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얼굴을 더듬다

시리즈 : 실천문학의 시집(실천시선) [141]

유종인 저 | 실천문학사 | 2012년 09월

미리보기 북트리

정가
$16.00
판매가
$8.8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18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8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88939222014 / 150쪽 148 x 210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 10,800
  • 16,650
  • 17,100
  • 17,820

책 소개

출판사 리뷰

내가 나에게 멀어짐으로써 진정 나에게 가까워진다는 것

유종인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이자 첫 번째 시조집 『얼굴을 더듬다』가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시인은 1996년 『문예중앙』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후,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촉지도를 읽다」로 당선했다. 그 후 『아껴 먹는 슬픔』, 『교우록』, 『수수밭 전별기』, 『사랑이라는 재촉들』 네 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총 네 권의 시집을 상자한 시인이 왜 시조집을 내게 되었는가? 시인은 이 궁금한 외도(外道)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속내를 밝힌다. “내가 나에게 멀어짐으로써 진정 나에게 가까워진다는 것…… 시에 대한 외도(外道)로서가 아니라 시에 대한 본도(本道)로서 시조의 품격을 생각해 본다.”

생(生)의 적바림으로써 시 쓰기

적바림이란 ‘나중에 참고하기 위해 적어두는 간단한 글’을 말한다. 이 시집은 어떤 면에서 그간 시인이 발표한 시집에서는 미처 풀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스스로의 답변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큰 말을 내려놓고 내 곁에 오래 머무는 말들의 과묵함과 벗을 틀 것이다. 슬기로운 그대여, 나는 때때로 어눌하고 혀가 짧아질 것이네”라고 고백한다. 여기서 시인은 어눌하고 혀 짧음이라는 걸림돌을 디딤돌 삼아 딛고 일어선다. 문학평론가 장철환은 시집의 해설에서 “기존의 여정에서 발행(發行)한 결락(缺落)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시조라는 장르의 선택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죽은 자여,

이 갓 낳은 초록을 마저 보라

무덤 풀 새로 돋아 손으로 쓸어보니

죽었다

살아왔다는 그 말이

푸르게

젖어왔네

- 「풀」 전문

시인에게 삶과 죽음은 대척적이지 않다. 양자는 공존하는 것이기에, 분별된 두 개의 세계를 구축하지 않는다. 시인은 “삶과 죽음, 있음과 없음은 끝내 분별되지 않는”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며, 이런 의미에서 “삶은 ‘죽음이 싱싱한’ 상태일 뿐”이다. 죽음이 삶의 대척점에 있지 않고, 삶과 함께 공존하는 것이라면 사물에 대한 인식 또한 새로워져야 할 것이다.
이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다음 시를 읽어보도록 하자.

흰 모란꽃을 잘못 보고 작약꽃이라 일러줬다

모란꽃이 지고 나서야 작약꽃을 마주쳤다

꽃 이름

허공에 버리고

그 얼굴만 더듬었다

- 「얼굴을 더듬다」 전문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끊이지 않고 순환한다. 인간은 매번 오는 그 시간 속에서도 소중한 것들을 놓치기 일쑤다. 인간에게 죽음이 없다면 삶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을까. 이 시집은 죽음을 삶의 곁에 두라 한다. 그리고 마치 “모란꽃이 지고 나서야 작약꽃을 마주”치는 일처럼, 우리가 믿고 좇았던 것들이 실은 우리가 진정 원했던 것이 아닐 때,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 나(我)와 참나(眞我)의 얼굴을 한번 더듬어보라고 한다.

묵향처럼 퍼지는 시조의 향기

시조(時調)라는 말에 묻어 나오듯,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문학 장르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 시조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온 장르 또한 시조이기도 하다.

길 잃은 아이 하나가 저만치 울고 있기에

그늘 속에 섰던 눈사람

햇빛 속에 걸어 나가선

괜찮다,

울지 말거라

녹는 몸으로

달랜다

_ 「사랑」 전문

귀한 손님이 오면 아껴두던 찻잔을 꺼내 정성스레 차를 우려내 담듯, 시조의 향(香)은 시조라는 그릇 속에 오래 우러나 그 향이 가장 아늑한 상태가 되는 정서일 것이다. 그리고 시인의 그 정서를 한 모금 들이켠 사람들은 한순간이나마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경험을 한다. 그것은 마치 여행을 다녀온 후에 느끼는 것같이 세상에 대한 또 다른 시선을 가져다준다.
이 시집에는 율격에 딱딱 떨어지는 시조가 없다. 각 시편마다 담긴 내용에 따라 그릇의 모양이 제각각이다. 하나같이 오래 묵힌 것들이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시인이 모아온 삶의 향기들을 그릇 그릇 소복이 담았다. 손님의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으나, 주인의 정성이 오롯하다. 당신의 삶 한 구석이 퍽퍽해져올 때, 은은한 묵향 같은 시조 한 편을 곁에 두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저자 소개

인천 출생. 1996년 계간〈문예중앙〉 시 신인상. 2003년〈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2010년〈플랫폼〉 문화비평상 미술비평 당선. 2011년〈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 시집《사랑이라는 재촉들》,《양철지붕을 사야겠다》 외. 시조집《얼굴을 더듬다》, 산문집《염전》 외. 지리산문학상, 송순문학상, 지훈문학상 수상.

책 속에서

촉지도(觸地圖)를 읽다


휠체어 리프트가 선반처럼 올라간 뒤
역 계단 손잡이를 가만히 잡아본다
사마귀 그 점자들이 철판 위에 돋아 있다

 
사라진 시신경을 손끝에 모은 사람들
입동 근처 허공중엔 첫눈마저 들끓어서
사라진 하늘의 깊이를 맨얼굴로 읽고 있다

 
귀청이 찢어질 듯 하행선 열차 소리
가슴 저 밑바닥에 깔려 있는 기억의 레일
누군가 밟고 오려고 귓불이 자꾸 붉어진다

 
나무는 죽을 때까지 땅 속을 더듬어가고
쉼 없이 꺾이는 길을 허방처럼 담은 세상
죄 앞에 눈 못 뜬 날을 철필로나 적어볼까

 
내 안에 읽지 못한 요철 덩어리 하나 있어
눈귀가 밝던 나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몸
어머니 무덤마저도 통점의 지도였다

 

이발소 그림을 보다


징검돌을 건너가는 여름 아이의 발뒤꿈치,
바람에 멱을 감는 미루나무 휘인 허리를
저 해는 지지도 않고 첫날밤처럼 붉게 샜다 

 
하이얀 폭포 줄기는 참 오래 서 있습니다
다산(多産)의 암퇘지는 오래도록 누웠습니다
장발(長髮)의 수양버들을 이발 의자에 앉혀봅니다 

 
눈발 치는 창밖 도심을 내다보는 시골 정경,
비녀 낀 머리 위에 한 항아리 하늘을 이고
아낙은 삽살개 데리고 먼 고향을 삽니다 

 

마음


하루는 눈물 글썽한 상거지가 다녀갔다

또 하루는 꽃도 없이 바위가 그늘졌다

오늘은 술이나 받게

죽통(竹桶)처럼

비었다

 

수국(水菊)


피어나는 줄 모르고
저렇게 피어 있는 건

 

산 줄도 모르고
부음을 받는 일이네

 

탐스런 꽃차례 꺾어
드릴 이도
드문 저녁,

 

굴러라, 꽃봉오리들
담을 넘고
울을 넘어

 

공처럼 탱탱하게 저승까지 꽃 굴러가서
어머니, 혼자인 밥상에
겸상하듯
꽃 들어라

 

풀베개


초가을 들판 길을 홀로 걷다 멈춘 자리,

그대와 함께 베던 풀베개가 외따롭다

때마침 여치가 오르자

풀썩이며 주저앉네


 

목차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