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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정신의 사람 김범부의 생각을 찾아서

김범부, 김정근 저 | 한울아카데미 | 201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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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6055896 / 232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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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전통을 바탕으로 민족정신을 세우고자 한 토종 사상가, 김범부
1897년에 태어나 1966년 세상을 떠난 김범부는 한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김동리의 문학적 토대를 마련해준 스승 같은 맏형이자, 당대의 천재 사상가로 이름난 전설적 인물이다. 동서양 철학에 능통하고, 모르는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박식했던 그를 가리켜 시인 서정주는 “하늘 밑에서는 제일로 밝던 머리”라 했다.잃었다 되찾은 나라를 재건해야 하는 격동기에 다른 이들이 서양만을 바라볼 때, 범부는 우리의 전통에서 민족정신을 찾고자 했다. 그리고 범부는 그가 나고 자란 경주 지방의 전통인 풍류도와 화랑정신에서 시작해 최제우의 동학사상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에 주목했다. 그 흐름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핏속에 흐르는 고갱이라고 본 것이다.

쉬운 언어로 되살아난 김범부의 글을 풍부한 해설과 함께 읽다
이 책은 그러한 범부 사상의 핵심을 보여주는 세 편의 문헌, 「국민윤리특강」, 「최제우론」, 「신라문화와 풍류정신」을 부산대학교 김정근 명예교수가 현대적 문체로 다시 풀어쓴 책이다. 범부는 안타깝게도 그 방대한 사상의 깊이에 비해 많은 글을 남기지 않았다. 글쓰기보다는 강연, 정치 활동 등 직접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데 치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그에 대한 풍문은 무수히 남았지만, 그의 말을 직접 전해주는 책은 많지 않다. 하지만 최근 범부연구회를 중심으로 그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 책 역시 그러한 작업의 일환이다. <풍류정신의 사람, 김범부의 생각을 찾아서>에는 범부의 글 세 편과 함께 범부의 삶과 사상에 대한 해설 역시 풍부하게 실려 있어, 이 책 한 권으로 베일에 가려진 천재 김범부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국민’이 실종된 시대, 공공성에 기초한 새로운 ‘국민윤리’를 주창하다
얼마 전 해외 조세피난처에서 한국인 명의의 페이퍼 컴퍼니가 대량으로 발견되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일었다. 당연히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고,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그들은, 놀랍게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법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었다. 우리 사회의 공공성, 특히 상류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얼마나 땅에 떨어졌는지를 보여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에 쓰인 김범부의 글 역시 바로 이러한 국민윤리가 실종된 세태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1950년 혹은 1951년 전쟁의 포화 속에서 기록된 문헌인 「국민윤리특강」에서 범부가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바로 국민윤리의 확립, 즉 공공성의 확립이다. 범부는 당시 그러한 세태의 원인을 우리 민족이 나라는 없고 민족만 있는 상태에서 오랫동안 생활해온 탓이라고 보고 있다. 35년간의 식민지 시기를 거친 우리 민족의 국민윤리를 새롭게 해야 함을 주장한 범부의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사실은, 이러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지난 반세기, 눈부신 경제적 성장을 이뤘음에도 우리는 아직까지 정신적으로는 큰 성장을 이루지 못한 것은 아닐까? 반세기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가 범부의 이야기에 다시 귀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전통문화, 화랑과 풍류도 속에 담긴 공공적 윤리의 회복, 이것이 바로 범부가 주장하는 바이다.

저자 소개

1897년에 경주에서 태어나 1966년에 세상을 떠났다. 일제 때는 사상범으로 몰려 많은 고초를 치렀다. 해인사 사건에 연루되어 1년여 동안 일제 경찰의 감방 신세를 졌다. 유불선에 두루 능했으며 동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일생을 야인정신으로 살면서 독서와 사색, 강의와 저술 활동을 했다. 민족재생의 동력을 찾기 위해 남들이 부러운 눈으로 서양을 바라볼 때,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에서 사상의 뿌리를 찾는 데 천착했다. 그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풍류정신, 화랑, 국민윤리, 국민운동, 새마을운동과 같은 과제에 몰입했다. 제2대 민의원(국회의원)을 지냈으며 계림대학 학장, 동방사상연구소 소장, 5월동지회 부회장(회장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花郞外史󰡕, 󰡔풍류정신󰡕, 󰡔정치철학특강󰡕, 󰡔凡父 金鼎卨 단편선󰡕이 있으며 그 밖에 「國民倫理特講」, 「花郞과 風流道」와 같은 강의 속기록이 남겨져 있다. 영남대학교 도서관에 범부문고가 설치되어 있으며, 범부연구회(회장 최재목, 선임연구원 정다운)를 중심으로 그의 사상에 대한 재해석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책 속에서

여기서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국민생활, 국가생활은 그만두고 세계적인 생활을 하면 어떠냐고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인으로 살 것을 예상하면 서로 다른 것이 섞여 있으면 더욱 좋은 것이고 국민적 통일, 국가적 통일과 같은 것은 없어져도 좋은 것이 아니겠느냐고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도저히 안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조화라는 것은 개성이 없는 데서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개성이 있은 연후에 조화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국민이고 어떤 민족이고 간에 개성이 있은 연후에 조화가 있는 것입니다. _ 50쪽

 

우리 자신의 국민윤리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전통을 천명하는 일입니다. 우선 전통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민족 고유의 전통이고, 둘째는 외래문화나 외래사상이 들어와서 뿌리를 내려 전통으로 화한 것입니다. 그럼 천명하는 순서는 고유의 것부터 먼저 하기로 합니다. 우리 고유의 전통을 대표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누구나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화랑정신입니다. _ 80~81쪽

 

국풍으로서 신도가 우리 문화의 근원인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고, 신라 건국 초기에 시조 혁거세가 신의 공덕을 입어 봉대왕국이 최초로 우리 땅에 세워졌다. 그래서 이 신도를 숭상하는 기풍이 세월을 따라 더욱 성해지고 세련되어 마침내 풍류도가 출현했다. 이것이 문화 면이나 정치 면에서 신라의 번영을 가져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 정신이 세운을 따라 점점 쇠미해지더니 마침내 마지막에는 ‘하느님’이란 말과 함께 낙오되어 흩어진 신앙 행태와 굿이니 도신이니 별신이니 하는 무당패의 호구지책으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수운 최제우가 나타나 ‘하느님’의 참 모습을 증언하고 강령의 위력을 새로이 천명하게 되니 실로 도를 잃은 지 천 년 만에 분명히 신도는 재생한 것이다. 이것은 정말 역사의 기적적 약동이다. _ 147쪽

 

그래서 근세의 중심문화를 과학정신으로 규정하는 것이 바로 과학의 정신인 것처럼, 고대의 그것을 규정하는 잣대가 따로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다름 아닌 과학정신인 것이다. 고대의 중심문화는 모름지기 종교에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이런 관찰 방법은 언제 어디서나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이런 원칙에서 신라문화를 살펴보기로 하자. 신라문화는 당연히 고대의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서 그것의 성격을 규명하려면 먼저 종교적인 측면에 착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_ 157쪽

 

풍류도의 성격을 규명하려면 먼저 ‘풍류’란 말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실로 세 가지 가르침을 포함”한다고 한 데서 이 ‘포함’이라는 두 글자를 쉽게 지나치면 안 된다. 이 ‘포함’ 두 글자를 잘못 해석하면 우리 문화사 전체가 비틀어질 우려가 있다. 이를테면 삼교를 조화, 집성, 절중, 혹은 통합했다고 할 경우에는 고유의 연원은 없고 다만 삼교를 집합한 것이 되고 만다. 그런데 ‘포함’이라고 했으니 말하자면 고유의 정신이 원래부터 삼교의 성격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풍류도는 유불선이 들어오기 이전의 정신으로서, 이미 삼교의 성격을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불선 이외의 요소, 즉 오직 풍류도만이 지니는 고유의 특색까지 가지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_ 165~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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