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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6371939 / 318쪽 153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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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별별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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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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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책소개 우장춘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역사평전으로 한?일사 질곡의 세월에 새겨진 우장춘 부자(父子)에 대한 미스터리를 역사소설 쓰듯 풀어쓴 책이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연루된 아버지 탓에 국적(國賊)의 아들, 친일파의 후손이란 손가락질을 받았던 우장춘은 해방 후 일본에서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왜 한국행을 택한 것일까? 우장춘의 침묵 이면에 감춰졌던 드라마같은 삶, 금단의 비밀을 수많은 사료와 비사 등을 통해 철저히 밝혀냈다.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며 펼쳐나가는 미스터리 화법, 영화나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극... 책소개 우장춘에 대한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역사평전으로 한?일사 질곡의 세월에 새겨진 우장춘 부자(父子)에 대한 미스터리를 역사소설 쓰듯 풀어쓴 책이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연루된 아버지 탓에 국적(國賊)의 아들, 친일파의 후손이란 손가락질을 받았던 우장춘은 해방 후 일본에서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왜 한국행을 택한 것일까? 우장춘의 침묵 이면에 감춰졌던 드라마같은 삶, 금단의 비밀을 수많은 사료와 비사 등을 통해 철저히 밝혀냈다.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며 펼쳐나가는 미스터리 화법, 영화나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극적 구성 덕에 역사서지만 한 번 잡으면 밤새워 읽게 만드는 강렬한 재미가 있다. 출판사 서평 한국에선 친일파의 아들, 일본에선 조센징… 역사의 원죄를 짊어지고 일생을 살아야 했던 한 남자의 침묵, 그리고 그 이면의 미스터리 온갖 억지를 내세워 조선 강점을 미화하는 일본의 우익조차 차마 언급을 피하는 한일사의 아킬레스건 같은 사건이 있다. 한 나라의 황실에 들어가 그 남편과 자식이 보는 앞에서 여인을 칼로 도륙한, 당대 일본인들조차 ‘역사상 고금을 통틀어 전례없는 흉악’이라고 치욕스러워했던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바로 그 것이다. 그러나 을미사변 당시 경복궁에 난입한 것은 일본인들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길을 열어준 조선인, 그 선봉엔 우장춘의 아버지 우범선이 있었다. 아버지는 한국 근대사 최악의 죄인중 한 명이요, 그 아들은 한국 현대사 최고의 위인 중 한 명이라는 역사의 아이러니는 오래도록 세인들의 관심거리가 됐다. 한 때는 아버지의 죄를 보속하기 위해 조국에 헌신한 아들의 이야기로 신격화되기도 했고, 또 한 때는 친일의 슬픈 유산으로 비하되기도 했으며, 또 한 동안은 차마 내놓고 말하지 못하는 금단의 비사(秘史)로 묻어두기도 했다. 이 책은 이 부자의 생애 100년을 따라 한일사의 궤적을 ?는다.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수많은 미스터리들을 탐구한다. 과연 을미사변에 가담했던 조선인들은 명성황후 시해 음모를 알았던 것일까? 거기엔 다른 음모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장춘은 대한민국을 조국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성장했고 일본에서 성공한 우장춘은 왜 굳이 전후의 빈곤, 혼란으로 가득한 한국행을 선택한 것일까? 한국에서 산 9년 동안 끝내 한국말을 배우지 않고 대한민국을 ‘조국’이 아닌 ‘아버지의 나라’라고 불렀으면서, 그는 왜 눈물겨운 헌신 끝에 결국 이 땅에 뼈를 묻은 것일까? 그에게 조국이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 우범선을 자랑스러워하면서 동시에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일이 정말 가능했을까? 과연 우장춘에게 있어 조국이란 무엇이었을까? 죽기 직전 병상에서 대한민국이 수여한 문화포장을 받은 후, ‘고맙다, 조국은 나를 인정했다’며 오열했던 그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그 모든 비밀의 해답은 바로 그의 박사학위 논문 ‘종의 합성’에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다윈의 적자생존설은 약육강식, 우승열패라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의 기반이 된 과학이론이다. 이 다윈의 적자생존설을 자연과학의 이론으로 격파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제국주의의 심장에 칼을 찌르는 것과 마찬가지의 반란이었으며, 그가 평생을 거쳐 이루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고, 유전학자로서, 종묘학자로서 우장춘이 일본의 우생학자들과 대립하며 이룩한 연구업적, 그 연구과정의 고난을 헤아리지 않고 우장춘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저자는 강변한다. 엘리트 우생학자 데라오 히로시와의 갈등, 한국은행 초대총재였던 이종사촌 구용서와의 상반된 삶 등 우장춘의 침묵 속에 감춰졌던 그의 드라마같은 생애를 치밀하게 고증하며, 저자는 더 나아가 한일사의 해법을 우장춘의 삶의 태도, 마코토(誠)에서 찾는다. 한국에선 친일파, 국적의 아들이라 손가락질 받고, 일본에선 조선인이라 차별받으며 살아야 했지만 오직 침묵과 마코토만으로 모든 원죄와 마주해야 했던 한 남자의 삶이 깊은 감동을 준다. *마코토(誠)는 선악이나 옳고 그름, 이데올로기 등과는 무관하게 묵묵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를 가리키는 말로 근원은 퇴계 이황의 사상에서 출발, 일본으로 전파됐다. 저자의 말 이 책에서 필자가 주목한 것은 그가 ‘적자생존’을 외치던 시대에 ‘상생’의 가치를 발견한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또한 그의 삶 속에는 지금 우리가 반드시 취해야 할 역사적 교훈이 있다고 믿는다. 한중일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한 관계가 필요한 때이고, 또 동시에 예민하고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 100여 년 전, 마치 그때처럼.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우장춘을 다시 꺼내드는 이유라고 나는 믿는다. 추천사 저는 한일 민족의 해묵은 갈등을 풀고 미래지향적인 해원 상생의 관계를 만들어줄 열쇠를 이 책에서 발견합니다. 그것이 바로 한일 합작의 우장춘 코드입니다. 제국주의의 첨병 이론인 우생학을 강요하던 일본인 상사 데라오 박사에게 차별대우를 받은 것은 물론 필생의 연구결과까지 빼앗기는 박해를 받았던 우장춘의 대응, 한국전쟁에 휩쓸린 아버지의 나라에서 민족의 미래 민생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끝끝내 세속적 부귀영화에 연연했던 이종사촌 구용서와 대비됩니다. 오로지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일하면서 평화와 화해의 가치를 만들었던 우장춘의 생애는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이상무(UN식량농업기구 한국협회장)
○ 출세도 부귀영화도 싫었는데, 그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한국에 왔던 것일까? 조국을 조국이라 부르지도 못하고, 한국말을 쓰지도 않으면서 그는 도대체 왜 그렇게 이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했으며, 가족을 다 일본에 둔 채 ‘이 땅에 뼈를 묻겠다’는 약속을 끝내 지키고 만 것일까?
○ 홍춘은 왜 이런 거짓말을 했을까? 홍춘은 심지어 스노다 후사코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는데, 형 우장춘과는 달리 일본 사람으로서 살아왔기 때문에 여러 가지 걸리는 것이 많았던 탓이었다. 하지만 구용서와의 관계를 부정한 것은 자신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구용서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구용서는 아버지 구연수의 과거를 철저히 숨겼다. 구연수는 을미사변에 참가했던 일본 도야마 사관학교 출신 여덟명 중 하나였다. 그런데 구용서는 항상 “아버지 구연수는 광산기사였다”고 이야기했다.
○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힘이 세계의 신이라고, 강한 것이 아름답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역사를 흔들어왔다. 때문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충돌하고, 끊임없이 싸웠다. 칼을 칼로 갚고, 피를 피로 씻어내는 역사가 이루어졌다. 그의 아버지는 바로 그 피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그러나 우장춘의 삶은 달랐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그는 일어나면 땅을 밟고 서서 씨앗을 심었고, 물을 줬고, 햇볕과 바람이 키운 땅의 선물을 거둬 저녁 밥상에 놓았다. 그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피 냄새나는 세상에서 생물종 다양성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서로가 있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땅의 진실, 상생의 섭리를 전달했다.
○ 그런데 여기엔 묘한 부분이 있다. 왜 그는 학위논문까지 완성했던 나팔꽃 연구에서 갑자기 손을 떼고 유채 연구에 뛰어들었을까? 연구 대상만 바꿨던 것도 아니었다. 아카미네 히데오(明峯英夫)가 남긴 글을 보면 새로운 의문이 생긴다.
“당시의 주임이었다가 나중에 농장장이 된 데라오 히로시는 1920년대에 농사시험장에서 유전 연구를 했었는데, 그것이 육종의 무기가 될 수는 없었으며 또한 그것에 의해서 얻어지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유전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고노스에서는 그 후로도 천재 우장춘에 의해서 연구가 계속되었으나, 데라오는 그것에 대해서 그다지 적극적이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나팔꽃에 대한 논문이 불에 타버린 뒤의 우장춘의 연구는 데라오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그의 독자적인 방법을 취했다고 전해오고 있다.”
화재로 논문을 잃었는데, 왜 우장춘은 더 이상 데라오의 지시를 따르지 않게 된 것일까? 그것이 만약 단순한 화재였다면 말이다. 우장춘의 갑작스런 연구대상 변경, 데라오 히로시의 갑작스런 유전학 포기는 혹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우장춘과 데라오는 1929년 두 편의 논문을 함께 발표했다. 「피튜니아에 있어 자가불임성의 유전현상(ペチユニヤに於ける自家不稔性の遺傳現象)」, 「나팔꽃에 있어 돌연변이 발현에 관한 연구(朝顔に於ける突然變異の發現に關する硏究)」라는 두 편의 논문에서 우장춘과 테라오는 이름을 연명 기재, 공동연구임을 표시하고 있다.
그런데 우장춘은 1930년 봄, 유채종자과의 주임으로 발령받았다. 유채종자과로 발령받은 이상, 사실 더 이상 피튜니아 연구 등에 시간을 쏟을 수는 없었을 것이고, 데라오 히로시와의 관계도 이것으로 끝났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930년 가을, 우장춘은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했다. 평상시 그는 논문과 연구 자료를 자기 집으로 가지고 돌아갔는데, 그날은 완성된 논문을 다음날 아침 도쿄제국대학에 제출할 예정이어서 아침 일찍 고노스 시험장에 들르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평상시와는 달리 본관 2층에 논문과 자료 등의 모든 것을 가방에 넣어두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 이날 누전에 의한 화재가 발생, 본관이 불타버렸다. 우장춘이 수년간의 노력으로 완성한 학위논문, 그 내용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목차
프롤로그
우장춘의 침묵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우장춘
우장춘 신화의 붕괴
우장춘 신화는 정말 만들어진 것인가?
아버지 우범선의 죄
1부_ 당대 최고의 무인, 우범선
피의 역사, 제국주의의 시대
신분제의 덫에 갇힌 중인무관
일본 밀항의 숨겨진 의미
청별기군의 사고뭉치 교관 우범선
갑신정변의 실패와 개화파의 몰락
청과 일의 경쟁적인 수탈
명성황후와 그녀의 적들
적과의 동침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이중계획
을미사변의 주동자, 우범선?
2부 밟아도 피어나는 민들레, 우장춘
망명, 그리고 암살
민들레의 교훈은 사실인가?
평범한 범재, 우장춘
안도 고타로의 후원
사범학교 여학생, 고하루와의 힘겨운 결혼
주제넘은 혹은 위험한 연구
숙적, 데라오 히라시
‘종의 합성’으로 적자생존론을 깨다
차별과 뼈저린 좌절
역적의 아들에서 조선의 영웅으로
이성을 잃은 시대
우장춘 박사 환국추진위원회
3부 피를 피로 씻어 내는 역사를 넘어
‘조국’이 아닌 ‘아버지의 나라’
우범선과 구연수, 우장춘과 구용서
일본은 의도적으로 조선의 농업발전을 막았다
제주도를 밀감 재배지로
단 한 번의 분노
김치의 은인
청정재배의 원조
강원도 무병감자의 개발
고무신 할아버지 우장춘
성(誠)으로 일생을 살아가고 싶다
고맙다, 조국은 나를 인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