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한비자 2/5

한비 저 | 임동석 역 | 동서문화사 | 2013년 07월

북트리

정가
$30.00
판매가
$16.5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33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8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88949708225 / 480쪽 152 x 223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 30,000
  • 22,500
  • 16,200
  • 26,100

책 소개

출판사 리뷰

‘인간속성을 꿰뚫어 천하경영 방법’의 천재 한비
영욕무상을 초월 신출귀몰 통치자로 우뚝 서는 길이 있다!
시대를 뛰어넘는 군주론과 만물의 원리를 논한다


반면교사 지혜, 처세치도 천재 한비(韓非)를 보라!
사람은 이익이 없으면 행동하지 않는다. 이해타산으로 맺어진 임금과 신하 사이에 인간적 호소는 무의미하며, 지배자의 은덕만으로는 백성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그러니 법을 엄하게 세워 명분으로 삼고 위세와 권력, 나아가 생사여탈권까지 집행할 칼자루를 쥔다. 통치하며 공적을 이룬 자에게는 반드시 상을 내린다. 그리하면 군주는 그 자리를 잃지 않는 법이다.

한비(?B.C.280~B.C.233)는 유물주의(唯物主義) 철학자이며 순자의 성악설과 노장의 무위자연설을 받아들여 법가(法家)의 학설을 대성하였다. 그는 전국시대 말기에 법치를 주장했던 관중(管仲), 자산(子産), 오기(吳起), 상앙(商?) 등의 형명법술(刑名法術) 이론에 심취하였다. 초(楚)나라에서 그 무렵 큰 스승이었던 순자(荀卿)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뒷날 진나라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는 이사(李斯)와 동문수학했다.
한비는 한왕(韓王)에게 법치를 실행하여 부국강병을 이룰 것을 권했다. 그는 말더듬이(口吃)로써 언담에는 자신이 없었던 탓에 글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의 글 <고분(孤憤)>, <오두(五?)>, <내저설(內儲說)>, <외저설(外儲說)>, <세림(說林)>, <세난(說難)> 등은 세상에 널리 퍼져나갔다.
진왕(秦王) 정(政, 뒤의 진시황)은 그의 글을 읽고 “이 글을 쓴 사람과 교유할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으리라!”(嗟乎, 寡人得見此人與之游, 死不恨矣! ≪史記≫)라고 자신의 뜻과 일치함을 감탄했다. 이사가 그의 이름이 한비라고 일러주었다.
뒷날 진왕이 한나라를 공격했을 때, 한왕은 한비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파견하였다. 한비는 한나라는 보존하고 대신 조나라를 치는 것이 진나라에 유리함을 설득했다. 진왕은 한비의 계책을 따를 참이었다. 그런데 한비를 시기한 이사가 모함하는 바람에 결국 진왕도 그를 법관에게 넘기고 말았다. 이사의 협박에 견디다 못한 한비는 운양(雲陽, 지금의 陝西 淳化縣) 옥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뒤에 진왕이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그를 다시 찾았을 때 한비는 이미 죽은 뒤였다. 이상의 내용은 ≪史記≫ 韓非子傳(老莊申韓列傳)에 자세히 실려 있다.

성악설 바탕으로 법치사상을 펼치다!
한비는 ‘인간을 부리는(驅使) 방법’에 있어서 천재였다. 그 당시 ‘어쩌면 이런 생각을 했을까’하고 그 발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이다. 더구나 잔인(殘忍)의 관점에서 통치를 보는 눈은 지금과 같은 법치 시대가 결국 출발이 그런 것이었나 할 정도로 두려움까지 앞선다. 말더듬이 한비는 그러한 사상을 언변으로 하기 어렵기에 글쓰기에 매달렸을 것이다. 그 글은 정말 대단하며 그리고 충격적이다.
우선 ‘성악설’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익이 없이는 그 어떤 일도 시킬 수 없으며, 사람은 이익만을 위해 일을 한다는 대전제는 지금 이 시대의 일면을 보는 것 같다. 이해타산으로 맺어진 임금과 신하 사이에 인간적 호소 따위는 무의미하며, 백성이 단지 임금의 은덕에 이끌려 따르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힘과 칼, 즉 공포가 필요한 것이다. 폭군 혹은 악인의 오명을 피하기 위해 법이라는 거창한 그물을 만들어 명분으로 삼되 위세와 권력, 나아가 생사여탈권을 그대로 집행할 수 있는 칼자루까지 쥐고 통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자신의 말대로 움직였고 나아가 그로 인해 공적을 이루었다면 반드시 상을 내려야 하며 이 두 가지가 병행될 때만이 군주는 그 자리를 잃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피터 드러커도 경탄한 인간경영 명료한 놀라운 분석!
뒷사람들은 “도가, 황로술, 법가는 모두가 같은 뿌리로서 한결같이 ‘인(忍)’이라는 대원칙에서 출발하였으나 그 ‘인’의 유별(流別)이 다를 뿐이다. 그리하여 ‘인내(忍耐)’의 길을 터득한 자들은 노장(老莊)의 학술로 발전하였고, ‘은인(隱忍)’의 방법을 터득한 자들은 황로술의 일파로 흘렀으며, ‘잔인(殘忍)’으로 변질된 원리를 터득한 자들은 바로 한비와 같은 법술(法術)로 변화하였다”고 하였다. 법가의 유가나 묵가는 마치 전쟁터에서 적군에게 인의를 부르짖는 것과 같이 부질없으며,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어떤 술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한비는 아주 명료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논리체계를 군주의 통치에 두어 그 때문에 그의 이론을 ‘군주론’이라 한다. 그러나 군주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만물의 원리를 그에 맞추어보면 어디에나 맞다. 다만 ‘적고 사소한 은혜(少恩)’라는 것에 대해 당송 이후 많은 문인, 나아가 유가를 신봉하는 이들이 격렬하게 비판하고 나섰지만 이는 단장취의(斷章取義)한 것일 뿐이다. 시대가 변하면 일을 처리하는 방법도 달라야 한다. 전국시대 그 난마 같은 정세, 참혹한 생존 속에 어찌 인의도덕만 외우며 서슬 퍼런 칼날 앞에 꿇어앉아만 있을 수 있겠는가?
물론 파괴적인 삶만을 강요한 것은 아니다. 뒤집어보면 해결책이 있다는 주장이다. 뒤집어보려고도 하지 않는 세태를 안타까워한 것이리라.
자! 이제 한비의 논리가 어떤 것인지 차분히 일독해 보기를 권한다. 반면교사의 지혜를 얻을 수도 있으며 또한 처세의 바른 길을 터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전은 큰 저수지와 같다. 그 물을 사용하는 자, 그리고 그 물을 뜨러 나선 자의 그릇의 크기, 나아가 왜 그 물이 필요한 지에 따라 얻는 소득과 효용, 떠가는 양이 저마다 다르리라.

풍부한 자료, 원저에 충실한 한국최초 완역판 나오다!
이 책은 ≪韓非子集解≫(王先愼, 新編諸子集成本, 中華書局 2010 北京)와 ≪韓非子集釋≫(陳奇猷. 河洛圖書出版社 1974 臺北)을 저본으로 하여 전체를 완역한 것이다. 현대 백화어 역주본도 수집하여 참고하였으며, 특히 ≪韓非子今註今譯≫(邵增樺 臺灣商務印書館 1995 臺北)과 ≪韓非子全譯≫(張覺 貴州人民出版社 1992 貴陽) 등은 구체적인 주석이 세밀하여 번역에 많은 참고가 되었음을 밝힌다.
읽고 이해하기 쉽도록 역자가 임의로 총 762장으로 분장하고 매 장마다 제목을 달았다. 또한 각 편별로 전면에 간단한 해제를 실어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옛 문건에 수없이 언급되거나 널리 알려진 고사.문장.내용 등은 여러 사서(史書) 및 제자서(諸子書), 유서(類書) 등에서 일일이 찾아내어 해당 부분 말미 .참고 및 관련 자료? 난에 실어 대조와 연구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고, 부록으로 관련 자료를 가능한 한 모두 찾아 실어 연구에 도움을 삼을 수 있도록 하였다.

저자 소개

(韓非, ?∼기원전 233년)


중국 전국시대 말기 한(韓)나라의 왕족 출신.
형명(刑名)과 법술(法術)을 익히고 황로학(黃老學)을 받아들여 법가의 학문을 집대성하여 『한비자(韓非子)』를 남겼다. 그러나 뛰어난 저술을 남긴 것과 달리, 심한 말더듬이였다고 한다. 이사(李斯)와 함께 순자(荀子) 밑에서 학문을 익힌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유가의 학문을 줄곧 비판했음에도 그의 저술 속에 유가적 요소도 배어 있는 까닭도 그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한비는 자신의 학문을 조국인 한나라에서 정치를 통해 펴려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매우 낙담했다. 그러다 기원전 233년에 진(秦)나라가 한나라를 공격하자 한나라 왕의 요청에 따라 진나라에 사신으로 갔는데, 조국의 멸망을 막지 못하고 도리어 음모에 걸려 독약을 먹고 자살해야 했다.

역자 소개

1949년 경북 영주 출생. 서울교육대학, 국제대학교, 건국대학교대학원 졸업. 한학자 우전雨田 신호열辛鎬烈 선생에게 한학을 배움. 국립대만사범대학國立臺灣師範大學 국문연구소國文硏究所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중화민국 국가문학박사(1983). 건국대학교 교수․문과대학장 역임.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대학교 등 대학원 강의. 한국중국언어학회, 중국어문학연구회, 한국중어중문학회 회장 역임.
저서에 ≪조선역학고≫(中文) ≪중국학술개론≫ ≪중한대비어문론≫. 편역서에 ≪수레를 밀기 위해 내린 사람들≫ ≪율곡선생시문선≫. 역서에 ≪한어음운학강의漢語音韻學講義≫ ≪광개토왕비연구廣開土王碑硏究≫ ≪동북민족원류東北民族源流≫ ≪용봉문화원류龍鳳文化源流≫ ≪논어심득論語心得≫ <한어쌍성첩운연구漢語雙聲疊韻硏究> 등 학술논문 50여 편.

목차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