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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훙장 평전

량치차오 저 | 박희성, 문세나 역 | 프리스마 | 2013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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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6648246 / 312쪽 152 x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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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역사를 쓰는 사람은 반드시 공정한 마음을 가지고 써야 한다!”
자신의 정적마저도 끌어안고 공정한 마음으로 써내려간
중국 근대 대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의 리훙장(李鴻章) 평전

*
태평천국의 난과 염군의 난을 진압한 군사가,
대학사, 북양대신, 총리아문대신 등을 역임한 한족계 정치가,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중국을 근대화하려 했으나 실패한 양무운동의 선구자,
기울어가는 청나라의 대표로서 외국 열강들을 상대로 굴욕적인 조약들을 체결한 외교가,
리훙장의 삶은 격동의 19세기 근대 중국 역사 그 자체다!

중국 근대 대사상가 량치차오의 눈으로 바라본
격동의 19세기 중국 근대사와 그 역사를 관통한 리훙장의 삶!

리훙장(李鴻章)은 19세기 중국 근대사에서 군사가, 정치가, 외교가로서 40여 년이나 실권을 장악한 인물이다. 태평천국(太平天國)의 난과 염군(捻軍)의 난을 진압해 명성을 얻은 군사가, 그것을 바탕으로 만주족 관원 일색인 중앙 정계에 진출해 대학사, 북양대신, 총리아문대신 등 요직을 차지한 몇 안 되는 한족계 정치가,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중국을 근대화하려 했으나 실패한 양무운동의 선구자, 기울어가는 청나라를 대표해 외국 열강들을 상대로 굴욕적인 마관조약(시모노세키조약), 중러밀약, 중러만주조약, 신축조약 등을 체결해야 했던 외교가였다. 19세기 중국 근대사의 거의 모든 일이 그의 손을 거쳤다고 할 정도로 리훙장은 19세기 중국 근대사와 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리훙장의 삶은 격동의 19세기 중국 근대 역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리훙장은 한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리훙장은 19세기 후반 청나라 대신(大臣)으로서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하고 대조선 정책을 주도한 인물로, 처음에는 소극적인 불간섭정책을 펴나가다가 임오군란 수습 과정부터 실질적인 간섭정책으로 전환했고, 이후 위안스카이(袁世凱)를 파견하여 조선 정부의 내정 및 외교에 적극적으로 간섭했다. 일본과 톈진조약을 맺고 임오군란과 동학농민운동에 개입해 조선에 군대를 파견함으로써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일본과 청일전쟁을 치르고 일본에 패해 그동안 쌓아온 군사적 명성을 하루아침에 잃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책은 구사상을 배격하고 서양의 신사상을 중국에 소개하여 중국 개화에 공헌한 중국 근대 대사상가이자 개혁가, 문학가인 량치차오(梁啓超)가 직접 쓴 리훙장 평전이다. 량치차오는 동시대 실권자이자 자신의 정적(政敵)이기도 한 리훙장이 1901년에 죽자, 같은 해에 이 책을 썼다. 왜 량치차오는 자신의 정적인 리훙장 평전을 썼는가?

리훙장은 과연 ‘동양의 비스마르크’인가, 매국노인가?

19세기 중국 근대사는 리훙장이라는 인물과 관련이 깊기 때문에 19세기 중국 근대사를 제대로 알려면 리훙장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당시 사람들은 청일전쟁의 패배와 굴욕적인 조약 체결 책임을 모두 리훙장에게 돌리면서 매국노, 한간(漢奸), 부정부패자라고 비난했다. 한편, 1896년 독일을 방문한 리훙장에게 빌헬름 2세는 ‘동양의 비스마르크’라는 수식어를 붙이기까지 했다. 리훙장은 과연 ‘동양의 비스마르크’인가, 매국노인가?

저자 량치차오는 이 책에서 “역사를 쓰는 사람은 반드시 공정한 마음을 가지고 써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기꺼이 자신의 정적마저도 끌어안고 공정한 마음으로 군사가, 정치가, 외교가로서 리훙장의 잘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청일전쟁의 패배와 외국 열강들과의 굴욕적인 조약 체결 책임을 모두 리훙장 한 사람에게만 돌린다면 정권을 잡고 나라를 망친 다른 중신들의 죄까지 리훙장에게 덮어씌우는 꼴이 될 것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리훙장은 중국의 수천 년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일 뿐만 아니라, 19세기 세계사에서도 중요한 인물이다. 저자 량치차오는 이 책에서 리훙장이 살았던 19세기 청나라의 상황과 그 속에서 리훙장이 처한 위치, 외국 열강들이 몰려들고 반란이 끝없이 이어지는 혼란기에 중국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 그리고 군사가, 정치가, 외교가로서 리훙장의 삶을 돌아보고, 리훙장이 “시대가 만든 영웅일 뿐, 시대를 만든 영웅은 아니었다”고 평하면서 리훙장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연민, 리훙장 사후 더 이상 인재가 없는 중국의 현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특히 유럽 순방 중 비스마르크를 만난 리훙장이 만주족 관원 일색인 청조에서 한족 중신으로서 자신이 느끼는 고뇌와 근심, 분노와 우려를 털어놓으며 조언을 구한 일화를 비롯해서 당시 벌어진 역사적 사건에 대한 량치차오 개인의 솔직한 생각을 담은 부연 설명, 그리고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리훙장이 과연 어떤 인물인지 설명하기 위해 중국과 중국 밖의 인물 16인(곽광, 제갈량, 곽자의, 왕안석, 진회, 쩡궈판, 쭤쭝탕, 리슈청, 장즈퉁, 위안스카이, 메테르니히, 비스마르크, 글래드스턴, 티에르, 이이 나오스케, 이토 히로부미)과 리훙장을 각각 비교해 설명하고 있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최근 개혁ㆍ개방을 거쳐 경제 강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은 양무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리훙장을 태평천국의 난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중국을 강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 애국자이자 민족주의 정치가, 이이제이(以夷制夷)로 열강을 견제하려 했던 외교가로 재평가하고 있다. 이 책은 격동의 19세기 중국 근대사와 그 당시 실권자인 리훙장이라는 인물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길잡이가 될 뿐만 아니라, 오늘날 중국에 부는 리훙장 재평가의 바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해줄 것이다.

리훙장, 그는 누구인가?

1823년 중국 안후이 성(安徽省) 허페이 현(合肥縣)에서 태어났다. 1844년에 향시(鄕試)에 합격한 후 베이징(北京)으로 올라와 유명한 정치가이자 학자인 쩡궈판(曾?藩)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그의 문하생이 되었다. 이후 한림원(翰林院)에 들어가 관료로서의 길을 착실하게 가던 리훙장에게 태평천국의 난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1853년 태평군의 기세가 높아지자, 리훙장은 조정의 명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 의용군인 회군(淮軍)을 조직했고, 안후이 순무(安徽巡?) 푸지(福濟) 휘하에서 활약한다. 이후 자신을 인정해준 쩡궈판의 참모로 들어가 쩡궈판의 상군(湘軍) 및 고든의 상승군(常勝軍)과 연합해 태평군 소탕의 주력 인물로 활약하여 결국 1864년에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했다. 그리고 이어서 발생한 염군(捻軍)의 난을 진압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군사적 성공을 발판으로 중앙 정계에 진출한 리훙장은 스승 쩡궈판과 함께 양무운동(洋務運動)을 이끌었고, 쩡궈판이 세상을 떠난 뒤 청 정부의 최고 정치가이자 외교가로서 활약했다. 이 양무운동을 바탕으로 리훙장은 북양해군을 창설하여 훈련시켰으나, 1894년 벌어진 청일전쟁에서 무참하게 패배했다. 전쟁 후 정치 전면에서 물러나게 되나, 외교 면에서는 청 정부를 대신하여 외교 업무를 처리하여 외국 열강들을 상대로 굴욕적인 조약들을 체결하는 당사자가 되었다. 치욕적인 말년을 보낸 리훙장은 청이 맺은 대외조약 중 가장 치욕적인 ‘신축조약(베이징의정서)’을 체결하고 얼마 뒤인 1901년 11월에 세상을 떠났다.

저자 소개

자는 주어루(卓如), 호는 런공(任公), 별호로는 아이스커(愛時客), 인빙(飮氷), 인빙스주인(飮氷室主人) 등이 있다. 1873년 광둥(廣東) 신후이(新會)에서 태어나, 6세 때 사서오경을 떼고 12살에 수재, 17세에 거인(擧人)이 되었다. 1890년 광저우(廣州) 만목초당(萬木草堂)에서 캉유웨이로부터 경세치용(經世致用)과 변법(變法) 이론을 공부했다. 1895년 베이징 회시(會試)에 캉유웨이와 함께 참가해 “공거상서(公車上書)”를 올렸으며, 이를 계기로 변법유신운동에 뛰어들었다. 변법운동 기간 중에 『시무보(時務報)』를 발간하고 「변법통의(變法通義)」를 발표하였으며 『서정총서(西政叢書)』를 편집했다. 무술변법이 실패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캉유웨이와 보황회(保皇會)를 조직해 입헌군주제를 주장하고 혁명파에 반대하는 한편, 『청의보(淸議報)』, 『신민총보(新民叢報)』, 『신소설(新小說)』등의 잡지를 펴내는 등 활발한 계몽활동을 하였다. 신해혁명(辛亥革命) 후에는 위엔스카이(袁世凱) 국민정부에서 사법총장을, 돤치루이(段祺瑞) 정부에서 재정총장을 역임하는 등 정치활동을 하였다. 1920년, 1년간 유럽 시찰을 마치고 돌아와 『구유심영록(歐遊心影錄)』,『청대학술개론(淸代學術槪論)』, 『선진정치사상사(先秦政治思想史)』 등을 저술하고 칭화대학과 난카이대학(南開大學)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등 학술활동에 매진하다 1929년 1월 베이징에서 신장병으로 사망했다. 
주요 저작으로 『신민설(新民設)』, 『중국 학술 사상의 변천을 논함(論中國學術思想變遷之大勢)』, 『중국문화사(中國文化史)』, 『중국역사연구법(中國歷史硏究法)』 등이 있으며, 대부분의 저작은 『인빙스합집(飮氷室合集)』에 실려 있다. 

역자 소개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학생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전문 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다.
아주대와 고려대에서 서양현대사 및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했고, 육군정보학교 중국어반을 졸업했다. 현재는 두원공대 군사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논문으로는 「러일전쟁 기간 국제관계 와 한국」 등이 있고, 저서로는 『워너비 검은 베레』(공저)가 있으며, 번역서로는 『마셜』(공역), 『드골』, 『리훙장 평전』(공역)이 있다. 『한국전쟁사료 1, 2권』 편찬 작업에 참여했으며, 다큐멘터리 〈만주벌 의 독립전사들! 청산리전투〉, 〈1:1000의 독립전쟁 김상옥〉, 〈조선 정예부대 ‘타이거 헌터’〉의 자문을 맡았다.

목차

옮긴이의 말 | 리훙장 다시 읽기 | 4
지은이 소개 | 량치차오는 누구인가? | 8
지은이의 말 |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려라” | 12

제1장 서론 | 과연 리훙장에게 모든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간웅인지 호걸인지 논하기 전에 그가 처한 위치와 상황을 먼저 이해하라 | 23
비스마르크와의 만남 | 24
중국 근대사와 뗄 수 없는 중요한 인물 | 26
시대가 만든 영웅인가, 시대를 만든 영웅인가? | 29

제2장 리훙장의 위치 | 리훙장을 위한 변호
근대 중국의 권신 | 35
권신의 네 가지 유형 | 37
중국에서 전제정치가 발달한 중요한 두 가지 원인 | 42
만주족 관원 일색인 청조의 몇 안 되는 한족 중신 | 45

제3장 리훙장 등장 이전의 중국의 상황 | 난세는 영웅을 만든다
밀려드는 열강, 혼란한 정국 | 57
끝없이 이어지는 반란 | 61
태평천국의 난 진압, 군사가로서의 명성 시작 | 64
쩡궈판의 참모가 되다 | 70

제4장 군사가 리훙장 상(上) | 시대의 총아, 태평천국을 평정하다
태평천국의 위세가 절정에 달하다 | 75
상승군의 창설 | 79
쩡궈판의 상군, 안칭을 수복하다 | 81
리훙장, 회군을 조직하다 | 84
상하이 방어 성공, 지휘 통솔 능력을 인정받다 | 86
태평천국의 근거지 난징을 토벌하라 | 88
리훙장의 맞수 리슈청 | 89
상승군 지휘관 버제빈 파면 | 96
쑤저우 성 수복 | 100
장쑤 성 남부의 태평군 평정 | 104
난징 수복, 태평천국을 평정하다 | 109

제5장 군사가 리훙장 하(下) | 치밀한 군사전략으로 염군의 난을 평정하다
염군의 난 | 119
동염군을 섬멸하다 | 122
서염군을 섬멸하다 | 127
그 스승에 그 제자, 장수들을 잘 다스리는 진정한 인재 | 131

제6장 양무운동 시기의 리훙장 | 양무운동의 선구자, 진정한 중국 근대화에 실패하다
양무운동을 주도하다 | 137
강군 양성, 사라져버린 옛 꿈 | 142
리훙장의 실패 원인 | 148

제7장 청일전쟁 시기의 리훙장 | 군사가로서의 명성이 청일전쟁 패배와 함께 사라지다
리훙장의 첫 번째 실책 | 159
리훙장의 두 번째 실책 | 163
리훙장의 세 번째 실책 | 168
청일전쟁의 시작, 풍도해전과 아산전투 | 168
황해해전 패배로 제해권을 상실하다 | 171
평양전투, 청나라 해군에 이어 육군도 패하다 | 175
청일전쟁 패배 이유 | 178
리훙장의 열두 가지 책임 | 183
“일본은 중국이 아니라 리훙장 한 사람과 전쟁을 한 것이다” | 185

제8장 외교가 리훙장 상(上) | 굴욕적인 톈진조약과 마관조약을 체결하다
톈진 교안, 리훙장이 처리한 첫 번째 외교 사건 | 193
외교 처리 능력을 인정받다 | 195
청일전쟁의 도화선 톈진조약을 체결하다 | 199
마관조약 체결, 총상으로 얻은 평화 | 202

제9장 외교가 리훙장 하(下) | 리훙장의 외교 역사는 곧 실패의 역사이다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힘을 빌려 일본에 항거하다 | 219
랴오둥 반도 반환의 대가, 중러밀약 | 222
리훙장의 유럽 순방, 실패로 끝난 수입 관세 인상 계획 | 227
자오저우 교안 사건 | 229
무산된 외국 차관 도입 시도 | 233
중국을 차지하기 위한 열강들의 싸움 | 235

제10장 한직에 있을 때의 리훙장 | 량광 총독 시절의 업적과 과오
황허 치수 사업에 작지만 의미 있는 공헌을 하다 | 245
범죄 현장에서 잡는 즉시 극형에 처하다 | 247
도박을 권장하면서 세금을 거두다 | 247
교활한 천주교 신자들에 맞서다 | 249
“캉유웨이 일당의 기세를 진압하라” | 249

제11장 리훙장의 말년 | 죽기 직전까지 국사를 걱정한 한 시대의 풍운아
의화단 사건, 무술변법의 반작용 | 255
당시 리훙장이 취할 수 있었던 상ㆍ중ㆍ하책 | 259
열강 11개국과 신축조약을 체결하다 | 260
러시아와 중러만주조약을 체결하다 | 264
한 시대의 풍운아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 269

제12장 결론 | 리훙장은 어떤 인물이었나?
리훙장과 곽광 | 277
리훙장과 제갈량 | 278
리훙장과 곽자의 | 279
리훙장과 왕안석 | 280
리훙장과 진회 | 281
리훙장과 쩡궈판 | 282
리훙장과 쭤쭝탕 | 283
리훙장과 리슈청 | 284
리훙장과 장즈퉁 | 285
리훙장과 위안스카이 | 286
리훙장과 메테르니히 | 287
리훙장과 비스마르크 | 288
리훙장과 글래드스턴 | 290
리훙장과 티에르 | 292
리훙장과 이이 나오스케 | 293
리훙장과 이토 히로부미 | 295
리훙장에 대한 일화 | 296
리훙장에 대한 어느 일본인의 평론 |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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