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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6418653 / 241쪽 152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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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세종대왕 100리’의 중심지, 세종대왕이 마셨던 초정약수 물길 따라 떠나는 문화 예술 여행 세계 3대 광천수 ‘초정약수’ 물길에 피어난 문화 예술의 혼을 만나다 1444년 세종대왕은 두 차례에 걸쳐 총 123일간 초정에 머물며 ‘초정약수’로 눈병을 치료하고 한글 창제에 매진하는 등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었다. 그리고 500여 년 후, 한국 미술의 거장, 김기창 화백도 초정에 머물며 새로운 예술의 꽃을 피웠다. 세종대왕 100리 소개 ‘세종대왕 100리’는 1444년 세종대왕이 ‘초정약수’로 유명한 초정리... ‘세종대왕 100리’의 중심지, 세종대왕이 마셨던 초정약수 물길 따라 떠나는 문화 예술 여행 세계 3대 광천수 ‘초정약수’ 물길에 피어난 문화 예술의 혼을 만나다 1444년 세종대왕은 두 차례에 걸쳐 총 123일간 초정에 머물며 ‘초정약수’로 눈병을 치료하고 한글 창제에 매진하는 등 조선의 르네상스를 열었다. 그리고 500여 년 후, 한국 미술의 거장, 김기창 화백도 초정에 머물며 새로운 예술의 꽃을 피웠다. 세종대왕 100리 소개 ‘세종대왕 100리’는 1444년 세종대왕이 ‘초정약수’로 유명한 초정리에 행궁을 짓고 123일간 요양을 하며 한글 창제의 기틀을 잡은 것에 착안하여 지역 문화유산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고 문화관광 자원을 특화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상당산성의 숲길, 초정약수의 물길, 증평의 들길을 중심으로 역사와 문화 예술, 자연과 생태, 신화와 전설, 농경과 삶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재탄생시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문화의 숲, 예술의 바다로 가꾸고자 한다. 초정약수, 세종대왕과 만나다 ‘세종대왕 100리’는 1444년 세종대왕이 ‘초정약수’로 눈병을 치료하기 위해 행궁을 짓고 두 차례에 걸쳐 총 123일 동안 초정에 머물며 한글 창제의 기틀을 잡은 것에 착안하여 조성되었다. ‘세종대왕 100리’는 일부러 길을 뚫거나 만든 것이 아니라 상당산성의 숲길, 청원 초정약수의 물길, 증평의 들길 등 기존의 길 안에 있는 무궁무진한 역사와 문화 예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담긴 길이다. ‘세종대왕 100리’ 초정약수권역의 이야기를 담은《물길, 세종대왕 꿈을 담다》는 현존하는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세종대왕이 초정에 남긴 흔적을 상세히 재현한다. 한글 창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수도에서 벗어나 이루어진 초정으로의 이궁은 세종 임금이 조용히 한글 연구에 매진하며 내실을 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계 3대 광천수로도 꼽히는 ‘초정약수’는 눈병을 치료하고 쇠약해진 몸을 다스리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세종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초수’에 눈을 담그고 탕실에 들어가 정성껏 몸과 마음을 다스렸다. 현재 세종대왕의 흔적은 초정약수공원에서 만날 수 있다. 이곳은 톡 쏘는 맛이 일품인 ‘초수’를 음용할 수 있는 약수 원탕 ? 문자테마파크 ? 생태공원 등으로 꾸며져 있으며, 매년 ‘초정약수축제’를 통해 세종대왕 어가 행렬을 재현한다. 아울러 이 책에서는 초정 행차를 기념하며 세종대왕과 함께 태평성대를 이뤄낸 당대 최고 재상과 신료들의 시문을 전한다. 초정에 핀 예술의 혼, 삶의 소리를 화폭으로 담아낸 운보 김기창 한글의 창제에 매진했던 세종대왕이 남긴 이야기는 초정의 미래와 함께 또 다른 물길로 이어진다. 한국 화단에 새로운 예술의 꽃을 피운 운보 김기창 화백은 평생 예술 도반의 길을 걸어온 아내를 떠나보내고, 어머니의 고향인 내수읍 형동리에 ‘운보의 집’을 지어 그곳에서 마지막 예술의 혼을 불사른다. 세종대왕과 운보의 인연은 운보가 만 원권 지폐 도안의 원본이기도 한 세종대왕의 어진(御眞)을 그리며 시작되었는데 초정에서 다시 조우한 것이다. 김기창은 장티푸스로 여덟 살에 청각을 잃고 평생 장애인으로 살면서도 작품 활동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운보에게 그림은 삶이었고, 들리지는 않았지만 침묵 속에서 응시했던 내면의 소리였다. 17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70여 년간 작업에 몰두하며 평생 2만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내놓은 그는 어느 한 장르에 머물지 않고 자유자재로 경계를 넘나들며 그림을 그린 한국 화단에서 유일무이한 화가다. 장애를 뛰어넘는 사랑으로 만난 아내 박래현은 그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예술 활동의 동반자였으며 운보가 확고한 작품세계를 펼치는 데 조력자 역할을 했다. 그런 김기창 화백에게 아내를 떠나보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979년 그는 형동리에 ‘운보의 집’을 지으면서 장애인을 위한 일을 시작했으며, 장애인을 위한 복지와 사회적 지위를 위해 여생을 바쳤다. ‘운보의 집’은 대지면적 약 3만여 평에 김기창 화백이 생전에 기거하던 전통한옥을 중심으로 미술관과 분재공원, 수석공원, 조각공원으로 조성돼 있다.《물길, 세종대왕 꿈을 담다》에서는 누구보다도 예술을 사랑했던, 초정에 문화 예술 발전의 싹을 틔운 운보 김기창 화백의 삶을 다시금 조명하며, 그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그림을 수록하였다. 역사로 남겨진 영웅들, 초정에서 싸우다 초정 마을 뒤편에는 장수처럼 버티고 있는, 봉우리가 높아 마을을 호위하는 역할을 하는 구라산이 있다. 조선의 세종과 세조가 이 산 아래에 머무르며 쉬어 갔지만 천 년 전, 아득한 시간 속에서 이미 난세의 영웅(신라의 김유신, 후삼국시대의 궁예, 왕건, 견훤)들이 왕이 되고자 이 길을 올랐다. 삼국의 변방인 충북 지역에는 이때 크고 작은 산성들이 많이 생겨났고, 공격과 방어에 유리한 성을 차지하기 위한 각축장이 되었다. 《물길, 세종대왕 꿈을 담다》는 역사에 근거하여 구라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왕들의 전쟁을 이야기한다. 아울러 성을 지으며 생겨난 축성설화들을 설득력 있게 전한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던 구한말, 독립운동을 펼쳤던 번개대장 한봉수 의병장의 흔적과 초정의 자연을 닮아 거짓 없이 올곧게 살아간 사람들의 충효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이 책은 역사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에게 한국의 전통과 문화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롭고 즐거운 경험을 제공한다. 아울러 테마 여행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세종대왕 100리’ 답사에 더할 나위 없는 안내서가 될 것이다.
임금 맞을 채비를 끝낸 초정은 다시 차분해졌다. 산울림처럼 퍼져 나가던 목수의 망치 소리도 관원의 말발굽 소리도 산자락 아래로 잦아들었다. 부스스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마을에 훈풍이 불어왔다. 경칩을 앞두고 얼었던 땅이 풀리고, 웅숭그레 어깨를 맞대고 있던 산자락에도 옅은 연둣빛 촉들이 어른댔다. 문득 조선의 중심이 된 초정의 하늘은 시리도록 파랗게 드리워져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_p15 <제1부 세종대왕 산책길>
“내 병이 이미 위중하므로 정사에 힘쓸 도리가 없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이와 같이 소홀하게 할 수는 없다. 근래에 와서 병이 더욱 심해졌다. 왕위에 30년 동안이나 있었으므로 부지런해야 할 정사에 게으름을 피운 지 오래되었다. 임금이 늙고 병들면 세자가 정사를 섭행하는데, 이것은 예로부터 내려오던 관례다.”
_p37 <제1부 세종대왕 산책길>
세종대왕과 함께 태평성대를 이룬 당대 최고 재상과 신료들의 시문에서 그날의 초정을 들춰 볼 수 있으니 그도 진한 울림이 된다. ‘봄날에 깃발을 펄럭이며 남쪽 지방으로 행차하시니/ 눈에 비친 향기들이 높이 아래로 매달렸도다/ 조물주는 또한 우리 성군(聖君)을 자랑하니/ 오늘날에 와 서원 땅에 좋은 샘이 솟아났도다/ 유리 같은 샘물 그림자가 움직이려 하는 때/ 해와 달은 분명하게 앞뒤로 떠 있도다 물 한 잔이 능히 오래 살 수 있게 하니 다시 또 어느 곳에서 온천을 찾을 것인가 비 오던 검은 구름 하늘에서 걷어지니/ 행궁(行宮)에 바람 높고 흰 태양이 비치도다/ 태평성대의 조짐을 누가 능히 그리겠는가/ 또한 기산(岐山)에도 은덕의 샘이 있도다’
_p61 <제1부 세종대왕 산책길>
오랜 침묵을 깨우듯 운보의 집을 찾았다. 행랑채와 안채를 구분하는 담장 사이로 잘 다듬어진 정원이 눈에 들어온다. 운보의 체취를 따라 마당으로 들어서니 단아하면서도 과하지 않고, 고졸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한옥이 모습을 드러낸다. 정갈한 마당에 서니 까마득한 어느 날 설핏 보았던 운보 선생이 떠오른다. 하얀 한복 차림으로 안채 마루에 걸터앉아 망연히 하늘을 쳐다보고 계셨던 할아버지. 무엇 때문에 갔는지 누구와 갔는지는 기억을 못 하지만 먼발치에서 보았던 운보 선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모습은 아직도 선명하다.
_p112 <제2부 운보 예술길>
“나는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을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듣지 못한다는 느낌도 까마득히 잊을 정도로 지금까지 담담하게 살아왔습니다. 더구나 요즘같이 소음 공해가 심한 환경에서는 늙어갈수록 조용함 속에서 내 예술에 정진할 수 있었다는 것은 오히려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고인이 된 아내의 목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게 유감스럽고 또 내 아이들과 친구들의 다정한 대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것이 한이라면 한이지요.” _p118 <제2부 운보 예술길>
세력을 모으는 중심지는 청주였다. 궁예에게 청주는 근거지와 같았다. 경주에서 도망 나와 세달사에서 승려의 삶을 청산하고 처음으로 세상과 인연을 맺은 곳이 청주였다. 양길의 휘하에서 친구가 된 신훤 역시 청주 출신 호족이었다. 훗날 궁예가 철원으로 도읍을 옮기며 청주 사람 천호를 철원으로 이주시켜 자신의 지지 기반으로 삼았을 정도로 청주와의 인연은 각별했다.
_p138 <제3부 김유신 리더길>
피로 얼룩진 혼돈의 시대도 시간의 강을 건넜다. 들끓던 함성도 사라지고 말발굽 소리도 잦아들었다. 구라산에는 쇠잔한 성터와 무너진 성벽만이 웅숭그레 남아 있다. 오랜 시간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은 영웅들의 전설 같은 이야기다. 궁예가 어린 시절에 구라산 아래에 숨어 살았고, 견훤과 싸운 곳은 궁예성으로 불렸다는 구비전승이 산자락에 떠돈다. 그래서일까, 구라산성에 오르면 역사 속 영웅들의 체취가 생생한 어제의 역사로 묻어난다.
_p146 <제3부 김유신 리더길>
오랜 옛날 아홉 딸과 아들 하나를 둔 어머니가 있었다. 딸이 많다 보니 하나뿐인 아들은 늘 외톨이처럼 보였다. 드센 누나들 틈바구니에서 기도 못 펴고 사는 것 같아 사소한 다툼에도 어머니는 아들만 감쌌다. 다툼이 잦아질수록 아홉 딸과 아들의 사이는 나빠졌고, 갈등은 갈수록 심해졌다. 급기야 아홉 딸과 아들은 목숨을 건 내기를 한다. 딸 아홉은 산정에 성을 쌓고, 아들은 나막신을 신고 한양에 갔다 오는 것이었다. 다만, 지는 편이 스스로 죽는 내기였다.
_p148 <제3부 김유신 리더길>
구라산성의 축성설화를 증거하듯 지금도 성안에는 양지 바른 곳에 10여 기의 무덤이 나란히 있다. 쓸쓸한 성터에서 만나는 무덤은 설화와 버무려져 애잔하다. 무덤의 실체는 죽은 아홉 딸과의 연관성 여부를 떠나 구라산성을 떠받쳐주고 있다. 나란히 조성된 무덤을 보면 설화의 무게로 인해 아홉 딸들의 죽음이 현실처럼 다가온다.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며 호령하던 고구려의 기상은 아홉 딸이 쌓은 구라산성 설화 속에서 천년 역사의 잠을 깨운다.
_p153 <제3부 김유신 리더길>
일광삼존불은 발견 당시 네 개의 조각으로 흩어져 있었다. 몇 차례 발굴조사로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는데 왼쪽의 협시보살은 유실된 채 본존불과 우협시보살만 남아 있다. 보존 상태가 좋지는 않지만 삼존불 양식을 띠고 조성된 첫 불상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나 불상은 삼국 중 어느 나라가 조성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신라와 고구려의 기법이 혼합돼 있고 백제의 양식이 드러나는 불상은 국적 불명의 부처이다. 다만 통일을 이룬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 사람들에게 불상을 만들게 함으로써 불심으로 상흔을 치유하고 갈라진 마음을 보듬으려 한, 융합된 삼국의 문화 상징으로 비쳐진다.
_p156 <제3부 김유신 리더길>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탕! 탕! 다시 두 발의 총성이 들녘으로 퍼져 나갔다. 놀란 말들의 울음소리가 하늘로 솟구쳤다. 방향을 알 수 없는 총성이 이어지면서 평화롭던 들녘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말을 탄 일본 헌병이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바닥은 붉은 피로 낭자해졌다. 일순 벌어진 기습이었다.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던 일본 헌병 두 명은 황급히 말고삐를 움켜잡고 뒷걸음쳐 도망쳤다. 멀어지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짧은 정적이 흘렀다.
_p175 <제4부 한봉수 충효길>
초정약수공원을 빠져나오면 길은 다시 갈라진다. 증평 율리로 넘어가는 고개와 미원으로 넘어가는 이티재 그리고 청주로 가는 길이다. 그 삼각지점에 초수로 목욕하는 약수탕이 위치해 있다. 약수 중에서도 초수의 독특한 물로 유명한 초정약수원탕은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올 정도로 인기 있다. 톡 쏘는 초수에 목욕한 후 시원하게 마시는 물맛의 비결에 다시 찾게 되는 곳이다.
_p222 <제5부 마음으로 만나는 세종대왕 100리길>






목차
들어가며
코스 소개
1부 세종대왕 산책길_ 초정에서 피운 창조의 꽃
_ 세종, 초정에 들다
_ 눈이 머물고 마음이 머물고
_ 필연이 되고 운명이 되고
_ 도전으로 피운 창조의 꽃
_ 환궁과 두 번째 행차
_ 학이 품은 마을 왕을 품은 초정
_ 옛 시로 만나는 초정리 마을
2부 운보 예술길_ 초정에 핀 예술의 혼
_ 인연
_ 그곳에 사랑이 있었네
_ 삶의 소리, 화폭에 담다
_ 소리, 붓끝에서 울리고
_ 꽃은 또 다시 꽃으로 피어나고
3부 김유신 리더길_ 구라산성, 왕들의 전쟁터
_ 난세의 영웅들
_ 통일을 위해 오른 김유신
_ 왕이 되고자 성에 오르다
_ 구라산에서 펼쳐진 왕들의 전쟁
_ 축성설화 속에 숨은 역사 코드(남매 축성설화)
_ 왕들이 꿈꾼 미래(구려사 미륵불, 일광삼존불, 영하리 부처)
_ 천 년 뒤, 성에 오르다
4부 한봉수 충효길_ 번개대장의 독립운동
_ 평민에서 의병으로
_ 명포수에서 번개대장으로
_ 동에 번쩍, 서에 번쩍
_ 독립운동으로 다시 역사에
_ 길에서 만나는 충과 효
5부 마음으로 만나는 세종대왕 100리길
_ 길과 길이 만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