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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6418646 / 299쪽 152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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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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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 소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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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세종대왕 100리’의 출발지, 청주 상당산성 숲길 따라 걷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 여행 청주를 지켜온 천년 고성 ‘상당산성’을 따라 걸으며 숲길의 과거와 미래를 만나다 삼국시대 토성으로 세?워져, 조선 숙종 대에 개축된 4.2킬로미터에 이르는 상당산성은 청주 ? 청원 ? 증평을 아우르는 ‘세종대왕 100리’의 시발점이다. 오랫동안 굴곡진 시대의 풍파를 겪으며 나라를 지켜낸 성곽에는 역사의 숨결이 오롯이 살아 있다. | 세종대왕 100리 소개 | ‘세종대왕 100리’는 1444년 세종대왕이 ‘초정약수’로 유... ‘세종대왕 100리’의 출발지, 청주 상당산성 숲길 따라 걷는 이야기가 있는 역사 여행 청주를 지켜온 천년 고성 ‘상당산성’을 따라 걸으며 숲길의 과거와 미래를 만나다 삼국시대 토성으로 세워져, 조선 숙종 대에 개축된 4.2킬로미터에 이르는 상당산성은 청주 ? 청원 ? 증평을 아우르는 ‘세종대왕 100리’의 시발점이다. 오랫동안 굴곡진 시대의 풍파를 겪으며 나라를 지켜낸 성곽에는 역사의 숨결이 오롯이 살아 있다. | 세종대왕 100리 소개 | ‘세종대왕 100리’는 1444년 세종대왕이 ‘초정약수’로 유명한 초정리에 행궁을 짓고 123일간 요양을 하며 한글 창제의 기틀을 잡은 것에 착안하여 지역 문화유산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고 문화관광 자원을 특화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상당산성의 숲길, 초정약수의 물길, 증평의 들길을 중심으로 역사와 문화 예술, 자연과 생태, 신화와 전설, 농경과 삶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재탄생시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문화의 숲, 예술의 바다로 가꾸고자 한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세종대왕 100리’에서 새로운 문화를 꿈꾸다 ‘세종대왕 100리’는 1444년 세종대왕이 ‘초정약수’로 눈병을 치료하기 위해 행궁을 짓고 두 차례에 걸쳐 총 123일 동안 초정에 머물며 한글 창제의 기틀을 잡은 것에 착안하여 조성되었다. ‘세종대왕 100리’는 일부러 길을 뚫거나 만든 것이 아니라 상당산성의 숲길, 청원 초정약수의 물길, 증평의 들길 등 기존의 길 안에 있는 무궁무진한 역사와 문화 예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담긴 길이다. ‘세종대왕 100리’ 상당산성권역의 이야기를 담은《숲길, 오래된 미래를 품다》에서는 금속으로 융숭한 문화를 꽃피웠던 청주의 새로운 문화 산업의 현주소를 살펴볼 수 있다. 담배 생산 중단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던 연초제조창 자리에는 ‘청주문화산업단지’가 들어서 2년 마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개최되고 있다. 그곳은 게임, 에니메이션, 영상 등의 교육 ? 문화 융합 콘텐츠를 생각하는 ‘에듀테인먼트’로 특화된 문화산업의 전진기지로 다시 태어나 하나의 문화가 끝난 곳에서 새로운 문화가 태어나고 성장하여 또 다른 문화와 융합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세종대왕 100리’의 출발점 청주문화산업단지에서 우암산걷기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고(故) 김수근 씨가 설계한 국립청주박물관을 만난다. 전시실을 가득 채운 고려시대 사찰 사뇌사(思惱寺) 출토 유물은 고려시대 직지를 찍을 당시(1377년) 청동 유물로 청주가 왜 금속의 고장인지를 잘 보여준다. 길은 또다시 동심을 담은 청주랜드와 300여 점의 다양한 옹기를 전시하고 있는 옹기박물관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4.2킬로미터에 이르는 상당산성과 마주한다. 역사의 향기를 간직한 숲길, 상당산성 길 백두대간인 속리산 천왕봉에서 발원한 한남금북정맥의 허리에 위치한 상당산성은 언제, 누가 처음 쌓았는지는 알 수 없다. 고고학적 근거에 의하면 대략 통일신라시대에는 어떤 형태로든 산성이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토성으로 세워져, 조선 숙종 대에 개축된 상당산성에는 공남문(남문)을 비롯해 미호문(서문), 진동문(동문) 등 3개의 문과 2개의 암문(동암문 ? 남암문) 그리고 치성 3개소, 수구 3개소가 위치한다. 공남문은 상당산성을 한 바퀴 돌 때, 들머리로 삼는 곳으로 앞쪽에 조성된 드넓은 잔디밭은 소풍 나온 시민들의 쉼터이자 역사 공원이다. 치성(雉城)은 성벽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쌓은 돌출 성벽으로, 평소에는 초소 역할을 하다가 전시에는 적을 옆에서 공격하도록 고안한 방어 시설이다. 암문(暗門)은 항쟁 물자를 운반하고, 적의 눈에 띄지 않게 구원 요청을 하거나 역습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굴곡진 시대의 풍파를 겪으며 나라를 지킨 상당산성은 조선 시대의 축성 기술과 산성 문화를 집약해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육장이다. 현재 상당산성은 중부내륙 산성군의 핵심으로서 유네스코 문화유산 잠정목록에 오르는 등 중요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숲길, 오래된 미래를 품다》는 상당산성에 이르는 길을 모두 8개 구역으로 나누고 그 코스를 모두 걸으면 상당산성의 개요를 알 수 있도록 곳곳에 숨겨진 역사와 유물, 전설 등 인문학적인 배경(더 깊이 알기)을 곁들여 구성했다. 이 책은 굳게 닫힌 성문을 활짝 열고 세상과 소통하는 산성 주변의 싱그러운 자연과 생생한 역사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살아 있는 역사의 산증인, 상당산성 천 년이라는 긴 역사만큼 상당산성에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과 설화들이 존재한다. 오래도록 가뭄이 지속되었을 때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는데, 1671년 청주목사 남구만(1629~1711)이 쓴 에는 이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기록한다. 또한 변방의 긴급한 상황을 밤에는 햇불로, 낮에는 연기를 피워 알렸던 통신 제도인 봉수 제도에 대한 내용도 흥미롭다.《세종실록지리지》(청주목 봉수 편)에 나오는 상당산성 것대산 봉수대는 1998년 11월 20일 충청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으며 2004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이 밖에도 난공불락의 요새 상당산성 탈환에 얽힌 야사를 다룬《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 관한 이야기를 비롯해 상당산성 길 정자에 15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얼음을 갖다 놓았던 얼음골 아저씨 이야기 등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전해지는 비화(秘話)들은 상당산성의 위대한 역사를 보여준다. 본문에 수록한 는 1728년 청주읍성과 상당산성을 함락했던 이인좌의 난을 모티브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두 편의 소설로 구성했다. 첫 번째 소설 ‘동암문 이야기’에는 충의 길을 버리고 반역의 길에 선 무관 양덕부의 열흘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축성 책임자로 일했던 그의 이름은 현재, 공남문 오른쪽 치성 성벽에 ‘장 양덕부(將 梁德溥)’라고 쓰여 있고, 동암문 안쪽에는 ‘패장한량 양덕부(牌將閑良 梁德溥)’라고 새겨져 있다. 이는 성벽을 똑바로 쌓지 않으면 축성자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두 번째 소설 ‘상봉재 이야기’는 비장 홍림의 아내인 해월을 주인공으로 하여 당시의 정치 사건과 가부장 세계가 한 개인을 어떻게 죽음으로 몰아갔는가를 그렸다. 이 책은 역사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에게 한국의 전통과 문화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롭고 즐거운 경험을 제공한다. 아울러 테마 여행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세종대왕 100리’ 답사에 더할 나위 없는 안내서가 될 것이다.
금속과 문화가 융합한 최초의 사례는 고려시대에 꽃피운 불교 유물입니다. 국립청주박물관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고려시대 사찰 사뇌사(思惱寺) 출토 유물은 청주가 왜 금속의 고장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1993년 10월 용화사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무심천 변, 제방 확장 공사를 하던 중 고려시대의 금속공예품 수백 점이 발견됩니다. 의식구, 공양구, 장엄구, 생활용구 등 378점의 유물은 모두, 직지를 찍을 당시(1377년)의 고려시대 청동 유물이었습니다.
_p26 <제1부 폐허에서 감성으로, 역사에서 일상으로>
상당산성을 향해 난 길은 여럿입니다. 그중 상봉재를 거쳐 상당산성에 오르는 코스가 가장 오래된 길입니다. 명암타워에서 상당산성 도로를 따라 걷다가 로드파크부터 시작되는 상봉재 옛길로 접어드는 길입니다. 다만 자동차 도로를 따라 걷기가 불편하다면, 명암저수지에서 출발해 풍주사를 거쳐 상봉재에 오르는 것도 좋습니다. 상당산성 도로를 새로 내면서 상봉재 옛길이 많이 사라졌지만, 애기바위부터는 옛길이 남아 있고 암각선정비와 옹달샘, 서낭당도 깔끔하게 정비되어 옛길의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_p41 <제2부 이야기 길, 상당산성 길>
공남문(남문) 앞에 조성된 드넓은 잔디밭은 소풍 나온 시민들의 쉼터이자 역사공원입니다. 소나무 숲이 만들어주는 그늘은 시원하고 그곳에 앉아 바라보는 공남문은 한 폭의 그림입니다. 곳곳에 세워진 비석들은 상당산성의 옛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공남문 광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시비입니다. 세상천지를 떠돌며 살았던 매월당의 발길은 예의 상당산성에도 닿았고 여기서 느낀 감회를 시로 남겼습니다. 매월당 김시습은 누구일까요? ‘비는 아니 오는데 천둥소리 어디서 나는가, 누른 구름 조각조각 사방으로 흩어지네(無雨雷聲何處動 黃雲片片四方分)’ _p79 <제3부 상당산성의 문화 발원지, 공남문 광장>
둘레 4.2킬로미터의 상당산성을 한 바퀴 돌 때, 그 들머리로 삼는 곳이 바로, 상당산성의 정문인 공남문입니다. 공남문은 <대조영>, <태왕사신기>, <카인과 아벨> 등 많은 드라마가 촬영된 명소입니다. 공남문은 상당산성의 세 개문 중에서 유일한,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입니다. 조선시대 왕이 피신하는 행궁에는 모든 문을 홍예문으로 세웠습니다. 행궁이 아니라 지방 전선 사령부였던 상당산성에는 공남문 한 곳에만 홍예문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_p97 <제4부 다 함께 돌자 산성 한 바퀴>
충청도 54개 고을의 육군을 총괄하는 충청병마절도사영이 옮겨 오자 청주읍성은 큰 변화를 겪습니다. 우선 청주목 관아 옆으로 그보다 큰 병영이 들어서고, 정삼품 청주목사보다 한 등급 높은 종이품의 충청병사가 부임합니다. 병영을 옮겨 오고 3년 뒤인 1654년에는 옥천에 있던 중영(中營)마저 청주로 옮깁니다. 이로써 청주는 행정과 사법은 물론, 군사의 기능을 아우르는 내륙의 중추도시가 됩니다.
_p122 <제5부 청주읍성 종소리, 상당산성에서도 들리네>
상당산성은 1716년 석성으로 개축된 이래 꼭 한 번 함락됩니다. 외세의 침입에 의해서가 아니라 반란군에 의해서였습니다. 바로 18세기 최대의 반란 사건인 ‘이인좌의 난’ 때입니다. 1728년 3월 15일, 이인좌의 군사들은 청주성과 상당산성을 함락합니다. 뒤이어 영남의 정희량과 호남의 박필현 등도 잇따라 거병합니다. 전국에서 거병한 군사를 모두 합치면 이십만 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큰 반란이었습니다.
_p151 <제6부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못하네>
한옥마을은 이미 1999년, 상당산성 사적 공원화 사업 기본 계획에 따라 산성 밖으로 옮기기로 하였으나 마을 사람들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있습니다. 2005년 수립된 상당산성 정비 계획도 한옥마을 이전을 전제로 수립되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묘수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 한옥마을 주민들도 마을 이전을 포함한 대안을 찾자는 데 합의하고 있어, 조만간 수립되는 산성복원 종합 계획에는 현명한 방법이 담길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_p170 <제7부 어떤 것도 사람의 화합만 못하다>
산책은 새로운 걷기의 형식입니다. 산책은 질주에 대한 반성이자, 걷기에 대한 환기입니다. 산책하는 사람의 걸음은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가는 사람이나 들에 일을 하러 나가는 사람과 같지 않습니다. 살금살금 걷는 도둑이나 시간에 쫓겨 서두르는 사람의 걸음과도 확연히 다릅니다. 모양과 속도뿐만 아니라 목적마저 다릅니다. 산책은 무엇을 하기 위한 걸음이 아니라 걸음 자체가 목적입니다. 빠르게 걸어야 할 이유도, 남모르게 걸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산책자는 관찰자이기에 낯익은 일상에서 비범한 통찰을 얻는 것도 이 순간입니다.
_p209 <제9부 물길과 들길로 건너가는 상당산성 숲길>
청주성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삼남이 한양으로 향하는 길목이었다. 거사의 거점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또한 청주는 우암 송시열을 모시는 화양서원이 있는 노론 정치의 심장부였다. 청주를 얻는 것은 노론의 정신적 고향을 빼앗는 일이었다. 게다가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이 있는 군사기지이기 때문에 청주를 점령하면 나라의 절반을 얻는 것과 같았다. 병영의 군사와 무기는 덤이었다. 여기에 청주의 전투성인 상당산성을 거둔다면 일은 거의 끝난 것이었다.
_p255 <동암문 이야기>
곡절 많은 인생이라지만 우리 모자의 운명은 어찌 이리 혹독한지요. 바람 앞에 호롱불처럼 지켜온 아이인데 요절수라니, 원망과 두려움에 온몸이 떨렸어요. 발걸음을 돌려 나가시는 스님을 붙잡고 어찌해야 할지를 물었어요. “나는 상당산성 보국사 주지인 해원이라 하오. 저 아이가 열 살이 될 때까지 내게 맡기십시오. 아들이 보고 싶으면 열흘에 한 번씩 서낭당 고개에서 기다렸다가 만나야 합니다. 다만 서낭당을 한 발짝이라도 넘어서서는 안 됩니다.”
_p292 <상봉재 이야기>






목차
들어가며
코스 소개
1부 폐허에서 감성으로, 역사에서 일상으로 (청주문화산업단지~국립청주박물관~청주랜드~청주옹기박물관 구간)
2부 이야기 길, 상당산성 길 (우암어린이회관~명암저수지~상봉재~것대산 봉수대 구간)
3부 상당산성의 문화 발원지, 공남문 광장 (것대산 봉수대~상당산성 공남문 광장 구간)
4부 다함께 돌자 산성 한 바퀴 (공남문~남암문 구간)
5부 청주읍성 종소리, 상당산성에서도 들리네 (남암문~미호문 구간)
6부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하네 (미호문~기우단~동암문 구간)
7부 어떤 것도 사람의 화합만 못하다 (동암문~진동문~보화정~산성마을 구간)
8부 상당산성의 ‘오래된 미래’ _상당산성 복원 종합 계획
9부 물길과 들길로 건너가는 상당산성 숲길 (상당산성~상당산성자연휴양림 구간)
소설로 보는 상당산성 이야기
_ 동암문 이야기
_ 상봉재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