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존 바에즈 자서전 평화와 인권을 노래하다

원제 : And A Voice to Sing With: A Memoir

존 바에즈 저 | 이운경 역 | 삼천리 | 2012년 10월

북트리

정가
$46.00
판매가
$25.3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51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8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88994898124 / 592쪽 153 x 224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당신은 언제 어떻게 죽을지 선택할 수 없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지금 어떻게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뿐이다.” ― 존 바에즈 자유와 평화, 인권을 노래한 포크 음악의 마돈나! 60년대 미국 젊은이들의 우상이며, 여덟 장의 골드 앨범과 한 장의 골드 싱글 기록.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인종차별 철폐와 공민권 확대를 위한 워싱턴대행진. 밥 딜런의 연인. 베트남전쟁 당시 하노이 방문. 국제인권사면위원회 엠네스티 기금 마련 활동. 국제인권기구 후마니타스 설립. 프랑코, 피노체트와 같은 독재자의 지배 아래... “당신은 언제 어떻게 죽을지 선택할 수 없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지금 어떻게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뿐이다.” ― 존 바에즈 자유와 평화, 인권을 노래한 포크 음악의 마돈나! 60년대 미국 젊은이들의 우상이며, 여덟 장의 골드 앨범과 한 장의 골드 싱글 기록.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인종차별 철폐와 공민권 확대를 위한 워싱턴대행진. 밥 딜런의 연인. 베트남전쟁 당시 하노이 방문. 국제인권사면위원회 엠네스티 기금 마련 활동. 국제인권기구 후마니타스 설립. 프랑코, 피노체트와 같은 독재자의 지배 아래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언어로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앨범 녹음. 바스티유데이(프랑스 혁명 기념일)에 프랑스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서 비폭력주의에 바치는 무료 콘서트를 개최해 프랑스 최고의 명예인 레종 도뇌르 훈장 수상. ‘3일간의 음악, 평화, 사랑의 제전’인 우드스톡 페스티벌 참가. 세계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된 ‘라이브 에이드’의 미국 측 첫 공연 주자……. 우디 거스리와 피트 시거를 잇는 싱어송라이터이자 비폭력 저항의 기수인 존 바에즈에게 따라다니는 수식들은 이 밖에도 수없이 많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일흔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목소리 내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 그녀는, 지난해 11월 뉴욕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 때도 주코티 공원에서 통기타 하나를 들고 나와 열창을 했다. 《존 바에즈 자서전: 평화와 인권을 노래하다》는 우리가 이제껏 들어 온 존 바에즈의 노래들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그녀만의 솔직한 내면 고백을 들을 수 있다. 모든 금기에 도전하는 사회정치적 활동은 물론, 한 여성으로서 삶과 사랑, 결혼, 가족, 모성에 관해서도 바에즈는 결코 꾸밈이 없다. 자신의 성공과 타고난 재능에 대해서도 숨기는 법이 없으며, 실패와 혼란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솔직하다. 이러한 솔직함이야말로 스스로 최선을 다해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용기일 것이고, 이 책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 주는 요인일 테다. “나는 재능을 타고 태어났다. 재능에 관해서라면 나는 굳이 겸손을 떨거나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은 정말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왜냐하면 그건 정말 내가 만들어 낸 것도, 내가 특별히 자랑스러워할 만한 행동도 아닌, 내게 그냥 주어진 재능이기 때문이다.” (55쪽) 순수가 추락하는 시대, 그 마지막 생존자 존 바에즈 존 바에즈가 한창 활동하던 60년대는 사회정치적으로도 격변의 시대였다. 베트남전쟁으로 무고한 젊은이들이 전쟁터로 끌려가 목숨을 잃고, 젊은이들이 숭배해 마지않은 영웅 체 게바라는 쿠바 정부군에게 총살을 당했으며, 1년 뒤 마틴 루터 킹 목사 또한 암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젊은이들은 서구 근대 문명이 만들어 낸 모든 권위에 저항했다. 그들은 기존 사회 체제들, 근대적 합리주의와 그것이 낳은 인간 소외를 파시즘과 동일하다고 보고, 기성세대의 권위를 깡그리 짓밟고자 했다. 미국에서 청년들은 징집영장을 공공연히 불태웠고, 프랑스에서는 68년 5월혁명을 도화선으로 관습과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학생들의 집회가 각계각층으로 확산되었다. 젊은이들은 모든 금기들에 도전하고 저항함으로써 혁명을 성취하고자 했다. 포크 음악은 바로 이러한 정신에 바탕을 두고 의식에 관여하는 음악으로서 비판과 저항,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순수의 시대를 부르짖었다. 그리고 존 바에즈와 더불어 밥 딜런은 그 선두의 자리에서 포크 정신과 희망의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호소해 나갔다. 하지만 진보의 목소리가 세상을 뒤엎을 것 같았던 60년대가 끝나자 오히려 세상은 잠잠해졌다. 록의 혁명성은 상업주의의 포로가 되고, 포크의 순수를 믿은 시대는 더 이상 활로를 찾지 못하고 그 명맥마저 위태롭게 되었다. 밥 딜런 역시 어쿠스틱 기타를 버리고 일렉트릭 기타를 짊어졌으며, ‘우리’의 시대에서 ‘나’라는 개인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갔다. 그러나 존 바에즈는 이런 시기에도 결코 음악적 내용을 바꾸지 않았고(나중에는 형식면에서 일부분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침묵하지도 않았다. 바에즈의 음악은 당시 ‘연예계’로 대표되는 대중문화와는 거리가 멀었을지언정, 이후로도 그녀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베트남이든, 북아앨랜드든, 튀니지든, 아르헨티나든, 레바논이든 가리지 않고 노래했고, 말뿐인 지성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자신의 노랫말을 그들과 함께 나누었다. 시대와 아픔을 함께하는 음악이야말로 존 바에즈의 노래가 영혼을 움직이는 이유 아니겠는가. “나는 음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음악에서 그렇듯 전쟁터에서도 생명의 편을 들지 않는다면, 그 모든 소리가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소용없죠. 이 시대가 던지는 가장 중요하고도 현실적인 물음, 즉 어떻게 하면 인류가 서로 죽이는 일을 막을 수 있으며, 그러한 살육을 막기 위해 내가 평생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것이 될 거예요. 내가 세상에 나서서 무언가 하길 원한다면, 그건 바로 내 선택입니다.” ― 앤서니 드커티스(음악평론가)와 인터뷰 중에서 비폭력 저항운동과 마틴 루터 킹 존 바에즈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어느 퀘이커교 모임에서였다. 그날 킹은 연사로 초대되어 남부에서 일어난 버스 탑승 거부 운동과 자유를 향한 행진, 비폭력 혁명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킹이 연설을 마칠 때쯤 바에즈는 그때까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마음속 신념들이 앞으로는 신나게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하여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성인(聖人)으로 킹을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1963년 3월, 존 바에즈는 킹 목사와 함께 인종차별 철폐와 흑인들의 공민권 확대를 요구하며 워싱턴 거리 행진에 참여해, 25만 민중 앞에서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를 노래했다. 이 행진에는 바에즈 말고도 밥 딜런, 피터 폴 앤 메리, 해리 벨라폰테 같은 의식 있는 뮤지션들도 함께했다. 그 뒤로도 수십 년에 걸쳐 바에즈는 사회적 소수자로 대표되는 사람들 편에서 싸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때문에 대중매체에서는 그녀를 두고 순진한 좌파 앞잡이의 전형이라는 식으로 묘사하기도 했는데, 사실 바에즈는 어떤 정권이든 어떤 정치적 유형이든 문명화된 윤리 규약에 부응하지 못하는 당파에게는 가시와도 같은 불편한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입증한 것이다. 그리하여 존 바에즈라는 이름은 마틴 루터 킹이나 마하트마 간디와 마찬가지로 비폭력 저항운동의 이상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그리니치빌리지의 연인, 밥 딜런과 존 바에즈 1961년 4월, 존 바에즈는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의 ‘저즈 포크 시티’에서 밥 딜런을 처음 만났고, 이후 둘은 포크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서 연인 관계가 되어 전미 콘서트 투어를 함께했다. 바에즈와 딜런은 당시 미국 사회의 여러 모순들(인종차별, 흑인 공민권 투쟁, 베트남전쟁, 세대 간 갈등 등)을 저항과 리얼리즘의 정신으로 담아냈고, 삶에 대한 열정과 양심에 귀 기울이고자 한 젊은이들의 대변인이 되었다. 포크 음악이 지향하는 바에 대해 많은 교감을 나누면서, 딜런은 바에즈의 음악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바에즈의 노래는 대중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뉴스위크》는 “포크송의 여왕 존 바에즈가 밥 딜런을 왕자로 책봉했다”고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바에즈의 노래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나가기 시작해 포크 음악이 배출한 여성 아티스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저자 소개

 포크 가수이며 평화운동가이자 국제인권기구 ‘후마니타스인터내셔널’ 설립자이다. 1941년 미국 뉴욕의 스태튼아일랜드에서 멕시코 출신 아버지와 스코틀랜드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세 딸 중 둘째로 태어났다. 캘리포니아 주 팰러앨토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뒤 보스턴대학에 진학했고, 1959년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의 포크음악 클럽인 ‘클럽 47’에서 정식으로 데뷔했다. 그해 ‘제1회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1961년에는 밥 딜런을 만나 연인 관계로 발전하여 함께 전국 순회공연을 하며 반전 평화운동과 인종차별 철폐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흑인 공민권 확대를 요구하며 여러 차례 비폭력 시위와 거리 행진을 벌였다. 여덟 장의 골드앨범과 한 장의 골드싱글을 기록했고, 그래미상 후보에도 여섯 차례나 선정되었으며, 2007년에는 그래미 평생공로상(Lifetime Achievement Award)을 수상했다. 인권과 평화운동의 공로로 대학 두 곳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받았고, 두 개 주로부터 ‘존 바에즈의 날’(Joan Baez Day)을 지정받는 명예를 얻었다.

역자 소개

연세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같은 대학원 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 《종말론》(2011), 《키메라》(2010), 《Y씨의 최후》(2010), 《연초 도매상》(전3권, 2007), 《스피박 넘기》(2005), 《매트릭스로 철학하기》(2003) 등이 있다.

머리말

 

목차

목차
서문
프롤로그
1장 유년기의 왕국
1. 내 기억의 눈
2장 60년대의 문턱에서
1. 사랑을 채우다
2. 청바지와 목걸이
3. 지난날의 바람들
3장 지평선을 보여 주세요
1. 멤피스의 검은 천사
2. 자니가 마침내 총을 가졌네
3. 한동안 꿈을 꾸다
4. 우드스톡 페스티벌
5. 난 그냥 포크 가수가 아니야
4장 지금 이곳은 얼마나 가혹한가
1. 국제사면위원회
2. 국회의사당을 에워싸다
3. 아들아, 넌 지금 어디 있니?
4. 인생이여, 고마워요!
5장 마침내 자유!
1. 밥 딜런과 두 여인
2. 낯선 이에게 부르는 사랑 노래
3. 노 노스 모베란
4. 지구의 지친 어머니들
6장 머릿속에서 음악이 멈췄다
1. 박해받는 자들에게 축복을
2. 제 콘서트에 오시겠어요?
3. 변화의 물결 속으로(1975~1979)
7장 중년으로 돌진하며
1. 시간의 장막들
2. 지금 나는 프랑스에 있다
3. 사랑해, 게이브
4. 바웬사에게 바치는 노래
5. 위 아 더 월드
6. 걸프의 바람
에필로그
감사의 말
옮긴이 후기
작품연보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