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예상일 안내
주문하신 상품이 한국에서 현지 배송을 위한 출고단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입니다. 상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출고예상일에 다소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 상품(예약상품포함)을 함께 주문하신 경우 출고예상일이 가장 늦은 날짜에 맞춰 함께 배송됩니다.

ISBN : 9788962620832 / 712쪽 145 x 210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
유시민
-
아쉴 음벰베
-
유발 하라리
-
스네자나 로렌스
- 17,010
- 22,500
- 71,280
- 24,300
- [시리즈] 메콩 시리즈 [4]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앙코르에 들어가는 것은 이 훌륭한 현요혼미(眩耀混迷)를 훔쳐보는 것이다. 앙코르와 같이 면면히 스스로를 보여주는 고도는 많지 않으며, 더욱이 그 어떤 것도 과거의 사물을 충분히 이야기하지 못하?고, 그 신비, 희비극, 영화를 충분히 그리워하게 하지 않는다. 앙코르의 모든 문들은 신비유암(神秘幽暗)을 향해 열려 있다. 이 문들의 조각들, 회랑에서 들려오는 무언가의 속삭임, 부근에서 발굴된 유적에서도 그 불명료한 혼미훤효(混迷喧?)의 신비를 해명하지 못한다. 안타깝다.” 제 31회 산토리학예상 수상 제 26 회 시부사와 ·클로델... “앙코르에 들어가는 것은 이 훌륭한 현요혼미(眩耀混迷)를 훔쳐보는 것이다. 앙코르와 같이 면면히 스스로를 보여주는 고도는 많지 않으며, 더욱이 그 어떤 것도 과거의 사물을 충분히 이야기하지 못하고, 그 신비, 희비극, 영화를 충분히 그리워하게 하지 않는다. 앙코르의 모든 문들은 신비유암(神秘幽暗)을 향해 열려 있다. 이 문들의 조각들, 회랑에서 들려오는 무언가의 속삭임, 부근에서 발굴된 유적에서도 그 불명료한 혼미훤효(混迷喧?)의 신비를 해명하지 못한다. 안타깝다.” 제 31회 산토리학예상 수상 제 26 회 시부사와 ·클로델상 수상 1. 학술적 의의, 인문학적 품격, 그리고 읽는 재미를 두루 갖춘 일본 교양인문학의 걸작을 만나다! 신간 『앙코르와트 : 제국주의 오리엔탈리스트와 앙코르 유적의 역사 활극』(원제: オリエンタリストの憂鬱)은 제국주의시대 프랑스가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물을 반출하는 이야기를 다룬 근대 고고학사에 관한 책이다. 19세기 중반에 걸쳐 20세기 중반까지 약 100년 동안 프랑스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고고학 조사를 수행하는 일련의 과정에 얽히고설킨 역사적·정치적 맥락을 학술적으로 파악하고,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충족하면서도 인문학적인 품격을 아울러 갖추며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본문만 약 600쪽, 주, 그림목록, 참고문헌 및 찾아보기 등도 무려 100쪽이 넘으며, 19세기부터 최근까지의 다양한 고문서 자료를 포함하여 100여 컷이 넘는 사진자료까지 수록하고 있다. 특히 에는 인명사전에조차 실려 있지 않은 앙코르 유적과 관련된 다양한 인물들뿐만 아니라, 단체명, 연구·교육기관, 저작물, 주요 유적과 예술작품, 기타 사건·법령·주요 개념 등이 아주 자세히 실려 있어, 만으로도 고고학사·미술사에서의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앙코르와트』는 고고학, 미술사, 역사, 정치 등 여러 면에서 두루 읽힐 수 있는 책이다. 책은 2009년에 제31회 산토리학예상과 제26회 시부사와·클로델상을 수상하며 그 학술적 성취를 드러냈다. 보통의 학술서는 딱딱하며 지루한 내용이 주를 이뤄 일반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앙코르와트』는 고고학과 역사 이면에 숨은 제국주의시대 프랑스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기 때문에 두꺼운 분량이지만 쉽고도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다. 독자들은 지적 호기심, 인문학의 품격, 그리고 학술적 가치까지 무려 세 마리의 토끼를 잡고 있는, 중후한 교양인문학의 걸작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2. 그들은 아시아에서 무엇을, 그리고 왜 가져갔는가? 제국주의시대 약 100년 동안 앙코르 유적에 남은 수수께끼를 풀다 유럽에서 최초로 앙코르 유적의 유물이 복원·전시된 것은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였다. 그리고 프랑스 최대의 아시아미술 컬렉션을 보유한 기메국립아시아미술관, 통칭 기메미술관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아시아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의 1층 전시실에는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에서 출토된 크메르 조각상이 ‘미술관의 얼굴’로 전시되어 있다. 왜 프랑스의 국립미술관만이 예외적으로 캄보디아미술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 것일까? 이곳의 대부분의 조각상들은 1870년대부터 1930년대에 걸쳐 수집된 것들이고, 이 시기는 프랑스가 캄보디아 등의 인도차이나 반도를 식민지화하고 있던 시기와 정확하게 겹친다는 사실에서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1887년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앙코르 유적은 프랑스의 연구기관에 소속되어 있던 프랑스인 고고학자들이 거의 독점적으로 조사했고, 그로 인해 대량의 유물들이 프랑스로 이송되었다. 앙코르 유적을 재발견하고 최초로 유적을 이송한 인물은 누구이고, 그 이후의 프랑스극동학원이라는 기관은 어떻게 고고학의 본격적인 조사를 주관했으며, 나아가 식민지에서의 고고학적 활동은 어떠한 체제하에서 이루어졌는가 등, 책에서는 이런 의문들에 대해 답하고자 한다. 분명 프랑스가 앙코르 유적을 재발견하고 학술조사를 하여 앙코르 고고학의 기초를 마련했고, 이러한 ‘공헌’이 없었다면 앙코르 유적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세계문화유산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대량의 유물들과 미술품이 유적지에서 반출되어 프랑스로 강제 이송되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또한 불법적인 유물이송을 법적으로 제한한 뒤에도, 교묘히 법망을 피해 ‘합법적’으로 유물들을 프랑스 본국으로 가져왔으며, 구미 국가나 일본의 미술관에 미술품을 교환하거나 매각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위는 20세기 중엽까지 계속되었다. 귀중한 크메르의 미술품을 유적지에서 반출해 프랑스 본국으로 가져온 그 이면에는 심각한 정치적인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책은, 프랑스가 행한 “고고학적 조사의 학술적 공헌과 식민주의시대의 정치적 부채(負債)가 몇 겹으로 겹치고 교차하는 실상”을 사료들을 통해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 시대를 대표했던 인물들과 학술기관, 그리고 사건들을 클로즈업하여 자세한 연보 정보와 함께 상술하고 있는 책은, 읽는 이에 따라 학사연표로 활용할 수도 있고, 앙코르 고고학사를 둘러싼 역사 활극으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도 있다. 얻기 어려운 미간행 고문서 자료나 시각 자료를 다양하게 수록한 이 책은, 그렇기에 학술적으로도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3. 앙코르 유적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이 펼치는 역사 활극 오리엔탈리스트의 현실과 정치적 역학 관계를 낱낱이 살펴본다 책에는 우리에게 생소할 수 있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인물들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와 그들과 얽힌 사건들을 통해 앙코르 유적의 재발견과 발굴, 유물의 반출 및 판매에 관련된 앙코르 고고학사를 다각적이고 편년적으로로 기술하고 있다. 앙코르 유적을 재발견하고 유물들을 프랑스로 이송한 루이 들라포르트는 순수한 유적보전의 차원이 아닌 식민지 고고학의 정당성 차원에서 ‘새로운 보호자(식민지 통치자)’로서 유적보전을 주장했다. 그로 인해 앙코르 유적은 프랑스인들의 입맛에 맞게 새롭게 ‘복원(수복)’되었다. 들라포르트는 그러한 복제품을 학술적인 산물로 인식하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본격적인 인도차이나연구를 위해 탄생한 조사연구기관인 ‘프랑스극동학원’은 식민주의시대에 창립되어 오늘날에도 활동을 계속하는 기관이고, 앙코르 고고학사와 깊은 연관이 있다. 초대원장 루이 피노는 고고학적 실적이 없는 문헌학자이자 엘리트 동양학자였다. 피노를 비롯한 알프레드 푸셰나 폴 펠리오 등도 신세대 엘리트 동양학자로서 앙코르 고고학 조사에 참여하게 되지만 그들은 말 그대로 학문적으로는 아마추어에 그쳤다. 그들은 식민지 답사 및 조사에 정치적으로 적극적인 개입이 이루어지는 것이 이상적인 연구라고 생각했고, 또한 아시아로의 진출을 획책하며 아시아 내에서 프랑스의 존재의 중요성을 호소하는 정치적 차원의 목적에 충실했다. 그 외에도 아캉, 마셜, 파르망티에, 카바통, 카르포, 그롤리에, 그루세, 스테른 등 수많은 인물들이 극동학원과 앙코르보존국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앙코르 유적 조사와 연구에 힘썼다. 식민주의시대의 오리엔탈리스트(동양학자)들은 학문이 곧 정치라고 강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책은, 식민지의 유적에 대해 극동학원은 어떤 조사를 했는지, 유적조사를 위한 법적 제도는 어떻게 정비되어 있었는지, 식민지에 학술기관을 설치한 프랑스의 목적은 무엇이며 어떠한 이상을 내걸고 있었는지를 집중 조명한다. 그러나 책의 목적은 동양학이 얼마나 정치적이었던가를 밝히는 것도 아니고, 정치가 곧 악이라는 것을 판단하는 것도 아니다. 학문과 정치를 분리시켜 편의에 따라

# 1
이와 같이 분석한다면, 우리들은 들라포르트의 복제품이나 삽화에 대해 식민주의적인 관점에서의 해석을 부가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거기에 식민자가 표명한 ‘문명교화의 사명’의 이중논리를 찾아낼 수 있다. 이국적인 이미지는 식민지의 미개성이나 야만성을 표현하고, 그 땅을 정복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한편, 정밀한 데생을 통해 학술성을 제시하는 이미지는 황폐한 식민지의 유물을 소생시킨다는 근대적인 영위營爲를 시각화하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아시아의 미개성과 유럽의 근대성을 대비시킴으로써 전통적인 문명교화의 사명을 유럽인들에게 부여하고, 프랑스에 의한 캄보디아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제1장 루이 들라포르트와 앙코르 유적 복원의 꿈 / 109-110쪽
# 2
나의 목적은 동양학이 얼마나 정치적이었던가를 밝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목적이 아니라 전제이다. 이 전제하에 나는 어떤 의미에서 정치사로서의 앙코르 고고학사를 쓰고, 정치적 성과로서 오늘날의 고고학·미술사학의 모습을 부각시켜야겠다고 생각한다. 20세기의 아시아 고고학이 정치 없이는 성립도 성공도 없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 정치가 악이었다면 학문도 또한 악이다. 정치적 악 아래에서 풍부한 학문적 성과가 초래되었다는 현실도 존재한다. 오늘날 오리엔탈리스트의 담론이나 행동의 정치성이 비난받는다고 한다면, (…) 학문과 정치를 분리시켜 학문에 내재해 있던 정치적인
부분을 망각했기 때문인 것이다.
제3장 본국의 이념과 식민지 실천의 틈바구니에서 (1) / 191-192쪽
# 3
통속 수준의 관광유치와 학술적인 복원을 단락적으로 결부시키는 것은 고고학에 대한 모독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관광객을 위해 도로를 정비하여 유료의 국립공원을 개원하고, 잇달아 폐허를 복원하여 되살리던 1930년대의 앙코르국립공원은, 거대한 복제품군을 줄 세워놓고 방문객을 기쁘게 해주던 19세기 말 이래의 파리 만국박람회의 놀이공원amusement park의 연장선상에서 생겨난 이상적인 공원이지 않았을까?
‘보여주는(전시하는)’ 고고학의 역사는 결코 끝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유네스코에 의한 세계문화유산과 얽혀, 오늘날 새롭게 한층 더 발전해가고 있는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연간 100만 명을 넘는 관광객을 맞이하게 된 오늘날의 앙코르 유적에는 그 역사의 폐해가 일찍이도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다.
제5장 앙코르 고고학의 발전과 그 무대 뒤 (1) / 317쪽
# 4
캄보디아의 문화부흥정책이든 고미술품 판매든, 일련의 문제성 있는 사건은 이 책이 주제로 삼고 있는 근대의 아시아 고고학이라는 학문 그 자체의 구조적 문제에서 유래하고 있다. 즉, 일련의 사건의 배경에는, 식민지와 구미(메트로폴)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불균형적인 학술적 및 정치적 권력격차의 문제가 감춰져 있다. 메트로폴과의 경합관계 안에서 현지의 조사원들은 자신들의 활동의 성과를, 식민지 외부의 구미 각국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했다. 구미에서의 평가 없이는 현지에서의 학술적 성공도 보증받지 못하고, 자금도 얻을 수 없다. 경제격차의 문제와도 유사한 구조적인 학술적 불균형의 세계에서, 식민지에서의 학술활동이 평가받기 위해서는 구미의 학술기관이 요구하는 1급의 고미술품을 내보일 필요가 있었다. 이 시기에 구미의 미술관에 매각된 캄보디아의 고미술품은, 구미가 지배하는 학문세계에서 식민지에서의 연구가 평가받기 위해 바쳐진 ‘공물貢物’, 또는 구미의 미술관이라는 신전에 바쳐진 ‘공물供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제6장 앙코르 고고학의 발전과 그 무대 뒤 (2) / 383-384쪽
# 5
고미술품의 해외유출은 유적보존의 관점에서 본다면 커다란 ‘손실’이고 ‘파괴’라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파괴 없이는 보존을 위한 자금을 얻을 수 없다. 또한 고고학의 성과를 전하기 위해서는 조사·보존에 임해야 할 조사원이 일시적으로 본국으로 돌아가 선전 및 홍보활동을 해야 한다. 더욱이 홍보활동이 성공하여 유적의 지명도가 높아지자 관광객이 한층 더 증가하고, 또한 도굴도 증가하는 악순환도 초래되었다. 근대화의 도상途上에 있던 아시아 고고학은, 이러한 딜레마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제7장 파리 국제식민지박람회와 앙코르 유적의 고고학 / 472쪽
목차
서장 파리의 국립아시아미술관과 앙코르 유적의 근대 고고학사
제1장 루이 들라포르트와 앙코르 유적 복원의 꿈
. 기메미술관의 전시품과 들라포르트
. 모험담으로서의 유물반송
. 들라포르트의 크메르미?술관(美術觀)
. 파리에서 열린 최초의 크메르미술 전시
. 크메르미술관에서 인도차이나미술관으로
. 인도차이나미술관의 복제품 전시
. 복제품에 나타난 19세기 말 유적의 상황
. 19세기 복원의 이상
. 참뱃길 조각을 둘러싼 수수께끼
. 고고학적 스펙터클과 만국박람회
. 만년의 들라포르트
제2장 프랑스극동학원의 창설과 그 정치학
. 초대원장 선출을 둘러싼 수수께끼
. 초창기 극동학원 조사의 실상
. 일본학자 클로드 메트르
. 고고학적 조사를 위한 법적 정비
. 법제하에서의 유물의 관리와 이동
. 극동학원 창설의 정치학
. 크로노폴리틱스와 지오폴리틱스
제3장 본국의 이념과 식민지 실천의 틈바구니에서 (1) ―현지조사원의 현실
. 두 장의 사진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동양학자
. 프랑스 동양미술연구의 이중적 기준
. 문헌학자 카바통과 유적목록 작성자 라종키에르
. 두 조사원의 죽음, 카르포와 오당달
. 건축가의 작업, 뒤푸르와 파르망티에
. 앙코르보존국장, 코마이유와 마셜
. 캄보디아 출생의 예술국장, 그롤리에
제4장 본국의 이념과 식민지 실천의 틈바구니에서 (2) ―메트로폴의 발전
. 20세기 초 파리의 동양학 사정
. 파리의 동양미술사료
. 파리의 오리엔탈리스트 (1) ―조제프 아캉
. 파리의 오리엔탈리스트 (2) ―메트로폴의 총아, 그루세와 스테른
. 그루세의 동양미술사 이념
. 동양미술관의 재편성 (1) ―기메미술관의 변혁 233
. 동양미술관의 재편성 (2) ―국립미술관 통합과 인도차이나미술관의 종언
. 동양미술 교육체제의 확립 ―루브르학원의 아시아미술교육
. 보편주의, 형식주의, 그리고 식민주의
. 방법론적 어긋남의 표면화 ―스테른 저 『앙코르 유적 바이욘』의 충격
. 스테른의 앙코르 참배
제5장 앙코르 고고학의 발전과 그 무대 뒤 (1) ―고고학사상의 말로 사건
. 말로 사건과 고고학사
. 사건의 개요
. 말로 사건에서 보는 1920년경 고고학의 상황
. 법적 근거의 모호함과 문화재보호법의 개정
. 법 개정의 무대 뒤
. 사건 후의 반테아이 스레이 재조사
. 파르망티에의 논문과 ‘동양의 모나리자’
. 소생하는 반테아이 스레이
. 아니스틸로시스와 복원의 사상
제6장 앙코르 고고학의 발전과 그 무대 뒤 (2) ―현지의 혼란과 메트로폴의 몰이해
. 학원의 새로운 얼굴 ―세데스와 골루베프
. 골루베프의 새로운 고고학 방법
. 그롤리에의 캄보디아예술국, 미술학교, 미술관
. 캄보디아의 전통부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 캄보디아예술국에서 보는 식민지정책의 변화
. 그롤리에의 암약과 앙코르 고고학에 미친 영향
. 학원에 의한 고미술품 판매
. 증가 일로의 고미술품 판매 ―구미 미술관과의 거래
. 근대 고고학·미술사학에 바친 ‘공물(貢物)과 공물(供物)’
. 메트로폴의 몰이해
제7장 파리 국제식민지박람회와 앙코르 유적의 고고학
. 식민지박람회와 고고학의 공헌
. 복원된 앙코르와트의 상징적 의미
. 마르세유박람회의 앙코르와트
. 식민지박람회와 극동학원
. 정확한 세부가 의미하는 것
. 극동학원전람회
. 식민지궁에서 보는 인도차이나와 앙코르 유적의 표상
. 식민지궁의 건축양식
. 파사드의 거대한 식민지 두루마리그림
. 쟈니오의 양식
. 프레스코 장식 ―중앙 홀과 두 개의 살롱
. 그림 속의 고고학과 전통공예
. 박람회와 고고학·미술사
제8장 앙코르 유적의 고고학사와 일본
. 전시하 일본의 앙코르 붐
.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일본인에 의한 앙코르 연구
. 일불회관과 극동학원의 연대
.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일불회관
. 일불인 문화협력 전야 ―전시하 극동학원의 균열
. 제1회 교수 교환, 오타 마사오
. 불인 순회 현대일본화전람회
. 골루베프의 내일 강연과 전람회
. 남부 불인진주와 문화협력의 변화
. 전시하 일본에 있어서 앙코르 유적의 의미
. 제2회 교수 교환, 우메하라 스에지
. 세데스의 내일 계획
. 극동학원과 제실박물관의 고미술품 교환
. 전시하의 고미술품 증여와 판매
. 식민지 고고학의 종언과 새로운 비극의 시작
. 마지막으로 ―일본이 꾼 앙코르의 꿈
종장 후기를 대신하여
옮긴이의 글
주
그림목록
참고문헌
찾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