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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과 사회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의 역사

시리즈 : 대우학술총서 [15]

이영석 저 | 아카넷 | 2014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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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7333556 / 444쪽 158 x 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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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근대성’ 문제를 탐구의 대상으로 삼은 최초의 지식인집단이라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 지식인운동이 어떻게 19세기 영국문화를 주도하고 유럽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지를 살핀다. 정치적·경제적으로 열등한 나라의 지식인들이 어떻게 중심부 문화의 주류가 될 수 있었는지를 성찰하고 있다. ‘문필공화국’ 에든버러를 근거지로 전개된 지식인집단 문필가들(literati)과 이들을 둘러싼 독자층의 형성을 중시하며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의 사회사와 지성사의 결합을 시도하는 책이다. 대영제국의 해체, 영국과 유럽의 경제쇠퇴, 유럽의 통합문제 등으로... ‘근대성’ 문제를 탐구의 대상으로 삼은 최초의 지식인집단이라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 지식인운동이 어떻게 19세기 영국문화를 주도하고 유럽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지를 살핀다. 정치적·경제적으로 열등한 나라의 지식인들이 어떻게 중심부 문화의 주류가 될 수 있었는지를 성찰하고 있다. ‘문필공화국’ 에든버러를 근거지로 전개된 지식인집단 문필가들(literati)과 이들을 둘러싼 독자층의 형성을 중시하며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의 사회사와 지성사의 결합을 시도하는 책이다. 대영제국의 해체, 영국과 유럽의 경제쇠퇴, 유럽의 통합문제 등으로 국민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대브리튼’의 현주소를 들여다보게 한다. 18세기 스코틀랜드에서 펼쳐진 근대의 풍경 정치적·경제적으로 열등한 주변국 지식인들이 중심부 문화의 주류로 등장하다! ‘근대성’ 문제를 탐구의 대상으로 삼은 최초의 지식인집단이라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 지식인들의 사상과 학문에 관한 연구는 많지만, 그들의 활동은 오랫동안 영국문화의 일부로 여겨졌다. 이 지식인운동을 18세기 후반 스코틀랜드 고유의 지적 활동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근래에 이루어졌다. 윌리엄 로버트슨, 데이비드 흄, 애덤 퍼거슨, 애덤 스미스 등 당대 스코틀랜드 지식인들의 화두는 근대사회 형성과 근대사회에서 인간 삶의 변화였다. 책은 18세기 후반 이들의 활동을 계몽운동의 ‘독자적’ 계보로 인식하고,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의 전개과정을 개괄적으로 이해하는 데 목적을 둔다. 이 지식인운동은 근대성 담론을 주도하고 근대 사회과학의 기틀을 닦았으며, 그 유산은 마침내 19세기 영국문화의 주류가 되고 유럽문화 일반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저자는 특히 ‘문필공화국’ 에든버러를 근거지로 전개된 지식인집단 문필가들(literati)과 이들을 둘러싼 독자층의 형성을 중시하는 ‘사회사적 접근’을 강조한다. 『지식인과 사회: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의 역사』는 스코틀랜드 지식인운동이 어떻게 19세기 영국문화를 주도하고 유럽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는지를 살핀다. 정치적·경제적으로 열등한 나라의 지식인들이 어떻게 중심부 문화의 주류가 될 수 있었는지를 성찰하고 있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의 사회사와 지성사의 결합 엘리트주의적 시각이 아닌 문필가와 독서층, 저자와 독자가 함께 호흡하는 ‘공론장’에 초점 ‘계몽운동(Enlightenment)’이란 18세기 서유럽 사상가들이 주도한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사상의 총체다. 이성을 통해 인간과 사회와 세계를 이해하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이 지적 흐름은 소수 지식인들의 운동에 힘입은 것이다. 하지만 계몽운동은 지식인들의 사상 못지않게 그 유포과정과 사상을 전파한 중개자들이 더욱더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는 운동이다. 오늘날의 역사가들은 이처럼 계몽운동에서 저자와 독자의 상호성, 그들이 만든 공론장(公論場)을 중시한다. 여기에서 사상과 담론을 조직하고 소비하며 그 전파를 결정짓는 사회적 공간은 주로 중간계급의 열띤 참여로 이루어졌다. 계몽운동이 저자와 그 주위의 독자를 쌍으로 하여 형성되는 담론공간의 산물이라 한다면, 18세기 후반 ‘북구(北歐)의 아테네(Athens of the North)’라 불린 에든버러의 지식인 활동이야말로 그 전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에든버러 식자층의 주류는 전문직업인, 즉 전문적 식견을 갖춘 변호사, 상인, 문필가, 의사, 교사, 목사들이었다. 이들은 다양한 형태의 토론모임과 저술·출판 활동을 통해 인간과 세계, 자국 문화에 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나갔다. 여기서 저자는 사회사의 지평을 확대하기 위해 개별 지식인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들이 공유하는 사회철학과 세계관을 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지식인과 사회: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의 역사』는 이처럼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의 사회사와 지성사의 결합을 시도하는 책이다. 2014년 9월 18일,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찬반투표 ? 대(大)브리튼 정체성의 위기 ‘영국 속의 영국’ 스코틀랜드?, 우리가 잘 모르는 스코틀랜드 그리고 대브리튼의 현주소 영국인, 아니 ‘잉글랜드인들’의 유머 하나. 어느 날 잉글랜드인, 아일랜드인, 스코틀랜드인이 선술집에서 맥주를 시켰다. 맥주를 마시려는데 사이좋게 이들 맥주잔에 파리가 한 마리씩 빠졌다. 이때 셋의 반응은? 잉글랜드인은 새로 한 잔을 시키고, 아일랜드인은 파리를 건져낸 다음 그냥 마신다. 그리고 문제의 스코틀랜드인은 파리를 건져내고는 “너 이놈! 마신 맥주 뱉어내, 뱉어내! 어서”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대나 어쨌대나……. (한국인은 어떻게 할까?) 잉글랜드인들은 스코틀랜드인들을 악착같은 장사치에다 술주정뱅이에 지독한 구두쇠로 비유하며 이를 놀림의 대상으로 삼는다. 반면, 스코틀랜드인들은 잉글랜드인들이 자기네를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고 멸시하는 것을 ‘잉글랜드 중심주의’라고 여긴다. 지금 유럽은 스페인 카탈루냐, 벨기에 플랑드르 등 각지에서 분리 독립 운동의 파고가 거세다. 스코틀랜드는 2014년 9월 18일(현지시간) 분리 독립안을 놓고 찬반 주민투표(16세 이상)를 실시한다. 찬성표가 과반을 넘으면 스코틀랜드는 2016년부터 영국에서 분리된다. 투표 결과에 따라, 1707년 잉글랜드-스코틀랜드 합병 이후 ‘연합왕국(United Kingdom)’과 ‘대(大)브리튼(Great Britain)으로 불려온 영국의 국체가 근본적 변화를 겪을 가능성도 있다. 이 투표 결과는 또한 유럽 분리 독립 운동의 시험대이자 가늠자로 작용하며 유럽 지도를 다시 그리게 할 수도 있다.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에는 합병 이후 정치적으로는 대브리튼에 통합되어 있으면서도 잉글랜드와 다른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스코틀랜드인들의 이중적·양면적 성향이 내재해 있다. 스코틀랜드인들이 보여주는 이 같은 정체성은, 이들이 한편으로는 합병 이후 창출된 브리튼에 관한 국민적 서사에 호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잉글랜드와 구별되는 자신만의 독특한 제도와 법률체계, 전통과 문화, 일상생활의 관습 등 자기 고유의 민족적 서사를 재생산해온 결과다. 『지식인과 사회: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의 역사』는 이처럼 대영제국의 해체, 영국과 유럽의 경제쇠퇴, 유럽의 통합문제 등으로 국민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대브리튼’의 현주소를 들여다보게 한다. “어떻게 변방의 스코틀랜드에서 당대 최고 수준의 학문과 문화가 전개될 수 있었을까?” 스코틀랜드류(!)와 한류, 지적·문화적 개화와 그 나라 정치·경제 기반의 상관성 스코틀랜드 학문과 문화는 기본적으로 비주류이자 주변부라는 조건의 산물이었다. 그렇다면, 18세기 초만 해도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주변부였던 스코틀랜드에서 중심의 창조적 문화가 번성한 까닭은 무엇일까? 18세기 후반은 스코틀랜드 역사에서 천재들의 시대였는가? 지적·문화적 개화는 개인의 천재성이나 창의성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당대 스코틀랜드는 여러 조건이 서로 맞물린 접점의 사회였다. 합병 이후 내밀한 민족감정이 문화중심주의로 승화되고 있었고, 중앙권력의 부재에 따라 자유로운 분위기가 도시민 사이에 퍼져나갔다. 또 장로교회의 정책에 힘입어 교육을 중시하는 풍조가 강했다. 지근거리에 있는 4개 대학들(에든버러, 글래스고, 에버딘,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은 경쟁하면서도 서로 학문적 교류를 자극했다.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은 이 같은 여러 사회적 조건이 맞아떨어지고 뒤섞이면서 꽃핀 것이다. 스코틀랜드 지식인운동은 특정한 시기의 지적·문화적 개화가 그 나라 정치·경제 상황과 어떤 상관성을 갖는지 다시 살펴볼 기

저자 소개

서양사학자 이영석은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문학박사)했으며, 케임브리지 대학교 클레어홀과 울프슨 칼리지 초빙교수를 지냈고, 한국서양사학회와 도시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광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19세기 영국 사회사, 노동사, 생활사, 사학사 분야의 논문을 다수 발표했으며, 2012년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 우수학자로 선정되었다. 
30여 년 동안 서양사, 특히 영국 근대사를 꾸준히 천착해온 그는 초창기에 19세기 사회경제사, 주로 공장법과 19세기 후반 경제 쇠퇴를 집중 연구하여 《산업혁명가 노동정책》(1994), 《다시 돌아본 자본의 시대》(1999) 등의 결과물을 냈다. 그 후 근대 영국의 다양한 사회계층의 일상사 또는 일반 사람들의 문화와 사회인식 등의 주제를 미시사적 방법으로 접근하여 《근대의 풍경》(2003), 《영국 제국의 초상》(2009) 등의 결실로 맺었다. 또한 공장제도의 변천과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의 사회사 같은 단일 주제를 연구해 《공장의 역사》(2012), 《지식인과 사회》(2004) 등을 출간했으며, 영국 사학사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여 《사회사의 유혹》(2006), 《역사가를 사로잡은 역사가들》(2015) 같은 저서도 냈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수공업 장인의 작업에 비유한다. 수공업 장인이 더 완벽한 작품을 구현해내기 위해 온힘을 쏟듯, 역사가도 자료와 텍스트라는 원재료를 갈고 다듬어 자기 나름으로 과거를 재현하고자 힘쓰며, 그러한 작업이 불완전할지라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다는 것이다. 

책 속에서

당시 스코틀랜드 지식인들의 화두는 근대사회 형성과 근대사회에서 인간 삶의 변화였다. 이들이야말로 ‘근대성’ 문제를 탐구의 대상으로 삼은 최초의 지식인집단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퍼거슨과 스미스가 보기에, 근대 상업사회란 시장의 위력에 인간의 삶이 그대로 노출된 사회였다. 인간과 시장의 관계, 원시사회에서 상업사회까지 이르는 사회 진보의 역사와 같은 문제야말로 이들이 눈여겨본 핵심 주제다. ― p. 21

근래 스코틀랜드 독립문제가 영국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1997년 노동당정부 아래서 주민투표를 통해 스코틀랜드의 폭넓은 자치를 허용한 이래,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문제는 대체로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 스코틀랜드 집권당인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이 스코틀랜드의 완전한 독립을 정치 슬로건으로 제시한 후, 이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사실, 1707년 합병 이후 스코틀랜드인들은 겉으로는 브리튼 정체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 같았다. 그들은 영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 적극 참여하였고, 영제국의 팽창과 함께 다수 스코틀랜드인들이 해외 제국으로 진출하기도 했다. 빅토리아 여왕(재위 1837〜1901) 이후 영국 왕실에 대한 충성도 또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스코틀랜드인들은 잉글랜드와 구별되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제도와 법률체계, 전통과 문화, 일상생활의 관습을 보존해왔다. ― p. 101

스코틀랜드는 넓게 보면 변화의 도도한 흐름에 속해 있으면서도 동시에 분리되어 있었다. 여전히 전통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물질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새로 떠오르는 산업질서의 진원지인 잉글랜드에 가까우면서도 그 변화의 충격에서는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중심’에서 나타나는 변화와 새로운 경향은 대체로 그 중심에서 가까운 ‘주변’ 또는 ‘변경’에서 가장 빨리 발견되고 또 가장 분명하게 식별할 수 있다. 문명 중심의 외곽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중심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분명하게 관찰할 수 있을 만큼 가깝지만, 한편으로 그 현상을 ‘객관화’함으로써 인식한 것들을 개념으로 주조하고 응축해낼 수 있을 만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예를 들어 애덤 스미스가 노동에서 부가 나오기 때문에 노동이 부의 첫 번째이자 거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견해를 표명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 p. 175

“필자는 2010년 11월 일본 구마모토대학에서 열린 한 학술회의에 참가했다. 저녁 회식자리에서 세인트앤드루스대학 중세사 교수 로버트 바틀릿(Robert Bartlett)과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에 관해 환담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도 물론 다른 스코틀랜드 지식인들이 그러하듯이 월터 스콧, 헨리 브루엄, 애덤 퍼거슨, 애덤 스미스를 자랑스러워했다. 그의 예찬은 끝이 없었다. 대화를 끝낼 무렵 필자는 그에게 물어보았다. 왜 당신들은 그렇게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에 집착하는가? 그는 필자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짧은 시기에 끝났기에 더욱더 아름다운 것이다. 저녁노을을 바라보라. 대낮의 태양보다 더 붉게 빛난다. 어둠이 곧 몰려올 것이므로 그것은 잠깐이긴 하지만 더 붉게 빛을 낸다.” ― ‘저자 후기’에서


목차

목차
책머리에
서장 - 스코틀랜드 계몽운동과 근대사회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의 배경 / 스코틀랜드 계몽운동을 보는 시각 / 사회사와 지성사
제1장 - 에든버러, 18세기의 풍경
에든버러 성과 로열마일 / 계몽운동의 무대 / 기억의 정치와 문화
제2장 - 종교와 대학
스코틀랜드 종교개혁과 장로교회 / 18세기 교회와 중도파의 대두 / 갈등 / 종교와 계몽운동 / 교회와 초등교육 / 17세기 대학교육의 실제 / 대학개혁 / 대학과 계몽운동
제3장 - 정치에서 문화로
스코틀랜드 민족정체성 / 브리튼 정체성, 통합왕국을 보는 시각 / 재커바이트 운동 / 재커바이트와 계몽운동 / 스코틀랜드 정체성을 넘어서
제4장 - 중심과 주변
중심의 변화, 해외무역과 상업 / 소비도시 런던 / 산업혁명 / 기계와 공장 / 면공업의 사례 / 잉글랜드, 신앙의 변화와 세속사회 / 합병 이후 주변부 사회변화와 에든버러 / 주변부 지식인의 성찰
제5장 - 문필공화국: 명사회에서 사변협회까지
계몽지식인 / 사회적 연결망 / 명사회 / 시민군에 대한 노스탤지어, 포커 클럽 / 젊은 세대의 대두와 사변협회 / 18세기 후반 사변협회의 활동 / 토론문화와 문필공화국 / 계몽정신과 백과사전
제6장 - 인간의 본성에 관하여
자기애와 자혜(慈惠) / 인간본성과 사회, 그리고 도덕철학 / 데이비드 흄의 도덕철학 / 애덤 스미스와 동감 / 정의와 자혜, 그리고 의무감
제7장 - 사회와 역사
사회의 발견 / 데이비드 흄, 상업사회, 합병 / 애덤 스미스와 상업사회의 정치경제학 / 애덤 퍼거슨의 시민사회론 / 추론적 역사 / 데이비드 흄의 역사의식 / 윌리엄 로버트슨의 역사서술 / 진보로서의 역사와 발전단계
제8장 - 계몽과 근대성
계몽이란 무엇인가 / 근대성의 문제 / 주체적 개인과 사회성 / 욕망의 해방과 기술주의 / 종교와 탈신화화 / 합리성과 지식 / 국민국가의 이상
제9장 - 계몽운동과 오리엔탈리즘
백과사전의 아시아 항목 / 중국과 일본 / 인도 / 오리엔탈리즘으로의 길
제10장 - 지적 전통의 마지막 세대
젊은 세대의 문필가들 / 《에든버러 리뷰》와 잡지의 시대 / 월터 스콧과 프랜시스 제프리 / 에든버러의 황혼 / 외부세계의 관심
저자 후기
참고문헌 / 도판 목록 / 영문 초록 /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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