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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종교를 위한 인문학

김경집 저 | 시공사 | 2013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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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2769084 / 368쪽 154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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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인문학자의 눈으로 본 성서, 그리고 한국 기독교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에 불쑥 나타나 이렇게 외치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은 정말? 그런 식으로 복음이 전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종교 인구는 55.1%(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2013년 1월 발표)이다. 흔히 사람을 처음 만나면 직업, 나이 다음으로 종교를 물을 만큼, 우리 중 대다수는 비록 열렬한 신자는 아닐지라도 종교를 갖고 있는 편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 인문학자의 눈으로 본 성서, 그리고 한국 기독교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에 불쑥 나타나 이렇게 외치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은 정말 그런 식으로 복음이 전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종교 인구는 55.1%(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2013년 1월 발표)이다. 흔히 사람을 처음 만나면 직업, 나이 다음으로 종교를 물을 만큼, 우리 중 대다수는 비록 열렬한 신자는 아닐지라도 종교를 갖고 있는 편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하지만 종교, 특히 다수를 차지하는 기독교가 우리 사회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현실이다. 이 책《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의 저자 김경집은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근본주의와 교조주의에 대한 지나친 집착, 지나치게 성직자 중심적인 교회, 여전한 서구 중심주의적 사고가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성경의 “‘유연한’ 초시간적 초공간적 의미와 역할을 지닌 비유를 엉뚱하게 ‘절대불변의’ 초시간성과 초공간성으로만 해석하는 설교나 강론이 무슨 제 역할을 하겠는가? 문자주의 혹은 축자주의라고 하는, 문자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비유마저 문자나 이념의 선언으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라며 이를 경계한다. “깊은 뜻과 배려로 이루어진 비유를 어설픈 논리와 비논리적 비약으로 마음대로 해석”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혹세무민”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먼저 인문학자의 눈으로 성경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기독교 사회를 바라본다. 무조건적인 텍스트 추종을 넘어 밝은 눈으로 그 참뜻을 깨달을 것을 제안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성경은 대부분 비유로 이루어졌다. 저자는 예수의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외로 너른 시야와 근거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바로 인문학적 사고가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오랜 세월 쌓아온 신학적 지식과 인문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예수 탄생부터 오병이어의 기적까지 언뜻 이해할 수 없었던 복음서의 비유를 문맥과 상황을 통해 재구성하여 오늘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타당한 해석을 내놓는다. 저자는 이렇게 복음서를 읽어가면서 “적지 않은 기존의 교회지도자들이 지나치게 편협하게 혹은 잘못된 도그마에 의존해서, 또는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복음서를 가르쳤음을 분명히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인다. “나와 학생들이 함께 복음서를 읽으면서 자유를 느낀 것은 단순히 우리들만의 심리적 위로나 합리화는 아니었다고 확신한다. 덧붙여 그저 평범한 평신자인 내가 이렇게 읽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이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방식의 성서 읽기를 통해 성경의 참뜻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기를, 나와 이웃, 사회 전체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인문학자의 성서 읽기는 무엇이 다른가 인문학자란 현실에 발을 딛고, 세상을 그리고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지식의 경계를 확장하고, 편견을 없애며,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다. 그런데 성경을 볼 때 종교적 믿음의 눈을 걷어내면 앞뒤가 맞지 않거나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저자 김경집은 실천적 해석과 영성적 성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먼저 잘 알려진 ‘포도밭 일꾼과 품삯’ 이야기에서 시작하자. “어떤 포도밭 주인이 일꾼을 얻으려고 이른 아침에 나갔다. 거기서 일꾼을 데려오면서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정했다. 그리고 아홉 시쯤 또 가서 다른 일꾼을 데려왔다. 그도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정했다.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 또 다시 일꾼을 데려오면서 같은 품삯을 정했다. 오후 다섯 시쯤 또 나가 보니 여전히 사람들이 있었다. (…) 주인은 그들도 포도밭으로 데려갔다. 날이 저물어 주인이 나중에 온 사람부터 품삯을 주는데 처음 온 사람에게도 똑같은 삯을 주었다. 그러자 맨 먼저 온 사람이 따졌다. (…) 그러나 주인은 품삯은 자신이 정한 것이니 따질 일이 아니라고 일축했다.”(본문 153쪽) 우리는 흔히 이 이야기를 뒤늦게 온 일꾼은 나중에 교회 나온 사람이라며 먼저 교회에 다녔다고 해서 천당 가는 게 아니라는 뜻으로 알고 있다. 반면 문자 그대로 읽어낸다면 포도밭 주인의 처사는 불공정하고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이 포도밭 주인의 판단에는 분명 대화에 나타나지 않는 깊은 속뜻이 담겨져 있을 것이라 말한다. 그에 따르면 문제의 핵심은 품삯으로 주었던 바로 그 ‘한 데나리온’이다. 저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데나리온은 로마의 은화로 1데나리온의 무게는 3.8그램이며, 통상 일꾼들의 하루 품삯이었다고 한다. 요즘 식으로 해석하면 그것은 바로 최저임금 혹은 최저생계비와 어금버금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포도밭 주인이 모든 일꾼들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지불한 것은 노동 단위 시간당 얼마라는 효율성을 근거로 한 셈법이 아니라 누구나 최소한 생계는 해결해줘야 한다는 상징적 비유다. 그렇다면 포도밭 주인이 모든 일꾼들에게 무조건 같은 품삯을 주었다는 데에 방점을 찍을 게 아니라 가장 늦게 온 사람에게도 삶의 방편은 마련해주었다는 데에 초점을 맞춰야 이 비유의 참뜻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자칫 엉뚱한(?) 해석으로 신자들에게 더욱더 교회에 충성해야 한다며 윽박지르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다음은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에 따르면 바로 ‘어떤 아이가’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다고 되어 있다. 저자와 함께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사람들은 예수가 배를 타고 가는 걸 보고 여러 동네에서 뛰어 나와 따라갔다고 했다. 그 사람들이 먹을 걸 들고 뛰어갔을 리 없다. 당연히 빈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스승 예수가 먹을 걸 찾아보라 하니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물었을 것이다. ‘누구 먹을 것 가지고 있는 사람 있소?’ 당연히 없었다. 그런데 어떤 꼬마가 달랑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밀었다. 꼬마가 혼자 왔을 리는 없고 아마도 엄마 손에 이끌려 왔을 것이다. (…) 그러니까 그건 두 모자母子의 저녁거리였던 셈이다. ‘작은’ 물고기 한 마리씩 먹고 빵은 세 개와 두 개로 나눠 먹으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모자는 먹을 걸 찾는 제자들에게 주저하지 않고 그걸 내놓았다. 왜 그랬을까? (…) 예수의 복음을 듣고 얻은 희망과 기쁨이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덩이를 기꺼이 내놓도록 했던 것이다. 아이의 엄마는 복음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들었다. 그리고 실천했다. (…) 오병이어의 기적은 바로 그렇게 시작된 사건이다. 내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기꺼이 내놓은 것은 복음을 듣고 변화한 그녀의 삶과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그게 바로 기적이다. (…) 이 기적은 우리에게 또 다른 기적을 실천하라고 가르치는 아주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예수의 축원 혹은 초자연적인 힘만으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많은 사람들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엄청난 양이 될 수 있었을까? 물론 그건 예수의 초월적 능력에 의해서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실천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믿는다. 비록 보잘것없을지 모르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 나보다 더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저자 소개

뜻은 높게 생각은 깊게 영혼은 맑게 가슴은 뜨겁게 삶은 따뜻하게.
저자의 명함에 새겨져 있는 문구다. 
서강대 영문과와 동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가톨릭대학교 인간학교육원에서 인간학과 영성 과정을 맡아 가르쳤다. 인생 중 25년은 배우고 25년은 가르치고 25년은 글을 쓰고 살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에 따라 학교를 떠나, 집과 충남 해미의 작업실 수연재(樹然齋)를 오가며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인문학을 대중과 나누는 일과 문화운동에 뜻을 두고 있으며, 거대담론보다는 소소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좋아하고, 또한 그러한 삶을 소중하게 여긴다.
《책탐》으로 2010년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고, 《생각의 인프라에 투자하라》,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 《마흔 이후, 이제야 알게 된 것들》 등이 문화관광부우수도서로 선정되었으며, 청소년들을 위해 쓴 책《거북이는 왜 달리기 경주를 했을까》(공저)와 《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철학교과서, 나》는 올해의 청소년 도서로 선정되었다. 그 외 《고장난 저울》《나이듦의 즐거움》《생각의 프레임》《완보완심》《위로가 필요한 시간》《지금은 행복을 복습하는 시간》 등을 썼으며, 최근 인문학의 대중화를 위한 책 《인문학은 밥이다》《생각의 융합》《엄마 인문학》 등을 썼다.


 

책 속에서

우리는 예수 탄생의 참된 의미도, 동방박사들과 목동들이 찾아온 이유도 전혀 모르는 청맹과니일 뿐이다. 그런 눈과 마음으로 아무리 복음서를 읽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억압받고 고통을 겪으며 부당하게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이들이 조금이라도 제 목소리 내고 권리를 주장하면 사회를 교란시킨다느니 교묘하게 정치 세력화한다느니, 혹은 아예 빨갱이라느니 하면서 외면하고 억압하지는 않는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심지어 교회마저 그런 못된 짓에 가담하고 있지는 않은지 잘 살펴봐야 한다.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이 사망하고 자살해도, 집과 땅을 빼앗긴 사람들이 절규하고 옥상에서 뛰어내려도 눈 하나 깜빡거리지도 않는 냉혈한 우리에게 과연 아기 예수가 찾아올까? 아니, 설령 우리에게 찾아온다 해도 제대로 맞을 수나 있을까? 더 나아가, 그가 예수인지 알아보기는 할까? ■ 1부 새로 읽는 성경_ 예수의 탄생을 외면했던 사람들 p.35

흔히 가난 구제는 나라도 할 수 없다고들 말한다. 하물며 나 혼자 마음으로 그걸 할 수는 없다. 함께 모인 공동체도 감히 그걸 할 수 없다고 체념한다. 그러나 마음까지 그렇게 닫아둬서는 안 될 일이다. 적어도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고통받는 일이 있다면 그건 삼가고 꺼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좀 더 넓게 생각해보자.
나라도 구제할 수 없는 가난을 교회가 구제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 마음을 공유하고 실천하려 하는 게 진정한 믿음이다. 그래야 예수를 따른다고 믿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한다. 나라도 하지 못하는 가난 구제라고? 아니, 교회니까 해야 한다. 그건 그저 쌀 몇 말 부어주고 라면 두어 상자 건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과연 우리의 교회공동체가 그런 문제에 대해 단순히 선언적으로 말고 실천적으로 다가가본 적이 있는가? 내가 산 땅과 아파트가 쑥쑥 오르는 건 기쁜 일이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큰 상처와 고통을 받고 있다면 기꺼이 그 혜택을 거부하고 정당한 만큼만 누리겠다는 약속을 할 수 있어야 한다. ■ 1부 새로 읽는 성경_ 예수 기적의 진짜 의미 pp.106~107

해방의 복음은 권력자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은 바로 억눌린 사람, 멸시받는 사람, 고통받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 시대에 가장 많은 피억압자는 누구였을까? 다름 아닌 여자들이었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오로지 여자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모든 차별과 억압을 감당해야 했다. 그 악습은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마르타와 같은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마리아는 복음의 의미를 깨달아 스스로 올바른 선택을 했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만큼 성숙해졌지만, 마르타는 그렇지 못했다. ■ 1부 새로 읽는 성경_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 p.137

과부에게 렙톤 두 닢은 전 재산이자 하루 혹은 한 끼니의 생계비용을 뜻할 것이다. 아마도 힘겹게 폐지를 모아서 번 하루의 일당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자선을 구해서 얻은 건지도 모른다. 그녀가 그 돈을 헌금궤에 넣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내가 가진 걸 몽땅 바쳤으니 더 큰 복을 주십시오’ 그랬을까? 아마 남들은 저리 많은 돈을 내는데 자신은 고작 푼돈 두 냥밖에 내지 못해서 ‘손부끄러워’했을 것이다. 정말 중요한 건 그 마음이다. 강요한 것도 아니다. 부자들처럼 과시할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봉헌금이 적다고 부끄러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손이 부끄럽다는 소박하고 겸손한 마음뿐이었다.
예수가 그 과부를 칭찬한 것은 가진 것을 몽땅 털어넣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손부끄러운 마음이 아닐까? (…)그런데 자꾸만 ‘가진 것을 몽땅 털어넣는’ 충성심만 강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아예 노골적으로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궁금하다. ■ 1부 새로 읽는 성경_ 가진 것을 모두 털어넣는 충성심보다 중요한 것 p.165

세례자 요한은 어떤 의미에서 마지막 ‘예언자’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교회에 예언자는 없고 제사장만 있는 듯하다. 예언자가 서 있어야 하는 곳은 광야다. 외롭고 고통스러운 곳이다. 제사장은 교회를 지배한다. 그는 권력과도 친밀한 관계다. 그래서 가끔은 그 권력의 부스러기를 맛보는 경우도 있다. 그 맛에 길들여져서 제사장 역할만 하려는 이들이 이 나라 이 교회의 지도자를 자처한다. 많은 신자들을 거느린 대형교회의 힘을 과시하면서 말이다. 그런데도 입으로는 세례자 요한을 떠들어댄다. 그들에게 세례자 요한은 그저 세례라는 통과의례(?)를 만들어준 선구자에 불과할 뿐이다. 아무리 아니라고 부인해도 스스로 예언자의 고난을 자청하지 않는 한 그런 비난에서 온전히 빗겨날 수는 없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천박한 마케팅에 매달리면서 정작 우리 시대의 세례자 요한을 외면하거나 억압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 2부 한국 기독교인과 기독교 사회에 던지는 제언_ 어두운 시대, 최소한의 양심은 어디에 pp.311~312

종교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사회가 더 이상 자정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할 때 마지막으로 예언자적 역할을 할 수 있기 위해서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사회와 정치가 완전히 타락해서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비인격적 상황에서도 여전히 교회만 독야청청하다는 건 무의미할 뿐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다. (…) 약하고 억압받는 사람들 편에서 그들을 보듬고, 그들을 억압하는 사람들에게 잘못을 지적하고, 그 잘못을 고치도록 함께 노력하고 기도하는 게 교회의 역할이다. 어떤 정강이나 정책에 대한 호오好惡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불의가 지나쳐 반복음적이며 더 이상 누가 나설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순교적 태도로 나서서 정의를 외치고 반성을 촉구하는 게 바로 종교와 정치의 분리가 갖는 의미다. 스스로의 허물과 한계를 드러내며 용서를 구하면서 모두의 잘못과 불의를 반성하도록 스스로를 버리는 게 바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신앙공동체의 올바른 태도이다. ■ 2부 한국 기독교인과 기독교 사회에 던지는 제언_ 왜 한국 교회는 보수주의에 안주하는가? pp.354~355

목차

목차
들어가는 말_ 신자가 깨어야 교회가 바뀐다
일러두기
1 새로 읽는 성경
예수의 탄생을 외면했던 사람들
무엇이 진짜 명예로움인가
하느님나라의 비유를 잘못 해석하면 ‘비’겁하고 ‘유’치해진다
유혹은 산들바람처럼 불어온다
예수 기적의 진짜 의미
열두 제자가 내려놓은 것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
포도밭 일꾼과 품삯 이야기의 숨은 뜻
가진 것을 모두 털어넣는 충성심보다 중요한 것
교회를 신전이 아닌 시장으로!
무엇이 참된 우정인가
치유의 기적? 측은지심부터 배워라!
오병이어의 기적에 담긴 진짜 의미
신앙 이전에 도덕적 우월성을 가져야
골수 로마 앞잡이가 나무 위에 올라간 이유
무엇이 나를 진정 행복하게 하는가
기도, 하려면 제대로 하자
부활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2 한국 기독교인과 기독교 사회에 던지는 제언
어두운 시대, 최소한의 양심은 어디에
왜 한국 교회는 보수주의에 안주하는가?
맺는말 참된 그리스도인의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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