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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역사 자발적 죽음 앞의 서양 사회

조르주 미누아 저 | 이세진 역 | 그린비 | 2014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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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6825308 / 516쪽 220 x 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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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자살의 역사』는 크게 중세, 르네상스, 계몽주의 시대로 구분되는 16~18세기 유럽 사회의 계급적․철학적․개인적이었던 자살 원인과 수단의 실례를 이야기하며, 당시 자살이라는 행위가 어떻게 심판되고 평가되었는지를 추적하고 궁극적으로는 자살에 대한 서양의 의식구조 변화를 살펴보고 있다.
그리스도교 정신에 입각한 중세 유럽에서 자살은 신이 주신 삶을 거부하는 비겁행위이자 범법행위였다. 이에 귀족들은 계급의 특권을 이용해 자발적인 순교나 죽음이 의도된 결투 등으로 자살을 대체하였고, 결국 평범한 방식(목을 매거나 물에 빠지는 등)으로 자살을 선택한 피지배계급만이 그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시체에 행해지는 가혹행위나 사망자의 유가족에게 내려지는 재산몰수라는 형벌 뒤에서 자살은 광기의 소산이라는 평가만이 남았다. 그러나 근대성이 싹트던 17세기에 이르자, 사람들은 ‘왜 자살을 하는가’를 자각하기 시작했고 자살을 이해하려는 시도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후 이러한 의식은 고뇌 뒤에 따르는 개인의 의지를 존중할 것인가와 관련된 문제의식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고,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자살을 좀더 공개적이고 자유로운 문제로 생각하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났다. 『자살의 역사』는 과거 유럽에서의 자살의 모습과 의미를 추적하며 개인 목숨에 대한 자유의 문제를 성찰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안락사 등 생명윤리와 더불어 ‘죽음윤리’를 고민하는 현재와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존엄한 영웅적 행위에서 절망과 광기의 소산까지, 16~18세기 유럽 사회가 바라본 자살의 모습을 탐구하다!! 서구 사회에서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왔다. 자살은 신의 섭리에 대한 불복종이자 사회에 해가 되는 행위라는 그리스도교적 입장과 개인이 불행을 무릅쓰면서까지 사회의 이익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개인주의적 입장이 상충되어 온 것이다. 이에 『자살의 역사: 자발적 죽음 앞의 서양 사회』는 자발적 죽음에 대한 성찰이 각별했던 16~18세기 유럽의 자살에 대한 의식변화를 살펴보며 자살이라는 고... 존엄한 영웅적 행위에서 절망과 광기의 소산까지, 16~18세기 유럽 사회가 바라본 자살의 모습을 탐구하다!! 서구 사회에서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왔다. 자살은 신의 섭리에 대한 불복종이자 사회에 해가 되는 행위라는 그리스도교적 입장과 개인이 불행을 무릅쓰면서까지 사회의 이익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개인주의적 입장이 상충되어 온 것이다. 이에 『자살의 역사: 자발적 죽음 앞의 서양 사회』는 자발적 죽음에 대한 성찰이 각별했던 16~18세기 유럽의 자살에 대한 의식변화를 살펴보며 자살이라는 고전적인 주제가 오늘날 안락사와 존엄사라는 문제로 되돌아왔음을 시사한다. 이 책은 크게 중세, 르네상스, 계몽주의 시대로 구분되는 유럽사회의 계급적·철학적·개인적이었던 자살 원인과 수단의 실례를 이야기하며, 당시 자살이라는 행위가 어떠한 평가와 심판을 받았는지 추적한다. 프랑스 역사학자이자 앙시앵레짐 종교사 전문가인 저자 조르주 미누아(Georges Minois)는 당대의 신문, 소설, 희곡, 논문 등에서 발췌한 기록을 참고하여 사실적이고 생생한 자살과 단죄의 실례를 들고 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신이 주신 삶을 거부하는 비겁행위이자 범법행위였던 중세, 개인에 초점을 맞추어 ‘왜 자살을 하는가’를 자각하기 시작했던 인본주의 르네상스, 자살의 의학적·사회적 측면을 이성에 빛에 비추어 고려하려는 시도가 고개를 든 18세기까지 『자살의 역사』가 소개하는 다양한 기록을 통해 우리는 자살에 관한 서양의 의식구조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자살, 절대적 죄악에서 개인의 자유 문제로 ― 시대별 자살 의식의 변화 중세 : 자살을 절대적인 죄악으로 단죄하다 『자살의 역사』는 중세에서 18세기까지 서양 사회가 ‘자기살해’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를 어떻게 사회적 구성물로 만들어 왔는지 조명한다. 사실 자발적인 죽음은 거의 언제나―물론 지금까지도―사회적 지탄을 받는다. 중세는 서양사에서 이 사회적 지탄이 본격화된 시기로 자살을 신에 대한 모욕, 더 이상 혐오스러울 수 없는 범죄와 동일시했다. 고해성사를 통해 신께 사죄하고 괴로움을 없앨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음에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거부하는 이들에게 교회법뿐만 아니라 세속법 역시 엄격했다. 백성들은 신의 피조물인 동시에 국가의 재산이기도 했으니까. 자살한 자들은 교회 묘지에 묻히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이미 목숨이 끊어진 시체에 행해지는 끔찍한 처벌을 통해 일종의 퇴마의식을 치러야 했다. “검으로 자기 자신을 찔러 죽은 자는 머리통에 나무토막을 박았다. 물속에 뛰어들어 자살한 자는 물가에서 5피트 거리의 모래사장에 파묻었다. 높은 데서 뛰어내려 죽은 자는 시신의 머리, 배, 발에 커다란 돌 세 개를 올리고 산 아래 매장했다. 릴과 아베빌에서처럼 시신을 창문에서 던지거나 ‘문지방 아래 구멍을 뚫고 얼굴이 땅을 향하게 하여 짐승처럼 질질 끌고 나오는’ 풍습은 불길한 자살자의 망령이 자기가 살던 곳을 알아보고 돌아오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기원했다. 독일의 일부 지역에서는 시체를 말에 끌고 다니다가 꽁꽁 묶은 채로 목을 매달고 그 자리에 썩을 때까지 내버려 두었다. 대개의 경우, 시체는 뒤집힌 자세로 끌려다니다가 교수대에 거꾸로 매달렸다. 영국에서는 자살자를 큰길 아래, 그것도 가급적 사람이 많이 다니는 사거리 밑에 매장했다. 시신을 엎어 놓고 등에 말뚝을 박아 가슴으로 튀어나온 말뚝이 땅속에 단단히 박히도록 했다.” ― 본문 64~65쪽 자살자의 유가족에게도 조처가 내려졌다. 그들은 가문 전체에 수치가 되는 이 구경거리에 반드시 참석해야 했을 뿐 아니라 재산몰수라는 이중의 형벌을 받고 산 자들의 자살을 억제하는 살아 있는 본보기로 남아야만 했다. 르네상스:자살의 원인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다 대부분 법정의 짧은 기록을 통해서만 알 수 있었던 중세의 자살에 비해 르네상스 시기의 자살은 일기, 문학, 비망록 등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주제가 되었다. 특히 16세기 후반 피에르 드 레스투알의 일기는 당대의 자살 사례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는데, 주로 사건 분석과 그에 대한 판결에 관심을 두며 자살에 관한 명사들의 평균적인 의식구조, 자살자의 사회적 출신에 따른 차별 등을 잘 반영하고 있다(본문 100~102쪽). 이뿐만이 아니다. 고대 문명에 관심을 갖고 고대 영웅들의 명예로운 자발적 죽음을 칭송하는 문학작품이 늘어나면서 자살은 은밀하게 대중 속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중세부터 이어진 자발적 죽음에 대한 엄격한 단죄를 완화시키지는 못했다. 대신 자살을 둘러쌌던 공포와 수치의 베일이 조금씩 걷히고 그 자리에 루크레티우스, 카토, 브루투스, 세네카 등의 존경할 만한 인물들의 이미지가 자리하게 되면서 ‘왜 자살을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신에 대한 반항이라는 일방적인 단죄에서 벗어나 비로소 개개인에게 닥친 상황을 분석하는 것으로 자살의 원인에 귀를 기울이려 한 것이다. 하지만 자살이 씻을 수 없는 죄임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자살처벌법은 여전히 확고했고 더욱 강력해진 퇴마의식에 자살자와 유가족이 치러야 할 형벌도 가혹해졌다. 그러나 자살에 관한 르네상스의 의미는 개인의 자발적 죽음을 좀더 공공연하게 논의할 수 있게 되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대다수의 견해는 여전히 자살에 적대적이었지만 이 주제에 대한 발언과 글이 늘어났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자살에 대한 의식변화가 시작된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도덕주의자들의 여전한 반대와 탄압으로 자살이라는 행위는 끝끝내 자유의 문제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 역시 하나의 개인행동이라는 의식만큼은 싹틀 수 있었다. 몽테뉴, 피에르 샤롱, 유스투스 립시우스, 존 던, 뒤베르지에 드 오란 등은 (가명으로 글을 발표하거나 죽기 전까지 저서를 비밀에 부친 경우도 있었지만) 상황에 따라 자살이 합법적일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을 정도였다. 특히 셰익스피어는 많은 작품에서 “사느냐 죽느냐”를 울부짖는 인물들을 그려 냄으로써 생과 사를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을 되풀이해서 보여 주었다. 계몽주의:자살을 이성의 빛에 비추다 17세기 후반까지 자발적 죽음은 ‘자기살해’(meurtre de soi-m?me) 등으로 표현될 뿐(본문 281~282쪽) 제 이름조차 갖지 못한 상태였다. 물론 ‘자살’(suicide)이라는 단어가 최초로 등장한 18세기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고위층의 저항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자발적 죽음은 차츰 공개적으로 제기되기에 이르렀고 어떤 이들은 담대하게도 이 문제에 답할 자유가 각자에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계몽주의 시기의 자살은 ‘영국병’으로 통했다. 일찍이 언론과 통계가 발달한 영국은 매주 ‘사망 내역’을 실은 신문을 발간했는데 체계적으로 정리된 이 기록물로 인해 사람들이 자살을 다른 유럽 국가보다 영국에서 두드러진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 ‘사망 내역’에 게재된 자살 중 흥미롭거나 기이한 사건에는 그 정황과 원인을 추측하는 기사가 따라붙었다. 자연히 자살은 당대의 시사적인 문제와 연결되었으며 독자들은 자살을 사회적·심리적 정황의 결과로 보는 데 차츰 익숙해졌다. 게다가 이 시기에 유행처럼 번진 유서는 자살의 일반적인 이유가 실연, 가정불화, 강간, 수치, 회한 등 일반적인 인생사의 불행이라는 것을 확인시켰다(본문 443쪽). 16세기까지 자살은 악마와 죄인인 개인 사이의 문제였다. 당시의 자살은 순전히 종교적 도덕의 문제로 세속과 교회의 권력에 처벌받았다. 하지만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자 이제 사람들은 세속화된

저자 소개


브르타뉴 지방의 가톨릭 개혁 연구로 프랑스 국가박사학위를 받은 역사학자로 중세와 앙시앵레짐 종교사 전문가이다. 2007년까지 생브리외의 에르네스트 르낭 고등학교에서 역사와 지리를 가르쳤으며 현재는 CIRET(국제학제간연구센터) 소속으로 특히 종교정신사 분야에서 많은 공헌을 했다. 『지옥의 역사』(Histoire des enfers, 1991), 『무신론의 역사』(Histoire de l’athéisme, 1998), 『웃음과 조롱의 역사』(Histoire du rire et de la dérision, 2000), 『고독과 독거인들의 역사』(Histoire de la solitude et des solitaires, 2013) 등을 비롯한 다양한 주제의 연구서를 집필했다. 국내에는 『자살의 역사』 외에 『노년의 역사』(아모르문디, 2010)가 번역된 바 있다.

역자 소개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불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랭스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나답게 살아갈 용기》 《앵그르의 예술 한담》 《유혹의 심리학》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 《다른 곳을 사유하자》 《반 고흐 효과》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나날》 《돌아온 꼬마 니콜라》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책 속에서

중세에도 자살은 있었지만 사회계층에 따라 그 양상은 크게 달랐다. 농민과 수공업자는 가난과 고통을 못 이겨 스스로 목을 맸다. 기사와 성직자는 수치를 면하고 이교도의 승리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서 죽음을 자초했다. 첫번째 경우의 직접적 자살은 사회학적 범주에서 ‘이기적’ 유형에 해당한다. 두번째 경우는 간접적이고 ‘이타적’ 유형의 자살이다. 동기와 수단은 다를지언정 목표는 같다. 지배적 도덕, 즉 엘리트의 도덕은 이러한 동기와 수단의 차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한다. 첫번째 유형의 자살은 비겁한 도피 행위로 간주되어 시신에라도 형을 집행하고 거룩히 성별된 땅에 묻어 주지 않는다. 자살자는 영벌(永罰)을 선고받고 재산을 몰수당한다. 두번째 유형의 자살은 기사의 명예에 부합하는 용기 있는 행위, 혹은 순교에 이르기까지 흔들림 없는 신앙의 표현으로 간주되고 모두의 귀감이 된다. 군인 계급과 사제 계급이 주도한 중세 사회는 기사도적 이상과 그리스도교적 희생의 추구를 도덕규범으로 우뚝 세움으로써 일관성을 유지했다. ―27~28쪽

살의 악마적인 기원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자살자의 시신에 행하는 신비의식 덕분에 민중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졌다. 그러한 의식들은 악의 권세를 연상시키는 공포감으로써 민중의 상상력에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민간신앙과 성직자의 요청은 이렇게 맞물려 상호 강화 작용을 했다. 교회 권력은 이러한 습속의 미신적 성격을 개탄하면서도 그러한 습속이 교회의 가르침에 힘을 더해 주었기 때문에 용인했다. 예를 들어 시체를 거꾸로 매다는 풍습은 마귀 들린 자살자의 신체가 창조의 질서를 뒤집어 버렸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동쪽에서 신호가 나타나면 속히 부활하라는 뜻에서 동서 방향으로 묘혈을 파지만 자살자의 묘혈은 남북 방향으로 파고 시체를 얼굴이 땅으로 향하게 엎어 놓았다. 시체에 말뚝을 박는 것도 자살자가 부활하여 산 자들을 훼방하러 오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갈림길 아래에 매장을 하는 이유는 자살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운다는 뜻과 자살자가 길을 혼동하고 망설이게 하려는 뜻이 있었다. 1590년에 런던 시 검시관은 자살자 에이미 스토크에게 박은 말뚝 끝부분을 땅 위로 노출하여 뭇사람에게 본을 보여 주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혹은 자살자의 시신이 교회 묘지의 북쪽 끝에 파문당한 자나 세례받지 못한 자처럼 영원한 안식에서 배제된 이들과 함께 묻히곤 했다.
프랑스에서 중세의 처벌은 여전히, 아니 더욱더 가혹하게 적용되었다. 자살자의 시신은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 거리에 질질 끌려다니다가 거꾸로 매달렸다. 1524년에 참사원 기욤 르 콩트의 묘가 파헤쳐지고 그 가문의 문장은 지워졌다. 게다가 압수당하지 않은 재산이 벌금조로 징수되어 재판권을 지닌 자의 창고에 들어가거나 빈민 구제에 쓰이는 경우도 있었다. ―122~123쪽

신학자들은 자살을 만장일치로 단죄했다. 원칙적으로 당시에 큰 영향력을 지녔던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교의에 추가된 내용은 없었다. 새로운 점이라면 결의론이 예수회를 중심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는 신도와 백성 들에게 어떤 망설임의 여지도 남기지 않는 삶의 지침을 제공하고자 노력했던 문명의 전형적인 측면 중 하나다. 결의론은 의심, 정신 상태, 양심의 문제에 처방하는 해독제였다. 거대 원칙의 모호하고 불확실한 면이 불안을 낳을 때 결의론은 치료약이 되었다. 도덕의 모든 덫으로부터의 보호벽이랄까. 개인의 탐구, 자기 양심에 대한 신도의 자율성은 이제 끝났다. 이제 이정표가 완벽하게 세워진 세계, 가장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포함한 ‘모든 것’이 예정된 세계로 진입했다. 어마어마한 세속화와 정신의 속박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결의론은 모든 상황에서의 행동방식을 예측함으로써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동시에 꽁꽁 옭아맸다. 그런 점에서 결의론은 16세기 말에 시작된 문화 장악의 부산물이라 하겠다.
인문주의자들은 오랫동안 토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던 자살 문제를 끌고 나와 균열을 일으키고 가치 갈등을 부추겼다. 자살과 명예, 자살과 사랑, 자살과 자선. 그러다 보면 일부 자살을 정당화하기 좋은 상황들이 빚어지지 않겠는가? 결의론자들은 이 주제에 매달려 가능한 모든 상황들을 검토하고 하나하나 빗장을 채웠다. ―187쪽


목차

목차
추천사 _ 김종갑
들어가는 글
1부 유산: 억압된 문제
1장 중세, 자살에 미묘한 구별을 두다
중세의 일반적인 자살 연표 | 귀족의 자살 대체물 | 문학에 나타난 자발적 죽음 | 자살도 계급 따라 | 유대인과 이단자의 자살 | 히브리 문화권에서의 자살
2장 중세의 유산: 광기와 절망 사이에서
“나는 내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 자발적 순교 |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자살 금지 | 자살을 적대시하는 풍조의 사회정치적 맥락(5~10세기) | 자살 금지의 신학적 기반 | 책임: 사악한 절망 | 자살에 대한 교회법과 세속법의 제재 | 중세의 자살 실태 | 폭넓게 이용된 구실: 광기 | 면죄의 표시들
3장 고대의 유산: 때맞게 떠날 줄 안다는 것
그리스인들의 다양한 의견 | 플라톤의 완곡함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배격 | 고대 로마인들의 불안 | 자살과 시민의 자유 | 삶의 권태 | 노쇠와 자살 | 정치적 자살 | 자살에 대한 적대성으로
2부 르네상스: 표명되었다가 억압된 문제
4장 1차 르네상스 : 자살의 수수께끼를 재발견하다
수치상의 문제 | 영국의 경우 | 문학을 통한 고대의 자살로의 회귀 | 자살, 인간의 악에 대한 유토피아적 해법 | 절망의 공세와 가톨릭의 반격 | 자살을 사탄의 소행으로 간주한 프로테스탄트계 | 확고부동한 법 | 자살은 광기인가, 지혜인가? 브란트에서 에라스뮈스까지 | 새로운 자살: 절대(파우스트)와 명예에 대한 욕망 | 개인주의의 부상과 전통적 가치관의 반목이 불안의 요인이 되다
5장 사느냐, 죽느냐? 유럽의식의 첫번째 위기(1580~1620)
셰익스피어의 『햄릿』 | 시드니와 몽테뉴의 의문들 | 샤롱에서 베이컨까지: 자살에 대한 연구 | 존 던의 『비아타나토스』 | 존 던, 갈릴레이의 동시대인 | 뒤베르지에 드 오란이 일부 자살들을 정당화하다 | 멜랑콜리의 도래, 로버트 버튼 | 소설 속 자살에 대한 논쟁 | 연극에서의 자살 | 셰익스피어와 자살: 물음에서 조소로 | 문학에서의 자살, 동요하는 사회의 상징적 해방 | 자살 실태에 대한 관심
6장 17세기 집권층의 대응: 자살을 억압하다
결의론과 자살 | 가톨릭 도덕주의자들의 망설임 | 장 피에르 카뮈의 모호한 도덕론 | 프로테스탄트 신학자와 도덕주의자 | 토머스 브라운과 자살의 실존적 문제 | 악마 타령은 여전히 | 법학자들이 두었던 구분 | 의학과 자살광증 | 억압의 완화와 1670년 법령 | 자살: 귀족과 성직자의 특권?
7장 17세기의 자살 대체물
안정적인 자살률 | 자살과 페스트 | 결투라는 대체물 | 문학이라는 피난처 | 철학적?도덕적 논쟁 | 종교적 대체물: ‘자기망각’의 영성 | 경건휴머니즘이 약이다 | 얀센파의 애매성
3부 계몽주의 시대: 죄의식에서 벗어나 현실화된 문제
8장 ‘영국병’의 탄생(1680~1720)
토머스 크리치에서 조지 체인까지: 영국병 | ‘자살’이라는 용어의 탄생 | 통계와 언론 | 새로운 이유, 오래된 이유 | 영국 귀족과 자살 | 자살반대론 | 관용의 확산(영국과 프랑스) | 프랑스에서 귀족과 성직자의 자살이 다시 늘어나다 | 자살에 대한 생각의 일반화 | 감옥에서의 자살과 정부의 우려 | 결의론자들이 강경한 태도를 취하다 | 영적 대체물과 실제적 관용 | 분명한 딜레마
9장 계몽주의 시대의 자살 논쟁: 도덕에서 의학으로
자살반대론의 증가 : 우려의 표현 | 교계의 반대 | 영국에서의 자살반대론 | 철학자들은 자살에 호의적이었나? | 문학에서의 자살: 세련된 에피쿠로스주의인가, 살풀이인가? | 몽테스키외의 설명 | 볼테르: “자살은 상냥한 사람들이 할 짓이 아니다” | 철학자들의 망설임 | 자살과 광기
10장 엘리트: 철학적 자살에서 낭만적 자살로
스미스 부부의 자살(1732) | 데이비드 흄의 논문 | 돌바크와 샹포르: “죽음은 절망의 유일한 약이다” | 철학적 자살의 세월 | 1773년 크리스마스: “우리는 보편적인 광경이 역겹다” | 영국 귀족층의 자살: 철학인가, 유희인가? | 낭만적 자살: 리옹의 연인들과 루소 | 괴테, 낭만적 자살(베르테르)과 철학적 자살(파우스트)의 거장 | 채터턴, 그리고 베르테르와 파우스트의 모방자들 | 스탈 부인과 자살 연구
11장 서민: 지속된 일상적 자살
브르타뉴 농촌 지역의 자살 연표 | 유죄판결의 감소 | 18세기 후반에 자살률이 높아졌다? | 자살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하나? | 자살 처벌에 대한 판례 | 종교생활과 군인생활: 죽음에 대한 생각에서 행위로 결장 프랑스대혁명에서 20세기까지, 자유토론에서 침묵으로 자살에 대한 혁명 정부들의 경계 | 카토와 베르테르의 종합 | 혁명파와 반혁명파의 자살 : 브루투스와 순교자들의 재래 | 일반적인 자살 | 19세기: 자살과 죄의식 | 사회학, 정신분석학, 의학과 자살 | 논쟁의 필요성
맺음말
옮긴이의 글 | 조르주 미누아 저작 목록 | 참고문헌 |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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