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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 지식 여행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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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방문한 작가의 집 어니스트 헤밍웨이 마크 트웨인 월트 휘트먼 에드거 앨런 포 헨리 데이비드 소로 루이자 메이 올컷 에밀리 디킨슨 잭 런던 찰스 체스넛 토머스 울프 폴 로렌스 던바 랭?스턴 휴스 ▶ 메디치 ‘지식여행자 시리즈’의 제 1권 겉치레를 벗은 ‘현대 미국 문학’의 속살을 보다 ‘작가의 집’을 소재로, 창작 공간을 우아한 사진에 담고 작가의 문학성을 예찬한 책들은 이미 여러 권 출간되었다.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는 헤밍웨이, 마크 트웨인 등 미국 현대 문학의 대표 작가 12명... 방문한 작가의 집 어니스트 헤밍웨이 마크 트웨인 월트 휘트먼 에드거 앨런 포 헨리 데이비드 소로 루이자 메이 올컷 에밀리 디킨슨 잭 런던 찰스 체스넛 토머스 울프 폴 로렌스 던바 랭스턴 휴스 ▶ 메디치 ‘지식여행자 시리즈’의 제 1권 겉치레를 벗은 ‘현대 미국 문학’의 속살을 보다 ‘작가의 집’을 소재로, 창작 공간을 우아한 사진에 담고 작가의 문학성을 예찬한 책들은 이미 여러 권 출간되었다.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는 헤밍웨이, 마크 트웨인 등 미국 현대 문학의 대표 작가 12명의 집을 방문하되, 작가의 집이 실제 작가의 삶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는지 찬찬히 뜯어본다. 원서의 제목처럼 ‘회의론자의 가이드 Skeptic Guide’ 성격이 짙다. 숭배하는 순례기는 아닌 것이다. 문학 교수인 저자 앤 트루벡은 작가의 집이 실제 작가나 작품이 아니라 ‘기대되는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어떤 대가의 ‘문학 성지’에 대해서라도 과감하게 독설을 날린다. 저자는 사회가 진정 문화를 지원하고 싶다면, ‘작가의 집’ 같은 돈이 많이 드는 물적 공간보다는 우리 시대의 가난한 작가들을 지원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글쓰기는 돈이 너무 안 되며 일반에 공개된 집들을 유지하는 데는 돈이 너무 많이 든다.”(p.218) 물론, 『노인과 바다』를 읽고 현대 문학에 맛을 들이는 것처럼, 헤밍웨이의 아이다호 집에 가서도 그럴 수 있다. 저자는 매년 수십 만 명의 미국인이 작가의 낡고 음울한 집을 찾아 전국 곳곳을 다닌다고 조금 불만처럼 말하지만, 그와 대비되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부럽기도 한 불평이다.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는 작가의 집 12곳을 담백한 연필 스케치로 담아낸 한편, 책의 말미에는 현대 미국 작가 56인의 작가의 집 주소와 홈페이지를 게재했다. 이 책은 메디치미디어 ‘지식여행자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이 시리즈는 지식을 채굴하는 저자들의 현장감 넘치는 인문학을 내걸고 있다. ‘먹방’처럼 소탈하고, 조금 까칠한 ‘작가의 집’ 방문기 리얼리티 쇼가 대세다. 예쁘고 멋진 배우가 닭다리를 잡고 먹음직스럽게, 또는 우악스럽게 먹는 ‘먹방’ 프로그램은 시청률 고공행진이다. 배우들은 때로는 대중이 기대하는 포장지를 스스로 뜯어버리고, 볼이 미어터지도록 음식을 쑤셔 넣는다. 영악해진 대중은 그런 이미지 파괴를 즐기고, 그것이 배우의 인간적인 본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산다(A Skeptic’s Guide to Writer’s Houses)』는 작가들의 집에서 라이브로 진행되는 리얼리티 쇼를 닮았다. 사회자는 까칠한 문학 교수 앤 트루먼이다. 저자는 작가의 집이란 ‘권위’와 ‘낭만’에 휩싸이지 않고, 그것이 진짜 작가의 존재를 얼마나 잘 표현했는지 깐깐하게 들여다본다. 이는 통쾌한 ‘기존관념 파괴하기’의 하나로 읽혀질 수 있다. 이 책은 작가의 집이 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지 알아보기 위해 미국 전역을 여행한 저자의 여정을 담은 여행기다. 작가의 집을 다루긴 하지만 다양한 작가나 지역, 시대의 어떤 대표적 단면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 그보다는 저자의 판단 아래 작품의 내용이나 개인적 인기 이상의 이야기가 존재하는 경우만을 선택해, 다분히 개인적인 동시에 조금은 색다른 문학 여행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때로는 ‘문학의 고전과 그 불만’을 주제로 다루고, 때로는 ‘사후 계획의 덧없음’이나 ‘후기산업도시의 경제 문제’를 주제로 다루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 이 책은 친절하지 않다. ‘어느 회의론자의 작가의 집 방문기’라는 부제에 걸맞게 때로는 회의적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헤밍웨이의 집에는 고양이가 있다 헤밍웨이는 알려진 대로 여러 곳에서 거주했다. 저자가 처음 방문한 곳은 햇볕이 따듯한 플로리다의 키웨스트 집이었다. 키웨스트 관광객의 절반은 헤밍웨이를 보러 온다고 한다. 그런데 저자를 실어 날라준 택시 운전사는 “5년 내에 헤밍웨이의 집은 망할 거라고, 관리도 안 하고 에어컨도 없다”고 악담을 한다. 실제로 가보니 가짜 물건들이 헤밍웨이가 살았던 것인 양 연출하고 있었다. 물론, 헤밍웨이가 애정을 쏟으며 키우던 고양이들의 후손은 실컷 볼 수 있다. 이 고양이들은 헤밍웨이의 침대를 포함해서 금줄이 쳐진 소장품들을 마음껏 이용한다. 쿠바에 있는 헤밍웨이의 집 인근은 이 가난한 나라의 최대 관광지가 되었다. 여기서 헤밍웨이는 20년을 살면서『노인과 바다』를 썼다. 피델 카스트로는 헤밍웨이와 그 집에 관한 애정을 수시로 표현했지만, 미국과의 갈등으로 미국인의 방문은 금지했다. 그에 대한 보복인지, 조지 W. 부시는 이 집이 ‘보존 위기 장소’에 지정되었지만, 그것을 보존하는 데 “미국 돈이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어느 쪽인가? 쿠바의 집을 보존하지 않는 사람이 야만인인가, 카스트로가 압수한 물건들로 가득한 쿠바의 집을 도와주는 것이 야만인가?” 마크 트웨인의 집은 100% 동화 마을이다 “종종 작가의 집은 ‘실재’에, 역사적 정확성에 가까이 다가가려 애를 쓴다. 그런 복원이 괴이한 집착을 낳기도 한다. 역사적 복원이라는 것에 너무 매달린 나머지 … 허구를 사실처럼 보존하고 만다”고 저자가 지적했듯이, 마크 트웨인의 고향인 한니발 마을은 정작 작가의 집이 아니라 『톰 소여의 모험』의 톰, 베키, 허크가 살았던 곳으로 꾸며져 있다. 마크 트웨인의 집 울타리는 ‘톰 소여의 울타리’라는 푯말이 붙어 있고, 하얗게 칠해져 있다. 게다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역사 유적지’라는 팻말도 꽂혀 있다. 이것이 어떠냐고 독자들은 되물을 수도 있다. 기왕이면 소설 장면을 꾸며 놓으면 흥미롭지 않은가? 그러나 저자는 마크 트웨인이 오해되고 있는 작가라고 말한다. 헤밍웨이가 그를 “미국 문학의 아버지”로 추켜세운 것은, “미국의 모습을 잘 형상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에 대한 촌평을 끊임없이 했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은 가짜인 필명을 고수했던 것처럼, 분명한 인식 하에 소설에서 ‘가짜’의 세계를 구현했다. 그는 “곧이곧대로 듣고, 순진하고 반어법을 모르는 미국인의 성향을 조롱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이다. 『톰 소여의 모험』은 이것이 분명 허구라는 것을 알리면서 끝난다. “이렇게 이야기를 끝내도록 하자. 이것은 순전히 소년의 모험기이므로 여기서 멈춰야 한다.” 따라서 마크 트웨인의 집을 동화의 장소로 꾸미는 것은 작가와 작품의 성향에 위반된다고 한다. 문학적 열정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놓기 위한, 영리한 결과물 이 책은 분명히 작가의 집에 대한 비판과 냉소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저자의 태도는 누그러진다. 문학에 대한 위선적이고 감상주의적인 태도를 지적하며 답답해하는 저자의 모습에 내재되어 있는 문학에 대한 열정이 그 반증이다. “사실 나는 20여 군데 작가의 집을 방문하며 목격한, 천재적 창작자의 자취에 바쳐진 숭배의 행위에, 숨죽인 공감의 표현에, 영적 탐구의 이야기들에 중독되었다”는 저자의 고백처럼 결국 이 책은 문학적 열정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놓고자 하는 의도에서 쓰여진, 대단히 영리한 작전의 결과물이다. 문학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는 저자의 여정이 문학가들의 일생뿐 아니라 여행지에서 만난 관광 안내인과 함께한 방문객들, 그리고 저자 자신의 인생사까지 더해져 하나의 완성물로 귀결되는 것만 보아도 저자가 문학에 대한 냉소와 회의보다는 깊은 애정을 품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저자의 집은 글과 같다. 둘 다 물질적이면서 비물질적이다. 지폐라는 물건과도 비슷하다. 그 자체로 물건인 동시에 다른 어떤 것을 나타내는 물건인 것이다. 우리는 글쓰기가 만들어낸 간극을 메우기 위해 작가의 집에 가서 다시 한 번 작가와 글을 결합시키려는 시도의 불가능성과 마주한다. 우리가 얻는 것은 글이 자신과 동시에 다른 어떤 것을 보여주는 마법 같은 재주의 향연이다.
- p. 37 Chapter2 ‘나를 다시 보고 싶거든 당신의 장화 밑창을 들어 보라: 『풀잎』의 시인 월트 휘트먼’ 중에서
최고의 리얼리즘은 자신의 속임수를 의식한다. 스스로를 인식하고 허구로서의 지위를 인정한다. 그래서 내가 애로헤드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매사추세츠 주 레녹스 소재, 이디스 워튼의 집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다. 2002년 이디스 워튼의 집, 마운트 저택 100주년을 기념해서 비영리단체인 이디스 워튼 복원 사업회의 대표는 유명 실내장식가들에게 의뢰해 “워튼 가 사람들이 오늘날을 살고 있는 것처럼” 방들을 재창조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실내장식가들은 검은 노트북 컴퓨터를 놓고, 계단은 표범 무늬 깔개를 깔고, 식당에는 추상표현주의 그림을 걸고 거실 탁자에는 스타 잡지와 하버드 동창회보를 놓았다.
- p. 55 Chapter3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이 살아 있다고?: 마크 트웨인의 착한 시골 마을’ 중에서
작가의 집이 허구를 현실화하는 쪽으로 아예 전향을 하면, 어차피 허구의 인물들이 어땠는지 알 길이 없는데도, 지나치게 진지해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트웨인은 절대 그런 작가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트웨인이 천재적인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허구의 창조자라는 점을 잊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엄정하고 충직한 재창조보다는 더욱 현실처럼 실재의 세계를 증강시켜 주는 상상력의 활약을 마음껏 즐겼다. 거기에, 가끔 은근슬쩍 흐려지는 진실과 거짓의, 진심과 가장의 경계를 탐험하는 데도 큰 기쁨을 느꼈다.
- p. 57 Chapter3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이 살아 있다고?: 마크 트웨인의 착한 시골 마을’ 중에서
너무 쉽게, 사람들은 독서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야만 한다는 강박을 가진다. 독서를 거래로, 독자에게만 이득이 되는 교역으로 생각한다. 나에게 독서는 주는 행위, 나 자신을 내려놓는 행위이며 나는 늘 독서를 할 때마다 그렇게 하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독서가 자아 발견의 수단이라고 주장하는, 자신의 이미지 속으로 문학 작품을 삼켜 버리려 하는 우리 시대의 편견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차라리 책의 문턱에 자신을 내려놓고, 작품이 나를 지배하도록, 자신을 제공하겠다. 내가 독서를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 자신을 버릴 수 있도록 해주는 능력 때문이다. 에머슨이 썼듯이 “만족을 모르는 욕망을 생각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자신을 잊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놀라움을 경험하고, 영구적 기억을 내려놓고, 왜 혹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무언가를 하는, 즉 새로운 원을 그리는 것이다.”
- p.89 Chapter4 ‘이상을 꿈꾸던 작가들의 공동체: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중에서
헤밍웨이는 무엇을 원했을까? 집을 짓밟고 돌아다니며 소지품을 기웃거리는 우리를 작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헤밍웨이는 너무 젊어서 너무 유명해졌고, 수십 년을 유명인 작가이자 미국 문화의 상징적 인물로 살아왔다. 자신의 사후 모습에 대해서도 짐작하고 있었다. 이런 관심을 욕망하기도 했고 동시에 바로 그런 가능성에 대해 극렬히 방어적으로 굴기도 했다. 게다가 자살로 인해 문제는 더 복잡해졌다.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정했기 때문이다. 작가가 자신의 문학적, 지적 자산이나 개인 소유물을 어떻게 처분하라는 말을 남겼는가? 만일 그랬다면, 우리에겐 그 말을 따라야 하는 의무가 있는가?
- p. 136 Chapter5 ‘관광지 협잡과 역사 보존의 딜레마: 나쁜 남자 어니스트 헤밍웨이’ 중에서
포의 집은 현대 미국 동부 연안 도시 지역의 빈곤 지형도를 보여준다. 원래는 부서졌을 포와 관계된 집들이 보존되어 관광객에게 공개되고 있다. 셋 모두 지자체에 의해 운영되며 늘 예산이 부족하다. 포는 늘 빈털터리였으며 집을 산 적이 없고 어느 한 셋집에 오래 산 적도 없었다. 이런 집들은 미국 작가로서 포가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걸까,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걸까? 그리고 이런 박물관들은 1849년 포의 사망 이후 미국의 경제 성장과 확장을 보여주는 지표인가, 아니면 이 모든 궁핍한 사람들에게 보다 나은 조건을 마련해 주지 못하는 실패의 증거인가.
- p. 208 Chapter9 ‘부서지지 않을 정도까지만: 추리소설의 효시 에드거 앨런 포’ 중에서
나는 ‘집 아닌 집’을 열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제 존재하는 집들에서 발견한 것이 열망이니까. 부재가 이런 장소들을 실감나게 만들며, 현존은 때로 방해만 된다. 나는 빌린 책상 위 가짜 원고 같은 것보다 불에 탄 석재 유적이나 ‘부식의 억제’ 원칙이 마음에 든다. 헤밍웨이가 자살한 좀 끔찍한 거실에 들어가 볼 수 있어서 감사했지만, 그 집이 박물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며, 어쩔 수 없이 케첨의 욕심 많은 네 번째 집 소유 부자들(사생활 보호 때문에 박물관화를 반대한 헤밍웨이 이웃의 부자들)과 같은 편이 된다. 책이 인쇄되는 한, 혹은 전자책이나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한 저자는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한 존재다.
우리가 뭔가를 더 하고 싶다면, 작가의 이름으로 수여되는 장학금이나 지원금, 혹은 창작 공간 지원이 필요한, 자격 충분한 학생들과 작가들이 아주 많이 있다. 글쓰기는 돈이 너무 안 되며 일반에 공개된 집들을 유지하는 데는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왜 문학의 과거 거주지를 지원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써야 하는가?
- p.218 Chapter10 우리 동네 작가의 집을 찾아서: 찰스 체스넛, 랭스턴 휴스
작가의 집 박물관은 허구이며 우리 관람객은 그 독자다. 우리가 그 집에서 의미를 끌어낸다. 결국 바르트가 옳았던 것 같다. 책과 마찬가지로 집도 우리 상상력 안에서 재창조되며,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 마음대로 그들을 체험할 수 있다. 비난할 수도, 존경할 수도, 시대착오적이 되거나, 경험적 진실을 고집하거나, 그들의 존재를 매도할 수도 있다. 우리와 저자의, 그 장소의, 우리 자신의 관계에 의거해서 말이다.
- p.226 Chapter10 우리 동네 작가의 집을 찾아서: 찰스 체스넛, 랭스턴 휴스
독자를 위한 팁을 하나 드리자면, 이 책은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해진다. ‘저자의 의도’를 따라가기 위해선 처음부터 읽는 것이 좋겠지만 독서의 재미를 위해서는 뒤부터 읽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여러 곳에서 저자가 인정하고 있듯이, 이 책은 그런 내키는 대로의 독서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하는 책이다.
- p. 237 ‘옮긴이 후기’ 중에서
목차
Chapter1 작가의 집이 풍기는 이해할 수 없는 매력: 에밀리 디킨슨 숭배자들
Chapter2 나를 다시 보고 싶거든 당신의 장화 밑창을 들어 보라: 『풀잎』의 시인 월트 휘트먼
Chapter3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이 살아 있다고?: 마크 트웨인의 착한 시골 마을
Chapter4 이상을 꿈꾸던 작가들의 공동체: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작은 아씨들』의 루이자 메이 올컷
Chapter5 관광지 협잡과 역사 보존의 딜레마: 나쁜 남자 어니스트 헤밍웨이
Chapter6 다른 작가와 헷갈리는 『그대 다시 고향에 가지 못하리』의 토머스 울프
Chapter7 친환경 농장주로 기억되길 바란:『황야의 부름』의 잭 런던
Chapter8 30년간 홀로 집을 지킨 어머니: 요절한 흑인 시인 폴 로렌스 던바
Chapter9 부서지지 않을 정도까지만: 추리소설의 효시 에드거 앨런 포의 집
Chapter10 우리 동네 작가의 집을 찾아서: 찰스 체스넛, 랭스턴 휴스
감사의 말
옮긴이 후기
미국 작가의 집 주소록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