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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6416413 / 144쪽 190 x 2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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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혜곡 최순우를 기억하는 다섯 가지 열쇠
하나, 한국미에 눈뜨게 한 스승들
학창 시절, 최순우는 장래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해 문학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 우연히 박물관 견학을 갔다 만나게 된 개성 부립박물관장 우현 고유섭은, 그런 최순우에게 “글쓰기란 꼭 대학에서 학문 삼아 공부해야 되는 게 아닐세. 오히려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중에 훌륭한 글이 나오는 법이네.” 하고 말했다. 그 말에 크게 감명 받은 최순우는 고유섭을 스승으로 모시고 개성의 유적지를 두루 답사하며 우리나라 고미술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서울 국립박물관 직원으로서 한국 전쟁을 맞은 최순우는 박물관을 점령한 북한군에 의해 보화각(지금의 간송미술관)으로 보내졌다. 소중한 문화재를 북쪽으로 보낼 수 없던 최순우는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 시간을 끌었고, 무사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전형필은 최순우에게 ‘순우’라는 필명(본명은 최희순)과 ‘혜곡’이라는 호를 지어 주며, 위창 오세창으로부터 전수받은 감식안을 함께 나누었다.
둘,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글로써 알리다
개성 부립박물관 서기로 박물관에 첫발을 내딛은 어느 날, 한 신문사에서 박물관 직원들을 대상으로 글을 청탁해 왔다. 최순우가 기고한 「개성 출토 청자 파편」이란 제목의 글은 오랫동안 청자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47년 9월 《서울신문》에 발표되었다. 그때부터 최순우는 평생 펜을 놓지 않고 우리의 고미술사를 비롯하여 공예, 회화, 건축 등 전통 예술 전반에 걸쳐 600편이 넘는 글을 남겼다.
셋, 우리 문화유산으로 세계를 감동시키다
1957년 12월 14일,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에서 열린 「한국 국보 전시회」를 시작으로 우리 문화재의 해외 순회 전시가 시작됐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연이어 겪으며 세계에 비친 한국의 인상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최순우는 우리나라가 유구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문화 민족이라는 사실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전시장을 누비며 우리 문화재가 더욱 돋보일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의 정성에 힘입어, 해외 순회 전시 내내 우리 문화재에 대한 세계의 감탄과 찬사가 쏟아졌다.
넷, 지치지 않는 문화재 답사.발굴 열정
박물관 조사 팀과 함께 흥왕사 절터를 조사할 때였다. 절터 초입에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앞다투어 절터에 남은 주춧돌과 탑을 깨어다가 자기 집 구들장을 놓거나 담을 쌓는 데 쓰고 있었다. 들판에 버려진 돌덩이 따위 먼저 집는 사람이 임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최순우는 굳게 마음을 다잡았다. 더욱더 부지런히 발굴하고 연구하고 또 알려야 하는 이유를 찾은 것이다. 최순우는 발굴 조사 팀을 이끌고 금곡리 가마터, 도마리 가마터 등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다.
다섯, 조선 백자 같은 주인을 닮은 옛집
1976년 1월, 최순우는 성북구 성북동 126-20번지로 이사했다. 최순우에게 있어 ‘집’이란 고향과 스승,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다름없었다. 그는 고향 집의 정취를 살리기 위해 창과 문에 모두 ‘용(用)’ 자 창살을 쓰고, 소나무와 모란, 수국, 해당화 등을 심어 가꾸었다. 또 장독대도 만들어 올망졸망한 항아리 가득 장과 초를 담아 놓았다. 장독대 한옆 향로석 위에는 조선 시대 달항아리를 본뜬 커다란 도자리를 올려놓고, 하얀 도자기 표면에 댓잎 그림자가 비치는 운치를 감상하기 위해 주변으로 대나무를 심기도 했다. 이 집은 2002년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사들여 보수.복원 공사를 거쳐서, 2004년 ‘혜곡최순우기념관’으로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사무실을 두어 관리를 맡고 있다.
그리고 전설적인 박물관인으로 눈감다
박물관 사람이 된 지 29년 만인 1974년 6월 18일, 최순우는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장에 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축하의 인사를 건넸지만 정작 최순우 자신은 담담했다. 그저 지금처럼, 박물관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을 뿐이었다. 췌장암 진단을 받고도 마지막까지 박물관장으로서의 직무를 놓지 않던 혜곡 최순우는 1984년 12월 15일 끝내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같은 날, 정부는 ‘은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추천사_김인회 혜곡최순우기념관장ㆍ6
1장. 최순우, 박물관을 만나다
우현 고유섭과의 첫 만남ㆍ13
박물관에 내딛은 첫발ㆍ19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깨우쳐 준 스승ㆍ26
덧붙이는 이야기 한국 미학의 선구자, 우현 고유섭ㆍ32
2장. 전쟁 속 우리 문화재를 지키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ㆍ37
혼자서 피난시킨 벽화 60점ㆍ45
박물관 화랑에서 열린 현대 미술 전시회ㆍ52
우리 문화재 지킴이 간송 전형필ㆍ58
실향의 슬픔을 달래 준 친구들ㆍ65
덧붙이는 이야기 편지를 통해 주고받은 우정ㆍ70
3장.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알리다
글로써 알린 우리 고미술의 아름다움ㆍ75
우리 문화재의 해외 나들이ㆍ79
유럽 순회 전시ㆍ85
파리의 하늘 아래 서린 슬픔ㆍ91
덧붙이는 이야기 해외 전시 포스터ㆍ100
4장. 전통을 아는 것이 곧 나 자신을 아는 것이다
금곡리 가마터 발굴ㆍ105
도마리 가마터에서 나온 청화 백자ㆍ111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장ㆍ116
한국 미술의 역사는 5000년ㆍ122
걸어온 발자취 ‘옛집’에 남기고ㆍ126
덧붙이는 이야기 최순우 옛집ㆍ136
혜곡 최순우 선생이 걸어온 길ㆍ138
글쓴이의 말ㆍ142
글쓴이 그린이 소개ㆍ1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