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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6827715 / 376쪽 150 x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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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서] 트랜스라틴 총서 [20]
반디앤루니스 리뷰
<트랜스라틴 총서> 11권. 라틴아메리카 연구의 세계적 석학 존 베벌리의 대표적인 저서이자, 1992년 미국에서 결성된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 그룹’의 10년간의 연구 결과물이다. 20세기 들어 전지구가 신자유주의적 흐름으로 재편되고 있는 와중에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사회주의 정부를 표방하는 좌파 정치 세력들이 속속 집권했다. 국가에 대한 신뢰가 상실된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라틴아메리카의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정권들이 민중 혹은 민족 정치의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라틴아메리카의 ‘민중’이란 누구일까? 혼혈의 역사가 오래된 라틴아메리카에서 ‘민족’은 어떤 의미일까? 이러한 물음들과 더불어, 라틴아메리카가 진정한 변화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식민주의와 엘리트주의를 동시에 극복해야 한다는 역사적 필요성을 느낀 여러 학자들은, 주로 남아시아 역사가들에 의해 발전되어 온 하위주체연구라는 새로운 학문적 틀을 가져와 라틴아메리카에 접목시켰고, 특히 여기에 문학적 ‘재현’의 문제를 결합시켜 주요한 연구 쟁점으로 삼았다.
하위주체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문학이 오히려 지배 엘리트 권력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문제의식하에, 베벌리는 라틴아메리카의 농민봉기와 그것을 기록한 문학의 관계를 분석하며 하위주체성에 대해 성찰한다. 하위주체는 지식인에 의한 재현의 대상이 아닌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을까? 다문화적 차이가 심화되는 세계화 시대에 하위주체 또는 민중의 정치적 연대는 어떤 정체성을 바탕으로 가능할까? 문학의 한계, 좌파 정치 운동의 한계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학계의 권위와 문학의 권위 등 모든 헤게모니를 해체하고 라틴아메리카의 진정한 민주화와 변화를 위한 구체적·실천적 전략을 제시하고자 하는 베벌리의 급진적인 문화정치 이론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트랜스라틴 총서』 11권. 라틴아메리카 연구의 세계적 석학 존 베벌리의 대표적인 저서이자, 1992년 미국에서 결성된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 그룹’의 10년간의 연구 결과물이다. 20세기 들어 전지구가 신자유주의적 흐름으로 재편되고 있는 와중에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사회주의 정부를 표방하는 좌파 정치 세력들이 속속 집권했다. 국가에 대한 신뢰가 상실된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라틴아메리카의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정권들이 민중 혹은 민족 정치의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라틴아메리카의 ‘민중’이... 『트랜스라틴 총서』 11권. 라틴아메리카 연구의 세계적 석학 존 베벌리의 대표적인 저서이자, 1992년 미국에서 결성된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 그룹’의 10년간의 연구 결과물이다. 20세기 들어 전지구가 신자유주의적 흐름으로 재편되고 있는 와중에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사회주의 정부를 표방하는 좌파 정치 세력들이 속속 집권했다. 국가에 대한 신뢰가 상실된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라틴아메리카의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정권들이 민중 혹은 민족 정치의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라틴아메리카의 ‘민중’이란 누구일까? 혼혈의 역사가 오래된 라틴아메리카에서 ‘민족’은 어떤 의미일까? 이러한 물음들과 더불어, 라틴아메리카가 진정한 변화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식민주의와 엘리트주의를 동시에 극복해야 한다는 역사적 필요성을 느낀 여러 학자들은, 주로 남아시아 역사가들에 의해 발전되어 온 하위주체연구라는 새로운 학문적 틀을 가져와 라틴아메리카에 접목시켰고, 특히 여기에 문학적 ‘재현’의 문제를 결합시켜 주요한 연구 쟁점으로 삼았다. 하위주체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문학이 오히려 지배 엘리트 권력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문제의식하에, 베벌리는 라틴아메리카의 농민봉기와 그것을 기록한 문학의 관계를 분석하며 하위주체성에 대해 성찰한다. 하위주체는 지식인에 의한 재현의 대상이 아닌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을까? 다문화적 차이가 심화되는 세계화 시대에 하위주체 또는 민중의 정치적 연대는 어떤 정체성을 바탕으로 가능할까? 문학의 한계, 좌파 정치 운동의 한계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학계의 권위와 문학의 권위 등 모든 헤게모니를 해체하고 라틴아메리카의 진정한 민주화와 변화를 위한 구체적·실천적 전략을 제시하고자 하는 베벌리의 급진적인 문화정치 이론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문화연구의 새로운 좌파 정치학 기획! 하위주체성에 대한 문학적·정치적 논쟁을 통해 연대의 가능성을 찾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인’이 되면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다. 그 말은 다른 사람들의 말보다 더 크고, 무겁고,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릴 수 있다. 그것은 ‘권력’이 된다. 지식인은 그 권력을 사용하여 자기를 말할 수도 있지만, “누구에 대해” 말할 수도 있고, “누구를 위해” 말할 수도 있다. 자기를 말함으로써 자기를 세울 수도 있지만, 다른 누구를 말함으로써 자기를 더 높이 세우는 것도 가능하다. 하위주체연구는 권력의 그러한 측면에 주목한다. 1992년 미국에서 결성된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 그룹(Latin American Subaltern Studies Group)은 신자유주의의 ‘대홍수’ 속에서 라틴아메리카 좌파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으로, 남아시아에서 발전된 하위주체연구라는 학문적 틀을 가져왔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심화될수록 이분법적 갈등과 적대주의가 해소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삶으로 내몰리고 있다. 많은 좌파 지식인들이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에 ‘대하여’ 혹은 이들을 ‘위하여’ 말을 하지만, 그러한 학계의 말들이 오히려 하위주체(subaltern)를 ‘재-하위주체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위주체연구는 끊임없이 탈중심화를 추구하고 주변부를 주목하는 운동성을 지닌다. 이처럼 끊임없이 중심부의 헤게모니를 해체하는 ‘부정’(negation)성이, 시민사회운동과도 구별되는 ‘하위주체성’(subalternity)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위주체연구가 남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등 제3세계 국가들에서 탈식민·탈근대 이론과 함께 발전해 온 이유일 것이다. 국내에 라틴아메리카 담론을 꾸준히 소개해 온 『트랜스라틴 총서』(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기획·그린비출판사 발행)의 열한 번째 권으로 출간된 『하위주체성과 재현: 라틴아메리카 문화이론 논쟁』(Subalternity and Representation)은 아카데미 권력의 이러한 속성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좌파 정치학의 새로운 기획을 담은 저작이다. 지은이 존 베벌리(John Beverley)는 미국 내 라틴아메리카 문학 및 문화연구의 대가로 평가받으며,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 그룹의 창립을 주도한 인물이다. 베벌리는 이 책에서 하위주체성에 관한 다양한 논쟁들을 짚고, 앙헬 라마(?ngel Rama), 네스토르 가르시아 칸클리니(N?stor Garc?a Canclini) 등 라틴아메리카 연구자들의 문화이론의 측면에서 기존 학계와 지식인들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해체하며, 라틴아메리카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진보적 운동의 방향성을 모색한다. 이처럼 이 책은 문학의 한계를 급진정치와 결합하여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 온 베벌리의 문화적 성찰과 인식론적 기획을 담고 있으며,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 그룹의 10년간의 연구 성과와 노력을 결산하는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중심부 권력을 해체하다 : 서구, 남성, 지식인의 ‘재현’을 넘어! “하위주체연구는 권력을 다룬다. 권력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것을 획득해 가는 이와 잃어 가는 이들을 연구한다. 권력은 또한 재현과 연결되어 있다. 인식론적 권위를 가진 혹은 헤게모니를 강화할 수 있는 재현과, 권위나 헤게모니를 갖지 못한 재현으로 구별되는 것처럼 말이다.”(본문 43쪽) 하위주체연구는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 라나지트 구하(Ranajit Guha) 등 남아시아의 역사가들에 의해 발전되어 왔다. 기존의 ‘공식적’ 역사에서 역사의 주체로 대접받지 못하고 지워져 있던 하위주체가 그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학문적 기틀을 마련하는 작업이었다. 베벌리와 라틴아메리카 하위주체연구 그룹은 이러한 남아시아 하위주체연구 그룹의 문제제기와 성과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여기에 ‘재현’의 문제를 결합시켰는데, 재현의 과정에서 오히려 고착화되는 권력 관계의 문제는 이들 문제의식의 중심축 역할을 한다. 일찍이 스피박은 「하위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Can the Subaltern Speak?)라는 논문에서 ‘엘리트 지식인이 하위주체를 위하여 쓰는 행위가 실제로는 하위주체에 대하여 쓰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식인의 선한 의도조차 그들의 권력 강화로 이어지고, 하위주체는 끝내 재현의 대상으로 머무를 뿐이라는 스피박의 비판은 날카롭지만 얼핏 냉소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그녀가 그러한 비판을 통해 정말로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재현의 ‘불가능성’이 아니라, ‘윤리적’ 관계의 필요성이었다. 하위주체연구가 나아가야 할 지점은, 하위주체의 목소리가 존재함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서 재현에 담긴 모순과 위험성을 깨닫고, 그들의 목소리와 지식인이 매개되는 방식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 문학비평가의 급진적 문학 비판-‘문학’에 반대하여 ‘증언서사’로! 하위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 베벌리는 이 문제의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베벌리에게 하위주체연구는 단지 윤리적 성찰이 아닌, 구조를 뒤엎는 정치적 기획이다. 베벌리는 침묵당한 하위주체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것이 라틴아메리카의 진정한 민주화를 이룩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에 대해 그의 전공인 문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그러나 사실 문학이야말로 하위주체와 가장 거리가 먼 고급문화 장르이기 때문에, 문학비평가 출신으로서 베벌리는 가장 급진적으로 문학을 비판하고 구체적·실천적인 대안을 모색하게
농민봉기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은 아마도 — 글에 반대되는 — 말이다. 구하는 『기본적 성격』에서 인도 농촌(혹은 넓게는 안데스 고원)과 같이 주요 통신수단이 글이 아닌 말인 사회에서는 전달은 주로 소문에 의지한다고 했다. ‘뉴스’와는 달리 소문은 익명, 과도기적, 즉흥적이라는 역동성의 원리에 의해 작동한다. 그것은 단지 말이지만 전달 방법과 그것이 수행하는 특정 진실-효과를 위해서는 구술성과 마을, 장터 혹은 시장, 여성들의 네트워크라는 공동체적 구조에 의존한다. 인도의 농민봉기를 연구한 19세기 역사가들은, “시장에서의 이야기는 상당한 양의 유용한 지식을 얻는 고유한 형태의 수단”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구하가 인정하듯이 “소문이라는 공공적 담론과 봉기의 민중적 행위 사이에 접점이 존재한다. 즉, 민중의 공통된 의지로부터 나오는 말과 행위의 아귀가 들어맞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 148~149쪽)
나는 『나, 리고베르타 멘추』가 지난 이십 년 동안 라틴아메리카에서 생산된 가장 중요한 문학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스탠퍼드와 같은 엘리트 대학에서 다문화 시민의식을 위한 커리큘럼에 포함되는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드 소우자가 느끼듯이 아카데미에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근본적인 타자성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나는 스탠퍼드와 내가 가르치는 피츠버그 대학생들이(비록 계급적 특혜와 지적 권위가 약간 다른 층위에 위치하고는 있지만) 『나, 리고베르타 멘추』 같은 텍스트를 읽을 때, 측은함을 느끼기보다는 불편함을 느끼기를 바란다. 나는 그들이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정체성의 한 부분으로 이 텍스트를 받아들이기보다는, 하위주체가 결코 문학이나 대학 내에서 제대로 재현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기 바란다. (본문 168~169쪽)
진실에 대한 보편적인 잣대가 없다면, 진실에 대한 요구는 항상 맥락에 의존한다. 사람들이 세계를 어떻게 다르게 이해하고, 근본적으로 사회적 불평등, 착취, 억압의 상황에서 생기는 역사적 기억을 어떤 식으로 구성하는가와 깊은 관계가 있다. 『나, 리고베르타 멘추』와 같은 증언서사에 대해 진실을 요구하는 것은 하위주체의 경험을 육화함으로써 특정한 종류의 인식론적 권위를 형성하는 데 권위를 부여한다. (본문 180~181쪽)
시민사회 범주를 특권화시키는 것이 국가가 사회를 조직하는 능력, 즉 자본주의에서나 사회주의의 형태로 근대성을 생산하려는 능력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환멸에 연결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행위자는 국가에서, 시민사회에서 자치적으로 작동하는 세력에게로 이동한다. 즉, 사적영역에서의 ‘문화’로 그리고 ‘시장’으로 이동함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시민사회-국가라는 이분법의 우익적 절합은 신자유주의이고, 그 좌파적 결합은 신사회운동이나 푸코주의적 미시정치학으로 실체화된다. (본문 250~251쪽)
목차
한국어판 서문
감사의 글
서문
1장 거꾸로 쓰기
: 하위주체와 아카데미 지식의 한계
2장 문화횡단과 하위주체성
: ‘지식인 도시’와 투팍 아마루 봉기
3장 우리들의 리고베르타?
: 『나, 리고베르타 멘추』, 문화적 권위와 하위주체 행위자의 문제
4장 혼종이냐 이분법이냐?
: 하위주체와 문화연구에서 다루는 ‘민중’의 범주에 관하여
5장 시민사회, 혼종성 그리고 “‘문화연구’의 정치성”
: 가르시아 칸클리니에 관하여
6장 영토성, 다문화주의 그리고 헤게모니
: 민족의 문제
옮긴이 해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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