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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산책 소설보다 재미있는 진화의 역사

션 B. 캐럴 저 | 구세희 역 | 살림 | 201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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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2219343 / 392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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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생명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바꾼 진화론,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진화의 지도를 찾기 위해 떠난 위대한 과학자들의 놀라운 탐험 이야기! 소설처럼 읽히는, 소설보다 재미있는 진화론의 역사 이 책 『진화론 산책(원제: Remarkable Creatures)』은 미스터리 중의 미스터리이자 생물학 궁극의 문제인 ‘진화의 신비’를 담고 있는 경이로운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와 동시에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관해 놀라울 만큼의 헌신과 열정을 보여준 경이로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다윈보다 30여 년 전에 남아메리카와 중아메... 생명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바꾼 진화론,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진화의 지도를 찾기 위해 떠난 위대한 과학자들의 놀라운 탐험 이야기! 소설처럼 읽히는, 소설보다 재미있는 진화론의 역사 이 책 『진화론 산책(원제: Remarkable Creatures)』은 미스터리 중의 미스터리이자 생물학 궁극의 문제인 ‘진화의 신비’를 담고 있는 경이로운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와 동시에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관해 놀라울 만큼의 헌신과 열정을 보여준 경이로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다윈보다 30여 년 전에 남아메리카와 중아메리카를 탐험했던 알렉산더 폰 훔볼트부터 저 유명한 찰스 다윈, 그리고 다윈이 20여 년간 차마 세상에 내놓지 못했던 종의 기원에 대해 입을 열게 만들었던 월레스, 자바원인의 화석을 발견하여 인간과 유인원 사이에 과도기적으로 존재했던 인류의 조상이 있었음을 밝혀낸 뒤부아 등 진화론의 고비 고비마다 경이로운 생명체의 흔적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학문을 발전시킨 학자들의 놀라운 이야기를, 저자인 션 B. 캐럴은 연구노트와 일기, 탐험보고서 등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동원해 실감나게 그려냈다. 다윈과 윌슨, 도킨스와 굴드를 낳은 위대한 자연사의 전통! 이 모든 것은 훔볼트의 여행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프러시아의 젊은 박물학자 A. 폰. 훔볼트의 모험에서부터 이 책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베네수엘라 중부 칼라보조 지방의 한 개울에서 ‘전기뱀장어’를 발견했을 때, 뱀장어의 어느 곳을 만지면 감전되는지를 본인이 직접 체험해볼 정도로 고통스러운 실험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고무나무의 일종으로 우유 같은 물질을 분비한다고 하여 ‘젖소 나무’라 불리던 나무를 발견했을 때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무에서 분비된 액체를 한 바가지나 마셨다고 한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하인 한 명은 그 행동을 따라했다가 몇 시간 동안이나 응고된 고무 덩어리를 게워내기도 했다고 한다. 이처럼 궁금한 것은 직접 실험해서라도 확인해보고자 하는 앎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던 훔볼트는 1799년부터 1804년까지 5년에 걸쳐 베네수엘라, 브라질, 기아나, 쿠바, 콜롬비아, 에콰도르, 볼리비아, 페루, 멕시코 등지를 돌며 엄청난 양의 식물학, 동물학, 지질학, 민족학 표본을 수집했고 매우 정확한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경험을 『신대륙 적도 부근 지역 여행기』『코스모스』등의 책으로 평생에 걸쳐 펴냈는데, 그의 책들은 찰스 다윈, 알프레드 월레스, 헨리 월터 베이츠 등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재미있는 것은 훔볼트가 그 당시의 종교적 세계관(창조론)에 충실했던 인물이었고, 생물과 무생물을 포함해 자연이란 완전한 설계와 신성한 질서를 반영하는 다소 정적이고 평화로운 영역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의 영향을 받아 자연사 연구에 뛰어든 학자들은 훔볼트의 시각과는 정반대인 ‘자연이란 모든 유기체 사이의 끊임 없는 투쟁’이라는 생각을 발전시켰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하도록 만든 남자, 월레스 알프레드 월레스의 이야기도 무척 흥미진진하다. 그는 1848년 5월, 동료인 헨리 월터 베이츠와 함께 대서양으로부터 약 3,200킬로미터 떨어진 아마존강 일대를 탐험하며 원숭이, 각종 앵무새, 큰부리새 등의 동물들을 수집했다. 마침내 34마리의 살아 있는 동물들과 여러 표본, 기록 상자를 싣고 영국으로 향했다. 항해를 시작한 지 3주가 되었을 때, 그의 모든 것이 실려 있는 ‘헬렌호’에 불이 나 난파되었다. 그간 자신이 수집한 모든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된 것은 물론이고, 열흘간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신세가 되었다. 간신히 구조되어 영국으로 돌아오면서 “일단 영국에 닿으면 다시는 바다에 나가지 않으리라.”고 50번이나 다짐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과의 약속을 깨고 동남아시아와 호주 사이, 수많은 섬들이 모여 있는 말레이 제도를 향해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월레스는 돈을 벌기 위해 표본을 수집하던 사람에서 과학자로 변해갔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이 찾은 종의 다양성과 각 종의 개체 간 차이 등을 관찰하며 놀라울 정도로 다윈과 비슷한 결론에 다가가고 있었다. 월레스는 다윈과는 달리 평판은 고사하고 본래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적자 생존’이라는 원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좋았다. 1858년 초 말라리아로 고열에 시달리던 월레스는 섭씨 30도가 넘는 한낮에 담요를 두른 채 생각을 거듭하다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마 모든 변이 현상은 개별 개체의 습성이나 능력에 어느 정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조금이라도 힘이 향상된 변종은 그중에서도 우위를 차지해 결국에는 수적으로 우세하게 될 것이다.” 그는 이런 결론에 「변종이 본래 유형으로부터 완전히 이탈하려고 하는 성향에 대하여」라는 제목을 붙였고 자신의 개념을 사회과학자 허버트 스펜서의 말을 빌려 ‘적자의 생존’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월레스는 이 논문을 저널에 바로 보내지 않고 1만 6,000킬로미터 떨어진 존경하는 선생에게 보냈다. 바로 ‘다윈’이었다. 1858년 6월의 어느 날 월레스의 논문을 받은 다윈은 큰 충격에 휩싸였고, 그는 부랴부랴 자신의 이론을 발표했다. 다윈은 당시의 심정을 “내 이론이 얼마나 독창적이든 이제 모조리 망가질까 두려웠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다윈은 월레스의 부탁대로 지질학자인 찰스 라이엘에게 그의 논문을 보냈고, 라이엘은 월레스의 논문과 다윈의 논문초고를 함께 발표했다. 만약 월레스가 다윈에게 논문을 먼저 보내지 않고 저널에 그냥 발표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쨌든 월레스는 평생 다윈을 존경했고 자신의 주요 저서인 『말레이 제도』를 다윈에게 헌정했으며, 자서전인 『나의 인생』에서 다윈과의 우정에 대해 한 장을 고스란히 바쳤다. 평생 다윈에게 단 한마디의 유감이나 시샘, 원한의 말도 없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는 자신의 꿈을 좇아 머나먼 땅을 여행하고, 야생의 나라를 탐험하고, 아름답고 희귀하며 기이한 동식물을 수집했으며, 이미 멸종된 동물의 화석이나 인류의 조상을 발견한 놀라운 학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처음부터 위대한 업적이나 명성을 꿈꾸지 않았다. 그 중 몇 사람은 공식적으로 교육이나 훈련을 받은 적도 없다. 그들은 다만 자연을 탐험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고 자신의 꿈을 좇기 위해 어떤 위험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을 뿐이었다. 먼 거리를 항해하면서 목숨을 위협받는 위기에 처했던 사람도 많았고 사막과 정글, 남극과 북극의 혹독한 기후와 맞서 싸워야만 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그들이 이뤄낸 것은 실로 놀라웠다. 그들은 단순한 생존이나 동식물 채집 그 이상을 해냈고, 자신들이 찾아낸 경이로운 존재들을 통해 순식간에 수집가에서 과학자로 탈바꿈해 자연에 대해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인류의 세계관을 영원히 바꿔놓을 혁명에 불을 붙였다. 훔볼트에서 싹이 튼 진화론을 향한 모험은 다윈과 월레스, 베이츠를 거쳐 뒤부아, 월코트 등으로 이어졌다. 그들의 탐험은 성격과 목적이 각각 달랐지만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향한 욕구’에서 출발했다는 점만은 같았다. 이 책은 이처럼 진화의 지도를 찾기 위해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을 밟고,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하며, 아무도 생각지 못한 것을 깨달은 위대한 과학자들의 탐험 이야기다. 그것도 매우 흥미진진한. 그들의 모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우리는 진화의 비밀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 이

저자 소개

하워드휴스의학연구소의 과학교육부 부원장을 맡고 있으며 위스콘신 매디슨대학교 분자생물학&유전학과의 앨런윌슨교수이다.  지은 책으로 《이보디보 : 생명의 블랙박스를 열다》,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진화 이야기》《Brave Genius》가 있고, 《진화론 산책》으로 내셔널 북 어워드 논픽션 부분의 최종 후보에 올랐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진화생물학자로서 동물의 모습을 결정하는 유전자에 집중한 그의 연구는 동물 다양성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여러 과학적 공헌을 인정받아 벤저민 프랭클린 메달과 스티븐 제이 굴드 상 등을 받았으며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와 미국과학진흥회의 이름으로 국립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994년 《타임》에서 선정한 미국에서 주목받는 리더 40인에 뽑히기도 했다.

역자 소개

한양대학교 관광학과와 호주의 호텔경영대학교(ICHM)를 졸업하고 국내외 호텔과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며 운영관리 및 인사 업무를 담당했다. 번역에 매력을 느껴 과감히 하던 일을 그만둔 후 현재는 여러 가지 분야의 글을 공부하며 영어를 훌륭한 우리글로 옮기는 데 매진하고 있다


 


 전문 번역가 모임인 ‘꿰어서 보배’(고빛샘, 구세희, 김정희, 전행선, 전혜상) 소속 번역가이다. ‘꿰어서 보배’는 소설, 인문, 경영, 심리, 교육 등 각 분야의 실력파 번역가들이 독자들에게 빈틈없고 유려한 번역을 선보이고자 뜻을 모아 만든 번역 팀으로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우리 속담에 착안해 팀 이름을 지었다. 옮긴 책으로는 『플렉서블』, 『상어에게서 살아남기』, 『이노베이션 매뉴얼』, 『위대함의 법칙』, 『인생, 전쟁처럼』, 『사업의 모든 것은 엄마에게 배웠다』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자연선택이라는 개념과 그것을 증명하는 증거 수집의 한가운데에 세 번의 항해와 세 명의 영국인 자연과학자가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다름 아닌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다. 다윈이 자연사와 진화 이론 연구에 기여한 바는 매우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어떻게 그 배에 올랐는지, 그의 견해와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세계관을 갖게 됐는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잘못 이해되기도 했다. 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갖지 못한 채 비글호에 올랐던 신학생 한 명이 미래에 혁명적 이론을 제시할 사람이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항해를 시작할 때만 해도 다윈에게 그 어떤 위대한 이론을 지지하거나 반박할 증거를 찾으려는 의도 따위는 없었다. 그의 진화 이론이 구체적 형태를 띤 것은 항해가 끝나고 자신이 그곳에서 본 것이 무엇인지 혼자 생각하기 시작하면서였다. 반면 알프레드 러셀 월레스와 헨리 월터 베이츠는 항해 시작부터 진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나의 종이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은 1840년대 중반 이미 지식인 사이에서 조금씩 퍼지고 있었다. 친구인 베이츠에게 함께 아마존으로 가 ‘종의 기원이라는 문제를 풀’ 자료를 모으자고 제안한 것은 바로 월레스였다. (32~33쪽)

 

1858년 6월의 어느 날 월레스의 논문을 받은 다윈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전에 월레스가 보내온 것들을 자세히 봤더라면 그러한 충격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종의 형성에 관해 자신의 첫 번째 ‘에세이’ 버전을 쓴 지 16년이나 지난 다윈은 “내 이론이 얼마나 독창적이든 이제 모조리 망가질까 두려웠다.”고 표현했다.
그 후 일어난 일들은 여전히 학자들 사이에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월레스가 자신의 원고를 지질학자인 찰스 라이엘에게 보내달라고 했고 다윈이 그렇게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라이엘과 당시 유력한 식물학자인 J. D. 후커는 모두 다윈과 가까운 사이였고 다윈은 이미 그들에게 자신의 자연선택 이론과 그 증거가 되는 여러 논증을 밝힌 바 있었다. 라이엘과 후커는 직접 나서서 다가오는 리니언 소사이어티 회의에서 월레스의 논문과 다윈의 논문 초고를 발표하고 함께 출판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월레스는 과연 위대한 발견의 영예를 독차지할 기회를 빼앗긴 것일까? 공동 출판이 과연 공정한 것이었을까(월레스는 실제 출판이 될 때까지 이러한 사실을 듣지 못했다). 한편으로 보면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은 다윈이었고, 그는 자신의 1842년 초고를 개인적이긴 하지만 다른 과학자들과 공유한 바 있었다. (96쪽)

 

그의 동료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아니라면 네덜란드의 유력 의학대학에서 교수직을 맡을 것이 분명한 전도유망한 젊은 의사이자 해부학자가 도대체 왜 그것을 모두 던져버리고 네덜란드 군대와 함께 1만 6,000킬로미터나 떨어진 동인도 제도로 가겠는가? 게다가 제정신이라면 그렇게 멀고 위험한 이국땅에 아름답고 젊은 아내와 갓난아기를 데려갈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자연선택에 관한 월레스와 다윈의 첫 번째 논문이 세상에 나온 바로 그해에 태어난 29세의 의사 마리 외젠 프랑수아 토머스 뒤부아가 동인도 제도에서 찾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119쪽)]

 

그곳에서 발견된 것은 알뿐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주변을 기어 다니고 있는 동안 올슨이 바로 옆, 삐죽 튀어나온 암석 위에 있던 돌덩이를 하나 치웠다. 놀랍게도 그 암석 아래, 알에서 단 10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몸집이 작은 공룡 유골이 발견됐다.133 그 공룡은 당시 과학계가 처음 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후에 오스본 교수는 그것이 알을 훔쳐가려던 중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그 새로운 종을 오비랩터(알 도둑)라 이름 붙였다.
며칠 후, 한데 모여 있던 알 다섯 개가 더 발견됐고 그다음에는 아홉 개가 추가로 나왔다. 그중 두 개는 반으로 쪼개져 있었는데 속에 든 공룡 새끼의 골격이 그대로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해 총 스물다섯 개의 알이 발견됐고 그 후로도 몇 년간 알은 계속해서 발굴됐다.
그러나 이것은 보물찾기의 끝이 아니었다. 대원들은 반경 약 5킬로미터 내에서 공룡 두개골 일흔다섯 개를 찾아냈다. 하지만 발굴량이 그렇게 많다 보니 문제점도 있었다. 발견된 표본은 밀가루 반죽을 흠뻑 묻힌 천으로 감싸 포장했는데, 3주 만에 가지고 온 밀가루를 거의 다 써버린 것이었다. 로이는 대원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표본 찾는 것을 중지할 것인가, 아니면 밀가루를 그냥 다 써버릴 것인가? 대원들은 만장일치로 “먹을 밀가루도 작업용으로 쓰자.”라는 데 의견을 모았고 덕분에 이제 대원들이 먹을 것이라고는 차와 고기뿐이었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표본을 싸는 데 쓸 천도 떨어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가지고 있는 것으로 대체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가장 먼저 텐트 가장자리에 달린 덮개들이 잘려져 나갔다. 그것이 다 떨어지고 난 후에는 대원들이 쓰던 수건과 행주 차례였다. 그것마저 다 없어지고 난 후에는 대원들의 옷을 쓰기 시작했다. 양말, 바지, 셔츠, 속옷, 심지어 로이의 파자마도 표본을 싸는 데 들어갔다. 그들이 가져온 공룡 중에는 오스본이 새로운 종이라고 확인한 것들이 있었는데 발톱이 크고 민첩한 육식공룡 벨로시랩터와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와 비슷한 타보사우루스가 이에 속했다. (191~193쪽)

 

믿기 어렵겠지만 고생물학자들이 공룡을 찾는 데 관심이 별로 없었던 시기도 있었다. 수십 년간 너도나도 가담한 공룡 발굴 이후 1930년대가 되자 박물관 전시관과 창고는 거대한 동물의 유골로 가득해졌고, 덕분에 공룡 화석은 가치가 많이 떨어졌다. 게다가 공룡은 느리고 게으르며, 아마 그러한 습성 때문에 멸종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만연하고 있었다. 많은 과학자들이 공룡을 버리고 포유류처럼 현재 후손을 볼 수 있는 다른 생물을 찾아 떠났다.
하지만 존 오스트롬만은 달랐다. 공룡에 관한 그의 관심은 진화라는 초기의 흥밋거리에서 이미 벗어나 있었다. 1940년대 후반 고향인 뉴욕 슈넥타디의 유니언 대학에서 의대 예과 과정을 공부하고 있던 그는 어느 날 진화에 대한 수업을 듣게 됐다. 새 수업이 시작되기 전날, 그는 고생물학자 조지 게일로드 심슨이 쓴 『진화의 의미』를 집어 들었다가 푹 빠지고 말았다. 그는 밤을 새워 그 책을 마저 읽었고 그 책이 자신을 어떻게 사로잡았는지 심슨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 답례로 심슨은 오스트롬에게 컬럼비아 대학으로 와 자신과 연구를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외과 의사였던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오스트롬은 의대를 포기하고 지질학으로 전공을 바꾸기로 결심한다(다윈의 이야기와 매우 비슷하지 않은가?). (221~222쪽)

 

1959년 7월, 리키 일가의 관심은 올두바이 지층 중 가장 오래된 것인 제1베드로 향했다. 어느 날 아침, 루이스가 몸져누워 있는 동안 메리는 혼자 발굴할 만한 곳을 찾아 나섰다. 땅 표면에 여러 물체가 흩어져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땅 표면에서 삐죽 튀어나온 뼛조각 하나가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 그것은 두개골의 일부 같아 보였다. 그것도 인간과(科) 동물의 두개골 말이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주변의 흙을 떨어내자 위턱뼈에 붙은 두 개의 커다란 이가 보였다. 그것은 인간과科 동물의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커다란 조각이었다. 메리는 냉큼 지프차에 올라타 마구 소리를 치며 야영장으로 달렸다. “찾았어요! 찾았어! 그를 찾았어요!”
“뭘 찾았다고? 어디 다쳤소?” 루이스가 물었다.
“그 사람 말이에요! 우리가 찾던 그 사람!” 메리가 소리 질렀다.
루이스는 아픈 것도 잊고 벌떡 일어나서 메리와 함께 그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가 본 것은 분명 인간과科 동물의 화석이었고 두개골의 상당 부분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28년에 걸친 탐사 끝에 마침내 ‘그 사람’을 찾은 것이었다.
그들이 느낀 흥분과 감동은 곧 고인류학계에도 퍼졌다.
그러나 메리가 ‘디어 보이’라 이름 붙인 이 두개골을 제대로 발굴해서 조각을 맞추는 것이 급선무였다. 두개골은 400개가 넘게 조각나 있었다. 프로콘술 때 그랬듯 메리는 끈기 있게 두개골을 맞추기 시작했다. 위턱뼈와 이빨, 얼굴 상당 부분, 두개골의 윗부분과 뒷부분은 이미 가지고 있었다. 루이스의 말을 빌리면 이 생물은 “꽤 아름다웠다.” (303쪽)

 

이 와중에 폴링은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다. 물론 FBI와 국무성에서 주장하던 종류의 이중생활은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행동주의자였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연구를 계속하는 과학자였다. 그는 패서디나에 있는 자신의 실험실에서 단백질 구조에 관한 연구를 지휘하는 동시에 시간을 쪼개 강연을 하고, 논문을 쓰고, 핵무기 실험 중단 로비를 하고, 반대파들과 논쟁을 벌였다. 텔레비전 토론에 나와 대기 중의 방사능 농도가 약간 올라가면 진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하는 텔러 같은 사람에게 맞서려면 폴링 역시 유전, 돌연변이, 진화 이론 등을 잘 알 필요가 있었다. 1959년 초, 그는 다윈의 『종의 기원』과 조지 게일로드 심슨의 『진화의 의미』를 한 권씩 구입한다. 화학자가 생물학자로 진화하는 순간이었다.  (323쪽)

목차

목차
머리말_진화의 비밀을 찾아 떠나는 모험
1장 훔볼트의 선물
1부 이론의 발전
2장_다윈 목사, 옆길로 빠지다
3장_원숭이와 캥거루 사이에 선을 긋다
4장_생명, 생명을 모방하다
2부 아름다운 유골
5장_자바원인
6장_말을 타고 빅뱅까지
7장_용이 알을 낳는 곳
8장_중생대가 막을 내린 날
9장_깃털 달린 공룡
10장_발 달린 물고기
3부 인류의 역사
11장_석기시대로의 여행
12장_시계, 나무 그리고 수소폭탄
13장_네안더 계곡의 CSI 과학수사대
맺음말_다가올 것들의 모습
감사의 말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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