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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1360509 / 240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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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대중문화 > 영화 > 영화이론/비평/역사
- [시리즈] 한국영화 역사 연구 [1]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해방에서 6ㆍ25전쟁까지 영화인들의 활동 기록 해방이 되자 조선인들은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 갈 기회가 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주체적으로 역사를 개척할 것이라는 믿음은 외부의 힘 앞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통일된 민족국가 수립은 실패했고 남북에 서로 다른 정부가 들어섰다. 한반도는 전쟁으로 치달았다. 이 시기 영화운동은 영화인들의 힘겨운 노력으로 점철되었다. 진보적 민족영화 건설을 위한 노력은 외세와 권력 앞에 희망과 절망, 환희와 탄식이 교차할 뿐이었다. 전쟁을 거치며 남은 자들은 양극단에 위치한 정권에 충성하거나 아니면 제 ... 해방에서 6ㆍ25전쟁까지 영화인들의 활동 기록 해방이 되자 조선인들은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 갈 기회가 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주체적으로 역사를 개척할 것이라는 믿음은 외부의 힘 앞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통일된 민족국가 수립은 실패했고 남북에 서로 다른 정부가 들어섰다. 한반도는 전쟁으로 치달았다. 이 시기 영화운동은 영화인들의 힘겨운 노력으로 점철되었다. 진보적 민족영화 건설을 위한 노력은 외세와 권력 앞에 희망과 절망, 환희와 탄식이 교차할 뿐이었다. 전쟁을 거치며 남은 자들은 양극단에 위치한 정권에 충성하거나 아니면 제 목소리를 속으로 삼켜야 했다. 따라서 이 시기 한국영화 연구의 중심은 영화의 제작, 배급, 흥행과 같은 보통의 영화 활동이 아닌, 조직을 세우고 강령을 만들어 정치 활동을 우선시한 영화운동일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는 해방에서 6ㆍ25전쟁 직전까지의 기간을 중심으로 영화인들이 남과 북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민족영화 건설을 위한 영화운동을 어떻게 전개했는지, 이를 위해 영화인 조직들은 어떠한 변천과정을 거쳤고, 어떠한 활동을 했는지 살펴보았다. 또한 좌우익의 분열, 분단과 전쟁이라는 민족적 비극으로 인해 이데올로기를 강요받을 수밖에 없었던 영화인들의 숨겨진 목소리를 찾아내 들려주고 있다. ▶ 이 책의 주요 내용 해방기는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처음 묻는 말이 “좌요? 우요?”라고 했던, 모두가 정치에 익숙했던 정치의 시대였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따라 각종 정치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영화계도 마찬가지였다. 영화인들이 모여 있던 서울에서는 조직의 경험이 있던 과거 카프 출신 영화인들과 사단법인 조선영화사 출신 영화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영화건설본부, 조선프롤레타리아영화동맹, 조선영화동맹을 세워 영화운동을 펼쳤다. 그 밖에 조선영화배우협단, 한성극장협회, 영화기술자협회, 영화감독 구락부 등 여러 영화운동단체, 직능단체 또한 만들어졌다. ─ ‘제1장 영화로 무엇을 할 것인가’ 중에서 해방 직후에는 친일 영화인에 대한 논의보다는 조영에 입사한 영화인과 입사하지 않은 영화인, 좌익과 우익 영화인 간의 갈등이 있었을 뿐이다. 이는 훗날 영화운동조직의 분열로 나타났다. 좌, 우익으로 갈라진 영화인들은 조영에서의 영화 활동을 들어 상대를 헐뜯었다. 예를 들어 1947년 《신태평양》에 게재된 「민족반역은 누가 했나」라는 글에는 영화동맹의 주요 간부인 이재명, 이창용, 김정혁, 문예봉 등의 일제강점기 친일 활동에 대해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글을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가 일제강점기 최초의 친일 영화 〈군용열차〉의 제작을 담당했으며 조영의 진행주임으로 활동했던 홍찬이다. 그는 당시 《신태평양》의 주요간부로 있었다. ─ ‘제2장 해방과 민족영화 건설을 위한 노력’ 중에서 이들 비참여 영화인들이 영화동맹의 중심에 들어온 것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중앙신문』 창간과 관련해서 조영을 나왔던 안석영을 차치하고, 조영이 중심이 된 영건을 쳐다보지도 않았던 안종화, 이규환이 조선공산당과 관련 있는 영화동맹에 가입하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는 점은 꽤 의아한 부분이다. 이들이 곧 영화동맹을 탈퇴하기는 했으나 영화동맹 설립 당시에는 해방된 조국의 영화건설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영화동맹에서 중책을 맡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낭만적 애국심’으로 영화동맹과 조선공산당과의 관계를 인지하지 못한 채 영화동맹에 가입했고 영화계의 위상에 맞게 위원장, 부위원장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이들의 영화동맹 가입은 조선공산당이 8월 테제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통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광범위한 포섭의 일환이었다. ─‘제3장 좌우익의 대립과 갈등’ 중에서
목차
머리말
제1장 영화로 무엇을 할 것인가 ?
제2장 해방과 민족영화 건설을 위한 노력
1. 일제 잔재 청소
2. 영화인 조직의 성립과 분열
제3장 좌우익의 대립과 갈등
1. 영화동맹과 좌우 분열
2. 영화?동맹의 활동
제4장 북한 지역의 영화인 조직
1. 조직화 이전의 북한영화
2. 영화인 조직 구축
3. 영화인 조직의 완성과 예술영화 제작
제5장 영화운동의 종말
1. 국민보도연맹과 대한영화협의회
2. 월북영화인들의 활동과 몰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