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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와 시민사회 김대중 노무현의 10년

시미즈 도시유키 저 | 백계문 역 | 한울아카데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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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6056473 / 448쪽 152 x 223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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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淸水敏行)
1957년도쿄 출생
1980년도쿄외국어대학교 외국어학부 독일어학과 졸업
1982년홋카이도대학교 법학부 졸업
1987년홋카이도대학교 대학원 법학연구과 후기 박사 과정을 거쳐 
홋카이도 교육대학 하코다테 학교 상근 강사, 조교수
1989~1990, 1992년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객원연구원
현 재삿포로학원대학교 법학부 교수, 법학박사(홋카이도대학교), 
한국정치학회 회원

역자 소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민주화운동가이자 정치활동가다. 저서로 『성공한 개혁가 룰라』(2011)가 있으며, 역서로 『중국 문제: 핵심어로 독해하기』(2016), 『다치바나키 도시아키가 이야기하는 행복의 경제학』(2015),『경제에서 본 리스크』(2014), 『리스크학이란 무엇인가』(2014), 『중국의 도시화와 농민공』(2014), 『루쉰』(2014), 『중국 기업의 르네상스』(2013), 『진화하는 중국의 자본주의』(2012) 등 다수가 있다. 

책 속에서

서경석이 ‘정파운동’을 제창하게 된 이유는, 당파적 활동과 선을 긋기는 했으나 정부나 정당에 개혁을 요구하는 정치적 지향성이 강하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정치판의 권력투쟁에도 관여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비당파성과 당파성 사이에 경계선을 설치하긴 했으나 그의 강한 정치 지향성이 그로 하여금 경계선을 뛰어넘어 권력투쟁의 행위자(actor)가 되게 만든 것이다. 이것은 특수한 사고나 행동이 아니라 한국의 ‘시민운동’에서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서경석이 일으킨 ‘시민운동’의 변화의 물결은 재야 운동권에도 영향을 미쳐 방향 전환을 하는 단체들이 나타났다. 그 방향 전환이란 새로 등장한 ‘시민운동’을 의식하여 그때까지의 급진적인 이념과 활동에 궤도 수정을 하는 것이었다. (91쪽)

2000총선연대는 많은 시민단체의 지지와 협력을 얻음으로써 자원 동원이 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다음과 같은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총선연대는 대중적인 조직 기반을 가진 민주노총과 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에 대해 민노당 지지를 이유로 가입을 거부했고, 또 그 참여단체의 다수가 단지 명의대여 수준의 협력을 하는 데 그쳤기 때문에 실제 활동에서 늘 자원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총선연대의 실무자에 의하면 “결국 몇몇 주축 참여단체의 핵심 활동가 20∼30명을 동원해 기자회견 등 언론의 조명을 받는 사업을 계속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한다. 총선연대는 낙천자 명단을 발표함으로써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늘 ‘인원 동원의 저조’에 시달려야 했고 ‘국민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국민적 기반을 조직하는 과제’를 계속 강조하고 다녀야 했다. (164쪽)

김대중 정부는 제2의 건국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시민단체들을 끌어들이려 했다.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지지 기반을 확대해야 할 절박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나,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한상진이 말하듯이 “시민운동을 다루는 세련된 감수성과 자세가 요구된다”. 제2의 건국운동을 기획·추진한 사람들에게는 ‘세련된 감수성’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2의 건국운동의 완전 실패는 김대중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에게 좋은 학습기회가 되었다. 이 경험은 2000년의 낙선운동에 대한 대응에서 되살아났다. 이와 관련해 간과해선 안 될 것은 제2의 건국운동을 일으킬 즈음 김대중 정부가 수립한 시민단체들에 대한 지원책이다. 그 지원책이란 ‘정치적·사회적 참여 채널’의 확대와 보조금 지급의 법제화다. (215쪽)

특히 2004년의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시민단체 활동 경력자들이 많이 열린우리당의 공천을 받았다. 그전에 이미 시민단체 간부 경력자인 사람도 많이 정부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고 나아가서는 정부의 각료직에 취임했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급속히 증대되었고 노무현 정부 때에는 국회의원 후보자로까지 그 폭을 넓힌 ‘포섭’은, 바꿔 말하면 시민단체의 당파성 표출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시민단체는 정부와 너무 가까워서도 너무 멀어서도 안 되는데, 한국의 시민단체는 그러한 거리두기를 하지 않음으로써 도덕성에 손상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에 대한 지지가 급강하할 때 함께 떠내려갔다. 정부와의 긴밀한 관계 때문에 영향력 있는 존재였던 그들이 정부에 대한 국민의 비판이 높아감에 따라 국민 여론에 대한 영향력을 잃게 되었던 것이다. (351쪽)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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