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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7142286 / 392쪽 / 630g / 210 x 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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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나는 오늘도, 한국에서 탄자니아까지 이어지는, 그가 걸어간 궤적을 보며 설레고 있고 그가 찍은 사진을 보며 그를 질투하고 있다. 그는 진정한 여행자다.” - 최갑수(여행작가) 여행작가 최갑수가 네이버 《스타의 추천 블로그》에서 소개했던 바로 그 해외여행 이야기. 호도협, 킬리만자로, 시나이 산, 훈자, 다합, 페트라, 카라코람하이웨이 등 해외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이 난 트레킹&트레블 명소를 다니며 겪게 되는 황당 에피소드와 놀라운 자연 경관과의 만남, 그리고 잔잔한 감동을 담고 있다. ※ 《트레킹으로 지구... “나는 오늘도, 한국에서 탄자니아까지 이어지는, 그가 걸어간 궤적을 보며 설레고 있고 그가 찍은 사진을 보며 그를 질투하고 있다. 그는 진정한 여행자다.” - 최갑수(여행작가) 여행작가 최갑수가 네이버 《스타의 추천 블로그》에서 소개했던 바로 그 해외여행 이야기. 호도협, 킬리만자로, 시나이 산, 훈자, 다합, 페트라, 카라코람하이웨이 등 해외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이 난 트레킹&트레블 명소를 다니며 겪게 되는 황당 에피소드와 놀라운 자연 경관과의 만남, 그리고 잔잔한 감동을 담고 있다. ※ 《트레킹으로 지구 한 바퀴》 표지 설명 훈자 울트라메도우에서 이 마을에는 분명 시계가 없을 것이라고 짐작케 할 만큼, 훈자는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이는 곳이다. 하루에 1시간 전기가 들어오고, 어둠이 내리면 랜턴 켜고 손으로 더듬어 마실을 다니며, 마을 사이로 흐르는 느린 물줄기의 속도에 맞춰서 동네를 연결하는 좁다한 골목길을 걷는다. 동네 아이들이 수줍게 다가와 체리를 건네고, 그들이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다 보면 날이 저물고 훌쩍 1주일이 지난다. 도시에서 살 때는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보며 한숨을 짓고는 했지만 이곳 훈자에서는 시간이 마치 고이는 물처럼 잠시 머물다 간다. 그래서 바람마저 쉬었다 가는 곳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지도 모른다. 훈자에 머문 지 며칠이 지났을까. 김동우 씨는 훈자 마을의 상징 발티드 성 뒤편으로 난 길을 따라 울트라메도우로 트레킹을 나선다. 레이디핑거가 구름 사이로 수줍게 얼굴을 내민 지점에 이르러 배낭을 풀고 텐트를 친다. 허기를 달리기 위해 라면을 하나 끓여 먹고 챙겨간 술을 꺼내 한 모금 마신다. 그런 뒤 단단히 묶었던 등산화 끈을 풀고 양말마저 벗는다. 텐트에 눕는다. 텐트 사이로 울트라메도우의 경관이 펼쳐진다. 율동감 넘치는 곡선을 그리며 높이 솟구친 산 위쪽에서 바람이 내려온다. 그 바람이 맨발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 홀가분함이란! 【보도자료】 여행이 끝나는 곳에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해외여행을 특이하게 하셨네요? 근데 트레킹이 뭔가요? 제주 올레길 도는 거?” 기자의 질문에 김동우 저자가 답변한다. “시속 2km 여행.” “무슨 뜻이죠?” “산길을 따라 걷는 속도가 시속 2km입니다. 도시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트레킹만이 가진 속도예요. 그렇게 느리게 걸으며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싶었습니다.” “흔히 ‘찍고 턴’이라고 하죠. 눈으로 보고 사진 찍으며 다니는 규격화된 여행이요. 그런 게 싫었던 건가요?” “싫다기보다는 저랑 안 맞는 거죠. 그건 저의 것이 아니니까.” “남들과 똑같은 여행은 싫었다. 식상함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진짜 내 여행을 하고 싶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산(山)과 산(山)을 연결하는 세계 일주 루트를 짰다. 중국을 시작으로 중동과 아프리카를 거쳐 남미·북미로 이어지는 아마도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르는 낯선 길 위에 섰다. 300일간의 트레킹 세계 일주는 그렇게 시작됐다.” 《트레킹으로 지구 한 바퀴》 중에서 기자 생활을 하던 김동우 씨는 35살의 나이에 사표를 내고 1년간의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그의 여행 루트는 산을 좋아하는 취향에 맞게 ‘산(山)과 산(山)을 연결하는’ 낯선 방식이었다. 그러나 나만의 여행을 떠나는 대가는 쓰디썼다. 일단 루트 짜기가 쉽지 않았다. 정보를 찾기 힘든 곳도 많았다. 현지에서 부딪치며 해결해야 할 일이 부지기수였다. 할 줄 아는 중국어라곤 ‘중국말 못해요.’라는 한마디뿐이었다. 영어도 안 통하는 동네를 다니다 보니 보디랭귀지밖에 답이 없었다. 기차도 타고, 배도 타고, 50시간 넘게 버스에 몸을 싣기도 했다. 버스 내부는 짐짝과 사람으로 뒤엉켜 있고, 버스기사는 덜컹대는 비포장도로를 과속에 중앙선 침범까지 F1 선수처럼 곡예운전을 했다. 그런 와중에도 사람들은 태연하게 잠을 청하거나 담배연기를 폴폴 날리고, 혹은 간식에 부식까지 끊임없이 먹어댔다. 안 그래도 저주받은 장을 갖고 태어난 탓에 화장실을 자주 들렀지만 칸막이도 없는 공간에서 볼일을 보는 중국의 고약한 화장실 문화는 도저히 적응이 안 되었다. 입에 맞는 음식은 찾기 힘들고, 유명 관광지의 입장료는 엄청나게 비싸고, 외국 관광객에게는 별도의 입장료를 요구하고, 가까운 곳 이동에도 돈을 뜯어내기 위한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런 여정은 파키스탄의 순박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잠시 잊게 된다. 그러나 아랍에미리트, 요르단, 이집트, 에티오피아, 케냐, 탄자니아로 이어지는 여정에서 저자는 여행객만을 노리는 현지 사람들의 경악할 만한 사기 행각과 마주하게 된다. 이집트의 악명 높은 사기 행각을 익히 들었던 저자는 이집트 도착 전날, 밤을 꼬박 새우며 관련 책자를 읽었다. 책에서 읽은 수많은 사기 사례들이 차례대로 눈앞에 등장하는 모습은 신기할 정도였다. 택시 가격은 흥정에 따라 달라지고, 미터기를 꺾어서 가는 차량은 빙빙 돌아서 간다. 어떤 기사는 알고 있는 길을 물어물어 간 뒤 ‘너를 위해 길을 알아봐 주었으니 추가 요금을 내라’고 요구하거나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었다’고 접근한 뒤 온갖 방법으로 물건을 구매하게 하거나 돈을 쓰게 만든다. 한마디로 유럽이나 미국, 일본 여행에서 맛보았던 낭만적 정취를 기대하면 안 되는, 그야말로 ‘돌격형 해외여행’이었다. 때로는 에티오피아의 찢어지게 가난한 소녀에게 동정심을 느껴 돈만 놓고 황급히 빠져나오기도 하고, 탄자니아에서는 말라리아에 걸려 말이 통하지 않는 현지 병원에 입원하기도 한다. 이름만 들어도 숨 가쁜 트레킹&트레블 명소 체험기 그러나 이런 황당 사건들 끝에는 그가 늘 동경해 마지 않던 산과 자연, 그리고 뜻밖의 친절과 감동이 기다리고 있었다. 호랑이가 지나다니는 길이라는 뜻의 ‘호도협’에서는 차마고도의 놀라운 비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중국의 알프스로 불리는 야딩에서는 행운을 비는 장족과 종교 의식을 치르는 티베트 승려를 만난다. 독수리에게 망자의 시신을 뜯어먹게 하는 티베트 전통 장례의식인 천장을 곁에서 지켜보며 충격에 휩싸인다. 버스를 타고 즐기는 카라코람하이웨이의 풍경은 지루한 버스 여행을 잊게 할 만큼 놀라운 경치의 연속이었다. 트레킹 천국 파키스탄에서는 자연 못지 않은 천사 같은 사람들과의 경험담을 전한다. 계획에 없던 ‘와디 무지브’는 목까지 물이 차오르는 협곡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색적인 트레킹이었다. 페트라 유적지에서는 고대인의 흔적을 느끼고, 시나이 산에서는 외국 여성과 묘한 핑크빛 감정도 느끼게 된다. 다합에서는 계획에 없던 다이빙을 하면서 바다 속 세계의 진경에 놀라게 된다. 에티오피아 시미엔 산에서는 체스 말처럼 우뚝 솟아 있는 시미엔 봉우리들과 만난다.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인 킬리만자로에서는 고산증을 이겨내며 등정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짧으면 하루, 길어야 4~5일 일정이면 그가 목적했던 트레킹과 체험은 끝나고 말지만 이 짧은 시간의 행복과 경험은 여행 과정의 고단함과 도시 생활의 피로감을 눈 녹듯 사라지게 해주었다. 《트레킹으로 지구 한 바퀴》는 어떤 책? 이 책은 300여 일에 걸쳐 중국-중동-아프리카-남미-북미로 이어지는 트레킹 세계 일주를 다녀온 김동우 트레커의 유쾌하고 감동적인 여행기이다. 저자는 트레킹이라는 여행의 목적을 잊게 만들 만큼 현지에서 겪은 황당하고 흥미로운 경험담을 무수히 쏟아낸다. 격식화된 여행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사람 냄새 풀풀 풍기는 순도 100%의 리얼 여행 체험기다. 여행 준비편에 해당하는 글을 읽으면 그가 배수진을 치고
시안을 떠나 우루무치를 거쳐 카스로 | 침대 버스 그리고 공포의 그녀, 난 뒷걸음질 쳤다
두 번째 열차여행은 시안을 떠난 지 무려 30시간 만에 실크로드의 중심지 우루무치에 와서 끝이 났다.
카라코람하이웨이의 시작점은 카슈가르(카스)다. 카스는 가장 신장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카스를 보지 않고는 신장을 본 게 아니다’라는 말이 회자될 만큼 위구르 족의 전통과 정신이 살아 있는 도시다. 또 카스는 파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으로 넘어가는 관문 역할을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기대가 큰 곳이었다.
우루무치에서 카스로 가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타거나 24시간 동안 버스를 타야 한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날 카스로 떠나는 침대 버스에 몸을 실었다.
2층 침대버스의 좌석은 항공기 비즈니스석(?)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버스의 진동이 등으로 그대로 전달되는 승차감이 달랐을 뿐이다. 냄새가 나지 않는 시트에 만족해야 했다. 승객들 대부분은 위구르 족이었다. 한족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버스는 4시간 만에 첫 번째 휴게소에 도착했다. 숯가마 중탕 정도의 열기가 온몸을 감싸 안았다. 열기와 습기를 한껏 머금은 모래바람은 덤이었다. 모자까지 눌러쓰니 건식사우나가 따로 없었다.
다음번 휴식까지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화장실에 가야 했다. 가격은 1원이었다. 화장실은 매점 건물 뒤 황야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샹그릴라에서 야딩으로 가면서 경험한 최악의 화장실이 떠올랐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화장실 안의 암모니아 냄새는 화생방훈련을 방불케 했다. 라이터를 켜면 불이 붙을 것만 같았다.
화장실에 먼저 들어선 위구르 아저씨들은 문 없는 화장실에서 열심히 볼일을 보고 있었다. 적나라한 모습이다 못해 원초적이었다. 샤론 스톤의 「원초적 본능」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지만 이건 차마 똑바로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중국의 화장실은 내가 가장 적응하지 못하는 문화 중 하나였다.
가운데 자리가 비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참았던 방광의 문을 열었다. 그 순간이었다. 옆 사로에서 볼일을 보던 험상궂은 위구르 아저씨가 날 올려보며 인상을 썼다. 아저씨는 분명 ‘똥 누고 있는데 거기다 오줌 싸면 오줌이 튄다’고 말하고 있었다. 오줌 한 번 잘못 쌌다가 위구르의 땅에서 칼침을 맞고 싶지는 않았다. 아저씨의 표정을 보곤 자연스레 나오던 오줌이 멈췄다. 자리를 제일 구석으로 옮겼다. 그리곤 잘린 오줌을 마저 방출시켰다. ‘오줌 한 번 싸는데도 이리 기가 죽어야 하나.’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니 식욕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매점에 들러 과일과 부식거리를 사려고 했는데 마음이 싹 가셨다.
버스는 그 뒤로 4시간을 더 달려 모래바람이 거세게 부는 이름 모를 마을에 정차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난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번 이동에서는 ‘절대 빈속’을 유지해야 마음이 편했다.
설사, 아니 식은땀을 흘리며 괄약근의 마지막 남은 힘까지 쥐어짜는 상황은 내게 치명적이었다. 저주받은 장을 가진 나로서는 제일 신경 쓰이는 부분이기도 했다. 버스 기사에게 달려가 아랫배를 움켜잡고 차를 세워달라고 간청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것도 말도 못하는 벙어리 냉가슴으로 손짓 발짓 써가며 차를 세우는 모습이란…. 거기다 차를 세운 곳이 나무 한 그루 없는 들판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일어나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이었다. 굶는 편이 여러모로 편했다. 마지노선으로 음료수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곤 준비한 맨 빵을 입속에 우겨넣었다.
버스는 자정쯤 다시 한 도시에 정차한 뒤 다음날 새벽 5시쯤 숲이 있는 길가에 승객들을 내려주었다. 승객들은 차가 서기 무섭게 도망치듯 숲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이 어른 남녀노소 가리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한 사내는 대나무 정도 굵기의 나무를 위장막 삼아 급히 바지를 내렸다. 흰 엉덩이가 그대로 노출됐다. 다시 머릿속에 금식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버스는 그 뒤로 4시간 정도를 더 달려 한 식당 앞에 섰다. 버스 기사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들어가 뭘 좀 먹으라고 권했다. 화장실을 찾았다. 사람들의 동선을 보니 다들 작은 골목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남자들은 골목 깊이, 여자들은 골목 중간에서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여자 화장실은 골목 중간이고, 남자 화장실은 골목 끝에 있는 듯했다. 사람들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그…런…데… 여자들이 나오던 골목 왼쪽 공간은….
‘으~아악~~~!’
순간 난 뒷걸음질 쳤다. 귀신을 본 것처럼 겁에 질려 도망치듯 골목을 뛰쳐나왔다.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고, 방금 본 오싹한 이미지가 머릿속을 뒤흔들어 댔다.
움푹 들어가 있는 골목 안 왼쪽 공간은 화장실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말 그대로 공간일 뿐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난 덩어리(?)를 매단 위구르 아줌마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첫눈에 반한 짝사랑을 만난 것처럼 눈앞에선 번개가 번쩍했다.
‘오 맙소사, 하느님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절 어디다 쓰시려고… 으흐…’
그런 골목을 남녀가 뒤섞여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다니고 있었던 거다. 본 척 못 본 척하면서 말이다. 화장실에 가야 했지만 두려웠다. 여자들이 모두 나온 걸 확인하고 골목 깊숙이 들어갔다. 남자들이 나온 곳도 화장실이 아니긴 마찬가지였다. 여자들이 스쳐 지나간 자리는 덩어리들이 군데군데 흔적을 남겨놓고 있었다. ‘이런 된장할!’
버스에 들어가 마른침을 삼키고 물을 마셨다. 그리곤 방광 안에서 오줌이 증발하길 기도했다.
우루무치에서 출발한 버스는 꼬박 25시간 만에 카스에 도착했다. 그 긴 시간 동안 먹은 거라곤 빵 2조각, 물 한 병, 아이스티 한 병, 초코바 한 개가 전부였다. 거울을 봤다. 폭탄주와 기름진 안주로 인해 사라져 버린 턱선이 다시 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파키스탄)
소스트 도착 | 이상한 나라 이상한 사람들
내가 타고 온 버스에는 3명의 파키스탄 사람이 동승하고 있었다. 물론 운전기사도 파키스탄 사람이었다. 운전스타일은 중국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결정적으로 자동차 경적을 시도 때도 없이 눌러대는 중국인들의 몰상식함과는 차이가 있었다. 차가 조금 튀면 버스 기사는 뒤돌아 날 보고 웃어주었다. 차가 잠시 멈춰서 있을 때도 강압적으로 차에 올라타라고 말하는 중국 버스 기사와는 극명하게 달랐다. 내 행동을 끝까지 보고 대충 마무리가 되면 부드럽게 권유하는 스타일이었다. 확실히 여유가 있었다.
같이 국경을 넘은 아민잔과 한잼. 이들은 내게 파키스탄의 첫인상을 심어주는 결정적 잣대가 되는 인물들이었다.
아버지뻘 되는 아민잔은 타슈쿠르간에서부터 날 지극히 챙겼다. 특히 입에 맞지 않는 양고기 만두를 끊임없이 권해 날 곤혹스럽게 했다. 아민잔은 만두를 사양하는 내게 “플리즈~”란 말로 매번 날 무너뜨렸다. 한잼은 묵묵히 내 짐을 챙겨주고 파키스탄에 대해서 이것저것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버스는 중국을 떠난 지 7시간 만에 소스트에 도착했다. 검역서류를 작성하고, 작은 사무실에서 입국 도장을 받았다. 모든 게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이들의 질문은 “오늘 소스트에 머물 거냐? 파수로 갈 거냐?”가 다였다. “잘 모르겠다”는 내 대답에 그들은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소스트에 괜찮은 숙소를 추천해 달라고 하면 바로 숙소를 알아봐 줄 분위기였다.
본격적으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파수로 직행할 수도 있었지만 소스트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파키스탄 입국과 동시에 시간의 흐름이 갑자기 느려진 듯했다.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오늘 어디서 머무실 건가요?” 아민잔에게 물었다.
“오늘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길기트로 갈 거야. 내가 알고 있는 숙소가 있으니 같이 가지.” 아민잔은 왜 지금에서야 그걸 물어보냐는 눈빛이었다.
아민잔을 따라나서는 것이 잘하는 짓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가 짐수레를 불렀고 내 배낭을 실으라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돈을 내라고 할 것 같아 배낭을 직접 들고 그를 따라 나섰다. 중국과 분위기가 달라졌다고는 하나 아직 긴장을 풀기에는 파키스탄이란 나라에 믿음이 없었다.
출입국사무소에서 멀지 않은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아민잔이 나에게 물었다.
“혼자 잘 거니?”
“네.”
“아니야! 하룻밤만 보내면 되는데 같은 방을 쓰지. 숙박비도 절약할 수 있고 말이야.”
“그게?”
“플리즈~” 난 또 무너졌다.
아민잔은 한잼과 내가 같이 쓸 수 있는 3인실 방을 잡았다. 그는 “오늘 넌 내 게스트니 방값으로 100루피(1,300원)만 내면 된다”며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돈 걱정하지 말고 언제든 말하라”고 했다.
당장 환전을 해야 했다. 아민잔은 친절하게 날 환전을 할 수 있는 작은 상점으로 데려갔다. 생각보다 환율이 괜찮았다. 무슨 생각으로 처음 보는 나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사람, 풍경, 물가… 모든 게 비정상이었다.
‘혹시 남자를 좋아하나? 다음날 만신창이가 된 채 카라코람하이웨이 한가운데 버려지는 건 아니겠지? 혹시 내 짐을 털려고 하나?’
불길한 생각이 엄습했다. 이런 친절이 결코 반갑지만은 않았다. 아민잔이 ‘짜이(밀크티)’를 주문했다. 아민잔과 한잼이 먼저 마시는 걸 보고 조심스럽게 찻잔에 입을 댔다. 혹시 약을 타지 않았을까 주저했지만 달달한 걸 좋아하는 내 입맛에는 그만이었다.
아민잔은 차를 한잔 하고 나자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이들은 날 숙소 한쪽에 마련된 동네 사랑방 같은 곳으로 데려갔다. 방안은 어두웠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가스램프 하나가 힘겹게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 20개의 눈알이 낯선 황인종을 쏘아보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는 십여 명의 파키스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저녁식사 자리로는 너무 음산한 분위기였다. 한국이었다면 은은한 가스램프 빛이 캠핑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줬겠지만, 방 분위기는 무겁기만 했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만 건가. 날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거지? 혹 인신매매범들이 아닐까? 불안은 극에 달했다. 10대 1의 싸움은 승산이 없어 보였다.
극도의 긴장 속에서 아민잔이 날 “한국에서 온 친구”로 소개했다. 그는 북경과 상해 등을 둘러보고 귀국하는 길이었다. 아민잔은 비디오카메라를 꺼내 사람들에게 중국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비디오카메라 영상은 솔직히 나에게는 그리 놀랍지 않았지만, 중국이 대단하다며 박자를 맞춰주었다. 살고 싶으면 어쨌건 이들의 비위를 맞춰야 했다. 여기서 경박한 새 치 혀를 잘못 놀렸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카라코람하이웨이 어딘가에 묻혀버릴 수도 있었다.
잠시 뒤 닭고기 수프에 국수가 곁들여진 이름 모를 음식이 나왔다. 종일 먹은 거라곤 비스킷과 입에 맞지 않은 만두가 다였다. 게 눈 감추듯 한 그릇을 해치웠다. 맛은 그만이었다. 한 그릇 더하라는 권유에 ‘이렇게 얻어먹어도 별 탈이 없을까’ 하는 불안감에 ‘배가 찼다’고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지껄이고 말았다. 잠시 뒤 10인분 치 계산서를 손에 들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식사 뒤 아민잔은 차를 주문했다. 사양 또 사양했지만 그는 이번에도 “플리즈”란 말로 내 입에서 “오케이”란 말을 이끌어 냈다. 아민잔의 음성에는 거부할 수 없는 오묘한 힘이 있었다.
밀크티를 한 잔 마시고 정중히 감사의 인사를 한 뒤 한잼과 먼저 숙소로 돌아왔다. 한잼은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기도를 올렸다. 다음날 눈을 뜨자 아민잔과 한잼은 또 기도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 밤사이 걱정했던 일은 없었다. 모든 게 이상할 뿐이었다.
(훈자 및 울트라메도우 트레킹)
Let's trekking | 레이디핑거 아래서 황홀했던 백패킹
훈자에 온 지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요일을 따지지 않고, 날짜를 세지 않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었다. 여행 시작과 동시에 생겨난 변화이지만 훈자에선 특히 더 시간 개념을 잡기가 힘들었다. 이곳에선 모든 게 느렸다. 밥을 주문하면 사람부터 찾고 쌀을 씻는다. 그럼 어림잡아 한 시간은 족히 흘러간다.
오늘 아침엔 어젯밤에 샤워하고 난 물이 내려가지 않아 배수구를 뚫는다고 부산을 떨었다. 숙소 주인과 종업원 그리고 내가 화장실에 옹기종기 모여 펌프질을 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했다. 전기가 들어오면 밖에 나갔다가도 서둘러 방으로 돌아와야 했다. 충전해야 할 기기가 한둘이 아니었다.
이 날은 불행하게도 훈자에 딱 하나밖에 없는 PC방이 문을 닫았다. PC방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발전기를 돌려 만든다. 발전기 소리로 영업 중임을 알리는 곳이다. 그것도 매번 가서 발전기 소리를 들어봐야 알 수 있다. 24시간 영업은 먼 나라 이야기다. 인터넷은 연결이 끊기기 일쑤다.
밤에 외로움을 못 참고 이웃 숙소로 마실을 갈 때면 헤드 랜턴을 들고 엉금엉금 돌담길을 걷는다. 훈자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은 ‘느림’이다.
며칠 전에는 카슈가르에서 야반도주한 뒤 연락이 끊긴 정훈이가 훈자로 왔다. 그도 훈자의 매력에 푹 빠져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무턱대고 늘어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겐 트레커란 본업이 있었다. 울트라메도우는 훈자에서 가장 손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이다. 마을 꼭대기에 우뚝 서 있는 발티드성 뒤쪽으로 나 있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3~4시간이면 울트라메도우에 닿을 수 있다.
애당초 트레킹은 나와 히로(일본인) 그리곤 훈자에 한 달 넘게 장기체류 중인 ‘윤’이란 친구가 함께하기로 했다. 그런데 히로는 트레킹 당일 배탈이 났다. 그 바람에 윤과 둘이 울트라메도우 트레킹에 나서게 됐다. 길을 모르는 나를 위해 윤이 일일가이드를 해주고 그 대신 난 샌드위치를 사기로 했다. 윤이 묵고 있는 카리마바드인에서 샌드위치와 김치볶음밥을 챙겨 트레킹을 시작했다.
말수가 적은 윤에 대해서는 집이 인천이란 것 말고도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우린 서로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훈자에선 그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사람들도 풍경들도 모두 비현실적이었다.
울트라메도우로 향하는 길은 전혀 쉽지 않았다. 발이 푹푹 빠지는 자갈과 모래가 섞인 길은 체력 소모가 심했다. 딱 설악산의 오색~대청 코스 정도의 난이도였다. 거기다 곳곳이 절벽이라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바로 객사할 수 있는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윤은 바로 하산할 계획이었지만 난 울트라메도우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세끼 식사와 텐트·버너·매트리스·침낭 등을 챙기고 밤을 즐겁게 해 줄 ‘훈자워터’로 불리는 밀주도 배낭 깊숙이 넣어 두었다. 이슬람교에서는 술을 마시거나 제조하는 걸 금지하고 있지만 훈자지역에서 로컬증류주가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었다.
배낭이 생각만큼 무거웠던 건 아닌데 만만치 않은 경사가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가벼운 배낭을 멘 윤에 비해 자꾸만 뒤처지는 게 신경이 쓰였다.
‘얼마나 멋진 풍경이기에… 젠장.’
마지막 오르막이었다. 낑낑거리며 마지막 발을 내디뎠다. 숙소를 출발한 지 3시간 15분 만이었다. 시야가 열렸다. 울트라메도우의 상징 레이디핑거가 구름 사이로 수줍게 얼굴을 내밀었다. 그 아래로는 푸른 목초지가 펼쳐졌다. 순토시계는 해발 3,100m를 찍었다.
소와 양들이 유유자적 풀을 뜯고 있는 풍경은 ‘에덴동산’이라도 되는 것처럼 평화롭고 한가로웠다. 올라오면서 수십 번도 더 되뇌던 ‘내가 이 짓을 왜 하지?’란 반문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초원 한쪽에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목동과 수로 공사를 하는 마을 사람들이 신기한지 인사를 건네 왔고, 소와 양들도 내 주위에 몰려들었다. 겁 없는 양 한 마리는 음식 냄새를 맡고는 텐트 안을 뒤졌다.
이번 여행에서 첫 번째 야영이 주는 느낌은 남달랐다. 그간 애지중지한 장비들이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물을 끓였다. 그리고 아끼고 아끼던 커피믹스를 꺼냈다. 달콤한 커피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지금 기분에 커피 한 잔은 여러모로 부족했다. 훈자워터를 꺼내 이른 주안상을 차렸다.
잠시 뒤 큰 울림이 계곡을 때렸다.
“저기 폭포 같은 거 보이시죠. 눈사태가 나서 눈이 흘러내리는 거예요.” 윤이 말했다.
“눈사태요?” 멀리서 하얀 눈이 큰 폭포를 만들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사태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리고 다음날, ‘휘~ 후두둑! 후두둑! 휘~잉.’ 텐트가 심하게 요동쳤다. 비를 동반한 바람이 텐트를 이리저리 할퀴고 있었다. 시계는 오전 7시를 가리켰다. 비가 멈추길 기다렸다 텐트 문을 열고 나갔다.
‘이런 맙소사!’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 아래 레이디핑거의 모습이 오롯이 드러나 있었다. 푸른 초원은 금세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이런 황홀한 절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쪽에선 소와 양들이 사이좋게 풀을 뜯고 있었다. 레이디핑거를 반찬 삼아 아침을 먹고 있자 수로 공사를 위해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울트라메도우로 올라왔다. 그들은 내게 밀크티 한 잔을 내밀었다. 생각지도 못한 후식이었다.
백패킹의 필수품, 고기도 굽지 못했고, 말벗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혼자라서 더욱 좋은 아침이었다. 이날만큼은….
(킬리만자로 트레킹)
Let's trekking | 5,895m ‘우후르피크’ 넌 자유였어!
이른 아침 혼자 산장을 빠져나왔다. 아나, 네나, 랄스 아저씨는 여기서 하룻밤을 더 보내게 되고 난 오늘 4,703m에 위치한 키보 산장으로 가야 했다.
아침을 챙겨 먹자 하산까지 내 전담 가이드를 해줄 아도니스가 일정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포터는 내 큰 배낭을 메고 이미 떠난 뒤였다.
“하쿠나 마타타~ 하쿠나 마타타~”
식당 앞에서 노래 소리가 들렸다. 단체 트레킹을 온 독일인 팀을 위해 포터와 가이드 등이 오늘 산행의 안전과 평안을 기원하는 노래를 하고 있었다.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는 스와힐리어로 ‘걱정거리가 없다’란 뜻이다. 노래를 들으며 오늘 하루가 아무런 걱정 없이 마무리되길 기도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발걸음을 옮기는 게 점점 힘겨워졌다. 한 시간 정도 산을 오르자 풀 한 포기 없는 삭막한 풍경이 펼쳐졌다. 척박한 땅의 기운은 트레커들을 두렵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제 슬슬 킬리만자로가 본색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럴수록 ‘뽈레뽈레’ 발걸음을 늦추었다.
길을 가다 헬렌이란 미국인과 동행하게 됐다. 약관의 나이인 헬렌은 킬리만자로에서 유일하게 나보다 빨리 걷는 여자였다. 여길 오려고 매일 조깅으로 체력을 단련했다고 했다. 거침없는 발걸음이 정말 놀라운 수준이었다. 성격은 내가 만난 미국인 중에선 최고였다.
“잠보!”
헬렌은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현지식 인사를 건네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힘이 남아도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미국인 특유의 하이톤이 배어 있어 슬며시 날 웃게 만들었다. 하지만 헬렌의 동부 영어는 정말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런 나에게 헬렌은 계속 질문을 쏟아냈다.
헬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고 있자 키보 산장이 지척으로 다가왔다. 정상을 오르기 전 마지막으로 쉬어갈 장소였다. 키보 산장 뒤로 킬리만자로 정상이 우뚝 솟아 있었다.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온 킬리만자로 정상을 보면서 4시간 40분간의 산행을 마쳤다.
키보 산장에 들어서자마자 고산증으로 트레커 한 명이 급히 실려 내려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본게임이 시작된 느낌이었다. 어느 곳보다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영화 속 느린 화면처럼 보였다.
트레커들은 최대한 천천히 몸을 움직이며 정상에 도전할 시간을 기다렸다. 보통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6~7시간 정도 소요된다. 시간상으로는 부담이 없었지만, 문제는 4,703m에서 5,895m까지 1,192m를 단번에 올라야 하는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 고산증을 겪는다.
가이드는 12인실 방으로 날 안내했다. 헬렌과 난 다른 트레커보다 조금 빨리 올라온 덕분에 좋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곤 조용히 침대에 누워 체력을 비축했다. 자연스럽게 몸이 고산에 적응되길 기다리는 일밖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오후 5시에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다시 침낭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하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모두들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산장 안에 머물고 있는 트레커들 모두 말이 없었다.
밤 11시. 따뜻한 침낭에서 몸을 빼냈다. 따뜻한 차와 쿠키로 요기를 한 뒤 미리 두통약 한 알을 삼켰다. 결전의 순간이었다. 어느 트레킹보다 각오는 비장했으나 자신감에 대해서는 의문부호를 떨쳐낼 수가 없었다.
밤 12시 15분 가이드와 숙소를 나섰다. 가진 옷을 모두 껴입었지만 추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해발 4,703m의 한기는 차디찼다. 정상 공략은 공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우회로는 없다. 키보 산장 뒤편으로 솟은 가파른 경사를 치고 올라야 한다. 미리 출발한 트레커들의 헤드 랜턴이 저 멀리 경사를 따라 이어지고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1,192m를 올라야 했다. 해발 0m에서 출발하는 산행이라면 이런 긴장감은 필요가 없다. 다행히 키보 산장에 머물 동안 고산증은 없었다. 하지만 언제 두통이 찾아올지 몰랐다.
“뽈레뽈레.”
출발은 순조로웠다. 어둠 속에선 대화도, 야경도 없었다. 천천히 땅을 보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게 다였다. 한 시간 뒤 밑을 내려다봤다. 희미한 헤드 랜턴 불빛이 길게 줄지어 조금씩 산을 오르고 있었다.
‘저길 올라온 거구나. 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한 시간 정도 더 오르자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흠~~~슈으웃~. 흠~~~슈으웃~.’
해발고도가 5,000m를 넘자 약간만 호흡이 엉켜도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날숨과 들숨이 아니었다. 몸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갈수록 호흡은 엉망이 됐다. 그리고는 두통이 찾아왔다. 키보 산장을 출발한 지 3시간 만이었다.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가파른 경사를 30분 정도 더 올랐을 때였다. 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속이 울렁이는 게 토할 것만 같았다. 가이드는 내게 심호흡을 크게 하라고 했다. 다행히도 위장 속 음식물들이 솟구치려던 자세를 고쳐 잡으며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두통은 더욱 심해져 있었다. 두통약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느껴졌다. 작은 약통을 꺼내 파란색 알약을 삼켰다. 고산증에 효과가 있다는 ‘비아그라’였다. 비아그라를 복용하고 나자 두통의 강도가 조금은 약해졌다. 이런 경험은 난생처음이었다. 난 서서히 자신감을 잃어 가고 있었다.
끝도 안 보이는 검은 실루엣을 쫓아 한 시간쯤 더 산을 오르자 다시 극심한 두통이 찾아왔다. 누군가 날카로운 연필심으로 머릿속에 ‘포기’란 단어를 쉼 없이 써대고 있는 것 같았다.
난 5분도 못 가 다시 멈춰 섰다. 누군가 내 머릿속을 갈고리로 휘젓고 있는 것 같았다. 한발을 떼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이 날 집어삼킬 것 같은 검은 실루엣이 조금씩 끝자락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도니스는 조금만 가면 끝이 난다고 했다. 그가 이야기한 조금이 결코 조금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힘이 생겼다. 다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좀비처럼 천천히 오른 경사의 끝에는 길만스포인트(5,681m)가 기다리고 있었다. 능선의 시작이었다. 안도감이 찾아왔다. 그런데 가이드는 여기서부터 정상까지 1시간 30분을 더 가야 한다고 했다.
“뭐!”
정상까지의 고도차는 214m였다. 도대체 능선이 얼마나 길다는 이야기인가. 사실 능선이 긴 게 아니라 고산증 탓에 속도를 낼 수 없는 게 문제였다. 조금만 속도를 올려도 머릿속에 들어간 갈고리가 작동을 시작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짓을 하는지 다 포기하고 싶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머리는 깨져나갈 것 같았다.
이때 내 옆으로 가이드의 부축을 받으며 중환자처럼 걸음을 옮기고 있는 나이 지긋한 서양인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잡념이 사라졌다.
오르락내리락 능선을 따라 1시간 남짓. 뇌는 쪼그라드는 듯했고, 얼음장 같은 바람은 더욱 매섭고 맹렬하게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극심한 추위였다. 손발의 감각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눈꺼풀도 중력의 힘을 못 이기고 점점 아래로 처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저 멀리 ‘우후르 피크(킬리만자로는 1889년 10월 5일 독일 지리학자인 한스 메이어, 오스트리아의 산악인 루드비히 푸르첼러 그리고 지역가이드 요나스 로우에게 처음 정상을 허락했다. 이후 킬리만자로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는 독일 황제의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1961년 탄자니아가 독립을 쟁취한 후 킬리만자로 정상은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스와힐리어로 우후르Uhuru는 자유를 뜻한다)’가 눈에 들어왔다. 키보 산장을 출발한 지 6시간 만이었다.
먼저 도착한 독일인들의 노래가 정상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여명이 시작되고 있었다. 곧이어 정상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눈물이 날 것 같이 가슴이 벅차올랐다.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킬리만자로는 ‘불꽃’ 같은 일출을 선물로 안겨주었다. 장대한 모습이었다.
2012년 8월 23일 새벽 6시 20분쯤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난 또 한 번 이전에 내가 아닌 날 만들었다.
목차
프롤로그 | 너 지금 행복하니?
직장인, 세계 일주 트레커로 갈아타기
- 회사 대신 배낭을 선택한 자가 부딪치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들
세계 일주 전 포기해야 할 것들에 대한 각론
여행 준비와 넘어야 할 산
세계 일주 루트에 대한 얄팍한 고찰
트레커의 배낭 속 알짜 장비들
트레커를 위한 ‘배낭’ 선택과 활용 노하우
세계 일주를 꿈꾼다면 신용카드부터 바꿔라!
다이내믹한 여행의 시작과 황당한 승무원
아시아 - 중국
미치도록 넓은 땅덩어리 그리고 그 속에 감춰진 엄청난 풍경과 이야기들
Trekking 1. 호도협
1. 쿤밍 도착 | 초짜 여행자의 소심한 저녁 한 끼
2. 쿤밍에서 따리로 | 첫 번째 리얼 버스 여행
3. 따리에서 하룻밤 | 감동서비스 릴리패드 게스트하우스
4. 따리에서 리장으로 | ‘막가파’ 중국 버스의 놀라움
5. 리장 도착 | 티베트 트레킹 최고 가이드를 만나다
6. Let’s trekking | 차마고도 절대 비경 호도협과 마주하다
7. 호도협을 떠나 샹그릴라로 | 잃어버린 지평선 샹그릴라를 걷다
Trekking 2. 야딩
8. 샹그릴라에서 따오청으로 | 중국의 알프스 야딩 트레킹을 위한 고행
9. Let’s trekking | “따시델레 야딩!”
10. 따오청에서 리탕으로 | 트레킹보다 더 흥미로웠던 리탕의 ‘천장’
11. 리탕에서 캉딩으로 | ‘천장남로’에서 내가 가장 놀란 일
Driving 3. 카라코람하이웨이(KKH)
12. 청두에서 시안까지 | 한국엔 없는 중국 기차의 낭만
13. 시안 체류 | 김용의 ?영웅문?보다 더 재미있었던 혈투
14. 우루무치를 거쳐 카스로 | 침대 버스 그리고 공포의 그녀, 난 뒷걸음질 쳤다
15. 카스 도착 | 카스는 이슬람의 도시였다
16. Let’s driving ① |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산맥의 향연 카라코람하이웨이!
17. Let’s driving ② | 트레킹 천국 파키스탄을 향해
아시아 - 파키스탄
히말라야의 서쪽 그곳엔 파키스탄이 있다
Trekking 4. 윤즈밸리
1. 소스트 도착 | 이상한 나라 이상한 사람들
2. Let’s trekking | 파수 게스트하우스 뒷산이 주는 풍경
Trekking 5. 울트라메도우
3. 파수에서 훈자로 | ‘훈자’ 블랙홀에 빨려들다
4. Let’s trekking | 레이디핑거 아래서 황홀했던 백패킹
5. 훈자 온천 탐방 | 무시무시한 암벽을 기어 내려가 발견한 온천
Trekking 6. 페리메도우
6. Let’s trekking | 요정이 살았다는 페리메도우 트레킹과 내 앞에 나타난 진짜 요정들
7. 페리메도우에서의 하루 | “눈물이 날 것 같았어!”
8. 라이콧브리지에서 이슬라마바드로 | 트레킹보다 힘든 절대 버스 여정
아시아 - 아랍에미리트(UAE)
트레커에게 너무 잔인했던 나라
PASS BY!
1. 두바이 도착 | 예쁜 그녀가 내게 내뱉은 한마디
2. 올드쑥 가는 길 | 카타르 월드컵을 반대하기로 마음먹은 날
3. 오만 가는 길 | 오만에서의 해변 백패킹 계획과 절규
아시아 - 요르단
중동의 보물 같은 트레킹 코스를 발견하다
Trekking 7. 와디 무지브 협곡
1. 암만으로 | ‘물똥’을 영어로 하면?
2. 암만다운타운 투어 | 여행 중 공부한 자와 안 한 자의 좋은 예
3. Let’s trekking | ‘와디 무지브’ 넌 감동이었어! 내 생애 최고의 협곡 트레킹
Trekking 8. 페트라
4. Let’s trekking | 세계 7대 불가사의 페트라! 인류 최고 걸작 앞에 서다
5. 와디무사에서 아카바로 | 코발트 빛 홍해를 건너 황토 빛 이집트로
아프리카 - 이집트
도를 닦고 싶으신가요? 이집트를 추천합니다!
Diving 9. 외도, 다합 다이빙
1. 이집트 누웨이바항에 도착 | 광기의 중심에 서다
2. 누웨이바항에서 다합으로 | 가위! 바위! 보! 단판 승부
3. Let’s diving | 트레커의 외도, 세계 3대 블랙홀 ‘다합’
Trekking 10. 시나이 산
4. Let’s trekking | 시나이 산에 올라 광야의 일출을 보다
5. 카이로 도착 | 배고픈 무슬림의 짜증과 응징
6. 피라미드 관람기 | “경계를 늦추지 마라!”
7. 카이로의 마지막 날 | 이집트에 아직도 믿음이 남았던가?
아프리카 - 에티오피아
숨겨진 트레일을 찾아 커피의 나라로…
Trekking 11. 시미엔 산
1. 아디스아바바 도착 | 아디스아바바에 비는 내리고
2. 피아자의 밤 | 강도에게 필요한 건 흉기가 아니다
3. 타이투호텔에서 | 단 한 번 일본인이고 싶었다
4. 아디스아바바에서 곤다르로 | 아프리카의 지붕 시미엔 산으로
5. Let’s trekking(첫째 날) | 어수룩한 협상과 시미엔 트레킹의 시작
6. Let’s trekking(둘째 날) | 단언컨대, 이렇게 배 아픈 트레킹은 없었다
7. Let’s trekking(셋째 날) | 어느 산골 소녀와의 만남
아프리카 - 케냐
케냐가 세계 일주 최단기간 체류국이 된 이유
PASS BY!
1. 케냐 나이로비로 | “제발 날 보내줘!”
2. 나이로비에서의 하루 | 흑형들과 함께한 ‘한일전’
아프리카 ? 탄자니아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 그리고 절체절명의 순간
Trekking 12. 킬리만자로
1. 탄자니아 모시로 | 아프리카 최고봉 앞에서 드러눕다
2. 말라리아 회복기 | 이를 악물다
3. Let’s trekking ① | 킬리만자로 트레킹 중 찾아온 ‘멘붕’
4. Let’s trekking ② | 5,895m ‘우후르피크’ 넌 자유였어!
5. 트레킹을 마치고 모시로 | 돌발 변수
에필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