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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끝에도 머물지 말라 성법 스님의 까칠한 불교 이야기

성법 스님 저 | 민족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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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8742126 / 304쪽 154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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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콕콕 정곡을 찌르듯 불편한 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 성법 스님의 까칠한 불교 이야기


지난 한 해를 반조하고 새로운 한 해에 대한 희망을 꿈꾸는 12월 말, 지금까지 왜곡되고 잘못 인식해 온 불교 교리, 승가의 잘못된 행태 등에 대해 콕콕 정곡을 찌르듯 불편한 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비판하면서 대안을 제시한 책이 민족사에서 출간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생각의 끝에도 머물지 말라』, 머무는 순간 곧 집착하는 순간 이미 불교에서 멀어진다는 뜻을 내포한 제목과 ‘성법 스님의 까칠한 불교 이야기’라는 부제에서도 엿볼 수 있듯 이 책은 오늘날 불교의 문제점에 대해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붓다께서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점이 매우 돋보인다.

이 책의 저자 성법 스님(57세)은 탄탄한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화엄경을 첨단 과학이론과 접목하여 해설한 『이판사판화엄경』, 동서양 철학과 물리학·뇌과학·생명과학·심리학 등을 토대로 반야심경을 해설한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 천수경을 통해 불교의 기초에서 깨달음의 완성까지 모두 이해시키고자 고심한 『왕초보 천수경 박사되다』 등 그동안 책이 출간될 때마다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다양한 관점으로 명쾌하게 경전을 해설하면서 동시에 한국불교의 병폐와 모순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그 대안을 역설하였기 때문이다.

“평소 답답했던 점을 스님이 풀어주어서 고맙다.”
“불교를 믿고 공부하면서 어렴풋하게 가지고 있던 의심의 덩어리를 성법 스님의 글을 읽고 확연하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책을 통해서나마 바른 생각, 바른 소리를 하는 스님을 만난 것을 다행이라 생각한다.”는 독자들이 늘어났고 자연스레 마니아층이 형성되었다.

7장과 부록으로 나뉘어 편집된 이 책은 그동안 출간되었던 경전 해설서와는 달리 불교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총망라하여 다룬 만큼 성법 스님의 사상과 견해를 응축해 놓은 문자사리 같은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불교의 탄생부터 붓다의 깨달음, 교리 발달사, 수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순리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편 인간 최고의 지성인 붓다의 가르침이 중국에 전해지면서, 중국의 기호에 가미되지 않았는지 반문하고, 중국에서 발달한 선수행, 한국의 대표종단인 조계종이 내세우는 간화선과 선사들의 가르침의 전달 방법은 완전한 것인가를 물으면서 현대인들에 맞는 수행법을 창안하여 제시하고 있다.

“업은 지금도 왜곡되어 불자들의 삶을 좌지우지합니다. 예를 들면, 자신이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했으나 힘에 부쳐, 스님에게 해법을 의논하면 “그건 네 업이니 참고 지내라”는 3,000여 년 전의 정답을 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작 문제는 정답을 그렇게 잘 알고 있는 스님들이 모여 있는 승가, 그중에서도 권력의 중심부에 있을수록 ‘자신의 업’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행태가 만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65쪽 중에서

“분명한 사실은 한국의 불교는 상당 부분 붓다 이전의 업과 윤회의 개념으로 신도를 유인하고, 신도들은 고달픈 길인 깨달음으로 향하기보다는 내 욕심을 빨리 또 손쉽게 얻으려는 심사로 불교를 믿는다는, 참으로 인정하기 싫은 현실이 엄연한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68쪽 중에서

스님은 “종교는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의 영혼과 순수성을 담보로 ‘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특히 힌두교인지 자이나교인지 분별하기 힘들 정도로 방편에 물들어 거래를 하고 있는 듯한 한국불교의 비불교적 모습에 대해 강렬하게 비판하면서 불교의 근본교리인 연기법과 업설의 개념에 대해 분명하게 밝혀 놓고 있다.

불교는 ‘지금’ ‘나와 우리’의 문제를 논하고
풀어나가야 하는 실시간의 종교여야 한다

“붓다의 가르침인 불교는 단순 마음 정화학(淨化學) 수준의 개인적 평안을 구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 정도라면 마음을 화두로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는 뇌과학과 진화심리학, 일반 도덕론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지금’ ‘나와 우리’의 문제를 논하고 풀어나가야 하는 실시간의 종교여야 합니다. 그렇기에 불교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가 무엇이고, 어떻게 중생들과 더불어 깨달음을 추구해야 하는가를 항상 고민해야 합니다.” -머리말 중에서

성법 스님은 지난 2001년부터 경전전산화불사의 원을 세워 불교경전총론(www.sejon.or.kr) 세존사이트를 운영해 오고 있다. 초기불교에서 주요 대승경전의 다양한 해설을 통해 방대한 자료의 장(場)을 만들고 잘못 인식된 한국불교의 흐름을 바로잡고 새로운 물줄기를 형성하기 위해 사이버 불사를 하는 스님의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스님은 이 책을 통해 실시간의 종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비록 수십 년이 걸릴 지라도 붓다의 참된 가르침(s 라인)을 대·소승 경전 속에서 명확하게 정리해 나가는 제 5결집을 시작해야 할 때임을 역설하고 있다.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메시지는 ‘붓다께서 진정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이고 그에 대한 대안이다. 스님은 세상의 물질적 혁명은 결국은 정신적 세계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에, 불교도 혁신을 해야 함을 거듭 강조하면서 오늘날 붓다의 수행 방법에 대해 논란이 분분한데 이에 대해서도 유연한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위빠사나, 명상, 선수행의 장단점은 무엇이고, 스님이 경험을 바탕으로 창안한 현대인에게 맞는 수행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현재의 승가는 수행의 ‘마장’ ‘장애’의 개념조차 사라져 원로스님들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상황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짚고 있다.

“지금 붓다께서 계신다면 한국 승가에 이런 질책을 하실 것입니다. ‘너희는 내 모양을 천 개 만 개 조성해 복 지으라며 팔고, 사법(邪法)을 내 말이라고 중생들을 현혹하면서 정작 내 가르침의 진위에는 관심조차 없구나’라고 말입니다.” -부록 ‘지금 붓다께서 계신다면’ 중에서

부록 ‘지금 붓다께서 계신다면’은 성법 스님이 한국불교의 총체적 문제들을 하나씩 지적한 내용으로 이 책의 정수요, 이 책에서 설파하고자 한 메시지를 함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법 스님의 원력에 뜻을 같이 한 세존아카데미 재가불자 학인들의 보시에 힘입어 지난 2012년 불교신문에 광고 형식으로 연재해 실었던 내용으로 인구에 회자되었다.

생각의 끝에도 머물지 말라, 비교적 긴 머리말부터 부록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태동과 교리, 경전, 수행, 한국불교 등 불교 전반을 총체적으로 다루면서 한국불교의 현실을 바로 보고 바른 불교를 세우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날카롭고 까칠한 지적만큼이나 보석 같은 지혜와 대안이 돋보이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될 것이다.
‘불교계에 이런 스님도 있구나’ ‘아직은 자정 능력이 있구나’ 하는 마음에 책을 읽는 동안의 이런저런 불편함에서 해탈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 소개

20세에 출가하여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을 수료하고, 현재 고양시 대한불교조계종 용화사 주지로 있으면서 불교신자는 물론이고 일반인들에게도 ‘바른 불교’를 알려 주고, 바른 신행으로 이끌어 주기 위해 2001년부터 경전전산화불사의 원을 세워, 초기불교에서 주요 대승경전의 다양한 해설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자료의 장(場)인 불교경전총론(www.sejon.or.kr)을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다. 
잘못 인식된 한국불교의 흐름을 바로잡고 새로운 물줄기를 형성, 모든 이가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사이버 불사(佛事)와 아울러 불서(佛書) 저술, 전법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 기존의 훈고학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탄탄한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현대인들이 받아들이기 쉽게 해석한 『이래도 모르시겠습니까』와 화엄경을 첨단 과학이론과 접목하여 해설하고 현재의 ‘비불교적’ 요소를 날카롭게 비판한 『이판사판 화엄경』, 동서양 철학과 물리학·뇌과학·생명과학·심리학 등 다양한 관점을 토대로 반야심경을 해설한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 등 다수가 있다.

E-mail: sungbeop@gmail.com 

책 속에서

한국불교의 현재는 따지고 보면 염세주의보다 훨씬 위험한 낙관주의에 깊이 물들어 있습니다. 붓다 입멸 후 1,500여 년이나 지나 중국에서 발생한 선불교禪佛敎의 선사들의 입에서 나온 “네가 곧 부처다”라는 말을 붓다의 가르침의 요체로 인식하는 엄청난 착시에 함몰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한술 더 떠, 수행을 하는 데는 무식할수록 유리하니 붓다께서 설하신 경전도 보면 안 되고, 세간의 이치와 논리는 하찮은 것이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조차 차단해야 비로소 바른 수행이라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중략)
붓다께서는 염세적인 출발에서 인간이 기대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는 깨달음이라는 극적 반전으로 낙관적 회향을 보여 주셨지만, 이들은 “네가 부처다”라는 낙관적 출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부처가 맞다는 당연한 회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 이들(선불교)의 근본적 한계인 것입니다. 스님들이 신도들과 늘 같이 독송하는 반야심경과 금강경의 붓다의 가르침은 이것과 정반대로 일체가 공空함을 강조하는데도 스님들은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사실이든 사실과 다르든 낙관주의적 착시를 신도들에게 오염시켜야 신도들의 보시가 많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승가의 끝없는 욕심과 증명된 무능력은 따지고 보면 ‘배고픈 신도에 배부른 승가’에 그 원인과 해법이 있습니다. 승가는 해방 이후 타종교인에 비해 너무나도 편안하게 살아왔고, 지금은 오히려 종단과 본사에 돈이 넘쳐 출가정신을 다 망각해 버린 것입니다. -머리말 중에서-

붓다의 깨달음은 퍼펙트한 것이었고, 그 후 오늘날까지 붓다의 퍼펙트에 1~10%만 가까이 다가서도 보통의 인간의 사유를 단번에 넘어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붓다의 온전한 깨달음은 12연기가 아니라, 우주의 이理와 사事의 근본 원리인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는 상의상관 관계의 원리인 군더더기 없는 연기緣起입니다. - 44p -
인과응보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는 인과에 징벌적 도덕률을 극대화시킨 것입니다. 연기의 부분집합으로 벌어지는 인과에는, 선이나 악이라는 인간의 자기 편의적 분별이 섞일 수가 없습니다. 인과는 연기의 한 단면이고 연기는 우주와 법계의 존재 그 자체와 질서로, 인간의 분별심이 오염시킬 수 없는 자리입니다. 붓다께서는 이 원리를 깨달으셨기에 시비와 분별, 선과 악, 태어남과 죽음, 이런 온갖 양변을 여의고 중도의 자리에 안착하셨던 것입니다. - 48p -

불교를 허망론으로 몰고 가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붓다는 정신이든 물질이든 상호관계를 일으키고 결과를 맺어가는 연기緣起라는 관계성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네가 보고 느끼고 얻으려는 것은 순간의 가치이지 영원성이 없다”고 말하며, 인간의 집착과 욕망을 경계한 것일 뿐입니다. - 50p -

붓다의 위대함은 절대적 권위를 유지하고 있던 힌두이즘의 수많은 신들을 부정하고, 인간 지성 최고의 가치인 ‘자비’와 ‘깨달음’을 역설하시며, 그것을 전법하여 어리석은 중생들을 무명에서 벗어나게 하신 ‘인연’에 있습니다. - 62p -

아함경에 “돌을 호수에 던지면 가라앉게 마련이다. 네가 돌이 가라앉지 말라고 염원을 해도 돌이 가라앉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은 “돌의 업業은 물에서는 가라앉는 것이니,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다”로 이해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아니, 그렇게 설명해야 맞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금까지도 업을 힌두교와 같은 의미로 해석하고, 또 스스로 업의 속박으로 귀속하려는 근본적 오류는 ‘종교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있습니다. - 63p -

무아無我인데 어떻게 윤회輪廻하는가는 논쟁 자체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무리하게 무아無我를 놔두고 윤회輪廻를 설명하자니 궁색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무아無我는 격의불교 때 잠시 빌려서 쓴 용어이니 이제는 폐기되어야 할 단어입니다.
앞으로는 무아의 대체어로 ‘공아空我’를 사용한다면, 몇 세대가 지난 후에는 불교의 무아는 ‘없다’는 뜻이 아니다라는 설명에 진을 빼야 하는 번거로움은 없어질 것이라 여겨집니다. - 72p -

자이나교는 윤회를 말하면서 그것에서 벗어나는 방도로서 실천적 행위의 중요성을 부각하지만, 불교는 연기를 말함으로써 신에 의해 결정된 윤회가 아닌 인간 행위의 윤리적 인과성을 강조한다. - 86p -

불교는 이처럼 자이나교와 다른 점이 확연히 있다. 불교는 영혼의 불멸을 믿지도 않고, 세계가 물질적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도 믿지 않고, 윤회가 신에 의해서 주어진다고 믿지도 않는다.
- 88p -

아주 인정하기 싫지만, 또한 승가의 동의를 구하기도 아주 어렵지만, 게다가 재가신도들에게는 아주 불편한 진실이지만, 한국불교의 행태는 힌두교와 거의 일치합니다. 한국불교의 재가 신도들의 문제는 붓다께서 재가자에게 요구했던 재가 신도들처럼 적극적으로 붓다의 가르침의 진수眞髓를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려는 ‘의욕’조차 상실해 버렸다는 점입니다. 기도에 의한 소원성취?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대학에 모두 합격해야 하고, 기업들은 취업에 성공한 신입 사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암으로 죽는 사람이 통계적으로 줄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하겠습니까. - 99p -

이 말씀은 ‘도를 더럽히는 이’는 되레 중생들에게 해가 되니까, 재가 신도들이라도 이런 수행자에게는 공양을 올리지 말고, 보시도 하지 말아야 된다는 교훈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재가 신도로서 여러분들이 춘다와 같은 현명한 사람이 되는가, 아니면 ‘도를 더럽히는 이’를 오히려 도와주는 바보 같은 신도가 되는가는 순전히 여러분의 판단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 131p -

불교는 무신론이고 나도 붓다를 이룬다는 철저한 수행과 실천 위주의 종교입니다. 그렇기에, 『숫타니파타』에서 각종 『니까야』를 거쳐, 대승경전에 등장하는 ‘언어적’ 신神을 인정한다면, 그것으로 붓다의 가르침에서 무조건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말이, 선禪만의 전유물이 아닌 인간의 모든 ‘언어적 기록’에까지도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 142p -

지금은 대승불교 흥기 후 다시 무려 2,000년 이상이 지났습니다. 저는 이제야말로 부파불교에서 대승불교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듯이, 또 한 번의 사상적 진화를 불교가 이루어내지 않으면, 후대 언젠가는 붓다의 가르침을 전설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입니다. 현재에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지혜로운 사람들과 미래의 그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가능한 ‘깨달음을 성취한 붓다’를 원하지, 유일신과 같은 붓다나 극락에 가서나 만날 수 있는 붓다를 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 146p -

한국의 선사들에게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선방에서 목숨을 걸고 수행하는 일이 본분인 출가자의 격에 맞는 법문을, 세간의 이익과 부닥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재가 불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을 시켜 법을 설하기에 현실적 감각의 부족함을 느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재가 불자들에게 “네가 이미 부처다”라고 말하는 것은, 듣는 상대에게는 “난 아직 아닌데”라던가 “그래서 나보고 어쩌란 것인가”라는 화두도 아닌 의심만 일어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시비를 가리지 말고 분별심을 버려라”라는 말도 출가자에게나 해야 될 말이지, 모진 세상을 살아가는 불자들에게는 도무지 실천할 수 없는 부담만 주는 말인 것입니다. 더욱이 붓다께서 깨달으신 연기緣起와 스님들이 불자에게 말하는 이런 식의 설법이 ‘합치’하는지도 의문입니다. - 170~172p -

명상도 역시 인기가 높아갑니다. 그런데 이것을 불교의 수행과 연관시키는 것은, 불교 전통수행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넌센스입니다. 힐링이나 명상은 마음의 가장 전방에서 정화되지 못해 욕망과 시비를 그대로 갖고 있는 ‘감정’이, 바깥의 대상과 마주칠 때 일어나는 ‘감정’을 수용하는 타협안을 제시해 주는 수준의 감정 다스림을 익히는 것입니다. 이 정도를 수행이라 할 수는 없고 ‘마음 정화 혹은 순화’라면 충분해 보입니다. - 182p -

상구보리가 안 된 상태에서 스님들이 신도들의 인생의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을 하화중생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정말 복잡한 세간의 일들은 어쩌면 신도 자신들이 풀어나가는 게 답일지도 모릅니다. 그 답을 찾는 지혜를 보충해 주는 것은 스님들의 몫이 확실하지만 말입니다. - 211p -

불법은 과학뿐만 아니라 인간의 지적 능력이 향상될수록 ‘증명’이 되어가는 무진無盡의 가르침의 보고입니다. 그럼에도 한국의 지적 엘리트들은 불법을 외면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과 진지하게 대면해 전문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스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달라이 라마의 글을 보며 느끼는 점은 이미 1959년에 인도에서 망명생활을 시작하며 무려 반세기 이상을 세계의 석학들과 많은 교류를 한 것이 오히려 그의 수행을 성숙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 218p -

이렇듯 최신 물리학이나 천문학의 이론들은 불법 특히 화엄의 사상과 아주 흡사합니다. 특히 최근 각광을 받으며 급발전하고 있는 유전공학·뇌과학 등을 중심으로 좀 더 적극적이고 과학적이고 또 분석적인 안목을 갖고 새로운 미래의 불교를 대비해 가지 않으면 인도에서 불교가 거의 소멸消滅했듯이, 앞으로 몇 백 년 후에는 어떤 상황이 닥칠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또한 과학과 문명의 발전을 단순히 환경 파괴나 인간성 상실, 물질에 대한 집착 등 부정적으로만 몰아 부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 223p -

진화론은 생명체의 자기 위치와 정체성을 명확히 해 준다는 점에서 종교에 버금가는 신뢰성을 얻고 있습니다. 불교야말로 중생들(모든 생명체)의 자기 위치와 정체성을 명확히 제시해, 인본주의는 물론 모든 생명체의 가치를 강조한 유일한 종교입니다. 진화론에서 인간이 가장 발전된 생물이라고 결론하듯, 불교 역시 인간만이 성불할 수 있는 존재로 가장 귀한 생명체라 선언하고 있습니다. - 227p -

불교의 윤회관으로 오인된 육도윤회를 진화론에 맞게 해석하면, 개가 죽으면 (진화하여)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반대로 사람이 죽으면 (진화하여) 개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과도 같게 되어 버립니다. 저는 진화론을 믿지 이런 식의 윤회는 붓다의 가르침에서 벗어난다고 단정합니다. 붓다는 기존 바라문들이 믿던 업과 윤회를 부정하셨음은 물론 그들의 사상과 행태를 맹렬히 비난하셨습니다. 붓다께서는 전생의 바라문이 현재의 바라문으로 태어난다는 바라문의 주장에 대해, “인간은 과거의 업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그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결정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붓다께서 사용한 ‘업’은 바라문들이 사성제 계급을 유지하기 위해 악용했던 업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결과로 인간의 힘으로는 역전시킬 수 없는 당연히 수용해야 되는 것을 ‘업’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라 여겨집니다. 윤회 또한 성成·주住·괴壞·공空으로서의 우주적 윤회라고 해석하면 업과 더불어 “무아인데 어떻게 윤회하느냐”라는 본원적 질문에 고민할 이유도 없게 됩니다. - 229~230p -

붓다의 가르침인 연기緣起는 과학이 추구하는 현재의 현상〔果〕에 대한 원인〔因〕 규명이라는 점에서 과학과 목표가 같습니다. 사실과 현상을 망상과 집착을 떠나 있는 그대로 보자는, 불교 수행의 과정도 과학자들이 자신의 전공을 연구하는 마음자세와 유사합니다. 그래서 과학이 발전할수록, 인간이 교육 등을 통해 지적 능력이 진화해 나갈수록, 불교는 인간에게 더없이 소중한 최고의 가르침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업과 윤회를 악용하여 승가의 배를 채우고, 신도들에게 신앙으로서의 의무감만 더해주고 정작 승가는 하나의 큰 이익단체로 ‘진화’되는 한, 불교의 미래는 결코 보장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 231p -

붓다께서 머무신 최초의 사원으로, 금강경이 설해진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은 가난한 사람에서 나눠주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절입니다. 인류의 화합을 해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빈부, 교육, 정보등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는 데 있습니다. 한국의 수많은 절들이 지금부터라도 승가의 이익이 아닌, 불교 최초의 절인 기수급고독원의 본래 취지에 맞게 모든 양극화의 해소에 앞장서길 ‘서원’합니다. - 243p -

근래 스님들을 보면 출가가 마치 사회적 신분 상승이나 예외적 위치로 인정받는 아주 대단한 ‘무엇’이라도 이미 이룬 것 같은 생각들이 판에 박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시줏돈으로 도박에 빠지고, 해외에 가서 골프도 즐기고, 승단 내에서 폭력이 난무해도 책임 지는 출가자는 거의 없으니 출가가 ‘예외적 위치’인 것 같기도 합니다. - 246p -

스님들은 신도들에게 아무리 억울해도 전생의 업이니 참고 인욕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생의 업인지 현생 인因의 시작인지 어찌 확언할 수 있겠습니까? 전생의 업이라면 견뎌내야 하겠지만, 현세에 시작되는 새로운 인因이라면 상대를 위해서라도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불자라면 단순한 인욕이 아니라 인욕에 지혜를 더한 인욕바라밀을 행해야 합니다. - 257p -

종교와 결부만 되면 일단은 무조건 ‘신비주의’로 몰아야 직성이 풀리는 집단이라면, 종교는 그들에게 안온과 지혜를 주는 것이 아니라 집착과 맹신으로 인간의 보편적 지성마저 빼앗아 버리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 269p -

대부분의 종교인은 본인이 이룩한 ‘종교적 무엇’에 비해 상대적으로 분에 넘치는 사회적 평가와 권위를 인정받아 왔음을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불교와 기독교의 경우 대부분 붓다와 예수의 몫이지 자신의 것이 아님을 반드시 깊이 있게 성찰해야 합니다. - 276p -

달라이 라마, 틱낫한같이 현재 세계적으로 통하는 각광받는 스님들의 불교는 사실상 신앙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공유하는 보편적 가치에 얼마나 다가섰는가가 그 잣대가 됨을 한국불교는 새삼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 282p -

붓다께서 깨달으신 연기는 불교만의 것이기에 지금도 붓다의 진의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윤회와 업에 대한 관념들은 붓다의 재세在世 시부터 『숫타니파타』가 결집되어 유통되는 시기까지만 불교 고유의 사상으로 해석되었지(불멸 후 약 300~400년 후까지), 그이후로는 붓다의 제자라 해도 거대한 힌두이즘의 사상적 ‘쓰나미’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고 60% 정도는 확신합니다. 붓다시대 이후 길게 잡아도 300~400년 정도만, 인도에서 붓다의 불교가 연기, 윤회, 업의 개념에서 힌두이즘은 물론 인도에서 발생한 모든 종교 사상에서 탈출하여 업과 윤회에서 독자적인 ‘자기논리’를 지킬 수 있었다는 강한 심증이 듭니다.
말하자면 인도대륙에서 불교는 그 몇 백 년 동안만 ‘독립을 이룩한 사상적 섬’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싶습니다. - 293p -

목차

머리말_ 13

제1장 붓다로의 시간 여행

027 붓다의 위대한 도전
불교의 탄생
030 붓다, 반고행주의의 성공
붓다의 깨달음
034 붓다, 수행 방법을 ‘업그레이드’ 하다
탈고행주의, 중도 수행
037 중생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
붓다, 진정한 승리자의 서원

제2장 붓다, 다르마를 설하다

043 힌두이즘을 제압하다
붓다의 연기緣起
045 인과는 연기의 부분집합이다
연기緣起 속의 인과因果
049 붓다에 주파수를 맞추라
연기, 산은 산 물은 물
052 엉뚱한 자문자답
이율배반도 연기緣起로 해결된다
055 물에 가라앉는 돌을 뜨게 할 수는 없다
업, 고
058 인因과 연緣의 결과물
업
060 정해진 업業은 없다
업의 개념이 안고 있는 업
066 붓다, 연기의 관점으로 세계를 보다
업과 윤회는 일반언어
068 무아無我가 아니라 공아空我다
무아와 윤회
073 윤회를 바로 보라
힌두교적 윤회는 없다
077 진화해야지 오염되어서는 안 된다
업과 윤회의 논리
093 다른 사상을 알아야 불교가 제대로 보인다
6사외도와 불법
098 겉은 불교, 속은 자이나교인가?
자이나교와 불교의 업과 윤회
100 인간을 구성하는 5가지 요소
오온
102 이해관계 없이 감각기관을 다스리라
12처 18계

제3장 붓다, 제자들과의 기막힌 인연

107 붓다, 세월을 함께 할 유일한 분
출가
110 왜 사람들은 붓다만 보면 앞뒤 가리지 않고 출가했을까?
붓다의 출가주의
112 유마경에서 만난 부처님의 으뜸제자들
10대 제자
116 조로아스터교의 개종 제자
가섭 3형제를 제도하다
119 붓다의 아들 사랑
외아들 라훌라를 교화하다
122 데바닷다는 극악무도한 자인가?
억울한 데바닷다
126 붓다의 말씀을 되살려 낸 아난존자
억울한 아난
129 현명한 불자, 바보 같은 불자
붓다와 춘다의 대화
133 붓다의 최고 후원자, 사랑과 영혼의 주인공
빔비사라 왕과 위제희 부인

제4장 경전의 바다에서 붓다를 만나다

141 각 나라와 지방의 언어로 법을 전하라
초기 경전들의 언어적 격의 문제
144 극락에 가서나 만날 수 있는 붓다라면
석연치 않은 삼처전심
147 중생의 필요에 따른 맞춤 구원
삼신불과 다불·다보살 사상
151 붓다의 진심은 어디에 담겨 있는가?
금강경과 법화경
157 열린 마음, 창의적으로 해석해야
열반경 속의 무상과 적멸
160 마음을 해부할 수 있는가?
중관과 유식
167 인류 최고·최상의 희망
여래장, 불성
172 고통이 피워낸 희망사항
정토사상, 미륵사상

제5장 붓다의 깨달음, 수행이 희망이다

179 일어나는 마음만 집중 관찰하라
사념처와 위빠사나
183 사람에 따라 수행법도 달라야 한다
위빠사나와 간화선
190 간화선 제일주의 이대로 좋은가?
간화선
193 보면 사라진다
마음 관찰하기
196 이타행, 수행의 척도
수행과 자비
201 사람은 왜 화를 낼까?
화, 수행
204 깨달음과 중생 구제
대승사상과 보살
209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꼭 실천해야 할 것
상구보리 하화중생과 사섭법


제6장 붓다, 과학을 끌어안다

215 불교의 요체와 과학의 극적인 통섭
일체유심조

219 과학, 미래의 불교를 위한 새로운 대비책?
과거심·현재심·미래심

225 현대, 신神들의 최대 수난기
진화론과 연기


제7장 중생이 있으므로 붓다가 있다

235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성숙해 있는가
삼보三寶
238 허망을 버리고 진실을 가지라
삼귀의
241 붓다가 되겠나이다, 붓다처럼 살겠나이다
서원, 출가는 신분 상승인가
247 말귀부터 알아들어야
춘성 스님의 일화와 원각경
252 막간 우스갯소리
미국 법정에서 오간 대화들
255 용서가 반드시 최선은 아니다
인욕의 양면성
258 중생의 소원에 따라 진화된 만능 불·보살
불·보살의 본원
262 믿음을 저버린 ‘양심’이 더 종교적일 수 있다
종교적 신념과 믿음의 공허
266 신비주의 주의보
수행의 마장을 경계하라
270 단지 감각의 오류일 뿐
우주인, 임사체험, 심령현상
275 종교인의 오류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
뉴턴은 종교인이 아니었다
278 중생이 바라는 대로 맡기겠나이다
기복불교, 원력불교
283 다른 눈으로 세상 보기
사이언톨로지교와 라엘리안 무브먼트
289 동서양을 넘나든 종교적·문화적 아이콘
만卍자, 나치 문양, 십자가 문양
292 힌두이즘의 쓰나미가 덮치다
인도에서 불교의 멸망

부록 지금 붓다께서 계신다면_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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