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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의 탈을 쓴 여우

신이 저 | 가쎄 | 2012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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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3489255 / 212쪽 148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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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내가 누구인지 나도 잘 모를 때가 있다. 
어디에서 태어났고 나이가 몇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이제껏 뭘 하고 살아왔는지 등등... 포털 사이트에 검색만하면 쏟아지는 이런저런 나의 선입견들... 보여지는 게 전부 나의 모습은 아니다. 나는 그냥, 이 밝고 아름다운 소설 ‘곰탈녀’의 주인공 ‘현경’이다. 그리고 앞으로 나올 우울하고 비참한 소설 ‘죽지마!’’의 주인공 ‘현경’이다. 진짜 나는, 영화에서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니고 기사에서 포장된 신이가 아니고 내가 직접 쓴 소설들에 녹아있다. 
앞으로 나는 소중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평범한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을 쓰고 싶다.

책 속에서

미동이 없다. 자세히 보니 그의 뒤태는 제법 괜찮았다. 잘 세팅된 니뽄풍 뒤통수에 독특한 디자인의 의상과 함께 세련미가 느껴졌다. 엎어져 있는 그의 뒤태를 보니 스키니한 상체에 어깨는 넓었지만 어떻게 보면 조그만 중학생 꼬마 같은 느낌도 들었다.
   ‘어쭈! 이 시끼 보래이~!’
   니뽄 뒤통수가 꿈쩍도 하지 않자 현경은 화가 났다. 다시 한 번 강도를 높여 꼬꼬마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저기여~!!”
   순간 그 꼬꼬마가... 아니, 그 남자가... 아니, 그분이... 고개를 돌리시는 게 아닌가?! 오! 마이 갓! 순간 그 누구도, 현경의 떨어지는 턱을 잡을 길이 없었다. 지상의 얼굴이 아닌 천상의 얼굴을 가지신 그분은 온몸에 오로라를 뿜으시며 현경에게 배시시 살인 미소를 날렸다. 왜 ‘살인미소’라는 단어가 있는지 몸소 느낀 현경은 미소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산 체험을 했다. 잠깐 사경을 헤매다 고비를 겨우 넘기고 현세에 돌아온 현경은 내려놓은 턱도 되찾지 못한 채 그 자리서 돌이 되어버렸다. 현경과 눈이 마주친 그분께서는 헤드폰을 천천히 벗으시고, 살짝 눌린 윗머리를 손가락으로 만져 볼륨을 살리더니 옆머리를 손바닥으로 눌러 붙인 다음에 드디어 입을 여셨다.
   “누나 자리예염?? 죄송합니당.”


일명 ‘미친 개 껌!’
   고딩 현경의 방황 시절, 사람이 씹는 향기로운 껌 대신 개들이 환장하는 개 껌을 질겅질겅 씹고 다니며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가르쳐주신 무술과 깡으로 혼자서 ‘학교 깨기’를 하고 다녔다. 그래서 석 달 만에 모든 부산여고의 일진들이 줄줄이 ‘미친 개 껌’에게 무너지면서 그녀는 전설적인 인물로 떠올랐다.
   마지막 학교를 깨고 돌아오는 날, 현경은 아빠에게 잡혀 그날로 미국으로 보내졌고 말도 안 통하는 미국에서 개고생을 하며 현경은 뒤늦게 철이 들어 돌아왔다. 머리도 좋았던 현경은 과거를 청산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고 그 후로 그녀는 ‘미친 개 껌’은 잊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지금은 좀 오버해서 스스로 뼛속까지 천상여자라 생각하는 게 조금은 문제다. 사실, 너무 일찍 놀건 다 놀아서 정신 차렸다고나 할까? 아무튼 너무 놀아 보여서도 안 되고 술 먹고 골뱅이가 돼 마지막 남은 놈이 무조건 득템하는 그런 이미지의 여자는 더더욱 안 된다. 그렇다고 또 너무 순진한 척해도 안 된다. 너무 그러면 매력 없다. 적시적지에 한방을 보여주는 센스! 그것이 중요하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밀당! ^^ 현경이 혼자 머리를 데굴데굴 굴리는 동안 그분께서는 뇌에 필터를 제거하신 건지 아님 현경을 시험하려 하시는 건지 짧은 문장구사력으로 거침없이 말씀하신다.
   “예?! 진따요? 술 못 마셔요? 와~ 그럼, 누나 남친은 돈 안 들어서 좋겠당~”
   현경은 살짝 당황했지만 끝까지 자신을 놓지 않았다.
   “저... 남자친구 없어요.”
   “아! 정말요?! 왜요?? 예쁜데~ 누나 돈도 많이 벌죠?! 월급이 얼마예요?”
   연봉을 묻다니 현경은 그분이 자신을 테스트하시는 게 아니라 뇌에 필터를 직접 제거하시고 왕림하셨다고 확신했다. 어찌하여 이분은 입만 닫으면 고급스러운 자태에 눈이 부신 그리스 조각상인데, 입만 열면 동네 꼬꼬마란 말인가!
   ‘사람이 너무 완벽하면 인간미가 없으니 일부러 이러시는 건가?’
   이미 콩깍지가 쓰인 현경은 뭐든 좋게좋게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첫눈에 반한 남자가, 그것도 자신의 눈앞에서 살인 미소를 짓고 있으니 그가 뭔 얘기를 하던 현경은 만사 오케이다. 그분 주위는 다 포커스 아웃이고, 술집 안 시끄러운 소음은 다 무음 처리된 지 오래다. 그분이 또 입을 떼신다.


 “공주가 날 시험에 들게 하려고 이러는 것 같은데, 내가 보여주겠어! 난 지금 악마랑 싸우고 있으니까 먼저 자~ 언능 코 자염. 공주가 내일 아침에 눈 떴을 때, 내가 악마한테 이기면 공주 옆에 있을 거고 내가 지면 소파 위에 있을 거야. 내 꿈꿔~ 꿈에서 응원해줘! 잘자~”
   현경은 큭큭 대며 잠이 들었다.
   ‘네가 이기든 지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네가 지금 악마랑 맞짱 뜨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그런데 수빈아~ 세상을 다 이기면서 살려고 하지 마. 가끔 알면서도 져주는 미덕이 필요한 거야~ 난 뭐, 그렇다~! 악마, 파이팅!!’
   하루 종일 긴장한 현경이 잠들어 버렸다. 푹 잔 현경은 눈을 떴다. 현경은 원래 남의 집이든 서울역이든 어디서든 잘 잔다. 눈을 뜨자마자 손을 더듬더듬했다. 수빈이가 없었다. 악마가 이겼나 보다.


보고 싶다.
햇살 좋은 날엔 햇살이 좋아 보고 싶고
비 오는 날엔 비가 와서 보고 싶고
기분이 좋은 날엔 널 보면 더 행복해져서 보고 싶고
기분이 우울한 날엔 너랑 함께 있음 우울한 기분을 잠시 잊어버릴 수 있어서 보고 싶어.

맛있는 걸 먹으면 네 생각이 나서 보고 싶고
배가 고플 땐, 너랑 먹음 어떤 음식이든 훨씬 맛있어 보고 싶어.
재밌는 영화를 볼 땐 너의 어깨를 치면서 깔깔 웃고 싶어 보고 싶고
슬픈 영화를 볼 땐 내 눈물 닦아준 네가 생각나 보고 싶어.
좋은 일이 생김 젤 처음 너에게 말해주고 싶어서 보고 싶고
힘든 일이 있을 땐 말없이 넓은 어깰 내주던 네가 보고 싶어.

바람이 불면 내 머릴 넘겨주던 네가 생각나 보고 싶고
더운 날엔 웃으며 내 짜증 다 받아주던 니가 생각나 보고 싶어.
잠들기 전에 코에 침을 몰래 발라가며 팔베개해주던 네가 보고 싶고
잠에서 깨면 부은 내 얼굴 보면서 세상에서 젤 섹시하다고 말해주는 네가 보고 싶다.

술을 마신 날엔 얼굴이 빨개지는 내가 귀엽다며 뽀뽀해주던 네가 보고 싶고
괜히 심술이 나는 날엔 트집 잡아서 화를 내도 무조건 미안하다 사과하던 네가 보고 싶다.

헤어지잔 말 입버릇처럼 해도 내가 더 잘하겠다며
웃으며 내 기분 맞춰주던 네 얼굴 생각나 네가 보고 싶어...
길을 가다가도 문득 보고 싶고, 티브이를 보다가도 보고 싶어.
책을 읽다가도, 친구랑 커피를 마시다가도 운동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생각 없이 웃다가도 니가 보고 싶어.
눈 뜨고 있는 동안 아니, 꿈에서마저도 온 종일 네가 보고 싶어...

  시부야나 하라주쿠 같은 번화가의 전광판에는 수빈의 뮤직비디오가 하루 종일 흘러나왔고 첫 싱글 판매는 한 달 만에 50만 장이라는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올리며 발매되자마자 오리콘 차트 1위라는 기염을 토했다.
   수빈이 바빠진 관계로 현경은 겨우 통화만 가끔 하며 위로를 삼았다. 그의 성공에 자신은 더 외로워졌지만 그를 넓은 세상으로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경은 그가 행복하길, 그가 잘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가 정상에 섰을 때 설령 자신을 외면할지라도...
   현경이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건 어쩜 그를 자신보다 더 사랑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기밖에 모르는 개인주의의 최고봉 ‘장현경’이 이렇게 180도 바뀌었다. 어느 날 현경의 친구들이 힘들어하는 현경을 보며 이런 얘기를 했다. 수빈이가 잘 돼서 만약 배신을 하면 자기들이 가만히 안 있을 거라고. 현경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빈이가 잘돼서 유명한 스타가 된 뒤, 갑자기 자신에게 연락을 끊는다 해도 현경은 괜찮다고~ 현경이 그에게 해준 보잘것없는 것보다 그는 자신에게 훨씬 더 많은 걸 줬다고. 그래서 괜찮다고. 오히려 그에게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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