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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시리즈 : 실천문학의 시집(실천시선) [141]

신동호 저 | 실천문학 | 2014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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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9222199 / 176쪽 / 229g /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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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시대의 아픔으로 지은 평화의 노래 1990년대 시집 『겨울 경춘선』과 『저물 무렵』을 발표하며 80~90년대 한국의 암울한 시대상을 노래하며 현대사의 좌절을 딛고 새로운 깨달음을 모색한 신동호 시인이 20년 가까운 오랜 침묵 끝에 새 시집을 들고 돌아왔다. 그는 이번 시집을 통해 분단과 분열, 억압을 극복하고 화해와 소통, 이해로 가는 길을 찾고자 모색한다. 시인은 그 길에서 성공보다는 실패를, 희망보다는 좌절을 후대에게 넘겨주고자 한다. 후대는 그것을 탐침봉 삼아 현실이 좌절한 원인을 찾아 극복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 시대의 아픔으로 지은 평화의 노래 1990년대 시집 『겨울 경춘선』과 『저물 무렵』을 발표하며 80~90년대 한국의 암울한 시대상을 노래하며 현대사의 좌절을 딛고 새로운 깨달음을 모색한 신동호 시인이 20년 가까운 오랜 침묵 끝에 새 시집을 들고 돌아왔다. 그는 이번 시집을 통해 분단과 분열, 억압을 극복하고 화해와 소통, 이해로 가는 길을 찾고자 모색한다. 시인은 그 길에서 성공보다는 실패를, 희망보다는 좌절을 후대에게 넘겨주고자 한다. 후대는 그것을 탐침봉 삼아 현실이 좌절한 원인을 찾아 극복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겨울 지나 봄…… 그러나 다시 겨울 “갈 곳이 더는 없었네/더 가봐야 철책선,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시작하는 시 「겨울 경춘선」을 읽어본 이라면, 이 표제시를 품고 있는 그의 첫 시집 『겨울 경춘선』을 읽어본 이라면, 80년대 말 90년대 초 뜨거운 가슴으로 이 땅을 살아온 이라면, 신동호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힘차고 푸르렀던 젊은 날의 심박을 다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막차. 겨울은 뼛속까지 밀고 들어왔다. 사랑이 고통이라면 다른 고통쯤은 다 잊고도 남았다. 시간이 가까워오면 조금씩 대화의 간격이 줄어들었다. 말줄임표도 사라져갔다. 우리들의 여행은 끝나가고 있었을까, 새벽을 기다리며 가난한 대합실의 작은 온기를 나누었을까. 사랑은? 종착역. 끝이 없는 여행은 없다. 없기에 슬프고, 없기에 다행이기도 했다. 혁명은 억지로 봄을 부르지만 겨울아, 왜 사랑은 눈꽃처럼 네 안에서만 피어나는 것이냐.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눈동자는 아직도 길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길 끝에 종종 길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_ 시 「겨울 경춘선 2」 부분 20년 만에 경춘선을 달리는 겨울 기차가 다시 역사 안으로 들어온다. 그것도 뼛속까지 밀고 들어온다. 오래전 그에게는 “가난한 대합실의 작은 온기”를 나누듯 따뜻한 사랑을 나누던 사람들이 있었다. 자취방 문을 부수고 들어가 난장을 만들어놔도 ‘내 새끼’ 하던 “남철 형”, 민족 해방 얘기는 하지 않고 만날 고향 얘기만 하던 “종혜 누님”, 칸트를 읽고도 운동권이 될 “광운”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이 모여 살던 골목, 그 골목의 제일분식에서는 “계급 운동이 막걸리를 마시고”, 이모집에서는 “민족 운동이 젓가락을 두드렸다”(「譜學」). 그 시절 그들의 주머니는 텅 비었을지언정 가슴만은 늘 부푼 꿈으로 두둑했다. 그들과 함께라면 추운 겨울도 머지않아 끝나리라 믿었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 봄이 올 줄 알았더니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내 친구 내 부모를 지킨다는/그래서 내 동포 내 조국을/영영 동강낸 채 내버리고 말겠다는”(「겨울 경춘선」, 『겨울 경춘선』) 철책선은 아직도 건재하다. 이 겨울의 막차는 여전히 갈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광운”이는 약을 먹고 바다거북이 되었고, 인문대 계단 끝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조그만 여자 “종혜 누님”은 지금 그곳에 없다. 제일분식과 이모집의 “악다구니”들은 바다로 가버렸고, 그렇게 그들의 꿈도 푸르렀던 그 시절과 함께 “유폐”되었다. 그곳은 “안기부 지하실”이거나 “서울구치소”, “박제된 동물”들이 전시된 “자연사박물관” 한쪽 귀퉁이다(「운동권 考古學」). 친구를 잃어버리고, 꿈도 잃어버린 한 남자의 뒷모습은 “늙은 코끼리”처럼 쓸쓸하다. “열망을 이루지” 못한 그는 “열에 들뜬 후회”를 짊어지고 “억새 빛나는 황혼 길”을 걷고 있다(「가을 나그네」).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며 걸었다. 사막은 뜨거웠고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바람을 따라 민주주의는 자주 자리를 옮겨 다녔다. 모래언덕을 오르며 뒷걸음칠 때 마른번개가 몰아쳐왔다. 낙타는 천둥 속으로 묵묵히 걸어갔고 나는 목도했다. 피뢰침을 머리에 꽂고 장준하가 쓰러졌다. 김근태가 무너져 내렸다. 나는 오래도록 엎드려 신을 향해 기도했으나 그들은 일어나지 못했다. 아라비아 공주는 군사들을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걸었다. _ 시 「영등포에서 보낸 한 철」 부분 광운이와 종혜 누님, 남철 형이 사라진 땅에서 “사거리에 안철수의 현수막이 커다랗게 걸려 ‘새정치’가” 그를 내려다볼 때, 시인은 마치 자신이 “수락산 능선의 떡갈나무처럼 통째로” 쓰러진 것만 같다(「늙은 코끼리」). 혁명은 전염병처럼 왔다가 “카-알(Karl)”만 남기고 사라졌고, 혁명을 꿈꾸던 이들은 여전히 “정신적으로는”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 아무도 모른다(「阿Q」). 남은 것은 후회뿐, “사랑도 혁명도 차단기를 내린 채 멈추지 않고 달려왔다”. “눈은 쌓이지 못하고 그렇게 흩어져갔다”(「겨울 경춘선 2」). “공주가 城 밖에서 늙은 왕의 옥새를 들고 식민지 백성을 용서하고” 있었다(「阿Q」). 북녘땅에서 보내온 봄 편지 시인에게 북녘땅보다 추운 곳은 오히려 남녘이었다. “시려웁게 겨울을 보내는 더는 갈 곳 없는/겨울 경춘선”에서 “보고 싶은 내 친구 내 형제들이/빙하기를 살고 있다는 태백산맥의 골짜기”를 꿈꾸던 그는, 학생 운동을 주도하다가 독재 정권에 의해 두 차례나 감옥에 갔다 왔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통일 운동을 해오며 남과 북이 가슴과 가슴으로 만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그가 꿈꾸는 것은 “정치 없는 만남”이었다. 눈발이 날리는 개성공단에서 러시아 샤프카를 쓴 조선노동당원을 만났다 정권이 바뀌던 해 세밑이었다 반갑게 손을 잡고 긴급히 토론할 일을 묻자 그냥 보고 싶어서였단다 봉동관에서 송악소주를 마시고 낮부터 넥타이를 풀었다 정치 없는 만남이 있을 수도 있다고 _ 시 「색동저고리」 부분 “정권이 바뀌던 해 세밑”에 “봉동관에서 송악소주를 마시고 낮부터 넥타이”를 푼 그들은 “털게의 속을 하릴없이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간혹 남북 관계를 걱정”하다가 “항일 무장투쟁 시기의 눈보라나 지리산 얘기”도 시시해지자 “노동당식의 음담패설”에 귀를 기울였다. 맑은 소주병 안으로 눈물이 고이면 “막내딸 걱정이나 첫사랑의 기억이 애절하게” 떠올랐다. 마침내 “혁명가요는 잦아지고” 남북의 남자들이 평양관광대학 출신 여성이 부르는 노래 를 ‘탁아소’나 ‘유치원’ 아이들인 양 따라 불렀다. 누군가의 아버지요, 남편, 형제인 그들의 ‘정권’과 ‘정치’가 ‘눈물’과 ‘첫사랑’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남과 북이라는 거대한 분단 서사 아래 잠들어 있던 서정을 깨우는 순간이었다. 시인은 평양관에서 무지개식당을 거쳐 평심각에 이르러 “사상은 서사보다 못하고 서사는 친구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은어 알이 입속에서 터져 미각을 자극하는 순간 모든 선언과 확언이 의심스러워졌다”(「심양, 은어조림」)고 고백한다. 시인은 “이래도 되는가 이래도”라고 하지만, 그것은 곧 ‘이래야 한다, 이래야 한다’라는 내면의 웅변이었다. 이제야 철조망이 보인다 나는, 내가 자유인인 줄 알았다 망명의 꿈도 꾸지 못하는 포로였음을 사랑을 의심하고서야 종북과 종북 아닌 것의 사이에서 담배도 못 피우고 있었음을 알고 나서야 탈출할 곳도 없이 경계를 넓힌 한국이라는 이 거대한 포로수용소에 갇혀서 이토록 오래 자유인인 줄 알았다 _ 시 「포로수용소」 부분 그는 밤새 술에 취해 거리를 활보하며 함부로 사랑을 말하였으므로, 때론 사치를 부리기도 했으므로 스스로가 “자유인”인 줄로만 알았다. 광장에 서서 자유의지를 표출하며 종북과 종북 아닌 것 그 경계에 자유가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는 “반공과 반공 아닌 것을 나누던/거제도 포로수용소가/단지 그 경계를 넓혔을 뿐이었다는 걸/시인 김수영이 죽고 사십 몇 년이 지나서

저자 소개

1965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1984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1992년 『창작과비평』에 작품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겨울 경춘선』, 『저물 무렵』, 산문집으로 『유쾌한 교양 읽기』, 『꽃분이의 손에서 온기를 느끼다』, 『분단아, 고맙다』가 있다.

머리말

시인의 말

삶은 자주 시와 엇박자를 냈다. 시로 모든 걸 말하려다가 시를 잃었다. 시가 멀어져가면서 꼭 시를 쓰지 않아도 시인이 될 수 있다고 억지를 부렸다.

십 수 년 동안 평양과 개성, 금강산과 중국을 다녔다. 그나마 시적 상상력이 허용되는 공간이 있어 다행이었다. 익숙한 낯섦, 그 의외의 곳에서 시가 돌아왔다.

고등학교 문예부 시절 나는 노화남, 최종남, 최돈선 세 분 선생님의 그늘에서 시를 썼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거리를 떠도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이승훈, 이건청, 김용범, 박상천 네 분 선생님의 은혜 아래에서 시를 붙잡았다.

문학으로 보답할밖에 없다.

생명이 생명의 상처를 아물게 할 터이지만 슬픔이 언제 잦아질지 잘 모르겠다. 이제 겨우 스무 살 적 받은 광주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났지 싶었는데 너무 아픈 봄을 지났다. 지상의 꿈을 수탈(收奪)당한 세월호의 아이들과 그 또래들에게 이 시집으로 사과하고 싶다.

시를 쓰면서 늘 내 세계에 대한 확신을 갖고 살았는데 유독 어머니에겐 죄송했다.
작지만 위로가 되면 좋겠다.
_ 신동호

 

책 속에서

겨울 경춘선 2

막차. 겨울은 뼛속까지 밀고 들어왔다. 사랑이 고통이라면 다른 고통쯤은 다 잊고도 남았다. 시간이 가까워오면 조금씩 대화의 간격이 줄어들었다. 말줄임표도 사라져갔다. 우리들의 여행은 끝나가고 있었을까, 새벽을 기다리며 가난한 대합실의 작은 온기를 나누었을까. 사랑은?

종착역. 끝이 없는 여행은 없다. 없기에 슬프고, 없기에 다행이기도 했다. 혁명은 억지로 봄을 부르지만 겨울아, 왜 사랑은 눈꽃처럼 네 안에서만 피어나는 것이냐.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눈동자는 아직도 길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길 끝에 종종 길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건널목. 철로를 따라 우리가 가는 길은 일방적이고 무겁다. 차단기를 내리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 가난하고 느린 발걸음들을 가로막았다는 걸 자주 잊었다. 사랑도 혁명도 차단기를 내린 채 멈추지 않고 달려왔다. 위도와 경도가 만나는 지점을 지나쳐왔다. 눈은 쌓이지 못하고 그렇게 흩어져갔다.


가을 나그네

운명처럼 나는 먼 길을 가네
억새 흔들리는 바람 길
아스라이 날은 흐려, 어두운 길
얼마나 깊은 죄였나
열망을 이루지 못하였네
열에 들뜬 후회를 짊어지고
울 듯 울 듯 울지 못하고
역사가 버린 시대를 한탄하지 않고
엽서만 한 서사시를 남기고 가네
언제 共和國은 돌아올 것인가
입가 주름 사이로 새 나오는 한숨
어디 도착지를 모른 채 가네
억새 빛나는 황혼 길
어찌할 줄 모르는 순수만 남기고,
어떤 파국이 나를 반길까
울긋불긋 가을 속으로 가네
우울 한 점 지고 나는 가네.


어떤 진보주의자의 하루

오전 여덟 시쯤 나는 오락가락한다.
20퍼센트 정도는 진보적이고 32퍼센트 정도는 보수적이다.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막둥이를 보며 늘 고민이다.
늘 고민인데 억지로 보내고 만다.

정확히 오전 열 시 나는 진보적이다.
보수 언론에 분노하고 아주 가끔 레닌을 떠올린다.
점심을 먹을 무렵 나는 상당히 보수적이다.
배고플 땐 순댓국이, 속 쓰릴 땐 콩나물해장국이 생각난다.
주식 같은 건 해본 일 없으니 체제 반항적인 것도 같은데,
과태료나 세금이 밀리면 걱정이 앞서니 체제 순응적인 것도 같다.

오후 두 시쯤 나는 또 오락가락한다.
페이스북에 접속해 통합진보당 후배들의 글을 읽으며 공감하고
새누리당 의원의 글을 읽으면서 ‘좋아요’를 누르기도 한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41퍼센트 정도는 진보적이고 22퍼센트 정도는 보수적이다.
나머지는 잘 모르겠다.
친구 김주대 시인의 글을 읽으며 킥킥
그 고운 눈매를 떠올리다 보면 진보, 보수 잘 모르겠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그 일도양단이 참 대단하고 신기하다.
주대가 좋아하는 큰 엉덩이에도 진보와 보수가 있을까? 싶다.

오후 다섯 시가 되면 나는 존다.
예전보다는 많이 줄어든, 술 먹자는 전화가 온다.
열 중 아홉은 진보적인 친구들이고 하나는 그냥 친구다.
보수적인 친구가 나에겐 없구나, 생각한다.

오후 여덟 시 나는 대부분 나쁜 남자다.
가끔은 세상을 다 바꿔놓을 듯 떠든다.
후배들은 들은 얘길 또 들으면서도 마냥 웃어준다.
집에 갈 시간을 자주 잊는다.

오후 열한 시 무렵이 되면 나는 일반적으로 보수적이다.
어느새 민주주의와 역사적 책무를 잊는다.
번번이 실패하지만 돈을 벌고 싶고, 일탈을 꿈꾼다.

자정이 다가오자 세상은 고요하다.
개구리는 진보적으로 울어대고 뻐꾸기는 보수적으로 우짖는다.
뭐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늘 그렇지만 사상보다 삶이 먼저라 생각한다.
그것이야말로 진보적일지 몰라, 하면서
대충 잔다.

목차

목차
제1부 略歷|겨울 경춘선 2|영등포에서 보낸 한 철|阿Q|가을 나그네|늙은 코끼리|祈福|당산나무 증후군|어떤 진보주의자의 하루|자작나무|譜學|水石|평양냉면
제2부 색동저고리|어느 부부|정방산?|미인송|묘향산 小記|짧은 여행의 기록|박철벽|백별님|심양, 은어조림|국수|마른 옥수수|인순이|평양, 가방|사리원 처녀|방울꽃
제3부 백령도|국경(國境)|구만리|사막촌(四幕村) 주막|移葬|性에 대하여|베를린, 6·25, NLL|운동권 考古學|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포로수용소|서울 탱고
제4부 서울역|破虜湖|幼年의 辭說|어머니의 이력서|치매|달|조양동, 요괴 인간|영등포|가출에 대한 변명|아름다운 손|성천막국수|백과사전|아, 팔레스타인|그리운 초원|별
해설 김훈겸|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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