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준(姜龍俊, 1931∼)은 황해도 안악(安岳)군 용문(龍門)면 매화리에서 부 강성직(姜聖稷)과 모 이한호(李漢湖)의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작가는 교명(敎名) 루스로 영세를 받았다. 3, 4세 때 신천(信川)읍으로 이사했다. 6세 때 부모와 헤어져 고향 안악으로 돌아와 조부 및 백부 밑에서 성당 소속의 유치원에 1년 다녔다. 다음 해 신천의 가족들도 모두 고향으로 솔가해 왔다. 성당 소속의 봉삼(奉三)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안악중학교, 안악고등학교, 진남포(鎭南浦)공업전문학교 등을 거쳐, 1950년 평양사범대학에 재학 중 한국전쟁이 발발해 그해 7월 인민군 보충병으로 징집되었다. 이후 유엔군의 포로가 되어 부산 동래, 거제도 고현리, 광주 사월산 등지에서 만 3년간 수용소 생활을 했다.
1953년 6월 18일 반공 청년 석방일에 사월산 수용소에서 철조망을 뚫고 탈출해, 이후 전남 함평군 대동면 용성리에서 약 3개월간 기식하다가 부산으로 옮겨 부두 노동 등을 하며 전전했다.
1954년 10월 2일 공병 소위(工兵少尉)로 임관해, 경북 영천 1205건설공병단 508철교중대 소대장으로 부임했다. 1958년 오용숙(吳龍淑)과 경북 영천에서 결혼했다.
1960년 7월 《사상계(思想界)》 제1회 신인문학상에 《철조망(鐵條網)》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63년 3월 31일 강원도 홍천에서 수도사단 공병대대 중대장으로 복무 중 전역했다. 출판협회 임시직으로 잠시 근무하기도 했다.
1964년 사상계사에 입사해 1966년 퇴사했고, 이어 한국해외개발공사 공보실에 근무하다 1968년 퇴사했다. 같은 해, 장편 《태양(太陽)을 닮은 투혼(鬪魂)》을 간행하고 단편 《악령(惡靈)》을 발표했다. 1969년 장편 《밤으로의 긴 여로(旅路)》를 간행하고, 1970년 중편 《광인일기(狂人日記)》를 발표했다. 1971년 《광인일기》로 한국일보사 제정 제4회 한국창작문학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장편 《사월산》 연재를 시작했다. 1972년 《광인일기》가 일본 《요미우리신문(讀賣新聞)》에 ‘세계 10대 소설’로 선정되어 전면에 소개되었고, 장편 《흑염(黑焰)》 연재를 시작했다. 1973년 단편 《비가(悲歌)》를 발표하고 장편 《탈주자들》을 연재했다. 1974년 창작집 《광인일기》를 간행했다.
1976년 《밤으로의 긴 여로》로 대한민국문학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1977년 창작집 《거도(巨盜)》를, 1979년 장편 《가랑비》를 간행했다. 1980년 장편 《사월산》 《꼬르넷을 벗은 수녀(修女)》를 간행하고 장편 《천국으로 이르는 길》을 연재했다.
이후 15년 동안 《천국으로 이르는 길》, 《무정》, 《멀고 긴 날들과의 만남》, 《어느 수녀의 수기》, 《바람이여 산이여》, 《검은 장갑의 부루스》, 《낯설은 방》, 《파도 너머 저쪽》, 《탄》, 《광야》 등 다수의 장편을 상재하고, 중편집 《나성에서 온 사내》와 작품집 《아버지》를 간행하는 등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1988년 《바람이여 산이여》로 한국문학 작가상을, 1996년에는 《광야》로 한무숙 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