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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왕국 북한산성이 전하는 스물여섯 가지 한국사 이야기

조윤민 저 | 주류성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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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2461114 / 383쪽 176 x 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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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 주요 내용 >

우리 역사 이천 년의 창窓 - 북한산성으로 보는 왕국의 영욕과 성쇠
북한산성이라는 ‘역사의 창’을 통해 우리 역사 2천 년을 재조명했다. 북한산성과 관련된 역사 사실과 사건을 중심으로 기원전 18년 백제 건국에서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멸망과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의 각 왕조의 영욕과 흥망성쇠를 다루었다.
북한산은 백제 건국과 조선 개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연 약속과 희망의 산이었다. 삼국시대 북한산과 북한산성은 욕망과 꿈이 뒤섞이고 삶과 죽음이 교차하던 정복과 전쟁의 땅이었다. 고려시대엔 불교가 꽃을 피운 믿음과 구도의 도량이자 종교와 권력이 만나 영속을 다지던 속(俗)의 제단이었으며, 고려 말엔 왕도의 나라를 세우려던 혁명가의 숲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북한산성은 전란의 치욕을 딛고 민족의 자존을 세울 부국강병의 초석이었으며 왕국의 영광과 군주의 기개를 드높일 흔들림 없는 성채였다. 왕권과 신권(臣權), 신권과 신권이 부딪치던 권력투쟁의 장이기도 했다. 조선 선비와 사대부의 풍류 계곡이었고 장인과 역부, 유랑민과 농부의 삶의 언덕이기도 했다.
이 같은 역사 사실을 한 축으로 놓고 그와 연관된 인물의 행위와 에피소드를 다른 한 축으로 삼아 이야기를 구성해 북한산성 관련 정보를 전하고 시대의 흐름과 성격을 짚어나갔다. 북한산과 북한산성이라는 한 사회적·역사적 공간을 둘러싸고 벌어진 영토전쟁의 실상과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결합 양상을 알아보았으며, 권력유지와 통치의 도구로서의 성(城)이라는 측면도 살폈다.


어제의 유적은 오늘 역사의 숲이 되어 살아난다
- 사회적 공간, 역사의 공간으로서의 북한산성

삶에 있어서 ‘공간’은 주체나 대상과 상관없이 주어지는 특정된 장소가 아니라 주체들 간의 행위와 주체와 대상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의 장(場)이자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의 망(網)이다. ‘사회적 공간’, ‘역사의 공간’은 그래서 생산되는 것이자 생산하는 것이라 했다. 또한 공간은 시간을 벗어날 수 없기에, 동일한 ‘역사의 공간’이라 해도 시대를 거치면서 하나의 성격이나 이미지로 고정되지 않고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시대가 지나면 그런 ‘역사의 공간’은 유적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서 유적은 지난 시대의 증언을 넘어 현재를 규정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때론, 이런 역사의 궤적은 오늘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의 향방에 영향을 미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경기도 고양시와 서울시의 경계 지역에 있는 지금의 북한산성은 조선 숙종(재위: 1674∼1720) 때인 1711년에 쌓은 석성이다. 백제 개루왕(재위: 128∼166) 때인 132년에 쌓은 북한산성이 지금의 북한산성 자리에 있었던 성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서울 지역의 한강 이북에 삼국시대의 북한산성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고려시대엔 지금의 북한산성 자리에 중흥산성이라 불린 석성이 있었다.
이 북한산성은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주된 흐름과 시대별 성격을 담고 있는 우리 역사의 고갱이이다. 북한산성은 역사의 주체와 또 다른 주체, 지배세력과 그 대상이 부딪쳐 생산된 ‘사회적 공간’이었다. 사회를 밀고나가고 시대를 규정하는 권력과 통치전략, 그에 반응한 삶이 펼쳐지던 곳이었다. 북한산성은 시대에 따라 새롭게 생산되는 ‘역사의 공간’으로 각 시대에 따라 그 성격을 달리 했으며, 산속 깊은 곳의 성(城)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와 종교, 권력과 통치, 생존과 삶이라는 사회현실과 끊임없이 부대끼던 살아있는 공간이었다. 북한산성은 2천 년 한국사의 바람, 그 영욕의 세월을 모두 안은 ‘역사의 성'이며, 어제의 유적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도 사회적 공간, 역사의 공간으로 새롭게 생산되고 있다.


전쟁과 정복, 정치와 종교, 권력과 통치, 생존과 삶
- 북한산성 이천 년의 바람

북한산과 북한산성, 한강이라는 전략 지역을 둘러싼 삼국시대 영토전쟁의 실상과 함께 개국의 산이자 전쟁과 정복의 땅이라는 역사 공간으로서의 북한산과 북한산성의 성격을 규명했다. 북한산과 한강 지역의 고대 성곽 특성과 삼국 간 성곽전투의 양상을 알아보고, 이 지역 성곽 전투의 결과가 삼국의 역사 향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았다.

고려시대 북한산성 지역의 불사(佛事)와 승려의 활동, 왕가와 귀족의 북한산성 지역 사찰 후원이라는 역사 사실을 통해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결합 양상을 파악하고, 그 과정이 빚어낸 빛과 그늘을 보이고자 했다. 고려시대 호국불교의 이면에 숨은 통치전략의 한 단면도 살펴보았다.
조선시대 북한산성의 승군(僧軍) 활동 실상을 파악해 조선의 지배층이 불교 억압 일변도의 정책을 펼친 것이 아니라 체제유지와 국가방위의 필요에 따라 불교를 용인하고 때로는 포용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지배 권력과 체제 내 종교의 공존 배경을 검토했다.

조선 건국 후 북한산을 진산(鎭山)으로 삼아 한양에 도읍을 정하는 과정에서 건국의 주체세력이 보여주는 ‘공간 배치’를 통한 정치권력의 자기 정당화와 권위 형성의 상징화 기능을 살펴보았다. 조선의 지배세력은 궁궐을 도읍지의 한복판에 지어 왕권의 절대성과 신성함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도읍에서 한쪽으로 치우친 산(북악산과 북한산) 아래 위치시킴으로써 ‘궁궐-산-하늘’이 하나의 선상에 맞닿아 이어지게 했다. 하늘이라는 천체가 가진 신성성과 절대성이 산을 통해 내려오고 이는 다시 궁궐로 전해지니, 결국 하늘의 신성성과 절대성은 지상의 왕에게로 귀속된다.

사료와 현장 연구자료를 토대로 조선시대 숙종 대의 북한산성 성곽과 행궁, 군사시설물 현황을 파악하고 축성법과 성곽의 특성을 밝혔다. 북한산성 축성은 조선 후기 최대의 국가 토목 프로젝트였으며, 북한산성은 당대의 경제력이라는 토대 위에 최고의 토목기술과 과학지식, 여기에 지배층의 비전이 결합돼 이뤄낸 방위시설이자 당시 조선의 사회적 역량을 보여주는 증거물이기도 하다. 숙종 대의 북한산성 축성과정을 통해 북한산성 축성의 사회적·정치적·역사적 배경을 알아보고, 숙종 이후 영조와 정조를 거쳐 조선 멸망과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의 북한산성 관리 실상도 살폈다. 이와 함께, 숙종 대의 북한산성 축성을 둘러싼 37년 동안의 찬반논쟁을 통해 왕권과 신권의 다툼, 신권과 신권 간의 갈등이라는 권력투쟁의 장으로서의 성(城)을 조명했다. 왕가와 지배층 존속을 위한 피난지이자 전쟁에 대비한 최후의 보루로서의 항쟁지라는 북한산성의 역할 외에 통치 이데올로기와 지배체제 유지의 도구로 활용된 성(城)이라는 ‘공간의 정치 도구화’까지, 시대에 따른 북한산성의 다양한 얼굴을 드러내고자 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우리 역사 이천 년의 창窓 - 북한산성으로 보는 왕국의 영욕과 성쇠 북한산성이라는 ‘역사의 창’을 통해 우리 역사 2천 년을 재조명했다. 북한산성과 관련된 역사 사실과 사건을 중심으로 기원전 18년 백제 건국에서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멸망과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의 각 왕조의 영욕과 흥망성쇠를 다루었다. 북한산은 백제 건국과 조선 개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연 약속과 희망의 산이었다. 삼국시대 북한산과 북한산성은 욕망과 꿈이 뒤섞이고 삶과 죽음이 교차하던 정복과 전쟁의 땅이었다. 고려시대엔 불교가 꽃을 피운 믿음과... 우리 역사 이천 년의 창窓 - 북한산성으로 보는 왕국의 영욕과 성쇠 북한산성이라는 ‘역사의 창’을 통해 우리 역사 2천 년을 재조명했다. 북한산성과 관련된 역사 사실과 사건을 중심으로 기원전 18년 백제 건국에서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멸망과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의 각 왕조의 영욕과 흥망성쇠를 다루었다. 북한산은 백제 건국과 조선 개국이라는 새로운 나라를 연 약속과 희망의 산이었다. 삼국시대 북한산과 북한산성은 욕망과 꿈이 뒤섞이고 삶과 죽음이 교차하던 정복과 전쟁의 땅이었다. 고려시대엔 불교가 꽃을 피운 믿음과 구도의 도량이자 종교와 권력이 만나 영속을 다지던 속(俗)의 제단이었으며, 고려 말엔 왕도의 나라를 세우려던 혁명가의 숲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북한산성은 전란의 치욕을 딛고 민족의 자존을 세울 부국강병의 초석이었으며 왕국의 영광과 군주의 기개를 드높일 흔들림 없는 성채였다. 왕권과 신권(臣權), 신권과 신권이 부딪치던 권력투쟁의 장이기도 했다. 조선 선비와 사대부의 풍류 계곡이었고 장인과 역부, 유랑민과 농부의 삶의 언덕이기도 했다. 이 같은 역사 사실을 한 축으로 놓고 그와 연관된 인물의 행위와 에피소드를 다른 한 축으로 삼아 이야기를 구성해 북한산성 관련 정보를 전하고 시대의 흐름과 성격을 짚어나갔다. 북한산과 북한산성이라는 한 사회적·역사적 공간을 둘러싸고 벌어진 영토전쟁의 실상과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결합 양상을 알아보았으며, 권력유지와 통치의 도구로서의 성(城)이라는 측면도 살폈다. 어제의 유적은 오늘 역사의 숲이 되어 살아난다 - 사회적 공간, 역사의 공간으로서의 북한산성 삶에 있어서 ‘공간’은 주체나 대상과 상관없이 주어지는 특정된 장소가 아니라 주체들 간의 행위와 주체와 대상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의 장(場)이자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의 망(網)이다. ‘사회적 공간’, ‘역사의 공간’은 그래서 생산되는 것이자 생산하는 것이라 했다. 또한 공간은 시간을 벗어날 수 없기에, 동일한 ‘역사의 공간’이라 해도 시대를 거치면서 하나의 성격이나 이미지로 고정되지 않고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시대가 지나면 그런 ‘역사의 공간’은 유적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서 유적은 지난 시대의 증언을 넘어 현재를 규정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때론, 이런 역사의 궤적은 오늘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의 향방에 영향을 미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경기도 고양시와 서울시의 경계 지역에 있는 지금의 북한산성은 조선 숙종(재위: 1674∼1720) 때인 1711년에 쌓은 석성이다. 백제 개루왕(재위: 128∼166) 때인 132년에 쌓은 북한산성이 지금의 북한산성 자리에 있었던 성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서울 지역의 한강 이북에 삼국시대의 북한산성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고려시대엔 지금의 북한산성 자리에 중흥산성이라 불린 석성이 있었다. 이 북한산성은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의 주된 흐름과 시대별 성격을 담고 있는 우리 역사의 고갱이이다. 북한산성은 역사의 주체와 또 다른 주체, 지배세력과 그 대상이 부딪쳐 생산된 ‘사회적 공간’이었다. 사회를 밀고나가고 시대를 규정하는 권력과 통치전략, 그에 반응한 삶이 펼쳐지던 곳이었다. 북한산성은 시대에 따라 새롭게 생산되는 ‘역사의 공간’으로 각 시대에 따라 그 성격을 달리 했으며, 산속 깊은 곳의 성(城)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와 종교, 권력과 통치, 생존과 삶이라는 사회현실과 끊임없이 부대끼던 살아있는 공간이었다. 북한산성은 2천 년 한국사의 바람, 그 영욕의 세월을 모두 안은 ‘역사의 성'이며, 어제의 유적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도 사회적 공간, 역사의 공간으로 새롭게 생산되고 있다. 전쟁과 정복, 정치와 종교, 권력과 통치, 생존과 삶 - 북한산성 이천 년의 바람 북한산과 북한산성, 한강이라는 전략 지역을 둘러싼 삼국시대 영토전쟁의 실상과 함께 개국의 산이자 전쟁과 정복의 땅이라는 역사 공간으로서의 북한산과 북한산성의 성격을 규명했다. 북한산과 한강 지역의 고대 성곽 특성과 삼국 간 성곽전투의 양상을 알아보고, 이 지역 성곽 전투의 결과가 삼국의 역사 향방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았다. 고려시대 북한산성 지역의 불사(佛事)와 승려의 활동, 왕가와 귀족의 북한산성 지역 사찰 후원이라는 역사 사실을 통해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결합 양상을 파악하고, 그 과정이 빚어낸 빛과 그늘을 보이고자 했다. 고려시대 호국불교의 이면에 숨은 통치전략의 한 단면도 살펴보았다. 조선시대 북한산성의 승군(僧軍) 활동 실상을 파악해 조선의 지배층이 불교 억압 일변도의 정책을 펼친 것이 아니라 체제유지와 국가방위의 필요에 따라 불교를 용인하고 때로는 포용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지배 권력과 체제 내 종교의 공존 배경을 검토했다. 조선 건국 후 북한산을 진산(鎭山)으로 삼아 한양에 도읍을 정하는 과정에서 건국의 주체세력이 보여주는 ‘공간 배치’를 통한 정치권력의 자기 정당화와 권위 형성의 상징화 기능을 살펴보았다. 조선의 지배세력은 궁궐을 도읍지의 한복판에 지어 왕권의 절대성과 신성함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도읍에서 한쪽으로 치우친 산(북악산과 북한산) 아래 위치시킴으로써 ‘궁궐-산-하늘’이 하나의 선상에 맞닿아 이어지게 했다. 하늘이라는 천체가 가진 신성성과 절대성이 산을 통해 내려오고 이는 다시 궁궐로 전해지니, 결국 하늘의 신성성과 절대성은 지상의 왕에게로 귀속된다. 사료와 현장 연구자료를 토대로 조선시대 숙종 대의 북한산성 성곽과 행궁, 군사시설물 현황을 파악하고 축성법과 성곽의 특성을 밝혔다. 북한산성 축성은 조선 후기 최대의 국가 토목 프로젝트였으며, 북한산성은 당대의 경제력이라는 토대 위에 최고의 토목기술과 과학지식, 여기에 지배층의 비전이 결합돼 이뤄낸 방위시설이자 당시 조선의 사회적 역량을 보여주는 증거물이기도 하다. 숙종 대의 북한산성 축성과정을 통해 북한산성 축성의 사회적·정치적·역사적 배경을 알아보고, 숙종 이후 영조와 정조를 거쳐 조선 멸망과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의 북한산성 관리 실상도 살폈다. 이와 함께, 숙종 대의 북한산성 축성을 둘러싼 37년 동안의 찬반논쟁을 통해 왕권과 신권의 다툼, 신권과 신권 간의 갈등이라는 권력투쟁의 장으로서의 성(城)을 조명했다. 왕가와 지배층 존속을 위한 피난지이자 전쟁에 대비한 최후의 보루로서의 항쟁지라는 북한산성의 역할 외에 통치 이데올로기와 지배체제 유지의 도구로 활용된 성(城)이라는 ‘공간의 정치 도구화’까지, 시대에 따른 북한산성의 다양한 얼굴을 드러내고자 했다. ■ 출판사 서평 북한산성이라는 ‘역사의 창’으로 보는 한국사의 한 흐름 『성과 왕국』 26장의 각 장은 독립된 에피소드와 내용으로 구성돼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고대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한국사의 한 흐름을 보여준다. 북한산성과 북한산이라는 특정 지역을 두고 벌어진 고대 영토전쟁의 실상과 그 결과가 가져온 역사의 향방, 북한산 지역의 사찰과 불교문화 융성이 보여주는 정치와 종교의 결합 과정과 그 결과, 북한산성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일어난 권력투쟁과 통치 이데올로기 구사의 한 단면, 북한산성에 관련된 역사 인물의 활동과 북한산성이라는 특정 역사의 공간을 통해 본 시대별 왕조의 흥망성쇠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한국사의 한 흐름을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북한산성 이야기 구성 북한산성 관련 역사 사건과 일화를 소재로 삼아 장(章)의 도

저자 소개

10대 후반에 옛 사건과 오래된 사람이 빚어내는 역사의 난장과 숨결에 매료됐다. 언젠가 그 역사를 탐구하며 지난 세상의 맥을 세우고 결을 채워나간 사람들을 만나보리라 했다. 30년이 넘는 시간을 돌아 이제야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지금도 풋풋하게 살아나는 성장기의 자기 다짐으로 마음을 다잡으며 지식, 이데올로기, 권력, 지배, 저항이라는 개념으로 역사를 되짚고 끝내는 이 시대의 사람들과 만나고 싶어한다.
20여 년 동안 방송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했다. 「KBS 일요 스페셜」(KBS), 「가난한 자들의 철학자, 얼 쇼리스의 희망수업」(KBS), 「700년 전의 약속」(MBC), 「역사 속으로의 여행」(EBS), 「이것이 미래교육이다」(Q채널) 등의 다큐멘터리를 구성하고 글을 썼다.
2013년에는 북한산성이라는 역사의 창을 통해 한국사를 재조명한 『성城과 왕국』을 출간해 공간의 정치도구화라는 주제를 천착했다. 2016년엔 조선 양반 관료의 지배전략과 통치 방식을 다룬 『두 얼굴의 조선사』(2016 세종도서 선정)를 펴냈다. 조선 지배층의 지식-권력에 의한 지배 체제와 ‘유교 도덕정치’의 이면에 숨겨진 ‘욕망의 계급정치’의 실상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 책 『모멸의 조선사』는 지배와 저항으로 보는 조선사 4부작 중 그 두 번째 펼침이다.


 

목차

목차
01. 프롤로그_ 북한산성, 나라와 운명을 같이 하다
북한산 1891년 - 영국의 젊은 탐험가, 북한산성에 오르다
북한산 1902년 - 일본 고건축학자, 북한산성과 행궁을 조사하다
북한산성 최후의 날
02. 북한산성, 숙종시대 최대의 국가 프로젝트
왕의 울음
38년 만의 거둥 - 숙종, 북한산성에 오르다
왕과 왕자, 스승과 제자
03. 북한산성은 어디에 있는가? 최초의 북한산성을 찾아서
숙종시대의 젊은 실학자, 북한산성에 오르다
성호 이익, 삼국시대의 북한산성을 말하다
북한산성에서 고려시대의 중흥산성을 보다
삼국시대의 북한산성은 어디에 있었는가?
04. 삼국시대의 성곽 전시장, 우리 성곽의 요람
온조(溫祚), 북한산에 올라 나라를 열다
한강과 북한산 지역을 점령하라
삼국시대의 성곽 전시장
05. 신라 진흥왕은 왜 북한산에 비를 세웠나?
추사(秋史) 김정희, 북한산순수비(北漢山巡狩碑)를 세상에 알리다
북한산에 새긴 진흥왕의 꿈
북진과 남진, 5~6세기 삼국쟁패기
패도정치(覇道政治)와 왕도정치(王道政治), 그리고 영토확장
06. 성곽전투의 시대
성곽전투의 나날
성곽축조 공병부대
공?수성(攻守城) 무기, 성곽전투 특수부대
성곽전투와 전략전술
우리 성곽, 무엇이 다른가?
07. 북한산의 바위와 암봉, 그리고 마애불(磨崖佛)
탄생
북한산의 바위부처, 마애불
고려시대엔 왜 마애불을 많이 조성했나?
마애불에 담긴 마음
08. 북한산 중흥산성, 불심(佛心)의 숲에 덮이다
신라의 젊은 승려, 북한산 석굴에서 승가 대사(僧伽大師)를 만나다
조선의 젊은 유학자, 북한산 석굴에서 노파를 보다
북한산 승가사 석굴, 고려 왕가의 불교 성지가 되다
고려 왕들이 북한산 석굴에 간 까닭은?
09. 북한산의 선승(禪僧), 고려 궁궐의 왕사(王師)
산성 암자의 달과 선승
공민왕, 선승 보우에게 길을 묻다
고려 후기 북한산의 사찰과 중흥산성
왕사와 선승, 권력과 종교
태고 보우, 한양 천도를 제안하다
10. 그들의 성(城)
북한산 아래에서
권문세족의 시대, 사대부들 도전장을 내다
문인(文人)과 무인(武人)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다시 북한산 아래에서
11. 북한산, 조선의 진산(鎭山)이 되다
조선의 도읍을 품은 산
태조는 왜 한양 천도를 서둘렀는가?
조선 왕궁과 한양 도성에 담은 뜻
미완의 혁명, 끝나지 않은 길
12. 북한산에 부는 바람
북한산 승려와 성균관 유생의 난투극
불교 억압과 용인(容認), 그리고 포용
조선의 북한산
13. 37년 대토론! 북한산성 축성논쟁
축성논쟁 다시 불붙다
숙종 이전의 북한산성 축성구상
숙종 시기의 북한산성 축성논쟁
37년 축성논쟁이 남긴 것
14. 환국(換局)과 숙종의 여인들
애증(愛憎)의 세월, 서오릉의 세 무덤
환국의 시대
15. 숙종의 조선, 영욕의 시대
도성방위체제를 강화하라
성(城)과 권력
북한산성 축성과 조선의 정치협의체
숙종시대의 명암
16. 북한산성 공병부대
숙종시대의 화두, 북한산성
군영(軍營)을 중심으로 축성인력을 조직하라
축성재원(築城財源)을 마련하라
북한산성 관리 시스템
삼군문 유영(三軍門留營), 승영(僧營), 경리청과 관성소
17. 지형을 활용하고 축성기술을 총동원하라
축성 설계
성곽 축조
18. 북한산성의 심장 - 행궁(行宮)
북한산성 묏자리 사건
북한산성의 작은 왕궁
숙종시대의 행궁 프로젝트
19. 장기 항전지와 방어진지를 구축하라
산성시설물 조성계획
군사시설과 거주시설
북한산성의 군창(軍倉), 무기창고와 식량창고
북한산성과 도성을 연결하라
20. 북한산성의 수도방위군 - 승병(僧兵)
북한산성 축성과 승병구금사건
북한산성에 승영사찰(僧營寺刹)을 건축하라
승영(僧營)의 탄생
북한산성 사찰은 왜 암문(暗門) 근처에 있나?
조선 후기 사회는 왜 승려를 필요로 했나?
21. 수도 한양을 사수하라 - 영조시대의 북한산성
북한산성의 왕과 왕세손
영조의 시대
영조의 북한산성, 왕세손의 북한산성
도성 수호의 배후기지 - 영조시대의 북한산성
22. 수도권 방위체제를 완성하라 - 정조시대의 북한산성
정조와 북한산성
조선 후기 정치·문화의 중흥기
수원 화성, 남한산성, 강화성, 그리고 북한산성
23. 북한산성 풍류(風流)
선비와 사대부의 북한산성
풍류 계곡
왕의 별궁, 백성의 집
수행도량과 승영사찰
동장대(東將臺)의 선비와 사대부들
24. 북한산성에 저무는 해
세도정치 시대의 북한산성
흥선대원군 시대의 북한산성
웅혼의 동장대(東將臺), 격랑에 묻히다
25. 사람들은 다시 그 성(城)에 대해 이야기했다
폐허의 유적지
북한산성 금괴전설
우리 시대의 북한산성
26. 에필로그_ 북한산성, 혹은 왕국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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