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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7490606 / 176쪽 14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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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 민음사 모던 클래식 [69]
출판사 리뷰
▶ 찬게즈를 통해 마주하는 제3세계의 목소리, 그 “불편한 진실” “텔레비전을 켰을 때 처음에는 영화가 나오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계속 보니까, 영화가 아니고 뉴스더라고요.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이 건물이 하나둘 무너지더군요. 그때, 나는 미소를 지었어요. 그래요, 혐오스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의 첫 반응은 놀랍게도 즐거움이었어요. (중략) 나는 그 모든 것의 상징성에 빠져들었던 거죠. 누군가가 그렇게 가시적으로 미국의 무릎을 꿇렸다는 사실에 그랬던 거죠.” 뉴스를 통해 월드트레이드센터가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목격한 찬게즈의 말이다. 수천 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은 비극적인 사건을 두고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느껴질지도 모르는, 어쩌면 서구의 권력에 무릎 꿇은 적 있던 제3세계 국민이라 할지라도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을 목소리다. 찬게즈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미국인에게 이렇게 되묻기 위해서다. “당신도 그런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지 않느냐고. 당신 역시 “미국 무기가 적의 건축물을 폐허로 만들어 버리는” 영화나 비디오 따위를 보면 즐겁지 않으냐고. 찬게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월드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지는 것을 미국의 무릎을 꿇린 “상징적” 사건으로 보고 흡족해하는 사람들이나, 자기 나라 첨단 무기에 다른 나라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영상을 보고 즐거워하는 미국인들이나 다를 바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늘 빚에 허덕이지도 않고 외국의 원조와 기부에 의존하지도 않았으니까요.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하는 얘기 속 우리는 당신네 텔레비전 채널에 나오는 것처럼 미치고 가난한 과격주의자들이 아니라 성인들과 시인들과 용감무쌍한 왕들이었어요. 우리는 이 도시의 사원과 샬리마르 정원을 만들었어요. 우리는 거대한 담과 우리 전투용 코끼리들을 위한 넓은 비탈길이 있는 라호르 요새를 만들었어요. 당신네 나라가 아직 대륙의 가장자리를 야금야금 먹어 가는 작은 식민지 열세 개의 집합체였을 때, 우리는 이런 것들을 해냈단 말입니다.” 자본과 무력이 세계를 압도하기 전, 오랜 전통과 신념으로 나라를 지켜 왔다는 자부심, 약소국가로 전락해 지배당하고 아름다운 국토가 짓밟히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서글픔, 서구의 뒤틀린 시선 아래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가 왜곡되어 온 데 대한 억눌린 분노가 느껴지는 또 하나의 목소리다. “맞아요, 내 생각은 황량했지요. 미국이 세계에서 행동하는 방식에 내가 늘 분개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신네 나라가 다른 나라 일에 계속 관여하는 건 참을 수 없었어요. 베트남, 한국, 타이완 해협, 중동, 그리고 이제는 아프가니스탄까지 말이죠. 미국은 우리 아시아 대륙을 둘러싼 갈등 대부분과 교착 상태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어요. 게다가 나는 파키스탄인으로서의 경험을 통해 미 제국이 힘을 행사하는 주된 수단이 재정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원조와 제재를 번갈아 하면서 말이죠. 그런 지배의 과업을 돕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한 건 옳은 일이었어요. 놀라운 게 오직 하나 있다면, 내가 이런 결론에 도달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는 것이었어요.” 마지막으로, 깨달음의 목소리다. 우수한 성적으로 프린스턴을 졸업한 총명하고 성실하며 야심 찬 한 젊은이가 꾸었던 달콤한 아메리칸 드림, 매력적인 미국 여성 에리카와 사랑을 나누며 한때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행복했던 한 청년이 충격과 혼란을 딛고 오랜 번민과 고뇌 후에 낼 수 있었던 목소리다. 모신 하미드는 찬게즈라는 한 파키스탄 청년이 익명의 미국인에게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형식을 통해, 그 상대 미국인을, 독자들을 ‘청중’으로 만든다. 하미드는 세계의 독자들을 향해 9.11을 비롯한 여러 역사적 사건과 관련하여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이야기는 실컷 들어 왔으니, 이제는 제3세계의 입으로 그 이야기를 들어 볼 때가 되었다고, 서구의 목소리가 늘 제3세계의 목소리를 압도해 왔지만, 설혹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그들과는 다른 시각과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목소리로 말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 위태롭고 안타까운 러브 스토리, 혹은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 혹은 알레고리 소설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자칫 무거워질 수도 있었을 민감한 정치 주제를 문학적으로 훌륭하게 풀어냈다는 점이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명료하고 날카롭게, 하지만 결코 그 목소리가 과격해지거나 공감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담담하고 나직하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할 뿐이다. 거기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찬게즈의 사랑 이야기다. 모신 하미드는 정치적 주제와 사랑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자연스럽게 녹여 냈다. 프린스턴에 진학해 이제 막 새로운 삶에 대한 꿈에 부푼 찬게즈에게 있어, 미국 여성 에리카는 그 꿈을 상징하는 존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찬게즈와 에리카의 사랑은 순탄하지 않다. 에리카에게는 잊지 못하는 첫사랑이 있고, 그 첫사랑은 에리카를 고립 속으로 몰고 간다. 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하는 연인에게 9.11은 위기로 다가온다. 위태롭고도 은밀한 사랑 이야기는 때로는 안타깝게, 때로는 아찔하게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러브 스토리에 더해 이 소설은 또 하나, ‘스릴러’의 외피를 입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라호르의 옛 시가지, 한 파키스탄 청년과 미국인 남자가 식당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이 미국인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으며, 그의 목소리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웨이터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나치게 경계하는 태도, 안주머니 속에서 불룩 솟은, 마치 권총과도 흡사한 실루엣과 함께 하늘을 날아다니는 “스키피”한 박쥐 무리까지, 어딘지 음울하고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작품 전반을 휘감는다. 찬게즈의 이야기가 언제 어떻게 끝날지 독자들은 알 수 없고, 찬게즈와 이 미국인이 결국 어떤 선택을 할지는 더욱 알 수 없다. 다만 숨죽이며 찬게즈의 목소리를 따라갈 뿐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필연적으로” 알레고리 소설이다. 프레더릭 제임슨은 “제3세계의 텍스트는 필연적으로 알레고리적이며, 국가적인 알레고리로 읽”히는데 그 이유가 “사적이고 개인적인 운명에 관한 이야기가 늘 제3세계의 공적인 문화 및 사회의 절박한 상황에 대한 알레고리” 기능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개인의 이야기는 개인의 이야기인 동시에, 개인이 속한 문화나 사회에 대한 알레고리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실제로 이 작품에 나오는 러브 스토리도 찬게즈 개인의 사적인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3세계와 미국의 복잡한 관계를 환기하는 알레고리적인 측면이 엿보인다. 미국에 와서 명문 대학을 졸업한 찬게즈에게는 에리카가 아메리칸 드림의 구현일 수도 있다. 실제로 찬게즈는 그녀를 사랑하면서 모든 것을 얻은 듯한 환상에 사로잡힌다. 앞으로 자신의 인생이 전도유망하고 탄탄하게 펼쳐질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환상은 현실과 부딪치며 산산이 조각나고, 그와 비슷한 시기에 찬게즈의 아메리칸 드림도 깨어진다. 에리카(Erika)라는 이름이 ‘아메리카(America)’를 연상시킨다는 사실은 바로 이때, 퍼즐 조각처럼 맞추어진다. 이와 더불어 찬게즈(Changez)라는 이름 또한 알레고리로 읽힌다. 하미드는 인터뷰를 통해 주인공의 이름을 ‘칭기즈 칸(Chingiz Khan)’에서 따 왔다고 했다. 그는 그 이름을 통해 주인공의 ‘전사’ 이미지를 부각하고 싶었다고 했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찬게즈’라고 표기하게 되었지만 그의 이름은 챙기즈, 챈기즈, 칭기스로도 발음될 수 있으며 또한 그의 이름 철자는 ‘변화’를 의미하는 ‘체인지(change)’도 연상시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치 소설로 읽든, 스릴러 소설로 읽든, 혹은 러브 스토리로 읽든,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재미있으며, 읽을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모신 하미드는 이 작품을 통해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을 알리며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발돋움하였다. ▶ 파키스탄 청년 모신 하미드, 세계적 작가로 주목받다 모신 하미드는 파키스탄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다. 프린스턴과 하버드를 졸업할 정도로 뛰어났으며 법을 공부했지만 경영 쪽에서 일하고, 그런 와중에 소설가를 꿈꿀 정도로 다재다능한 청년이었다. 무엇보다도 조이스 캐럴 오츠와 토니 모리슨의 수업을 들으며 소설 창작의 기초를 다졌다. 모신 하미드는 누구나 쉽사리 말하지 못하는 진실, 가급적이면 외면하고 싶고 듣고 싶어 하지 않았던 “불편한 진실”, “위험한 속마음”을 문학 작품으로 훌륭하게 재탄생시킨 “용기 있는” 작가다. 역량이 부족하거나 사상에만 함몰된 작가, 혹은 무모할 정도로 용기만 넘치는 작가에게 이러한 주제가 주어졌다면 흑백 논리만 뚜렷이 드러난 작품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미드의 손을 거치면서 9.11이라는 주제는 빼어난 문학 작품으로 태어났다. 이 소설은 발표되자마자 저명한 학자, 작가, 기자 들의 엄청난 찬사를 받았으며 전 세계에서 100만 권이 넘게 팔린 데다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가디언》 선정 ‘지난 10년간 최고의 작품’으로 뽑혔다. 또한 다양한 상의 후보(부커 상, 제임스테이트 블랙 문학상, 연방 작가상)에 올랐으며 애니스필드울프 문학상, 아시아아메리칸 문학상, 앰배서더 문학상, 사우스뱅크 쇼 문학상, 이탈리아 문학상 등 여러 상을 휩쓸며 3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나방 연기』에 이어 오직 두 편의 소설로 이렇듯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에서 성공을 거둔 모신 하미드는 9.11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정면으로 받아들이되 결코 제3세계의 입장에만 치우치지 않으며, 분명하고 날카롭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되 결코 격앙되거나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민감한 정치적 이슈를 다루었지만 뛰어난 지성과 섬세한 감성, 우아하고 절제된 문체와 탁월한 균형 감각으로 그것을 아름다운 문학 작품으로 승화한 모신 하미드를 두고, 또 한 명의 ‘세계적 작가’가 탄생했음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옮긴이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