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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존슨 근대의 탄생 전 2권세트

시리즈 : 폴 존슨 근대의 탄생 [3]

폴 존슨 저 | 명병훈 역 | 살림 | 2014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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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2228222 / 1736쪽 152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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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우리의 현재는 단지 15년1815~1830만에 만들어졌다! 폭군, 천재, 광인들이 뒤엉킨 불같은 시대! 근대의 시작이자 완성점인 그 뜨거운 현장의 이야기! ▶ 내용 소개 경이로운 역사의 초상화! _월스트리트 저널 생동감 넘치는 에피소드와 저자만의 묘미가 깃든 역작! _뉴욕타임스 정치학에서 예술로, 문학으로, 의학으로 국가와 국가를 넘나드는 책! _라이브러리 저널 나폴레옹이 물러난 1815년, 그때부터 근대는 꽃피기 시작했다 보편적으로 지식계에서는 근대의 시작을 18세기로 본다. 우리는 흔히 ... 우리의 현재는 단지 15년1815~1830만에 만들어졌다! 폭군, 천재, 광인들이 뒤엉킨 불같은 시대! 근대의 시작이자 완성점인 그 뜨거운 현장의 이야기! ▶ 내용 소개 경이로운 역사의 초상화! _월스트리트 저널 생동감 넘치는 에피소드와 저자만의 묘미가 깃든 역작! _뉴욕타임스 정치학에서 예술로, 문학으로, 의학으로 국가와 국가를 넘나드는 책! _라이브러리 저널 나폴레옹이 물러난 1815년, 그때부터 근대는 꽃피기 시작했다 보편적으로 지식계에서는 근대의 시작을 18세기로 본다. 우리는 흔히 중세의 오랜 신 중심의 세계관이 깨지는 14~16세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지나 인간 이성으로 구습을 타파하는 계몽주의와 과학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 준 산업혁명, 그리고 구체제를 전복시키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천명한 프랑스 혁명으로 근대의 문이 열어젖혀졌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영국이 자랑하는 저널리스트이자 역사학자인 폴 존슨은 19세기 초반, 1815년부터 1830년까지의 15년 동안 근대가 탄생했다고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의 기반이 바로 이 15년 동안 다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폴 존슨, 근대의 탄생』에서 폴 존슨은 어떤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저자는 1815년 6월 18일 워털루전투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이 영국의 웰링턴이 이끌었던 영국-프로이센 연합군에게 패배하여 나폴레옹이 완전히 퇴위할 때까지는 근대의 개화가 늦춰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길고 파괴적이었던 나폴레옹전쟁이 근대의 실질적인 탄생을 늦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건 그 전쟁이 끝난 1815년부터 영국과 유럽 대륙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급격하고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을 보면 확연해진다. 근대 국가의 모델, 미국의 부상 우선 살아남기에 급급한 식민지 국가 미국이 영국과 겐트조약을 맺으며 지속적인 평화관계를 유지하면서 확 달라졌다. 이건 나폴레옹이 1814년 3월 영국과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연합국에게 패배하여 파리를 점령당한 뒤 엘바섬으로 유배되면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 이전까지 영국은 미국과 1812년부터 벌이고 있었던 전쟁에 대해 강경했다. 절대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프랑스가 항복한 뒤로는 세계전쟁의 ‘잔존물’ 정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미국과의 전쟁 따위는 한시라도 빨리 마무리 짓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은 유럽의 영향권에서 떨어져 나와 유럽식의 ‘타협’ 문화 대신 ‘도덕적 정당성’이라는 명분을 선택하는 한편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도입하면서 점차 강대국으로 변모해갔다. 그런 미국의 모습은 영국의 지식인들에게는 진보정신이 구현된 나라로 비춰졌다. 바이런은 미국을 ‘힘과 자유, 절도의 표본’이라고 하면서 미국의 정치체계는 ‘고대 그리스, 특히 전성기를 누리던 아테네의 가장 뛰어난 면을 고루 갖추었다’고 평할 정도였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근대 국가의 모델’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프랑스혁명의 계승자를 자처한 나폴레옹의 본질 한편 1815년 나폴레옹의 패배는 나폴레옹의 권력만 앗아간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해 덧씌워져 있던 ‘기대’도 앗아갔다. 당시 유럽의 지식인들 중 상당수는 나폴레옹을 진보의 원동력이라 생각했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의 계승자임을 자처하며 무력으로 그 정신을 전파하려한다고 선전했기 때문이었다. 영국의 비평가인 윌리엄 해즐릿은 “만일 나폴레옹이 정복자라면 그것은 그가 자유를 위한 인류의 추상적 권리에 반대하는 왕들의 거대한 음모를 정복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또 헤겔은 1806년 말을 타고 예나를 지나가는 나폴레옹을 직접 보고 그를 이성의 상징인 ‘세계정신’을 구현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폴레옹의 부대가 그의 전재산을 다 빼앗아 가는 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칭송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책상물림들의 생각일 뿐이었다. 지식인들의 열망이 반영된 상상 속의 나폴레옹이 그랬을지는 모르나 실제는 달랐다. 나폴레옹이 독일과 북부 이탈리아에 프랑스 혁명으로 만들어진 몇 가지 개혁을 강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나폴레옹의 본질은 아니었다. 나폴레옹은 결코 민주주의자가 아니었고, 그에게 군중은 ‘폭도’였다. 소탕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는 개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기 위해 힘쓰지도 않았고 오히려 근대 경찰국가라는 개념을 처음 고안해 수출까지 할 정도였다. 오히려 벨기에나 네덜란드의 구체제가 갖고 있던 민주적 장치들까지도 파괴했다. 지방자치제의 교과서 같은 스위스를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 스위스 국민의 자유를 박탈하려 했다. 이로 인해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나폴레옹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렸다. 나폴레옹이 가는 곳에는 노략질이 그치지 않았다. 나폴레옹의 원정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200만 명이 넘었고 그 이외에도 전쟁으로 인한 가난, 질병, 영양실조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던 것이다. 1815년 이후의 시대정신, 안정을 갈구하다 폴 존슨은 1815년 이후 ‘시대정신’은 ‘개혁을 향한 타오르는 열정’이 아니라 길고 긴 전쟁 뒤에 사람들이 강력하게 열망한 ‘안정’이었다고 말한다. 영국의 시인 셸리는 멀리 떨어진 영국에서 나폴레옹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지 않았기에 “개혁을 열망하는 ‘우리는 다수’이지만 그것을 억누르려는 ‘저들은 소수’”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폴 존슨이 보기에는 그 ‘다수’가 실제로는 ‘소수’였다. 변화를 촉구하던 시대정신의 겉모습과는 달리, 그 밑에는 안정을 갈구하는 더 강력한 시대정신이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근 20년 동안 계속된 전쟁, 그리고 그 전쟁이 불러온 갖가지 비참함과 가난을 겪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그만 폭력 없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래서 이들 대부분은 1815년 이후의 왕정복고를 기꺼이 받아들였고 오히려 ‘억압’을 반가워했다. 바로 이런 시대정신은 1815년부터 1830년 사이에 전반적인 안정을 가져왔다. 전쟁과 내란이 없는 시절이 당분간 지속됐다. 근대적 변화는 바로 이 ‘안정’의 바탕 위에서 솟구쳐 올랐다. 1815년 이후부터 선진국가들에서 터져나온 산업과 과학과 문화의 혁명적 변화는 이 안정 위에서 꽃피게 됐고, 그 변화들이 사람들의 신념, 열정, 가치, 편견 및 사고방식 등을 ‘근대적으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세계화되는 문화 1815년 나폴레옹의 패배 이후 찾아온 ‘안정’은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다. 폴 존슨은 우선 예술의 사조가 바뀌었다는 걸 언급한다. 나폴레옹은 프랑스를 ‘고대의 위대한 제국’이라는 이미지로 각인시키기 위해 고전주의적 예술을 확고하게 지원했었다. 그게 1815년 이후에는 사라져야 했다. 혁명론자였고 로베스 피에로의 동지였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희생양으로 낙점됐다. 나폴레옹은 다비드에게 ‘궁정 수석 화가’라는 직위를 수여하며 총애했는데 다비드 역시 나폴레옹의 구미에 쏙 맞는 그림을 그려 화답하곤 했다. 그런 다비드는 결국 프랑스에서 추방됐고 브뤼셀에서 생을 마감하게 됐다. 그와 같은 분위기에서 고전주의 예술은 몰락했고 그 빈자리를 빅토르 위고 같은 낭만주의 예술이 채우게 됐다. 또 프랑스가 세계 지성계에서 리더십을 완전히 상실하면서 문화가 국제화되기 시작했다. 유럽 각국은 이제 자국의 작품을 넘어 점점 성장하는 외국의 근대 문학 분야를 탐구하게 됐고, 그런 과정에서 유럽은 「니벨룽겐의 노래」나 칸트의 관념론 철학, 괴테의 서정시와 희곡, 실러의 시극 등 독일 문화를 발견하고 빠져들게 됐다. 역사상 결코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특별한 시대 또한 통신과 교통의 급격한

저자 소개

20세기 영국의 석학, 비판적 저널리스트, 역사 저술의 거인. 1928년 맨체스터에서 출생했고, 예수회 계열 학교인 스토니허스트 칼리지와 옥스퍼드 대학 맥댈런 칼리지에서 공부했다. 1950년대에 저널리스트로서 처음 명성을 얻은 뒤 〈레알리테〉 부편집장과 〈뉴 스테이츠맨〉 편집장을 역임했다. 보수적이면서도 비판적인 입장에서 〈더 스펙테이터〉, 〈데일리 메일〉, 〈데일리 텔레그라프〉,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내셔널 리뷰〉 등에 정규 칼럼과 기사를 썼고, 마거릿 대처의 정치적 조언자로서 연설문 작성을 담당하기도 했다. 종교적으로 보수 성향의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해방신학을 이단으로 여기고 사제 독신주의를 옹호했으나 여성 사제 서품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2006년 미국 대통령이 수여하는 ‘자유의 메달’(저널리즘 부문)을 받았으며, 역사, 인문, 예술, 문화를 넘나들며 50여 권의 방대한 저작을 남겼다. 기독교의 2천 년 역사를 정치․사회․문화적 조건을 탐색하며 객관적으로 풀어낸 이 책 《기독교의 역사》 외에, 4천 년 유대인의 역사를 그려낸 《유대인의 역사》(포이에마 근간),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과 〈내셔널 리뷰〉 ‘20세기 100권의 책’에 선정된 《모던 타임스》, 《근대의 탄생》 등 엄청난 박식함과 예리한 통찰이 돋보이는 저술로 독자를 매료시켰다. 이 외에도 《지식인의 두 얼굴》, 《창조자들》, 《폴 존슨의 예수 평전》, 《위대하거나 사기꾼이거나》, 《르네상스》 등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다. 

역자 소개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했다. 「중앙일보」「경향신문」 등에서 일했다. 현재는 인문학을 기반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지식과 열정을 불어넣는 출판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책 속에서

이 책의 제목에 대해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나는 근대 사회의 기반이 대부분 1815년부터 1830년 사이인 15년 동안 형성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 말에 의아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영국 경제가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는 산업발전이 처음으로 일어나고, 프랑스 혁명으로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이 전복되는 과정이 시작된 1780년대가 근대 사회의 시작이라 주장할 것이다. 물론 근대성이 1780년대에 잉태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길고 파괴적이었던 나폴레옹전쟁은 근대성의 실질적인 탄생을 늦췄다. 평화가 찾아오고 금융, 경영, 과학, 기술 등 새로운 재원들이 건설적인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근대화가 전면적으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_저자 서문 중에서

그 당시 영국의 진보주의자들 중에는 여론 지도자, 작가 및 기자가 많았다. 친미적 성향도 강했다. 실제로 1790년대부터 186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좌파적 성향을 보인 영국 지식인들 대다수가 가장 선호하는 국가로 미국을 꼽았다. 이는 1918년부터 1945년 사이, 서구 지식인들이 소련을 선호하던 모습과 흡사하다. 이러한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부모를 둔 아이들은 미국을 동경하면서 자랐다. _1권 ‘친미적인 영국 진보주의자들’ 중에서

이렇게 이민이 급격하게 증가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빠르고 저렴하며 안전한 교통수단은 인구 집중을 완화할 수 있는 물리적인 수단을 제공했다. 1825〜1826년과 1826〜1827년, 유럽에서 겨울은 무척이나 길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추웠다. 1829〜1830년 겨울은 역사상 가장 추웠고, 이 뒤편에서 보듯이 정치를 포함한 모든 면에 영향을 끼쳤다. 이런 이상기후는 심각한 식량난을 낳았으며, 아일랜드와 독일에서 특히 심했다. 기근 등 자연재해로 인구 과잉이 자연 조절된다는 토머스 맬서스의 이론이, 때론 심하게 왜곡된 형태로 대중에게 퍼졌다. 생계를 떠맡은 가장들은 극심한 기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가족을 유럽에서 탈출시키려고 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조세 부담까지 있었다. 나폴레옹전쟁 막바지,유럽은 그야말로 세금 천지였다. 거의 모든 것에 세금이 붙었고, 그것도 대부분 무척 무거웠다. 시드니 스미스는 「에든버러 리뷰」지를 통해 ‘피트의 세금 체제’를 맹비난했다. _1권 ‘신천지로 떠오른 미국’ 중에서

북쪽 공동체들에서 농부들이 봉기해 장교들을 살해하고 병원과 다른 공공건물들에 불을 놓았다. 여하튼 아락체예프의 이 제도를 싫어했던 새 황제 니콜라이 1세는 정책을 바꿔 이것을 해체해버렸다. 이리하여 근대 최초의 사회개혁 실험은 끝이 났다. 이 실험이 중요했던 것은 이 제도가 아무와도 상의하지 않고 어떤 승인도 구하지 않는 독재자 한 사람의 단순한 기분에 따라 100만 명의 목숨을 결정할 규모로 쉽게 도입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법과 태도에 있어서 러시아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사회개혁이 훨씬 더 큰 규모로 행해질 미래에 대한 불길한 전조였다. _1권 ‘황제가 만든 지옥의 유토피아’ 중에서

워털루전투 이후, 과학 발명은 급성장하는 영국 사회와 국제 사회에 열렬한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시대를 특징짓는 매우 중요한 변화일 것이다. 그 무렵은 또한 어느 정도 교양을 갖춘 남성이나 심지어 여성까지도 최신 과학의 발전을 가늠할 수 있었다. 화학 분야에 대한 설명서는 특별히 여성독자의 흥미를 끌도록 작성된 것도 있었다. 실제로 스티븐슨처럼 경험에 바탕을 둔 과학자도 아무런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과학기술의 최첨단에서 데이비와 어깨를 겨루며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물리학과 화학, 과학과 공학, 문학과 철학, 예술과 산업 디자인, 이론과 실제 등 이 모두가 지식과 기술의 연속체를 구성했고, 인간은 그 안에서 자유롭게 탐구했다. 훗날 대학들에 의해 독립되어 구분하는 ‘학문’의 개념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_2권 ‘데이비의 화학 강좌’ 중에서
1815년부터 로스차일드 가문은 국제 금융계에서 새로운 방향타 역할을 맡았다. 그 동안 정부는 언제나 신용대출로 전쟁비용을 충당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그에 못지않게 훨씬 많은 자금을 조달해 평화 발전을 가속시켰다. 금융은 그 나름대로 근대 세계를 탄생시킨 결정적 요인이지 않았나 싶다. 왜냐하면 이로 인해 수많은 발전이 가능케 되었기 때문이다. _2권 ‘로스차일드 가문의 금융 네트워크’ 중에서

선진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생활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작가와 예술가는 특히 이를 재빨리 눈치 챘다. 그러나 그 반응은 뚜렷하게 엇갈렸다. 매콜리와 베를리오즈 같이, 변화가 준 기회들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들도 있었고, 반대로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자들도 있었다. 로시니는 이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너무나도 싫어한 나머지 아예 작곡을 영원히 멈춰버렸다.
“문명의 이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세계를 불태워버릴 이 기술을 버릴 수는 없을까? 과학은 진보한다는 말도 있지. 그런데 누가 과학의 퇴각을 알리는 북을 두드릴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_2권 ‘변화하는 세계’ 중에서

목차

목차
1권
머리말 현대의 기반을 이룬 15년을 말하다
제1장 특별한 관계
뉴올리언스전투, 1815년 1월 8일│영국과 싸우기 위해 태어난 사람, 잭슨 장군│1812년 미영전쟁은 어떻게 시작됐나?│미국의 분열│전쟁터로 변한 캐나다 국경│군사 공상가 로버트 풀턴│파슬리 대령의 세계 전략과 로켓 공격│영국 해군의 약점과 강점│워싱턴 방화와 서로에 대한 만행│남부의 잭슨│크리크족 대학살│애덤스와 클레이의 대립│겐트조약의 의미│영국과 미국은 왜 특별한 관계로 발전했을까?│플로리다 점령│러시아와 오리건 지역│영국인과 미국인은 서로를 어떻게 보았는가│친미적인 영국 진보주의자들│미국에 대한 시드니 스미스, 코벳, 트롤럽의 견해│미국식 영어의 발전│워싱턴 어빙의 문화적 아부│미래의 강대국, 미합중국
제2장 회의는 춤춘다
1815년, 빈의 웰링턴│나폴레옹의 두려운 유산│고야를 통해 유럽을 보다│반기를 든 독일 지식인들│메테르니히와 연합│연합국과 나폴레옹 황제의 협정│운명의 워털루전투│평화조약의 밑그림을 그린 사람들│통제 불가능한 러시아 황제│런던을 찾은 러시아 황제│최초로 열린 국제평화회의│패배자로 몰린 세 나라│독일 민족주의의 좌절│춤의 도시, 빈│암약하는 비밀경찰│나폴레옹의 복귀와 백일천하│신성동맹과 낭만적 기독교│예언자의 목소리│분노에 휩싸인 천재 베토벤│음악 시장을 개척한 천재│로시니와 중류 문화의 성장│중산층 가정에 필수품이 된 피아노│슈베르트의 예술가 기질│낭만주의의 어머니 스탈 부인│리더십을 잃은 프랑스│고전주의와 낭만주의│다비드, 카노바, 그리고 신고전주의의 패배│빅토르 위고와 샤토브리앙│변모하는 파리│무대 기술의 발달│세상을 밝힌 가스등│거대함에서 풍기는 매력│미국의 풍경화가 토머스 콜
제3장 미개지의 종말
통신 혁명│위험한 역마차 여행│교통수단, 주차 문제, 그리고 혼잡│매캐덤의 도로 개량 사업│영국 교통에 혁명을 가져온 텔퍼드│극찬받는 텔퍼드의 프로젝트│반대에 부닥친 고속도로 건설│마차에 밀린 증기 자동차│돛배에서 증기선으로│하늘을 나는 꿈│더 빠르게 안락하게 저렴하게│유럽의 인구 폭발 현상│신천지로 떠오른 미국│값싼 토지로 주목받다│플레인 호수와 미시시피 계곡의 정착│스코틀랜드에서 쫓겨 온 이민자들│에드윈 랜드시어의 풍속화│미국을 알린 페니모어 쿠퍼│뺏는자의 패러독스│팜파스에서 쫓겨난 인디언들│캐나다의 프랑스계 주민들│허드슨 항만 회사를 둘러싼 싸움│식민지로 전락한 아프리카대륙│급진주의적인 선교가 유행하다│범죄자 유형지의 확대│세계 최악의 유형지 호주│호주를 만든 맥쿼리 총독│애버리진들의 비극│원주민이 전멸한 섬 태즈메이니아│눈요깃감으로 전락한 마오리족의 머리│더 많은 땅을 찾아나선 러시아│그루지야 정복│무리디즘과 이슬람 근본주의의 기원│생태학적 제국주의│캘리포니아 탐사│극지방 탐험│정원 가꾸기 열풍│자연보호를 시작하다
제4장 세계 경찰
지중해 해적을 소탕한 엑스마우스│매질로 죽어나가는 러시아 모범 농장│황제가 만든 지옥의 유토피아│농노 제도를 외면한 러시아 지식인들│노예제도를 용인한 토머스 제퍼슨│미국의 노예제도를 둘러싼 대립│목화값을 떨어뜨린 엘리 위트니의 조면기│위선적인 남부의 탄생│미주리협약│확산된 노예 폭동│흑인 해방을 선언한 맨스필드 대법원장│영국의 노예제 반대운동│세계 경찰로 떠오른 영국 해군│노예 매매에 빠져든 서아프리카 부족장들│포함 외교를 시작하다│중동으로 진출한 영국│해양을 장악한 영국 해군│유능한 식민부 장관 배서스트│래플스가 건설한 싱가포르│동인도회사의 과학적 조사│식민 통치가 시작되다
제5장 중심은 유지될 수 있을까?
워즈워스와 웨스트모어랜드 선거 개입│문학사에 빛나는 저녁 파티│낭만주의와 가난│좌파의 지도력 부재│감옥에 간 두 언론인│활동하는 급진주의자들│반곡물법 폭동│정부를 지지한 농부들│영국 국교회의 우대 정책│밀리언셀러 작가의 출현│밤에 촛불을 밝혀둔 이유│서민적인 미국 대통령│규모는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내각과 하원의 관계│임명권과 한직의 쇠퇴│재주가 많았던 하원의원들│막대한 선거 비용과 부패 방지법│로더 가문의 정치 제국│낭만파 계관시인의 정치 편력│워즈워스의 정치철학│브로엄의 도전│드퀸시와 지역 신문 전쟁│1818년 총선의 결과│네이스미스와 제프리│출판업의 번창과 대중 도서관의 등장│역사 소설로 거부가 된 스콧│예술가 그룹의 도덕성 논쟁│워털루전투에 대한 두 가지 평가│무질서를 찬양한 셸리│웅변가 헌트│맨체스터 집회로 표출된 민중의 분노│피털루사건│악법으로 존속한 치안 유지법│시슬 우드의 암살 음모
제6장 신사와 숙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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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주
2권
제7장 힘과 기계와 시각표현
안전등의 개발 경쟁│데이비의 화학 강좌│전기에 매료된 셸리│패러디와 전기역학│야외 과학자 돌턴│지질학의 발전│배비지의 자동계산기│산업화와 과학 기술 진흥│대영제국을 만든 기술자들│관행만 고집하는 노동조합│경이로운 생산 설비│템스 터널 계획│초창기의 철도│과학과 미의식│신경계통의 연구│삽화책과 인쇄기술│풍경화 제작의 새로운 기법│장인 의식이 강한 화가들│환영을 말하는 블레이크│파머와 고대인│후원자 시대의 종언│대중 미술관의 등장│돈벌이가 되는 개인 전시회│사진의 발명│천재 보닝턴│평가받지 못한 컨스터블│프랑스가 좋아한 영국 그림들│들라크루아의 활약│터너가 준 충격│빛과 색의 마술사
제8장 무질서의 가면극
안데스 산맥을 넘은 볼리바르│스페인 제국의 문화유산│초기의 반란과 군벌의 출현│볼리바르의 출신 배경과 성격│스페인 재통치의 실패│영국과 미국의 간섭│먼로 선언과 캐닝│볼리바르의 실패│파라과이의 고집│최초의 다민족 국가 브라질│스페인의 자유주의와 프랑스의 간섭│이탈리아의 비밀 결사│바이런의 이탈리아 생활│터키가 지배하는 방식│그리스의 산적들 │바이런의 죽음│무하마드 알리와 이집트│터키의 서구화│강대국에 의한 평화 유지│나바리노 해전│근대화의 발목을 잡은 민족의식
제9장 상쾌한 공기와 나른한 시럽
즐겁게 걷는 사람들│최초의 축구 경기│크리켓 경기│권투와 도박│경마의 발전│무어크로프트의 중앙아시아 탐험│무어크로프트의 ‘대전략’│애견가와 동물 보호 운동│어린 노동자│바이런의 육아법│공작 집의 아이들│밀과 브라우닝의 어린 시절│죄책감에 시달린 키르케고르│어떤 교육방식이 좋은가│리스트와 멘델스존│비운의 베버│의학의 진보와 한계│사체 도굴꾼의 일기│돌팔이 의사와 특효약│정신병 치료│늘어나는 자살 사건│인기를 끈 해수욕장│다이어트 열풍│푸짐한 저녁 식사│마약의 유행│아편중독과 매킨토시│과학자들의 아편│아편의 국제무역│청나라의 아편 유행│중국의 구조적 약점│비밀결사의 출현│다가오는 아편전쟁의 그림자
제10장 거대한 그림자
제1차 버마전쟁│영국의 인도 지배│인도 지배의 정당성│필리핀과 인도네시아│문호를 닫은 일본│돈 걱정하는 쇼군│국수주의 사상의 발전│독일 민주주의의 대두│전쟁을 찬양한 철학자 헤겔│역사학의 유행│생시몽의 착각│콩트의 실증주의│유토피아를 꿈꾼 지식인들│벤담의 공리주의│대중을 불신한 불쌍한 콜리지│드 메스테르의 교황 옹호론│러시아 제국의 군대 체제│러시아의 비밀경찰│흑인의 후예 푸슈킨│데카브리스트 혁명│니콜라이 1세의 철권통치│황제와 시인│혁명 신화의 탄생
제11장 대폭락!
로스차일드 가문의 금융 네트워크│대출을 늘려라!│1819년의 금융위기│존 마셜의 등장│금본위제도로의 전환│근대적인 경기 순환의 시작│근대적인 형법 개정│노동조합 합법화│생활수준의 개선│미국 생활양식의 향상│소비 사회의 출현│프랑스 출판 산업의 발달│라틴 아메리카의 공채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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