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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돌아가자

시리즈 : 시인생각 한국대표 명시선 100 [90]

이병기 저 | 시인생각 | 2013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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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8047610 / 88쪽 13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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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송강 이후에 솟아오른 가람 이병기의 대표시 ‘경건하고 진실한’ 어조로 참된 정서와 정신을 노래한 가람 이병기의 대표시 49편을 엮었다. 한국대표명시선100의 하나로 엮인 이번 시선집에는 1939년에 간행된 ‘가람시조집’을 중심으로 소소한 일상보다는 자연과 불교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명시들이 망라되어 있다. ‘송강 이후에 가람이 솟아오른 것이 아닐까 한다’라고 극찬하는 정지용 시인의 발문을 읽는 재미가 적지 않다. 감성의 섬세와 신경의 예리와 관조의 총혜를 갖춘 천성의 시인이 쓴 시를 감상하기 바란다. 가람시... 송강 이후에 솟아오른 가람 이병기의 대표시 ‘경건하고 진실한’ 어조로 참된 정서와 정신을 노래한 가람 이병기의 대표시 49편을 엮었다. 한국대표명시선100의 하나로 엮인 이번 시선집에는 1939년에 간행된 ‘가람시조집’을 중심으로 소소한 일상보다는 자연과 불교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명시들이 망라되어 있다. ‘송강 이후에 가람이 솟아오른 것이 아닐까 한다’라고 극찬하는 정지용 시인의 발문을 읽는 재미가 적지 않다. 감성의 섬세와 신경의 예리와 관조의 총혜를 갖춘 천성의 시인이 쓴 시를 감상하기 바란다. 가람시조집에서 그의 시조는 경건하고 진실함이 이를 읽는 이가 평생교과로 삼을만한 것이요, 전래시조에서 찾기 어려운 자연과 리얼리티에 철저한 점으로서는 차라리 근대적 시정신으로써 시조재건의 열렬한 의도에 경복케 하는 바가 있다. 이리하여 가람이 전통에서 출발하야 그와 결별하고 다시 시류에 초월한 시조중흥의 영예로운 위치에 선 것이다. - 정지용 가람시조집 (1947년.9.20) 발문에서 그리운 그날 1 병아리 어미 찾아 마당가에 뱅뱅 돌고 시렁 위 어린 누에 한잠을 자고 날 때 누나는 나를 데리고 뽕을 따러 나가오 누나는 뽕을 따고 집으로 돌아가도 금모래 은모래 쥐었다 놓았다 하고 나 혼자 밭머리 앉아 해 지는 줄 모르오 소나기 삼 형제가 차례로 지나가고 언덕 밑 옹달샘에 무지개다리 노면 선녀들 머리 감으러 내려옴을 바라오 뜰 저른 처마 안에 드는 해는 되우 길다 뜰에 시든 수국 그늘도 옅어지고 모이를 찾는 병아리 가다 발을 머문다 포도 익은 날에 벗을 불러 노랴더니 가득 일은 벌레 줄기마저 다 마르고 거미는 줄을 늘이고 나고 들고 하노라 나무는 담을 넘어 가지를 드리우다 뒤에 좁은 언덕 그늘이 먼여 들고 말매미 쓰르라미는 때로 와서 울어라

저자 소개

 저자이자 시조 시인이며 시조 부흥 운동을 주도한 시조 학자이자 국문학자였던 가람(嘉藍) 이병기(李秉岐)는 1891년 전북 익산에서 출생했다. 유교적인 가풍 속에서 자라난 그는 고향 사숙에서 한문을 수학했고 1906년 18세의 나이에 광산 김씨 집안의 수(洙)와 결혼했다. 1910년 전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한성사범학교를 입학한 이병기는 1912년 조선어 강습원에서 주시경 선생의 조선어 문법 강의를 듣기도 했다. 1913년 한성사범 졸업 후 남양, 전주제2, 여산공립보통학교의 훈도로서 교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고문헌을 수집하고 주석 작업을 하던 이병기는 1921년 권덕규, 임덕재 등과 조선어연구회를 발기하고 간사직을 맡아 조직을 이끌었다. 1926년 영도사에서 시조회를 발기해 민족 문학을 보급하는 데 앞장섰다. 1930년 이후 한글맞춤법통일단 제정위원과 조선어표준어사정위원으로 활동하다가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피검되었다. 1943년 기소유예로 출감한 이병기는 귀향해 농업에 종사했다. 해방 후 다시 상경해 군정무 편수관으로 피임되어 활동 중 1946년 서울대 문리과대학교수로 부임했고, 다음 해 단국대학, 신문학원, 예술대학에서, 1948년 동국대, 국민대, 숙명여대 등에서 후진을 양성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돌아가 전주 명륜대학, 전북전시연합대학 교수를 지내다 1952년 전북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장을 역임했다. 1956년 전북대학교에서 정년 퇴임을 맞이한 이후에도 중앙대, 서울대 등에서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썼다. 1957년엔 ≪우리말 큰사전≫이 간행되었으나 기념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뇌일혈이 일어나 이후 고향에서 요양했다. 학술원 공로상(1960), 전북대 명예문학박사학위(1961), 문화포상(1962) 등을 받았다. 10여 년을 병마와 싸우다 향년 78세인 1968년 고향 집 수우재(守愚齋)에서 숨을 거두었다.

목차

목차
1
별
냉이꽃
난초1
.
.
.
2
바람
풀벌레
우뢰
.
.
.
3
대성암
석굴암
송광사
.
.
.
4
파초
보리
고향으로 돌아가자
.
.
.
5
고서
그 방
박연폭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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