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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3124674 / 395쪽 150 x 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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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예원의 총수 표암 강세황 표암 강세황은 계사년(癸巳年:1713년 5월 21일. 숙종39)에 태어나 영조와 정조 때에 시詩ㆍ서書ㆍ화가畵家로 활동하다가 신해년(辛亥年:1791년. 정조15)에 작고한 인물로, 2013년이 탄생 3백주 년이다. 조선시대 화가들이 대개 중인 계급이었으나, 그는 전형적인 사대부 출신이었다. 그의 증조부와 조부가 각각 좌의정과 영의정을 지냈고, 부친은 37세에 강관(講官)이 되어 숙종 앞에서 주역을 강의했다. 표암이 당시에 예원(藝苑)의 태두(泰斗)로 인정 받았으나, 그의 일생이 영화로웠던... 예원의 총수 표암 강세황 표암 강세황은 계사년(癸巳年:1713년 5월 21일. 숙종39)에 태어나 영조와 정조 때에 시詩ㆍ서書ㆍ화가畵家로 활동하다가 신해년(辛亥年:1791년. 정조15)에 작고한 인물로, 2013년이 탄생 3백주 년이다. 조선시대 화가들이 대개 중인 계급이었으나, 그는 전형적인 사대부 출신이었다. 그의 증조부와 조부가 각각 좌의정과 영의정을 지냈고, 부친은 37세에 강관(講官)이 되어 숙종 앞에서 주역을 강의했다. 표암이 당시에 예원(藝苑)의 태두(泰斗)로 인정 받았으나, 그의 일생이 영화로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오랜 세월을 궁핍하게 지냈고, 예순이 넘도록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을 만큼 한스런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년은 영조와 정조의 총애가 각별할 만큼 매우 영화로웠다. 그는 영화에 안주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사대부 출신이 그림 그리는 일을 천하게 생각했고, 그림은 그렸으되 후대에 남기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사회 풍조에 편승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가 젊었을 때는 첨재(添齋), 산향재(山響齋), 박암(樸菴), 의산자(宜山子) 등의 호를 썼으나, 나이 들면서부터는 주로 표암(豹菴)을 사용했다. 이 호는 그가 어릴 적부터 등에 흰 얼룩무늬가 표범의 형상으로 있어 붙여졌다고 한다. 표암은 그의 아버지가 64세 때 늦둥이로 태어나 잠시도 무릎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면서 글을 가르쳐, 6살 때 이미 숙종의 국상(國喪)에 어울리는 구장(鳩杖)에 관한 시를 지었다. 그 시가 바로 「지팡이에 새 한 마리 있으나, 날지도 못하고 또한 울지도 못하네. 몸에 백설 같은 옷을 입었으니, 온 나라가 슬픔을 아는 것 같구나」였다. 표암은 서울에서 식솔을 이끌고 경기도 안산으로 내려가 30여 년을 처가살이 할 만큼 매우 가난하게 지냈다. 그러나 이 안산 시절이 오히려 그의 학문과 예술이 발전하고 성숙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는 ‘남종문인화풍(南宗文人畵風)’을 정착시키면서 서양화 기법을 과감히 도입하여, 색체의 농담(濃淡)으로 입체감을 표현하는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뿐만 아니라, 뛰어난 감식안으로 많은 서화평(書畵評)을 남겨, 평론가로서도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더구나 단원 김홍도와 같은 제자를 배출한 것 또한 조선후기 화단에 큰 소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표암의 인생 역정과 예술 세계를 작가 민병삼이 소설로 재구성하여 독자 앞에 내놓았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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