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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칠정을 논하다

원제 : 論四端七情書
시리즈 : 책세상문고 고전의 세계 [80]

이황, 기대승 저 | 임헌규 역 | 책세상 | 2014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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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0138855 / 216쪽 128 x 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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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인간 심성의 기원을 탐구한 두 성리학자의 철학적 논쟁 ‘사단’과 ‘칠정’의 발현을 파헤쳐 한국적 성리학의 기틀을 마련하다 2014년 4월, 세월호가 침몰해 어린 학생들을 포함한 수백 명의 탑승객이 차가운 바닷속에 가라앉았다. 온 나라가 충격과 비탄에 빠진 가운데 노란 리본의 물결이 출렁였고, 자원봉사를 하거나 성금을 내는 사람들, 서명을 하고 관련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한편 사람이 사람을 상대로 저지른 흉악한 범죄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면 가해자에게는 분노가, 피해자에게는 연민이 고개를 내밀곤 한다. 사... 인간 심성의 기원을 탐구한 두 성리학자의 철학적 논쟁 ‘사단’과 ‘칠정’의 발현을 파헤쳐 한국적 성리학의 기틀을 마련하다 2014년 4월, 세월호가 침몰해 어린 학생들을 포함한 수백 명의 탑승객이 차가운 바닷속에 가라앉았다. 온 나라가 충격과 비탄에 빠진 가운데 노란 리본의 물결이 출렁였고, 자원봉사를 하거나 성금을 내는 사람들, 서명을 하고 관련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한편 사람이 사람을 상대로 저지른 흉악한 범죄에 대한 소식을 접할 때면 가해자에게는 분노가, 피해자에게는 연민이 고개를 내밀곤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이처럼 순수하게 선한 마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러한 선한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일찍이 조선 시대에 도덕적 본성과 자연적 감정의 기원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전개한 성리학자 두 사람이 있었다.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이다. 이들은 사단四端(측은·수오·사양·시비로 대표되는 순수하게 선한 도덕 감정)과 칠정七情(희·로·애·구·애·오·욕으로 대표되는 사람의 온갖 감정 일반)이라는 성리학 개념을 깊이 탐구해 각각의 기원과 발현 과정을 논함으로써 사람의 본성과 감정에 대한 이론을 정립했다. 먼저 대학자로 존숭받던 이황이 주자의 이기론理氣論에 따라 사단과 칠정의 근원을 각각 이치理와 기운氣으로 분별했고, 이에 30대 초반의 신진학자 기대승이 사단과 칠정은 이치와 기운이 겸해 함께 발현하는 것으로 나누어 귀속될 수 없다고 문제를 제기하자, 이황이 자신의 입론을 수정한 서간을 보내며 두 사람의 ‘사단칠정론’이 시작되었다. 나이와 지위의 간극을 뛰어넘어 8년에 걸쳐 진심 어린 서신을 주고받으며 토론을 거듭한 이들의 논쟁은 성리학적 형이상학 개념인 이치와 기운으로 도덕적 실천의 철학적 근거를 해명한 첫 번째 논쟁으로서 이후 조선 성리학을 이끄는 초석이 되었고, 보통의 감정과 선한 도덕 감정의 문제를 성리학계의 화두로 끌어올리며 인간 심성의 구조와 인간의 바른 길을 구하는 학문인 심성론과 수양론을 이끌었다. 조선시대 3대 논쟁(사단칠정론, 인심도심 논쟁, 인물성동이론)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손꼽히는 사단칠정 논쟁은 조선 성리학의 모든 논쟁을 유발한 발원지로서 이후 한국 유교와 학자들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친 근본 사건이다. 도덕적 위기와 혼란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인간됨의 근거를 마련하고자 고투했던 퇴계와 고봉의 철학 논쟁은 우리 자신의 도덕적 삶을 성찰하게 한다. ‘이치’와 ‘기운’으로 ‘사단’과 ‘칠정’의 설을 정립하다 26년의 나이 차이를 극복한 지적 논쟁, 서신으로 이루어진 두 학자의 대결 이치와 기운은 본래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가 우주 만물을 정초할 때 사용했던 용어다. 주자는 사람, 하늘과 땅, 만물의 생성 과정을 이치와 기운으로 설명했으나 이때 사람의 감정에 대한 이론은 미완인 채로 남아 있었다. 심성론에 대한 설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주자의 주된 관심이 우주론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사단과 칠정을 주자의 이기론으로 확립하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었고, 그 선두에 이황과 기대승이 있었다. 이들의 사단칠정론은 최초로 사단과 칠정의 기원을 이치와 기운을 가지고 논한 논쟁으로서,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는 논쟁의 길을 여는 시발점이었다. 두 사람은 학문적 위상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컸고 나이 차이도 26년이나 되었지만, 기대승이 학문적인 순수한 열정으로 호기롭고 과감하게 질문을 던지자 이황은 스스로 잘못 생각한 부분은 겸허히 인정하고 고치며 진지한 자세로 그와 서신을 주고받았다. 대학자와 신진학자라는 학계 지위의 간극을 초월해 두 사람은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면서도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있어서는 결코 물러서지 않고 대등한 위치에서 묻고 답하며 8년 동안이나 첨예한 논쟁을 이어나갔다. 사단칠정론은 두 사람의 진실한 우정과 학자로서의 기개가 오롯이 담겨 있는 논쟁이다. 이들의 논쟁은 이후 조선 성리학파들 사이에 다시 갈래가 나뉘어 계속해서 관련 논쟁들을 파생하면서 200여 년 동안이나 이어져 내려왔고, 우리나라의 성리학을 크게 발전시켰다. 특히 이황의 주장은 인간 내면의 도덕적 본성에 대한 근거를 확립하여 사람들이 수양을 함으로써 선하고 인간적인 자기완성에 다다를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함의하는 바와 영향력이 매우 크다. 사단칠정론, ‘호발설’과 ‘주기론’의 대립 이황과 기대승은 둘 다 사단과 칠정을 이치와 기운을 가지고 논했으나 기본적인 입장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논쟁을 거듭하며 서로 자신의 입론을 보완하고 고쳐 합일점을 찾아가면서도 중심이 되는 핵심 주장들은 확고히 유지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논쟁이 치열한 접점을 이루고 다른 학자들에게로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을 것이다. 차이점에 초점을 맞춰 갈래를 구분한 이황 이황은 사단과 칠정을 이치와 기운에 각각 분리해 귀속시켰고 끝까지 그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처음에 ‘사단은 이치의 발현이고, 칠정은 기운의 발현이다’라고 언명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치와 기운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기대승의 반론에 따라 이 최초의 입론을 ‘사단의 발현은 순수한 이치이기 때문이니 선하지 않음이 없고, 칠정의 발현은 기운을 겸하기 때문에 선과 악이 있다’라고 고쳐 제시했고, 이것을 다시 수정해 ‘사단은 이치가 발현함에 기운이 따르고, 칠정은 기운이 발현함에 이치가 타는 것이다’라고 하며 최종 정론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사단과 칠정을 각각 유래하는 곳에 따라 구별해 말하지 않으면 인욕이 천리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사단의 기원을 칠정과 달리 이치에 귀속시키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치의 능동적인 발현을 주장한 이러한 이황의 입론은 ‘호발설’이라고 불린다. 공통점에 주목해 하나임을 주장한 기대승 반면에 기대승은 사단이 비록 순수하게 선하다고 해도 그것 역시 감정이므로 칠정과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황이 사단과 칠정을 너무 심하게 구분해 다른 곳에 귀속시켰다고 지적하며, 사단은 칠정이 발현해 절도에 맞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지 칠정 이외에 다시 사단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변했다. 그래서 논쟁의 종결부에서 사단과 칠정을 이치와 기운에 나누어 귀속시키는 데에도 뜻이 있고 이유가 있다며 이황의 입론을 인정하면서도, 이치와 기운이 나누어지지 않기 때문에 칠정은 사단을 포함하고 또 이치와 기운, 선과 악을 겸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칠정이 사단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감정이 발현함에 혹 이치가 움직여 기운이 함께 갖추어지기도 하고, 혹 기운이 감응해 이치가 타기도 한다.” 기대승의 주장은 기운을 강조하는 ‘주기론’에 속한다.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론이 조선 성리학에 미친 영향 퇴계 이황, 성리학의 기초를 닦다 ‘사단은 이치가 발현할 때 기운이 따르는 것이다’라는 이황의 주장은 학계에서 비판과 옹호를 한꺼번에 받으며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왜 사단을 굳이 칠정에서 분리했을까? 이황에게는 ‘사단’이라고 하는 순수한 도덕 감정의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 사단칠정론의 핵심 과제였다. 즉 그가 사단과 칠정의 근원을 이치와 기운에 따로 둔 것은 일반적인 기쁨, 슬픔 등의 감정과 구별되는 순수한 인간 본성의 근거를 확립하려 했기 때문이다. 퇴계는 고봉의 이치·기운이 서로 떨어질 수 없다는 원칙을 수용하면서도, 끝까지 “이치와 기운은 서로 섞일 수 없기 때문에 떨어지지 않아도 이치는 스스로 이치이고, 기운은 스스로 기운”이라는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고 또한 사단의 근거로 사덕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는

저자 소개

李滉 : 1501 - 1570
본관은 진보(眞寶), 호는 퇴계(退溪), 시호는 문순(文純)으로 경북 예안(禮安) 출생이다. 1523년(중종 18년)에 성균관에 입학하고, 1534년 식년 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다. 부정자(副正子).박사(博士).호조좌랑.정언(正言) 등을 거쳐 형조좌랑으로서 승문원 교리를 겸직하였다. 1542년에 검상(檢詳)으로 충청도 암행어사로 나갔다가 사인(舍人)으로 문학(文學)교감(校勘) 등을 겸직, 장령(掌令)을 거쳐 이듬해 대사성(大司成)이 되었다. 
1545년(명종 즉위) 을사사화 때 삭직되었다가 이어 사복시정(司僕寺正)이 되고 응교(應敎) 등의 벼슬을 거쳐 1552년 대사성에 재임, 1554년 형조.병조 참의에 이어 1556년 부제학, 2년 후 공조참판이 되었다. 1566년 공조판서에 오르고 이어 예조판서, 1568년(선조 1년)에 우찬성을 거쳐 대제학을 지내고 이듬해 은퇴, 학문과 교육에 전심하였다. 
이언적(李彦迪)의 주리설(主理說)을 계승해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주장했으며, 특히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사상의 핵심으로 하는 퇴계와,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주제로 한 기대승(奇大升)과의 8년에 걸친 논쟁은 사칠분이기여부론(四七分理氣與否論)의 발단이 되었다. 
그의 학풍은 문하생인 유성룡(柳成龍) .김성일(金誠一) .정구(鄭逑) 등에게 계승되어 영남학파(嶺南學派)를 이루었고, 이이(李珥)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기호학파(畿湖學派)와 대립하였으며, 그의 학설은 임진왜란 후 일본에 소개되어 그곳 유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창설, 후진 양성과 학문 연구에 힘썼고 현실생활과 학문의 세계를 구분하여 끝까지 학자의 태도로 일관했다. 중종.명종.선조의 지극한 존경을 받았으며,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묘 및 선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단양(丹陽)의 단암서원(丹巖書院), 괴산의 화암서원(華巖書院), 예안의 도산서원 등 전국의 수십 개 서원에 배향되었다. 

 기대승奇大升(1527∼1572)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명언明彦이고, 호는 고봉高峯과 존재存齋,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나 1549년 소과에, 1558년 식년문과 을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 성균관대사성, 공조참의 등을 역임하다가 말년인 1572년에 병을 얻어 귀향하던 중 비교적 젊은 나이에 임종을 맞이했다. 1558년 김인후·이항 등과 태극설太極說을 논했고, 정지운의《천명도설天命圖說》을 탐구하면서 퇴계를 찾아가 의견을 나눈 뒤 12년간 그와 서신을 교환하며 우의를 다졌다. 그 가운데 1559년부터 1566년까지 8년 동안 주고받은 사단칠정에 대한 논쟁은 유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논쟁으로 평가받는다. 제자로는 정운룡·고경명·최경회·최시망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논사록 論思錄》《왕복서往復書》《이기왕복서 理氣往復書》《주자문록 朱子文錄》《고봉집高峯集》등이 있다.

역자 소개

강남대 철학과(교양학부장) 및 사단법인 유도회 한문연수원(논어담당) 교수이며, 동양고전학회 회장ㆍ동방학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경북대 철학과ㆍ서울대 대학원(서양철학, 석사)ㆍ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동양철학, 석·박사)을 졸업하고, 유도회 부설 한문연수원(3년)과 미국 하와이대(비교철학) 등에서 공부했다. 저서로는 『공자에서 다산 정약용까지-유교 인문학의 동서철학적 성찰』, 『유교 인문학의 이념과 방법』, 『주자의 사서학과 다산 정약용의 비판』, 『유가의 심성론과 현대 심리철학』, 『노자 도덕경 해설』, 『리란 무엇인가』, 『노자: 도와 덕이 실현된 삶 』등이 있다. 역서로는 『원유』 (상, 하), 『인설』 , 『노자』 , 『답성호원』, 『사단칠정을 논하다』, 『주자의 철학』, 『노자철학연구』, 『장자: 고대중국의 실존주의』, 『후설의 현상학』, 『하버마스: 다시읽기』, 『현대유럽철학의 흐름』, 『데리다와 푸꼬,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등이 있다.


 

목차

목차
사단칠정을 논하다 | 차례
들어가는 말 | 임헌규 7
《천명도설》 후서 부록 도안 15
사단칠정을 논하다 33
1. 기명언 대승에게 드림 35
2. 기명언의 사단칠정은 이치와 기운으로 나눌 수 없다는 논변? 37
3. 기명언에게 답함 : 사단칠정을 논한 첫 번째 서간 40
4. 고봉이 퇴계에게 답한, 사단칠정을 논한 서간 46
5. 기명언에게 답함 : 사단칠정을 논한 두 번째 서간 81
6. 고봉이 퇴계가 사단칠정을 재론한 것에 대해 답한 서간 114
7. 기명언에게 답함 : 사단칠정을 논한 세 번째 서간 136
8. 기명언의 사단칠정 후설 141
9. 기명언의 사단칠정 총론 144
10. 거듭 기명언에게 답함 147
해제 - 조선 최대의 지적 사건, 사단칠정 논쟁 | 임헌규 149
1. 사단칠정론의 배경 149
2. 사단칠정론의 경과 151
(1) 발단과 고봉의 문제 제기 151
(2) 퇴계의 1차 답변 154
(3) 고봉의 반론 157
(4) 퇴계의 수정안과 반론 159
(5) 고봉의 재반론과 논쟁의 타협 161
3. 논쟁의 평가와 현대적 의의 164
용어 해설 179
주 189
더 읽어야 할 자료들 211
옮긴이에 대하여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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