종 때 한양으로 재천도하였다. 한양으로 재천도하는 결정은 종묘에서 동전으로 점을 쳐서 정했다고 한다. 덕수궁이란 이름을 가진 궁궐은 엄연히 조선 건국 직후부터 있었다. 태조 이성계가 1398년 10월 왕위에서 물러난 이후 그가 머물던 궁궐을 태상궁이라고 불렀다. 정종 2년 6월에 당시 세자로 있던 이방원의 청에 따라 태상궁의 이름을 덕수궁이라고 고친 것이다. 신생 왕조를 안정시키고 기틀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는 콧대가 한껏 높아진 무신들을 억누르고 상대적으로 의기소침해 있는 문신들을 다독여 주어야 했다. 무관 출신인 태조 이성계와는 달리 과거에 급제한 문관 출신인 태종은 무관을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태도를 보였다. 태종은 무예를 한갓 미친 짓이라고 하기도 했다. 문무의 균형을 맞추려는 태종의 현명하고 원대한 정치적 안목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조선 시대에는 재상 등의 고위직을 역임한 신하들이 사망하면 임금이 부의금을 하사하고, 성대하게 장례를 치러 주며, 시호를 내렸다. 부의로 1품은 쌀과 콩을 아울러 60?100석, 정2품은 40?50석, 종2품은 30석 이하를 주었다. 1석을 2가마로 치고, 1가마를 80kg으로 환산하면 100석은 약 200가마로 16,000㎏이다. 당시 재상들은 정말 어마어마한 부의금을 하사받았던 것이다. 임금님의 지나친 부의금 때문에 나라 곳간이 거덜 날 정도였다. 사초는 사관이 임금이나 신하들의 언행을 날마다 기록한 것으로, 실록 편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초 자료였다. 사관들이 안심하고 직필하도록 실록을 편찬하기 전까지는 임금을 비롯한 그 누구도 사초를 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태조와 태종은 굳이 사초를 열람하려다가 신하들과 충돌을 빚었다. 고려 32대 왕으로 공민왕의 아들인 우왕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이후 폐위되었다가 죽임을 당했다. 우왕에게는 모두 9명의 왕비가 있었는데, 대부분 궁궐에서 쫓겨나 본가로 돌아갔다. 본가로 쫓겨난 왕비 중에는 우왕의 제8비였던 선비 왕씨도 포함되어 있었다. 선비는 본가로 쫓겨난 뒤 조선이 들어서자 판통례문사를 지낸 유은지와 재혼하였다. 한때 자기가 섬기던 왕의 부인을 아내로 삼은 것은 군신의 예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삼강오륜을 어지럽히는 짓이라는 여론이 거셌다. 태종이 어느 날 포천군에서 사냥을 하였다. 수행하던 사람들 가운데 6명이 숙소에서 쑥갓과 거여목처럼 생긴 독초를 잘못 먹고 갑자기 죽는 일이 벌어졌다. 소식을 들은 임금은 앞으로 자기의 식탁에 쑥갓과 거여목을 올리지 말라고 지시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나이 어린 사람들이 관리가 된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는 젖비린내 나는 아이가 관리가 되어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조선 시대에도 요즈음의 인사 청문회와 비슷한 서경署經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관리 후보자들의 신분, 조상, 과거 합격 여부 등을 조사하여 관리로서의 적합도를 검증하는 제도로, 서경을 통과하지 못하면 관리가 되지 못했다. 조선 초기에는 관청에 출근하지 않고 결근하거나 조퇴하는 관리들이 많았다. 조정에서는 이들에게 매를 쳐서 징계하였다. 지방으로 전출되면 부모의 병을 핑계로 관직을 내던지고 내려가지 않는 관리들이 많아 큰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다. 또한 임금의 부름에 항상 응할 수 있도록 2품 이상의 재상들은 지방에 머물지 말고 한양에 거주하도록 하였다. 조선의 대간들은 한 가지 문제가 생기면 수없이 간언을 올리거나 상소를 올려 임금을 괴롭혔다. 태종은 참다못해 신하들이 세 번 이상 간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기까지 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어이없는 일로 처벌을 받은 관리들이 많았다. 임금에게 올리는 글에서 본인 이름 앞에 신臣 자를 붙이지 않았다고 하여 파직된 관리가 있었다. 시호를 잘못 정했다가 교수형을 당할 뻔한 관리도 있었다. 문서나 본인 이름에 임금과 세자의 이름을 쓸 수 없어 이름을 두 번 바꾸어야 했던 공신도 있었다. 조선 건국 직후에는 저녁 8시경부터 새벽 4시경까지 4대문을 통과하거나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는 야간 통행 금지령을 실시했는데, 영을 어겼다가 파직된 대사헌도 있었다. 심지어 비가 많이 내려 농민들이 기르는 벼를 떠내려가게 했다는 죄로 수령을 파직하기까지 하였다. 태종 때 공조 전서를 지낸 이우가 일본에서 보낸 코끼리에게 침을 뱉었다가 밟혀 죽었다. 고려 후기의 대학자인 이제현의 증손자 이담이 미친개에게 물려 죽었다. 태종의 딸과 자기 아들과의 결혼을 단호하게 반대했다가 역적으로 몰려 노비로 강등된 전직 군수가 있었다. 조선 초기의 대표적 문신인 변계량은 20여 년 동안이나 대제학을 맡으면서 크게 존경을 받았지만 집에서는 그렇지 못하였다. 후처를 방에 가두어 두고 창구멍을 내어 음식을 주거나, 소변도 자유롭게 보지 못하게 하는 등의 박대를 하여 탄핵을 받았다. 궁녀는 일단 궁에 들어가면 왕의 여인이었다. 혹시 궁에서 나가더라도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 없었다. ‘왕자의 난’을 치른 공신으로 태종의 총애를 받았던 조영무가 궁녀를 첩으로 삼았다가 많은 비난을 받았다. 조선 왕조는 신분 제도를 엄격히 하기 위하여 노비, 기생 등의 천인과 양인 간의 결혼을 건국 초기부터 강력하게 금지하였다. 그럼에도 첨절제사를 지낸 정복주가 본처를 버리고 기생의 딸과 혼인하여 후처로 맞았다가 관직을 잃고 평민으로 강등된 일이 있었다. 조선 군대에는 돌을 던지며 싸우는 척석군이 있었다. 수군에서는 왜구를 추격하기 위해 쾌선 내지 경쾌선이라 불린 작고 빠른 쾌속선을 만들어 실전에 투입하기도 하였다. 재판에 불만을 품은 여인이 임금이 어가를 타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앞으로 뛰어들었다. 호위병과 부

저자 소개

동국대 사학과에서 역사를 공부하였으며, 동대학원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조선시대의 천거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방송대․용인대․경기대․성결대 강사, 한성디지털대 겸임교수, 동국대 연구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역사 관련 저술 작업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조선시대 천거제도연구》, 《한국관리등용제도사연구》, 《공녀》, 《성, 역사와 문화》(공저), 《한국사의 새로운 인식》, 《중세시대의 환관과 공녀》, 《조선시대 처사 열전》, 《한국중세의 천거제도》, 《한국 근대 관리임용 연구》, 《조선의 발칙한 지식인을 만나다》, 《조선의 출셋길, 장원급제》, 《조선은 뇌물천하였다》, 《조선왕들, 금주령을 내리다》, 《조선을 뒤집은 황당무계 사건들》 등이 있으며, 그밖에 다수의 논문이 있다.

책 속에서

이어 이천우에게 명하여 소반 위에 동전을 던지게 하였다. 그 결과 한양은 2길 1흉이 나왔고, 개성과 무악은 모두 2흉 1길이었다. 드디어 한양이 수도로 최종 결정되기에 이르렀다. - p42

조선 시대에도 현대의 인사 청문회와 같은 제도가 있었다. 물론 지금의 인사 청문회와는 많이 다르지만, 관리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정식으로 임명되기 전에 서경署經이라는 일종의 청문회를 거쳐야 했다. 서경이라는 심사 과정을 통해 부적격자를 걸러 내고자 했던 것이다. 서경 과정은 현대의 인사 청문회 못지않게 까다롭고 엄격하게 진행되었다. 서경을 통과하지 못하여 관직에 임명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 p104

건국 직후에는 육조六曹의 판서에 해당하는 전서들이 일반 병졸들과 함께 임금을 호위하거나 궁궐을 수비하는 시위侍衛 임무를 맡기도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국방부 장관이 육군 일등병과 함께 대통령을 경호하거나 청와대 경계를 위한 보초를 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 p148

사노비들이 비참한 대접을 받은 반면, 공노비들은 여러 가지 혜택을 받았다. 나라에서는 나름대로 보호 내지 구호 차원에서 공노비에게 봉급을 지급하고 휴가를 주기도 했다. 특히 출산을 앞둔 여종에게는 요즘과 같이 출산 휴가를 주는 배려가 베풀어졌다. 나라에 공을 세운 노비들은 양민으로 신분 상승을 시켜 주기도 했다. - p258

태종 3년 5월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던 어느 날 황해도 봉산에서 어떤 남자가 소를 끌고 가다가 벼락을 맞아 죽었다. 그런데 죽은 사람의 손가락과 음경을 잘라 간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황해도 관찰사가 범인을 법에 따라 처벌했다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 - p294

이예는 왜구에게 잡혔다가 유구국에 팔려 간 사람 44명을 데리고 6개월 후에 돌아왔다. 귀환한 사람들 중 경상도 상주에 살던 전언충全彦忠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태조 4년인 1395년 나이 14세에 잡혀 팔려 갔다가 1416년에 돌아왔으니 무려 21년 만의 귀환이었다. 부모는 이미 모두 사망하고 없었다. 늦게나마 부모의 상을 치르려 하자 임금이 불쌍히 여기어 겹옷 두 벌, 홑옷 한 벌, 베 10필과 미두 15석을 하사하였다. - p371


목차

목차
제1부 왕실에서 그런 황당한 일이!
고려의 왕족을 몰살하라 / 무악재 아래가 조선의 수도가 될 뻔하다 / 점을 쳐서 수도를 결정하다 / 백성들이 신도를 버리고 구도로 이주하다 / 조선 초기에도 덕수궁이 있었?다 / 궁궐에서는 꼭두새벽에 조회가 열렸다 / 조선에도 솔로몬의 재판이 있었다 / 무武는 미친 짓이다 / 임금의 부의금은 왜 이리 많았을까 / 전하, 사초를 보시면 아니 되옵니다 / 임금을 몰래 미행한 사관 / 조선의 세자와 명나라 황녀를 혼인시키려 하다 / 고려 우왕의 왕비를 조선의 신하가 아내로 삼다 / 아이들이 왕과 왕자를 희롱하다 / 쑥갓과 거여목은 왕의 식탁에 올리지 말라
제2부 관리들이 감히 이런 일을!
개국 공신들의 맹약 / 젖비린내 나는 아이가 관리가 되다 / 천거를 잘못한 자를 처벌하라 / 조선 시대에도 인사 청문회가 있었다 / 천인이 재상에 오르다 / 출근하지 않은 관리에게 매를 쳐라 / 부모의 병을 핑계로 관직을 내던지다 / 2품 이상의 관리들은 지방에 거주하지 말라 / 신하들은 세 번 이상 간하지 말라 / 신臣 자를 쓰지 않았다고 하여 파직되다 / 시호를 잘못 정했다가 교수형을 당할 뻔하다 / 이름을 두 번 바꾼 공신 / 야간 통행금지를 어겼다가 파직된 대사헌 / 벼가 떠내려가게 한 수령을 파직하다 / 기생 때문에 화를 당한 관리들 / 선임자가 후임자를 괴롭히다 / 상관에게 욕을 하면 처벌을 받는다 / 판서가 졸병과 함께 보초를 서다 / 코끼리에게 밟혀 죽은 판서 / 이제현의 증손자가 미친개에게 물려 죽다 / 말값을 떼어먹은 수령 / 이웃사촌끼리 격렬하게 싸운 관리 / 참나무로 석회를 만들려고 한 어이없는 대신 / 왕의 명령을 잊어버린 관리 / 칼을 들고 대궐에 들어간 내시 / 서울 사람을 장원으로 뽑아라 / 왕실과의 혼인을 거절했다가 역적으로 몰리다 / 후처를 박대한 재상 / 궁녀를 감히 첩으로 삼다 / 기생의 딸을 후처로 삼았다 패가망신한 양반 / 돌을 던지며 싸우는 군인 / 조선에도 쾌속 전함이 있었다 / 수군이 미역이나 따다 / 군인들과 일반 관리들이 충돌하다
제3부 백성들에게 과연 무슨 일이!
이씨 왕조의 수명은 30년? / 서울에 운하를 건설하려고 하다 / 꿈을 잘못 꾸어 사형당하다 / 상왕을 사칭하다가 참수되다 / 도사님이 역모를 꾸미다 / 조선을 등진 망명자들 / 노비가 도성 안에서 말을 타고 돌아다니다 / 어가에 뛰어들었다가 노비로 전락한 여인 / 사대부의 부인들은 걸어 다니지도 말라 / 왕씨 성을 일절 쓰지 못하게 하다 / 시골 사람이 함부로 창덕궁에 들어가 구경하다 / 황색 속옷을 금하라 / 남자들만 호패를 차라 / 노비에게도 봉급과 휴가를 주다 / 화폐 위조범을 찾아라 / 상인과 공인도 세금을 내다 / 무당에게도 세금을 거두다 / 배가 침몰하여 천여 명이 죽다 / 자식을 팔아서 빚을 갚다 / 세쌍둥이는 경사로다 / 경칩 이후에는 들에 불을 놓지 말라 / 소나 말을 들판에서 기르지 말라 / 도둑질이 아니라 간통이라네 / 죽은 사람의 음경을 자르다 / 노비를 천여 명이나 소유한 거부 / 백성들은 어떻게 법률을 알았을까? / 사형 판결은 삼심제를 거치게 하라 / 독자는 사형시키지 말라 / 곤장 100대는 치사율 100% / 죄인의 발꿈치를 베고 얼굴에 문신을 하다 / 말의 먹이를 훔쳤다가 장 발장이 될 뻔하다 / 종들이 임금의 사당에서 감히 도박을 하다
제4부 중국 사신이 어떻게 그런 짓을!
명나라 황제가 조선의 사신을 구타하고 죽이다 / 금강산을 너무도 좋아한 명나라 사신 / 명나라 사신의 오만과 행패 / 명나라 사신이 우리나라를 저주하다 / 사랑하는 기생을 데리고 가려 한 명나라 사신 / 명나라에 끌려간 조선의 처녀들 / 명나라에서 소를 1만 필이나 요구하다 / 사리를 1,300여 과나 명나라에 보내다 / 일본을 정벌하려고 하니 길을 빌려 달라 / 외국 사신을 놀라게 한 불꽃놀이 / 왜구에게 잡혀갔다가 21년 만에 귀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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