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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 강설 이평래 교수의

이평래 저 | 민족사 | 2014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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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8742195 / 624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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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여래장사상의 완결서인 <대승기신론>,
여래장사상에 천착한 이평래 교수가
평생을 바친 역작 <대승기신론 강설>!


여래장사상을 연구하는 데에 평생을 바친 이평래 교수(충남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현재 원효학연구원장)가 <대승기신론 강설>을 펴냈다. <대승기신론>은 불교 교리와 실천 및 수행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대승불교의 대표적 논서이다.

그러나 이 책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선종(禪宗)의 사상적 바탕인 여래장사상이 담긴 책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원효 스님이 해동소라 불릴 정도로 유명한 <대승기신론소>를 지었다. 원효 스님은 <대승기신론>을 통해 ‘중생의 마음이 곧 부처님 마음이요, 어리석은 중생이 곧 붓다의 씨앗’이라는 여래장사상을 깨닫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평래 교수의 해설을 따라 <대승기신론>을 읽다 보면 불교 교리와 수행 체계를 익히는 것은 물론 ‘중생의 마음이 곧 부처님 마음이요, 어리석은 중생이 곧 붓다의 씨앗’이라는 여래장사상에 몰입하게 된다.

『대승기신론』은 인간의 본성을 낙천적·긍정적·적극적·능동적·실천적 청정성(淸淨性)으로 보는 입장이다. 불교는 신(神)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 마음의 본성이 맑고 깨끗하다는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을 믿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이 자성청정심인 것을 깨닫는 것이 ‘기신(起信)’이다.
- 본문 중에서

『대승기신론』의 ‘대승’이란, 소승에 대비되는 개념이 아니라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의 본성이 진여라고 하더라도, 현실에서는 탐(貪)·진(瞋)·치(癡) 3독(三毒)의 번뇌에 더럽혀져서 추한 존재에 머물러 있다. 대승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추한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다. 오뉴월의 푸른 땡감이 잘 익어서 동지섣달의 빨간 홍시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것은 곧, 마음 밖에 깨달음의 주체가 없다는 뜻이다. 중생을 미망에서 깨달음으로 운반하는 힘이 바로 대승의 ‘승(乘)’이다. ‘승’이란, 운반하는 모든 도구, 승물(乘物), 운재(運載)로서 운반하는 힘을 가리킨다. 즉, 중생의 마음에는 이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힘이 내재돼 있다는 것이다.

<대승기신론>은 이렇게 인간이라면 누구나 여래의 씨앗을 지니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밝히면서, 수행을 하면 언젠가는 붓다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이것은 유일신교가 전하는 교리와는 그 차원이 전적으로 다르다. 특히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절대적인 평등성을 보여주고 있어 오늘날 세파에 부대끼며 절망하는 현대인들에게도 큰 힘을 불어넣어준다.

“우리가 밥을 지어 먹듯이 그러한〔자비로운〕세상을 우리가 만들어 향유해야 합니다. 여래장사상의 완결서인 대승기신론은 그러한 길을 논리적·철학적·실천적으로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신감과 긍정적인 힘을 부여하고 우리들의 삶에 활력소를 불어 넣어주고 낙천적으로 살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여래장사상을 자각해야 합니다.”
- 이평래 교수

이평래 교수의 말처럼 자기 안의 불성을 자각하는 순간 스스로를 긍정하며 활력 있고 낙천적으로 살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진여의 각(覺)이란 자신 안의 ‘향상을 바라는 힘’을 믿는 것으로, 우리는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자기 자신의 물질적 만족과 안위를 추구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번뇌로 어지럽혀진 세상과 소외된 이웃들을 돌볼 수 있다. 우리가 깨달음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뉴월의 땡감을 비바람에 떨어지지 않게 잘 가꾸어 주면 가을에 홍시를 만날 수 있지 않습니까? 그게 수행입니다. 수행을 통해 얻은 지혜의 알맹이가 자비입니다. 불교 수행의 목적은 자비로 요익 중생하는 것이지요.”
- 이평래 교수

이평래 교수는 일본 고마자와 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여래장사상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다카사키 지키도 교수에게 특별 지도를 받았다. 그는 원문 독해를 위해 원어를 선학(先學)하는 일본 학계의 학풍에 영향을 받아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대가들에게서 수학했다. 이렇듯 기초부터 탄탄히 다지면서 평생에 걸쳐 <대승기신론>을 치밀하게 연구한 이평래 교수는 이 책에서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대승기신론>을 의역하고 해설을 덧붙였다. 정확한 개념 이해를 돕기 위해 상세한 용어 풀이도 달아 뒀다. 또한 도표를 제시하여 한눈에 중요 내용을 파악하고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불교입문서인 동시에 최고의 수행 지침서라 할 수 있는 <대승기신론>은 중관사상과 유식사상을 한데 녹여 총체적으로 구성한 저술이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종합하여 인간 정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이 책은, 서양 철학에서의 유심론과는 다른 불교 유심론의 입장에서 인간 존재를 낙천적·긍정적·적극적·능동적·실천적·청정성(淸淨性)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책 <이평래 교수의 대승기신론 강설>은 우리의 무한한 가능성을 일깨우고 희망을 불어넣어 준 <대승기신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어, 여러모로 안녕하지 못한 이 시대의 사람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저자 소개

1961년 전주사범학교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를 역임하였으며,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1968년)하였다.
1982년 일본 고마자와(駒澤)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1988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고마자와(駒澤) 대학 대장경학술용어연구회 연구원(1976~1982년), 충남대학교 인문대 철학과 교수(1984~2007), 인도 자와할라 네루 대학교 초빙교수(1990), 불교신문 논설위원(1994), 조계종개혁회의 법제위원회 자문위원(1994),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류교수(1997 ~1998), 국제불교문화사상사학회 감사(2002 ~ 2004), (사) 한국불교학회 이사장(2003~2008), 제4차 한국불교학결집대회장(2003 ~ 2005), 한국선문화학회장(2005 ~ 2007)을 역임하였다. 
현재 원효학연구원장(2002~현재)으로 “행복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붓다의 가르침을 앞서는 것이 없다. 우리가 밥을 지어 우리가 먹듯이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 우리가 향유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붓다의 깨달음과 가르침, 실천 정신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저서로 󰡔신라불교여래장사상연구󰡕 󰡔천수천안 우리님󰡕 등과 <대승기신론 연구-신라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를 중심으로>, <불교철학에 있어서 심성설에 관한 고찰-원시불교 및 부파불교를 중심으로>, <여래장설과 원효> 등 외 다수의 논문이 있다. 

머리말

선재동자(Sudhana-kumāra)는 무엇 때문에 53명이나 되는 선지식(kalyāṇa-mitra)을 그토록 목마르게 찾아다녔을까. 선지식은 수행을 함에 있어서 생명이기 때문이다. 학문을 함에 있어서도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이 또한 그러하다.
일본 도쿄 고마자와(駒澤) 대학에 유학하여 여래장사상의 세계적 권위자인 타카사키 지키도(高崎直道) 교수의 지도를 받아 『대승기신론』 을 중심으로 한 여래장사상을 연구할 수 있었던 것이, 나의 학문세계를 형성함에 있어서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여래장사상을 평생의 연구주제로 삼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타카사키 교수는 나를 위해 여래장 계통의 강좌를 개설하여 여래장사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지도하여 주셨다. 여래장 삼부경인 『대방등여래장경』 ·『불설부증불감경』 ·『승만사자후일승대방편방광경』 의 강좌를 차례로 개설하여 모두 수강하게 해 주셨다. 나는 여래장 삼부경의 강좌를 통하여 여래장사상에 대한 학문적 기반을 확고하게 닦을 수 있었다.
금상첨화(錦上添花)로 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 교수로부터는 ‘기신론삼소(起信論三疏)’를 중심으로 한 『대승기신론』 강의를 직접 수강하였다. 그래서 본서는 히라카와 교수의 수강 노트를 모체(母體)로 하고, 히라카와 교수의 저술
인 『대승기신론』 을 모본(母本)으로 하였음을 밝혀둔다.
『대승기신론』 은 중관사상과 유식사상을 한데 녹여 총체적으로 구성한 저술이다. 불교경전 가운데 가장 철학적·종교적·논리적·이론적·체계적·윤리적·실천적인 것으로 불교학의 백과사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알라야식(阿梨耶識, ālaya-vij ñāna)을 도입하여 여래장사상을 잘 풀어놓은 경전이 『대승기신론』 이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종합하여, 인간 정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서양철학에서의 유심론과는 다른 불교유심론의 입장을 근간(根幹)으로 하여 인간 존재를 낙천적·긍정적·적극적·능동적·실천적·청정성(淸淨性)으로 해석하고 있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므로 초월자로서의 절대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곧 무신론(atheism)이다. 육신이 없는 정신만의 깨달음도 불가능하며 정신이 없는 육신만의 깨달음도 불가능하다. 이것은 육신이 없는 신(神)의 깨달음은 있을 수 없다는 논리이다. 오로지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거룩한 붓다의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깨달음을 내재하고 있는 존재인 셈이다.
그럼 무엇으로 깨달음을 이룰 수 있을까. 마음과 몸이 서로 기대고 있는 것이 사람이다. 물론 총체적으로는 사람이 깨달음을 성취하지만, 음식을 씹는 것은 치아가 맡고, 음식의 소화는 위장이 맡으며, 호흡은 폐장이 맡고, 혈액순환은 심장이 맡듯이, 깨달음은 마음이 맡는다. 그 마음을 여래장(tathāgatagarbha) 또는 불성(buddha-dhātu)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무한한 덕성을 갖추고 있다. 불교는 무신론이므로, 마음의 본성이 맑고 깨끗함을 믿는 것이 여래장사상이다. 여래장(如來藏) 또는 불성(佛性)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기왓장을 숫돌에 아무리 갈아도 거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수행을 열심히 하여도 붓다가 될 수 없다는 논리를 서술하는 것이 『대승기신론』 이다.

이 책은 평소 『대승기신론』 을 강의하고 해설한 것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그래서 강설 형식을 취했다. 원문을 한글로 번역하고 강설을 한 다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불교 용어 해설을 덧붙였다. 번역도 축어역(逐語譯, 直譯)이 아니라 의역(意譯)을 했다. 이제까지의 『대승기신론』 번역서는 대부분이 축어역이다. 축어역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긴 하지만, 독자들이 어려운 한자용어를 소화하기에 힘들고 또한 뜻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으므로 그 내용을 잘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의역을 했다. 물론 의역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번역자의 주관적인 관점이 원문의 뜻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역문을 읽다가 의문이 생기면 바로 대조할 수 있도록 원문을 함께 실었다.

일반적으로 『대승기신론』 은 마명(馬鳴) 보디쌋뜨와가 짓고, 진제(眞諦, 499~569) 삼장이 번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는 진제 삼장 자신이 짓고, 마명 보디쌋뜨와에게 가탁(假託)한 것이라고 본다. 붓다의 깨달음의 본질·다르마에 관한 말씀과 실천정신을 담고 있는 『대승기신론』 이 중국·한국·일본의 대승불교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가는 삼국의 불교사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여래장사상의 완결서인 『대승기신론』 을 사상적·철학적으로 연구한 것을 보고 싶은 독자는 졸저인 『신라불교여래장사상연구(新羅佛敎如來藏思想硏究)』 를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본서의 출간을 흔쾌하게 받아준 민족사 윤재승 사장과 편집·교정을 맡아준 사기순 주간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불기 2557(2014)년 1월 10일
李 平 來

책 속에서

자기의 마음이 ‘여래장(如來藏, tathāgatagarbha)’·‘불성(佛性, buddha-dhātu)’인 것
을 이성으로는 알 수 없다. 마음의 본성은 분석이나 분별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붓다의 깨달음을 역으로 추론하여, 그 존재를 알 수 있다. 고따마 씻다르타는 ‘여래장’·‘불성’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면, 아무리 수행을 열심히 하여도 붓다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기왓장을 숫돌에 아무리 갈아도 거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본문 p17


『대승기신론』 은, 대·소의 대립에 의하여, 대승의 수승한 점을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을 대상으로 해서 지·관을 닦도록 가르치려는 의지의 발로인 것이다. 지(止)는 ṡamatha, 관은 vipaśyanā의 번역이다. 지는 산란한 마음을 멈춰서, 정신을 대상에 집중하는 것이며, 관(觀)은 관찰로서, 집중한 마음으로 진리를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본문 pp72-73


『대승기신론』 에서, “이 한마음은 세간적인 현상과 출세간적인 진리를 모두 포섭하며, 그리고, 이 한마음을 바탕으로 하여 ‘대승이라고 하는 까닭(artha, 義)’을 똑똑하게 드러낼 수 있다〔是心, 則攝一切世間出世間法, 依於此心, 顯示摩訶衍義〕”라고 논술하며, 이어서 다음에, ‟마음 그대로의 모습〔心眞如相〕은 대승의 본체를 바로 드러낸다〔是心眞如相, 卽示摩訶衍體故〕”라고 논술한다.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모두 포섭하여 화합하면 염법과 정법의 화합의 존재 방식이 되며, 시간적인 변화의 세계를 전개한다. 여기에서 ‘마하야나의 의(義)’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염법·망법이 사라져버리면, 그대로 진여의 세계이며, 이것은 영원한 세계이며, 깨달음의 세계이고, 여기에 ‘마하야나의 체(體)’가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다.
-본문 p89


이곳은 자비를 실천하는 무대이다. 『대승기신론』 에서는 보디쌋뜨와 진지(盡地) 위에 여래지를 서술하고 있다. 거룩한 붓다=진여=진리이므로, “모든 거룩한 붓다들은 본디 ‘한마음’을 타고 있다〔一切諸佛本所乘故〕”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거룩한 붓다 스스로가 실어 나르는 기구〔乘物〕라는 의미이다. 예를 들면 아기를 등에 업고 가는 엄마와 같은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어디에서 어디로 싣고 가는가? 거룩한 붓다는 보디쌋뜨와를 차안에서 피안으로, 싸하세계에서 극락세계로 태워다 준다. 자비를 실천하는 무대이며, 중생을 구제하는 무대이고, 보디쌋뜨와가 거룩한 붓다의 등에 업혀 여래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진여가 무명을 훈습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본문 p107


진여라고 하는 이름을 쓰는 것은 언어의 궁극적인 수단이며, 말을 빌려서 말을 논파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 예를 들면,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이 급한 교무회의와 같은 일로 교실을 비울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반장에게 자습시키도록 지시한다. 담임선생이 교실을 나가자마자 교실은 금방 시끄러워진다. 그때 학생들은 교실 출입구에 한 명의 보초를 세우고, 담임선생이 교실로 돌아오는 것을 망보게 하는 것이다. 저쪽에 담임선생이 등장하면 바로 교실 쪽을 향하여 알릴 것을 미리 약속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신나게 장난을 치고 노래를 하고 떠들어 댄다. 그때 망을 보는 학생이 교실을 향하여, “얘들아, 저기 담임선생님 오신다!”라는 외침은, 그만큼 시끄러움을 더하지만, 교실은 금방 조용해진다. “얘들아, 저기 담임선생님 오신다!”라고 외치지 않는다면, 시끄러운 교실은 조용해지지 않을 것이다. 인언견언(因言遣言)은 바로 이와 같은 이치이다. 사견을 논파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빌리지 않을 수 없는 실제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
이와 똑같이 진여라는 말은, 그 이상의 보편자를 나타내는 말이 없기 때문에, 언설의 극한·언설의 최후수단으로서, 언어를 빌려서 언어를 논파하는 방법에 의하여 진여를 나타낸다는 의미이다. (…)
이와 같은 가명·가설·가짜의 입장은, 『대승기신론』 에서만이 아니라 『유식삼십송』의 제1게송의 첫 줄에서도 제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ātma dharma upacāra 由假說我法 꾸며서 我·法이라고 말한다.” 대승불교의 수행의 종점은 아집(인아견)과 법집(법아견)을 벗어나서, 인무아와 법무아를…
-본문 pp120-121


『대승기신론』 에서 “일체언설(一切言說), 가명무실(假名無實)”이라고 하는 문장과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 사람들이 가장 흔히 쓰는 말 가운데의 하나가 love/사랑이다. 실제로 사랑은 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는 말만 하는 것은 가치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의미가 없다. 그것은 오직 말일 뿐이기 때문이다.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선행이 더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그러한 것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본문 p122


주관에 대한 집착〔我執〕과 객관에 대한 집착〔法執〕을 벗어나는 실천수행에 의해서만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심진여이다. 심진여를 실현한 마음은 거룩한 붓다의 마음이다.
그러나 범부에게도 벌써 이 심진여가 갖추어져 있다고 보는 것이, 『대승기신론』 의 입장이다. 그것은 범부의 마음의 깊숙한 곳에서 용솟음쳐 나오는 힘이며, 깨달음〔聖, 法〕을 실현하는 인(因, 界)의 작용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진여를, ‘법계〔聖, 法〕을 출생하는 因)’라고도 말한다. 범부의 마음을 이와 같이 고귀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 주관과 객관을 끊어버린 진여의 법계는 본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체험의 세계이며 깨달음의 세계이다. 이와 같은 정신세계가 ‘말로 드러낼 수 없는 진여〔離言眞如〕’이다. 불교에서의 진리는 분별을 벗어난 것이어서 언어와 문자를 끌어들이면 진리성을 상실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인식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다만 언어와 문자를 빌리지 않으면 진여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억지로 언어와 문자를 끌어들여 설명한 것이 ‘말로 드러낸 진여(의언진여)’이다.
-본문 pp125-126


깨달음의 지혜는 붓다의 지혜이며, 진리를 깨달은 지혜이므로 이것을 거룩한 붓다의 법신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거룩한 붓다의 법신은 번뇌로 뒤덮여 있는 ‘붓다의 마음자리〔如來藏〕’에 있어서나 번뇌를 떨쳐버린 거룩한 붓다 자신에게 있어서나 변함이 없으므로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법신은 마음에 본디 갖추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본각이라고 말한다.
-본문 p178


결론적으로 깨달은 사람은 보통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며 또 미묘한 방편을 나타낼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붓다의 적극적인 작용에 있어서, 붓다가 갖추고 있는 무량한 공덕은 단절하는 일이 없다. 그래서 중생의 기근(機根)·능력에 맞춰서 붓다의 교호작용은 자유자재로 상대방의 능력에 적합한 방법으로 베풀어진다. 그래서 여러 가지 변화신을 나타내어, 중생에게 이익을 얻게 한다.
-본문 p213


인훈습경과 연훈습경은 예를 들면 줄탁동시(啐啄同時)와 같은 비유라고 볼 수 있다. 스스로 번뇌로부터 벗어나려는 자발적인 자의지(自意志)와 그 자의지를 잘 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으면 인격을 완성할 수 없다. 무정란(無精卵)이나 곤달걀은 아무리 어미닭이 지성으로 품고 있어도 병아리가 태어나지 않으며, 건강한 씨눈을 가진 유정란(有精卵)이라도 어미닭이 인내를 가지고 지성으로 품어주지 않으면 또한 병아리가 태어날 수 없다. 유정란을 자비로운 어미닭이 인내를 가지고 잘 품어 주어야 병아리가 태어나는 것처럼 인훈습경과 연훈습경의 관계도 유정란과 어미닭의 관계와 같은 비유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본문 p221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또는 개나 고양이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가를 알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자기의 마음에 비추어진 것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있다. 이것은 개의 마음을 아는 것이 아니고, 자기 마음속에 개의 마음을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자기의 마음을 분별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대승기신론』 에서는, “모든 현상적 존재는 한결같이 무명을 따라서 생겨나서, 망념으로 되어 그로부터 생겨난다”라고 서술하며, 더 나아가 “모든 분별은 실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분별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논술하고 있다.
-본문 p278
자성청정심이 자성청정이면서, 그런데도 번뇌에 더럽게 물드는 것은 범부·이승의 사유를 초월하여 있는 것이어서, 거룩한 붓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지금 이 『대승기신론』 도 이 『슈리말라데위씽하나다경』의 사상을 이어받고 있다. 이 마음〔是心〕, 바로 우리의 중생심은 그 본성으로부터 봐도 자성청정이다. 만일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범부는 붓다가 될 수 없다. 이와 같이 심성은 자성청정이지만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무명이 있다. 마음은 무명 때문에 더럽게 물들어서 염심이 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원효별기(元曉別記)』 는, “청정이지만 그런데도 언제나 염오인 것을 밝힌다”라고 주석하고 있다. 현실에는 염심이 있으며, 마음이 헤매고 있지만, 그래도 심성은 언제나 불변이다. 『원효별기(元曉別記)』 는 이 점을, “동(動)이지만 그런데도 언제나 정(靜)인 것을 밝힌다”라고 주석하고 있다. 자성청정심은 객진번뇌에 의하여 더럽게 물들게 된다고 하는 연기의 심오한 이법(理法)에 대하여, 만일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망상이라고 가르치려 하는 것이, 『대승기신론』 의 취지이다.
-본문 pp290-291


『대승기신론』 의 목적은, 붓다의 깨달음의 세계를 밝히고, 그것에 ‘믿음(信)’을 생겨나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무명이나 진여를 서술하는 것이 궁극의 목표는 아니다. 그러한 전제에 입각하여 문제를 이해해야만 한다.
-본문 p323


우리의 현실의 마음을 중심으로 하여 생각하면, 진여는 알라야식의 각(覺) 의 작용이며, 무명은 불각의 작용이다. 각과 불각은 서로 구별할 수 있는 것이면서, 그런데도 불각 가운데에 각이 존재하며, 시각(始覺) 가운데에도 불각이 있는 것은, 이미 본 대로이다. 요체는 진여의 각이란, 우리의 마음에 있어서의 ‘향상을 바라는 힘’이다. 이것을 반류(反流)의 힘이라고 부른다. 또는 환멸문이라고도 부른다. 이에 대하여 우리의 마음 가운데에 있어서의 타락의 힘, 이기심, 악의 힘을 불각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유전(流轉)의 힘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다른 견해로 보면, 하나의 마음의 성격을 두 가지로 도출시킨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본문 p330


다른 진리를 받드는 사람들은 그것으로 좋다. 그 진리를 버리게 하고, 무리하게 불교를 받들게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종교 사이의 대립이나 다툼은, 자기의 종교만을 진리라고 주장하고, 다른 종교를 부정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작용하는 한계는 부정취의 중생까지이다. 그들은 인과의 도리를 믿고, 불교를 희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 대하여 신심을 완성하도록 하기 위하여, 4신(四信)과 5행(五行)을 논술하는 것이다.
-본문 p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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