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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다 간화선 수행의 실제와 깨달음의 연금술

청원 무이 저 | 비움과소통 | 2014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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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7188499 / 468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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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체험으로 쓴 간화선 수행의 실제와 깨달음의 연금술

온몸과 온마음으로 번개보다 빠르게 요달(了達)해야 한다.
그래야만 시공이 끊어진 채 귀로 보고 눈으로 들을 수 있게 된다.
찾고자 하는 짓만 멈추면, 그토록 애타게 찾던 본래면목이
언제 어디서나 함께 했음을 저절로 깨닫게 된다.
-본문 중에서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한다. 불행한 삶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행복한 삶이란 어떤 삶인가? 몸은 건강하고 마음은 편안한 것이 행복한 삶이다. 몸과 마음은 둘이면서 하나다. 마음이 편안해지면, 몸의 건강은 저절로 따라온다. 마음이 편안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흐트러진 마음을 모으면 된다. 탁하고 어두운 마음을 맑히고 밝히면 마음은 편안해진다. 마음이 편안해지면 정(定)이 충만해지며, 혜(慧)가 빛을 발한다. 정혜(定慧)가 구족되면 저절로 정견(正見)이 이루어진다. 자신이 하고 싶고,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들과 선연(善緣)을 맺으며 환희심(歡喜心) 넘치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이 책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다>는 간화선(看話禪) 즉, 화두(話頭)를 참구하여 참다운 성품(性品)을 깨닫고 마음의 해탈을 얻는 참선수행을 통해 영원한 행복을 얻는 방법을 기술한 책이다. ‘수행(修行)의 실제와 깨달음의 연금술’이란 부제가 말하듯이, 마음공부를 통해 ‘참나’를 깨닫는 구체적인 방법을 저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설명하여 누구나 안심(安心)을 얻고 대자유인으로서 행복을 구가하며 살아갈 수 있는 노하우를 친절히 제시하고 있다.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다>는 저자인 청원 무이법사(지불회 지도법사)의 30여 년에 달하는 진솔하면서도 감동적인 구도기로부터 시작된다. 이어서 제1장 평상심의 일상, 제2장 불조(佛祖)의 가르침과 수행(修行)의 실제, 제3장 깨달음의 연금술, 제4장 선(禪)의 뒤안길 그리고 부록인 무이십관(無二十關)으로 구성된 이 책은 파란고해를 건너 니르바나 언덕에 닿게해줄 ‘밑바닥 없는 배’가 될 것이다. 저자는 이 배에 오르는 모든 인연들이 불조의 호념(護念) 속에서 ‘구멍 없는 피리소리’를 듣고 ‘줄 없는 거문고’를 탄주하며 한 송이 우담바라로 활짝 피어나길 간절히 서원한다.

저자 소개

청원 무이(淸源 無二)


방석영(方釋瀯) 거사의 호는 청원(淸源)이고, 법명(法名)은 무이(無二)이며 본(本)은 온양(溫陽)이다.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러시아어와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일찍이 대학교 3학년 때부터 경허(鏡虛), 만공(滿空), 혜암(惠菴) 선사(禪師)로 이어지는 불조정맥(佛祖正脈)과 인연이 닿아 참선수행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10여 년 동안의 직장 생활 중에도 수행의 끈을 놓지 않았다. 퇴직 후 새천년이 시작되던 경진(庚辰)년에 고향인 청주에서 무이선원(無二禪院)을 개원해 간화선 대중화에 매진하며 제2의 삶을 시작했다. 현재 수선(修禪)모임 지불회(知不會) 지도법사(法師)로 수행 및 포교에 전념하고 있다. bsh5904@hanmail.net

책 속에서

〇… ‘나’는 불법(佛法)을 모르는 까닭에 인가와 전법게를 십자가와 불상(佛像)으로 삼아 교화할 대상을 물색하고 모집할 마음도 없다. 금강경 제25분의 “중생을 제도한다는 생각도, 그같은 말도 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등질 생각 또한 없다.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의 ‘길 없는 길’을 가고자 하는 도반과 인연이 닿는다면 오직 두 손을 맞잡고 함께 걸어가며, ‘안다는 한 생각 일으킴의 삿됨’을 파(破)함으로써 현정(顯正)할 뿐이다. 누군가 굳이 인가(認可)와 전법(傳法)에 대해 묻는다면, ‘금강경’으로부터 인가 받고 혜암 선사의 ‘선관법요(禪關法要)’로부터 수법(受法)했다는 ‘말 허물’을 뒤집어쓸 것이다. (20P)

〇…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법

절에 가면 가장 친숙하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목탁소리와 종소리입니다.
목탁소리는 딱! 하면서 일순간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망상들을 끊어내며 ‘지금 여기’에 실존하도록 해줍니다.
종소리는 꽝! 하고 울리면서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공명시킴은 물론, 몸속에 웅크리고 있는 마음을 법계에 충만토록 해줍니다. 종소리는 목탁소리와 달리 그 여운이 아주 길게 이어진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절에 가서 종소리가 꽝하고 울리는 순간을 만나게 되면, 그 소리와 하나가 된 채 점점 작아지는 소리를 놓치지 말고 끝까지 함께 해보시기 바랍니다.
끝내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다하는 곳에 이르러,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소리 없는 소리’를 듣게 된다면 ‘눈으로 듣고 귀로 볼 수 있는 일’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소리 없는 소리’ 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한 손바닥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256P)

〇… 원효 스님의 색안

“스님, 저도 목욕 좀 해야겠어요”
옷을 벗어 던진 여인이 폭포 속으로 들어와 스님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스님은 눈부신 여인의 나신을 보고 꿈틀거리며 일어나는 욕망에 강하게 항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스님은 눈을 부릅뜨고 외칩니다.
 “너는 나를 유혹해서 어쩌자는 것이냐?”
그러자 여인이 답합니다.
 “호호호, 스님도, 어디 제가 스님을 유혹합니까?
스님이 저를 색안(色眼)으로 보시면서…”
  
소요산 자재암 근처의 옥류폭포에서 원효스님과 젊은 여인으로 화현한 관세음보살 사이에 있었던 일입니다. 결국 원효스님은 “스님이 저를 색안으로 보시면서…” 라는 여인의 한마디에 사무쳐 어떤 경계에도 흔들리지 않는 금강부동지(金剛不動地)를 증득했다고 합니다.
  습관적으로 상대방에게 문제의 원인을 전가하기 보다는 스스로가 한 생각 일으킨 채 갈등하고 있음을 몰록 깨달아,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여섯 경계에 물들지 않는다면 가히 참다운 수행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71p)

〇… 무소유도 버겁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것을 갖는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매인다는 의미이다.”
 
수필집 <무소유>에 나오는 법정스님의 말씀입니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마음이 얽매이는 일을 줄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무엇은 필요하지 않다는 분별을 일으킨 뒤, 그것을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얽매이지 않게 된다면, 여전히 ‘나’ 가 남아서 ‘소유하지 않음에 따른 얽매이지 않음’을 소유한 채 그같은 경계에 얽매인 것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나’의 마음이 탐착하는 이러 저러한 환경과 대립함이 없이 무소유조차 내려놓은 아공(我空) 법공(法空)의 일상삼매를 증득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자는 일 없는 무심도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91P)

〇… 듣는 것이 기도

유고슬라비아 출신으로 평생을 인도 콜카타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다 생을 마친 테레사 수녀! 197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한 테레사 수녀가 미국 CBS의 유명한 뉴스 진행자 댄 래더의 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댄 래더가 질문했습니다.
“당신은 하느님께 기도할 때에 무엇을 말합니까?”
테레사 수녀는 다소곳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듣습니다.”
 
예상 밖의 대답에 당황한 댄 래더는 다시 질문했습니다.
“당신이 듣고 있을 때 하느님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마더 테레사 수녀는 다시 대답했습니다. “그분도 듣지요.”
 
하느님과 테레사 수녀 중 그 누구도 말을 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레사 수녀는 어째서 둘 다 모두 듣기만 했다고 말했을까요? 그리고 무엇을 들었을까요?

불불불상견(佛佛不相見) 부처와 부처는 서로 볼 수도 없고
불불불상문(佛佛不相聞) 부처와 부처는 서로 들을 수 없다. (364p)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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