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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

육영수 저 | 돌베개 | 2013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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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199-553-2 / 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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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문화사적 관점으로 살펴본 프랑스혁명의 또 다른 얼굴 프랑스대혁명은 과연 여성, 흑인, 노예 등 역사적 소수자들에게도 혁명적이었을까?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 탈취 사건으로 불거진 프랑스?혁명은 근현대 혁명의 맏형 이자 ‘원조혁명’으로 불린다. 200년도 더 된 프랑스혁명을 다시 읽는 일은 ‘지금 여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 프랑스혁명의 문화사』는 이 물음에 답하고자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육영수 교수가 쓴 대중교양서다. 육영수 교수는 2010년 『책과 독서의 문화사』로 그해 ... 문화사적 관점으로 살펴본 프랑스혁명의 또 다른 얼굴 프랑스대혁명은 과연 여성, 흑인, 노예 등 역사적 소수자들에게도 혁명적이었을까?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 탈취 사건으로 불거진 프랑스혁명은 근현대 혁명의 맏형 이자 ‘원조혁명’으로 불린다. 200년도 더 된 프랑스혁명을 다시 읽는 일은 ‘지금 여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 프랑스혁명의 문화사』는 이 물음에 답하고자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육영수 교수가 쓴 대중교양서다. 육영수 교수는 2010년 『책과 독서의 문화사』로 그해 한국출판학술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중진 역사학자다. 프랑스혁명이야말로 상반된 두 해석 틀(마르크스주의 대 수정주의)이 상호 충돌하면서 역사해석을 더욱 풍부하고도 복잡하게 만든 대표적 사건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그간 학계의 지배적 이론이었던 정통(마르크스)주의적 해석에서 벗어나 수정주의적 해석에 기반을 두고 논의를 펼쳐나간다. 그러면서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한다. 혁명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정통주의적 시각과 달리 부정적 유산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수정주의적 시각으로 보면 프랑스혁명의 민낯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여성, 흑인 등 역사적 소수자의 눈으로 보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프랑스혁명은 없다는 게 저자의 논지다. “정답 없는 현재적 문젯거리를 항상 새롭게 제공해준다는 측면에서 프랑스혁명은 지적 모험가들이 탐험을 멈추지 말아야 할 미지의 엘도라도”라고 말하는 저자의 안내를 받으며 다시 읽는 프랑스혁명의 다양한 모습이 생동감 있게 전해진다. 프랑스혁명을 다룬 숱한 외국 저자들의 책과 달리 국내 저자의 순수 연구 성과물을 토대로 한 작업이므로 우리 독자들의 눈높이에 잘 맞춰 서술한 점이 돋보인다. 더불어 부록으로 실린 혁명기행문과 저자가 직접 찍은 다양한 컬러 사진들이 현장감을 더해준다. ▶ 혁명의 불임시대, ‘원조혁명’을 재발견하다 작년 말 국내에 개봉된 뮤지컬 영화 이 넉 달 동안 약 6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이른바 ‘레미제라블 현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당시 언론은 개봉 시기가 우연히 제18대 대통령 선거와 겹쳤고, 선거 결과에 실망했던 사람들이 이 영화에 매료되었다고 이 현상을 해석했다. 그러나 저자 육영수 교수는 “정말 야당 후보를 지지했던 48퍼센트의 사람들은 ‘배반당한 혁명’에 분노하며 바리케이드에서 스러진 순결한 젊은이들을 자신들과 동일시하며 ‘민중의 노래’를 따라 불렀을까? 연말연시의 분위기 속에서 극장을 찾았던 많은 관객들은 혹시 ‘혁명과 진보’가 아니라 ‘사랑과 화해’의 메시지에 더 많은 감동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며 의구심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많은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것은 바리케이드 전투가 아니라 장발장-팡틴느-미리엘 주교가 ‘하느님의 품 안에서’ 재회하는 피날레였을지도 모른다. 성탄절인 12월 25일에 개봉 이후 가장 높은 극장 점유율 77.7퍼센트를 기록하면서 35만 5,800여 명이 을 관람했다는 통계자료가 이런 짐작을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반짝 나타난 ‘레미제라블 신드롬’을 2012년 대선 결과에 대한 자기치유 과정이라고 ‘좌파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오히려 ‘레미제라블 대박현상’은 여당 후보가 당선될 수밖에 없었던 지금 이 땅에서의 이데올로기적 인구분포의 실체와 그 한계를 반영하는 대중문화 현상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라는 비판적 의견을 제시한다. ‘레미제라블 현상’은 자연스럽게 프랑스혁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15년 넘게 프랑스혁명을 연구해온 저자는 “혁명은 되지 않고 방만 바꾸어야”(김수영, 「그 방을 생각하며」) 하는 이 시대를 ‘혁명의 불임시대’로 진단한다. 1789년 ‘원조혁명’에서 20세기 마지막 혁명인 ‘68혁명’ 이후 우리는 혁명의 불임不姙시대에 살고 있다. 소비가 생산을 주도하고, 경제가 정치를 대리하며, 부자되기가 ‘분노하라’에 우선하는 소위 후기 산업정보사회 혹은 국가·법인 자본주의체제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잠재적 혁명계층으로 기대를 모았던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열되고, 중산층은 내 집 마련과 자녀교육에 허덕이고, 혁명의 아방가르드 역할을 자임했던 지식인들은 ‘닥치고 논문쓰기’에 고립되고, ‘지속가능한 딴따라짓하기’를 꿈꾸는 예술가들은 ‘밤샘 알바’로 급진적 상상력을 팔아먹으며, ‘아프니까’ 대학생들은 예비 실업이 순전히 “내 탓이요”라며 자기 가슴을 찢는다. 지난 반세기를 지배했던 “하면 된다!”는 함성에 깜짝 놀라 “안 돼!” 정신에 탯줄을 감고 있는 혁명이 날마다 낙태하는 풍경이다. (233쪽) 이제 혁명 혹은 혁명정신은 구시대의 산물일 뿐인가. 저자에 따르면 ‘박제화된 혁명’은 가도 저항의 기억은 되살아난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현실사회주의의 실패를 선언한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수많은 저항의 백가쟁명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1789년 프랑스혁명 발발 200년 후에야 마침내 ‘혁명의 교리문답’의 따분한 책을 덮고, 지역적이면서도 세계적이며 사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저항의 춘추전국시대가 개막되었다. 새로운 제국의 네트워크 권력의 안팎이 없듯이, ‘전 지구적 시민권’과 ‘사회적 임금’을 쟁취하기 위한 우리의 저항은 국경의 경계를 모른다. 아이티 흑인 노예들이 따라 불렀던 혁명가요 ‘라 마르세예즈’는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과 튀니지의 재스민혁명으로 메아리친다. 그리고 프랑스혁명을 소재로 한 흘러간 영화는 뮤지컬 에서 민중의 노래로, 군사독재 시절을 고발하는 극영화 과 으로 변주된다. 언뜻 지지부진해 보여도 혁명의 유전자는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며 계속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아버지 세대가 숨 가쁘게 달음박질쳤던 4·19혁명과 그 아들딸들이 계승했던 1987년 6월 항쟁의 기억은 정녕 5·16 군사독재 망령의 부활과 신자유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졌는가?” 하는 물음을 곱씹어보기 위해 ‘원조혁명’으로 손꼽히는 프랑스대혁명의 성격과 역사적 유산을 세계사적 차원에서 재발견해야 할 중요한 순간에 직면했다고 말한다. 어리석게 혁명의 추억에 더는 매달리지 않기 위해 원조혁명의 앞뒤와 안팎을 재점검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프랑스혁명의 성격에 대한 반대해석과 역사인물 평가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편 가르기에 정비례해, 과거를 읽는 우리 시각은 더욱 예민하고 비판적으로 성숙한다. 그리고 혁명에 대한 사학사적 시시비비는 우리에게 과거는 숭배하거나 미워해야 할 무덤이 아니라 ‘끊임없이 다시 만들어지는 그 무엇’이라는 교훈을 가르친다.” 그리하여 “프랑스혁명에 대한 추억의 껍데기는 가고 저항의 알맹이는 오롯이 나의 것”이 된다. 공장 바깥에 있는 노동자, 학교 바깥에 있는 학생, 감옥 바깥에서 생산되는 품행방정 남녀들, 국가 바깥에 있는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 이들 모두에게 혁명은 실패나 성공으로 마감되는 권력다툼이 아니라 계속되어야 할 열정 그 자체다. 혁명은 가고 다시 오지 않을지라도, 거리에서 우리가 함께 부르던 노래와 연대감은 남는다. 안 되는 혁명에 쫓겨 다른 방에 갇혀도 또다시 녹슨 펜에 침을 묻혀 자유와 평등의 이름을 벽에 아로새겨야 한다. (236~237쪽) 이것이 바로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 혁명이란 장기지속적이며 일상적으로 발생·진행·모색되는 미완의 프로젝트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록으로 프랑스 혁명기행문이 날짜순으로 담겨 있다. 1부 ‘우리가 알고 있던 프랑스혁명은 없다’에서는 서양·백인·남성

저자 소개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다니다가 서울로 유학 와 여의도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한양대학교와 미국 콜로라도 대학교(콜로라도스프링스)에서 영문학과 역사학을 각각 공부했다. 워싱턴 대학교(시애틀) 대학원에 진학해 근현대 유럽 지성사를 전공하고 프랑스혁명, 영국 현대사, 한국 근세사 등을 부전공했다. 19세기 프랑스 사회사상학파 생시몽주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중앙대학교 역사학과와 동 대학원 문화연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미국 코넬 대학교 방문학자와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교 방문교수를 지냈다. 한국서양사학회 총무이사를 거쳐 현재(2012∼2013) 문화사학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서양 근현대 사상사와 프랑스 현대사 외에 역사이론과 방법론 분야의 논문을 주로 발표해왔다. 
지은 책으로는 《책과 독서의 문화사: 활자인간의 탄생과 근대의 재발견》(2010)이 있으며, 엮은 책으로는 《치유의 역사학으로: 라카프라의 정신분석학적 역사학》(2008),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2013)있다. 
최근에는 국가·민족주의라는 중심과 경계를 해체하려는 관점에서 근현대 서양과 한국의 ‘뒤엉킨 역사’를 읽고 다시 쓰는 작업에 관심을 쏟고 있다. 시카고세계박람회(1893)와 파리세계박람회(1900)를 무대로 조선과 서양 문명이 충돌·조우한 자취를 추적한 연작이 ‘근대화’에 대한 재성찰을 모색했다면, 북한 사학사를 비평하고 [력사사전]을 분석한 일련의 논문들은 20세기 후반을 지배했던 냉전체제의 안팎을 세계사적 차원에서 재해석했다. 지금은 ‘트랜스내셔널 지성사 다시 쓰기: 프리드리히 니체의 한국에서의 삶’이라는 연구주제를 진행하고 있다. 

목차

목차
머리말 11
프롤로그 ‘레미제라블’: 혁명의 배반, 또 다른 시작 17
1부 우리가 알고 있던 프랑스혁명은 없다
1 여성을 위한 프랑스혁명은 없다 37
2 노동과 복지를 위한 프랑스혁명은 없다: 다시 읽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52
3 유색인을 위한 프랑스혁명은 없다: ‘흰 제국’과 ‘검은 인권’ 68
2부 영상으로 서술한 프랑스혁명
4 영화 에 투영된 사학사적 논쟁 읽기 87
5 미쳤거나 사랑에 빠졌거나: 프랑스혁명의 진정한 여성 영웅은 없다 104
6 군인 나폴레옹, 정치인 보나파르트로 변신하기: 아벨 강스의 125
3부 프랑스혁명의 문화적 전환
7 문화적 사건으로서의 프랑스혁명: 담론, 축제, 기념물 149
8 프랑스혁명의 일상정치문화사: 린 헌트의 역사세계 168
9 바스티유 감옥과 ‘라 마르세예즈’의 변천사 187
10 프랑스혁명과 민중공연문화의 ‘문명화과정’ 206
에필로그 저항의 기억, 연대의 부활 233
부록 프랑스혁명의 기억을 찾아 천릿길 239
후기 274 | 미주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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